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나에게도 따사로운 햇살처럼 봄기운이 완연한 그런 기운이 오겠지!
언젠간 나에게도 고통과 상념속에 살아온 인생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오겠지!
젊었을때의 상처로 인하여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친구와의 절연과 동기들과의 절연 생활이 무디어질 무렵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매달리고 살았는지, 그리고 왜 그토록 아픈 상처를 껴안고 살아왔는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살아왔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린 두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일념 뿐이였다.
어느덧 두 아이가 성장하고 나에게는 할 일이 없어졌다. 책임감과 의무감이 사라져 버리고 난 후 난 방황하게 되었다.
오로지 나를 위하여 살아야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른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도 체력이 따르지 않는다. 일을 계속 하고 싶어도 점점 퇴화되는 머리에 따라 갈 재량이 없다.
육신의 건강과 정신 건강이 모두 퇴색되어 이제 빛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육신의 건강을 위해 애쓰지만 그닥 절박하게 애쓰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에겐 게으름이 앞서며, "되겠지"하는 안일함이 족쇄로 묶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싶지만 육신의 건강이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살다 갈 것인가, 남은 인생을 푸념과 절망감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답답하고 한스럽다.
다람쥐 처럼 제 바퀴를 열심히 돌고 있다. 남들이 보면 한심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다고 하겠지, 아니 내가 남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처럼 내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고, 변화를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다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죽음을 맞이 할때 깊은 후회를 하겠지!
적어도 세상에 태어났으면 가장 사소한 것이라도 족적을 남겨야 되는데 나는 족적은 커녕 후회로써 생을 마감할 것 같다.
머리로는 다 이해되고, 머리로는 다 할 수 있고, 머리로는 안되는 일이 없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몸이 정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제 간만에 tv를 시청하면서 스쿼시를 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 했다. 가만히 앉아서 tv를 시청하느니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이자라는 취지로 했지만 정신은 하지 말라고 달콤한 유혹을 한다.
육체보다 정신의 강한 유혹에 다시금 주저 앉게 된다.
그리고 나선 이부자리에 누으면 이내 후회를 한다.
참으로 한심하게 살고있다.
하지만
주저 앉지 않고 먼 미래를 지금 생각하기 보다는 오늘 하루만 하기로 다짐한다.
매일 매일 오늘 하루만 잘 하면 일년 후, 십년 후 또 다른 나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겠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자. 긍정적이며, 해 맑은 미래를 꿈꾸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꼭 성취될 수 있도록 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도 안되다는 생각을 접어 버리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자.
법륜 스님 말씀처럼 그냥 사는 거다. 도토리도 토끼도 인생에 대한 고뇌를 할 것인가? 도토리와 토끼는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고 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