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의 추억 1부
2007. 8. 9 ~ 8. 13(5일간)
소산/문 재학
2007년 8월 9일
몽골은 특이한 나라다. 강우량이 적어(년중 강우량이 우리나라 1/10정도 밖에 안 되는 130m정도) 하늘은 언제나 쾌청하고 풀이 잘 자라지 않아(년중 15cm내외 자람)초지는 넓어도 유목하지 않으면 안 되고,
몇 시간을 달려도 산골짜기와 들판에 개울을 보기가 힘든 나라다.
2007년 8월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3시간 반 정도 걸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상공에 도착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몽골은 황량 했다.
민둥산 비탈진 초원에 판자촌이 즐비한 외곽을 지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16시 12분에 내렸다.
계루중인 여객기 1대 이외는 우리가 타고 온 여객기뿐이고 공항건물도 초라했다. 간이 비행장에 온 것 같았다.
그래도 입국절차는 다른 나라 국제공항과 다름없이 철저했다.
몽골의 8월 날씨는 섭씨24~5도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온도였다.
공항 주변의 산은 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풀 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몽골의 년 중 강우량이 우리나라 1/10 정도인 130~150mm정도라 하니 풀이 자랄 수 없을 정도였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가이드가 준비해 온 미니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는 한국인 21세의 박○정 양이다.
몽골은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것 보다 7.5배이고 그중 24%가 고비사막이란다. 인구는 280만 명으로 보는데 수도 울란바토르에 150만 명이 산다고 했다.
몽골은 더울 때는 38도까지 올라가지만 건조하기 때문에 별 더운 줄 모른단다. 겨울에는 영하40도까지 내려가며 겨울이 길고 봄. 여름이 짧다.
시내 들어가는 도로변에 대형 굴뚝 2개가 김을 뿜어내고 있고 연결된 직경 1m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난방 파이프를 지상에 노출시켜 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시설이라 신기했다.
이 대형 파이프가 시내 곳곳으로 거미줄처럼 연결하여 시내 전역을 집중난방 한다고 했다.
도로변에 대형 야립간판도 많이 보였다.
몽골 인구의 42%가 살고 있다는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는 판자 집은 없지만, 거리의 풍경이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70~80년대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내 곳곳에 신축을 많이 하고 있었다.
비교적 많은 차량이 다니는데 70~80%가 한국차량이다.
몽골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사람 보다 한국 사람을 좋아 한단다.
가이드가 몇 가지 주의 점을 알려 주었다.
만나서 손을 내밀 때는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절대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지 않도록 당부했다.
또 발을 밟거나 몸이 부딪칠 때는 기분 나빠하니까 악수를 해야 한다.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지폐 같은 것을 줄때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 주도록 했다.
이곳의 학제는 초중교 합하여 11년을 공부한다.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가 협소하고 요철이 심했다.
울란바토르는 해발 1350m로 공기가 맑은 대신 건조하며 자외선이 강하다.
눈이 오면 잘 녹지 않고 지하수는 풍부 하단다.
자동차는 최근 4~5년 사이에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시내 앞을 흐르는 조그마한 “툴(Tuul)강”을 지나 시에서 바라본 정중앙 앞 野山 정상에 있는 “자이승승전탑”(2차대전 일본군을 몰아낸 기념) 을 방문 했다.
2차대전시 일본군을 소련의 힘을 빌려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산 중턱까지 차가 올라가기 때문에 차에서 내려 50여m만 걸어가면 된다.
주차장 옆에는 사나운 매를 팔목에 얹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통용되는 우리 돈 1000원만 주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일행 몇 사람이 매를 올려놓고 사진 찍느라 시간이 약간 지체되기도 했다.
몽골은 1991년에 민주주의를 실시한 후 하루가 다르게 변화가 오고 있단다.
그러나 공무원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냄새가 남아 있단다.
이곳에서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시내 곳곳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토지는 전부 국유지이다. 회사원 평균 월급은 우리 돈으로 대략 150천 원 정도다.
울란바토르 시내 전경
자이승승전탑 내부
오른쪽으로는 산비탈에 사방 폭 100m나 되어 보이는 몽골인의 우상인 칭기즈칸의 대형 모형도(초상화)가 흰색 돌로 새겨져 있는데 이곳은 풀이 자라지 않아 이런 시설을 해두고 년 중 바라 볼 수 있다.
승전 탑 山麓변에는 우리나라 조계종에서 지원 건립한 커다란 금동불상이 있는 공원이 있고
공원의 도로 맞은편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의사 이태준 기념 공원이다.
헌신적인 의술을 펼쳐 몽골에서 영웅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기념비에는 한글을 크게 명기하여 더욱 반가웠다.
이태준 기념관에는 그 동안의 활동상황과 유품 등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민속공연 시간 때문에 시간이 없어 급히 차에 올랐다.
우리가 툴(Tuul)강을 지나는 평화의 다리는 중국에서 만들어 준 다리라 한다. 국가 재정이 빈약하여 세금으로는 공무원 월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외국의 지원을 받아 도로 등을 정비하고 있었다.
민속공연장 가는 길이 울란바토르 중심지이다.
이 주요간선 도로를 한국이 확 포장하여 “서울의 거리”라 명명하고
“서울각”이라는 정자도 있었다.
서울시와 자매결연 기념으로 조성한 “서울의 거리”의 아스팔트 포장은 시내 여타 도로의 모범이 되고 있을 정도로 포장을 잘 하였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끼는 도로였다.
서울의 거리를 지나 인접한 민속공연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을 중심으로 4~5층 정도의 건물들이 있었다.
공연장 내부는 50평 남짓한 소규모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들이 음료수 등을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특이한 음성 노래를 곁들인 민속공연장면을 영상으로 담으려면 20 $을 주어야 했다.
공연이 끝난 후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했다.
이어 15분 거리에 있는 신축한지 3개월 밖에 안 되는 “선진그랜드(sun jin Grand)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아주 고급스러웠다. 42“ PDP TV가 응접실과 침대 앞 등 2대가 있을 정도로 방이 넓은 호텔 이였다. 일본 동경만에 있는 힐턴 호텔보다 좋아 보였다. 503호실에 투숙했다. 우리나라 YTN방송이 잘 나오고 있었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은 한국 방송을 볼 수 없는데 친근감이 들어 마치 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계속)
첫댓글 멋진
이야기 들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