(1)임하소서
(2)주를 사랑하는가
(금보다도 귀하다) :
색소폰 연주 이경수장로
(3)축가 김영백목사님 자녀들
사진 촬영

은퇴를 즐겨라
우리 교단에 금년 들어 은퇴하는 목회자의 수가 급증하였다. 일생을 교회만을 섬기다 은퇴
하는 분들에게 먼저 경의를 표하며 교회는 그들에게 존경과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할
것이다. 작년 총회 후에 은퇴하는 후배들의 면모를 보면서 세월이 참 빠르다는 느낌을 강하
게 받았다.
은퇴란 본인에게 있어서 삶의 자리를 앞에서 뒷자리로 옮기는 위치변경이며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기 위해 자동차의 타이어를 바꿔 끼는 (Re-tire) 불가피한 과정이다. 또한 후배들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는 미덕이기도 하다.
은퇴란 어감으로 보아 좀 쓸쓸한 면은 있지만 은퇴만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도 많다. 자유
를 향유하며 자기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
유없이 바쁘게 사느라 엄두도 못 냈던 부부동반의 여행도 즐길 수 있고 부부가 함께 자기들
의 취미를 살리면서 멋지게 나이 드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 두 번 등산을 하거나 일산의 5일장을 구경하다가 포장 집에서 파
는 칼국수를 사먹는 맛이 정말 일미가 아닐 수 없다. 어떨 때는 일산의 자랑인 젊은이의 거
리 라페스마 광장을 팔짱을 끼고 걸으면서 옛일을 추억한다.
일년에 여름이 되면 한차례 미국에 사는 자식들을 방문하여 손자들을 만나고 친지들을 만나
는 기쁨에 늘 여름철이 기다려진다.
나의 하루의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기도와 운동과 일이다.
새벽기도회에 나가면 기도할 제목들이 많고 반복해서 기도할 할 사람들의 수도 많다. 기도
시간은 내 영혼이 비타민을 공급받는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일주하면 1시간이 걸린다. 어떤 때는 아내와
동반하여 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걷다가 피곤하면 좀 쉬기도 하고 커피숍에서 따스한 차를
시켜 목을 추기기도 한다. 그것도 일종의 늙은이의 운동인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는다. 인터넷으로 급변하는 세상
을 구경하거나 나에게 오는 메일을 읽는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일이다.
종종 모임에 참석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한다. 버스는 차비를 내지만
전철은 공짜로 탈수가 있어 좋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혼자 자가용을 타고 가는 사
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별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의미가 있다.
모임에 나가면 옛 어른들의 자리가 비어있고 어느새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대교체를 하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어떤 때 교우들이나 후배가 찾아오면 그야말로 그 날은 나의 최고의 날이 된다. 이야기는
주로 내 몫이 되어 옛날 이야기며 신앙생활과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가 경험한 일들
을 말하다 보면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못해 나중에 생각하면 미안하기만 하다. 늙으면
기운이 위로 올라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씨가 쓴 "나이드는 것의 미덕"이라는 책에 "나이가 든다는
건 꽤 괜찮은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나이듬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기기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기기감"이란 기쁨, 기도, 감사의 줄임말로
서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성구라고 생각한다.(살전 5:16-18)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을 남에게 누를 기치지 않으면서 부끄럼 없이 추
하지 않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기기감 전도사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기감' 전도사를 자처했지
수시로 설교할 때 '기기감'을 외쳤지
노인대학 학생들은 10년간 이 말을 들었지
일본의 후루가와 목사도 자주 인용을 하고
화가 호리에 하루미의 이메일 주소가 바뀌었고
그 주소가 rejoice-pray-thank라고 얼마전에 일려왔고
한국서는 熹園이 '기기감' 애용자지
자꾸 사용하다 보면 '기기감'이 그 사람의 체질이 되지
밥을 세끼 먹어야 하듯 하루에 세번씩
복용하면 효과가 참 좋지
오늘도 하루가 시작이 되네
땅만 내려다 보지를 말고 푸른 하늘을 쳐다 보네
거기에 무지개빛 빛나는 '기기감' 구름 글자가 선명하네
'기기감'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네
낮은 땅에 살면서 높은 하늘 뜻 받들기 위해 매일 다짐을 했네
기쁨 기도 감사하며 살다보면 나도 세상도 새로워질 것을 믿네
<2012-10-7, 인산>

나의 監神時節
등촌을 통해서 들려지는 뉴욕의 이야기는 늘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번에는 감신 이야기를 하셨네요.
감신하면 생각나는 게 많아요.
1951년 피난시절 부산 수정동에서 개교한 감리교신학교는 낡은 한옥을 개조한
20평가량의 목조 바라크 교사였으며 이 건물은 교사로 사용되었지만 동시에 피난
온 신학생들의 숙소며 생활터전으로 쓰여지는 그야말로 다목적 건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공부를 했으며 나는 은영극장에 임시로
수용된 보이스카웃 피난민 숙소에서 통학을 하였습니다.
당시 교장은 柳瀅基 박사님이고 교수로는 유학가기 전의
尹聖範, 김용옥, 김폴린 선생님이 생각이 나고 洪顯卨 박사님은
아직 귀국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학생들 가운데는 평양 요한신학교 출신들이 있었고
흥남 철수 때 넘어온 학생들도 더러 있었어요.
생각나는 사람으로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로 같은 보이스카웃
출신인 李在殷, 함경도에서 내려온 張基天이 있었으며 崔孝燮
, 鄭載植 그리고 1년 선배로 邊鮮煥 부부와 1년 후배인 朴奉倍가
아주 재주꾼이었습니다. 생각하면 모두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 나는 신학생 시절에는 卞鴻圭 목사님이 2층 건물을 빌려서
시작하신 광복동 감리교회에 나가서 다른 학생들과 더불어
성가대원으로 얼마간 봉사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맡은 파트는 베이스였고 그게 내가 성가대원으로
봉사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나는 감신에서 오래 공부를 못했어요.
2학기를 공부하고 나는 제주도로 건너가서 명진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고아들을 중심으로 보이스카웉 운동을 하였으며
거기서 걸스카웉도 조직을 하였고 1952년에 부산 일광(日光)에서
열린 제1회 전국 잼보리대회(Jamboree)에 제주도 대표로
참가를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간사장 李昌鎬 목사님과 총재인 문교부장관
白樂濬 박사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감신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교장 柳瀅基 박사님이 가르친 구약성서개론이에요.
당신이 역편한 같은 이름의 책을 가지고 처음부터 성경의 문서설을 가르치면서
성경에 문서별로 밑줄을 쳐 오라는 숙제를 하느라
애먹었던 일과 윤성범 교수님이 새벽기도회 시간에 난해한
신학용어를 해설해 준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 내용이 작은 책으로 출판되었지요.
그리고 김폴린 선생님의 기독교교육학, 김용옥 선생님의
신약개론과 어느 선교사님이 가르친 영어회화가 생각납니다.
나는 짧은 기간이지만 감신 학생으로 있는 동안에 공부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습득했고 또 칼 발트나 에밀 부른너와
같은 유명한 신학자에 대한 학설을 배울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후에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활약한 많은
친구들을 사괼 수 있었던 것이
내 생애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가 나사렛신학교로 편입하게 된 것은 1956년 군에서
제대하고 찾아간 나사렛교회 초대 선교사이며 교장인
오은수(Owens) 선교사의 강권때문에 들어갔지만
나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감신을 중퇴하고 나사렛의 사람이 된 것을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영원한 나사렛사람으로 견디어 온 것을
퍽 자랑으로 생각하며 初志一貫한 내가 대견스럽기조차 합니다
. 나의 좌우명이 "하나님 中心, 인간 指向"인데
그 정신과 부합한다고 믿습니다.
나는 원래가 기초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험한 시대에 태어나서 단계적으로 정상적인 공부를 못했어요.
그래서 자기 위치에 만족하며 외길로만 달려왔지요
.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했으며 혼자 사색하고
고독을 즐기는 타입이랍니다.
나는 또한 나와 비슷한 사람을 아내로 맞아 둘이
화합하여 금년 52년을 덤덤하게 오로지
목회에만 전념하며 살아왔고 2남2녀도
우리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으로 한국과 미국서
목회자의 길을 그냥 걷고 있어요.
우리가 그들에게 별로 해준 게 없어서
늘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저 기도로 도울 뿐입니다.
나는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하여 글을 쓴답시고 요즘 허둥대지만
내 머리가 너무 녹이 쓸어서 작품이 잘 나오지를 않아요
. 그래도 어릴 쩍 소원이 이루어진 것만으로 감사하며 만족합니다.
얼마를 더 살런지 몰라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기기감'-(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이
나의 매일의 목표입니다.
뉴욕의 등촌이 오늘따라 많이 생각이 납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2월20일,
일산에서 인산이







김은엽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연합기독뉴스 국장목사님께 전달하겠습니다

왼쪽 김영백목사님 장남 김은엽목사님
오른쪽 남서울교회 박준기담임목사님




왼쪽첫번째 나사렛 초대총장 이호정목사님



김영백목사님 사위 인천수정교회 문철영목사님 뵈서 엄청 반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