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이 혁
한기를 한껏 머금은 아침
사람들은 저마다 두툼한 옷가지를 두르고
부자연스럽게 걷고 있다.
추위에 노출된 거리는
그저 잠깐 머무는 곳일 뿐
언 손, 언 발을 녹일 따뜻한 곳을 찾아
모두들 발걸음 분주하다.
나방이 빛을 향하듯
나비가 꽃을 향하듯
사람은 따뜻함을 찾아가는 존재
한 겨울 매서운 한파에도 끄떡없는
우리 안을 훈훈히 데울
따뜻한 난로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옹기종기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둘러 앉아
정겨운 이야기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고구마 익혀 호호 불며 서로 건네는
그런 난로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불안과 절망과 욕망에 침잠해가는
마음의 냉골에
영혼의 궁핍을 채울
너와 나의 이야기 가득 채워
활활 타올라 온기 내뿜을
그런 난로 하나 들여놓아야겠다.
오늘
너와 나의 마음에
난로 하나 들여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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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꽁꽁 언 남대천 위로 썰매를 타고 놀았던 걸 생각하면 올 겨울의 추위는 그리 맹위를 떨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추위가 맥을 못 추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겨울은 겨울입니다. 여지없이 감기라는 친구가 찾아왔으니 말이지요. 두 주간 함께 살아온 감기는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듯 그 기세등등했던 기운이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몸은 괴로워도 가끔씩 찾아오는 이 녀석 덕분에 잊고 지냈던 몸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곤 하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지 싶습니다.
지난 7~9일에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감리교 전국 평신도동계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신집사님은 열심히 집회에 참여하였지만 저는 아이들과 함께 쉼을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말 연초에 계속된 행사에 심신이 지쳐있던 터라 의도적으로 그런 쉼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들과 리조트 안에 있는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챙겨간 보드게임도 재미있게 하고, 영화도 보고, 간간이 독서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먹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 오전에 곤돌라를 타고 하이원리조트의 가장 높은 곳인 하이원 탑에 올라 설산(雪山)을 본 것입니다. 올 겨울 볼 수 없었던 하얀 세상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지요. 아이들도 참 좋아라 했습니다. 그곳은 시시각각 날씨가 변하여 구름에 뒤덮여있다가도 금세 볕 쨍쨍한 날씨로 바뀌기를 반복했고, 바람도 수시로 방향을 바꿔가며 불어왔습니다. 기온도 아래쪽보다 5도 이상 낮았습니다. 전망대 옆 숲길을 아이들과 함께 거닐었는데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던지요. 온통 눈으로 뒤덮힌 나뭇가지들 사이로 비추는 청명한 파아란 하늘이 마음에 청량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이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이 깨끗함을 마음에 담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이들도 좋은지 연신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몸은 추운데 마음은 따스해지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2년 전 겨울 썼던 시를 다시금 꺼내봅니다. 사람은 본디 따뜻함을 찾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따스한 사람, 따스한 사건을 마주할 때면 누구든 행복해합니다. 점차 냉골이 되어가는 세상에 ‘난로’하나 들여놓을 일입니다. 난로는 다른 게 아닙니다. 그 마음에 온기를 품고 사는 이가 난로이지요. 그런 이가 그립습니다. <20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