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들의 애국심의 원천지가 된
상감령(上甘領, 철원 저격능선)전투와 항미원조 사상
* 서언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이지역이 15사단과 3사단 경계지역으로 행정구역은 3사단 지역이나
저격능선이 잘 보이는 곳은 제가 83년도에 15사단 철책 대대장을 했던 승리 전망대 (당시는 아산
OP라 칭하였음) 지역에서 더 잘 보였다.
그곳이 치열한 전쟁터 였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곳에서의 전투를 영화화하여 중국 인민
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애국심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은, 2008년 북경 올림픽이후 비로소 알
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곳에 근무하게 되는 후배 장교들에게 전사 연구 뿐만 아니라 2021.7.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중국인들이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 이글을 쓴다.
▲ 멀리 보이는 것이 북한 오성산(▲1,062m)이며, 앞에 보이는 능선이 저격능선(상감령)이다
저격능선 전투는 1952년 10월14일~11월25일까지 42일 동안 뺏고 뺏기는 혈전이 벌어졌으나, 결국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남쪽 능선의 A고지와 돌바위 능선은 국군이, 북쪽인 Y고지는 중공군이 점령한 채로 전투가 끝난 것이다.
전사자는 국군이 4,830명, 중공군은 1만4867명이었다.
중국 측에서는 ‘상감령(上甘領)전투’라고 하는데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오성산 남쪽, 저격능선과 삼각고지 사이에 있는 고개가 바로 상감령이다.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는 이 전투를 대첩(大捷)으로 과장하고 미화했다.
그래서 중국 대륙 곳곳에서 보낸 편자와 위문품이 이곳 땅굴 요세로 쏟아졌다.
1950년대 중국에서는 “상감령 정신”이 일세를 풍미했는데, 중국으로서는 상감령 전투야말로 미제(美帝)에 맞서고 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라는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는 1956년 이를 영화화하였는데, 그 영화에서는 미군들이 인해전술을 쓰면서 고지로 공격해오는데, 땅굴 요새(要塞)에서 기관총을 쏘는 중공군에게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이때 땅굴 속에서 중공군 부상병들이 합창하는 노래가 그 유명한 “나의 조국”이다.
이 노래는 중국의 온갖 행사 때마다 단골로 13억 중국인의 애국심을 발동시키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2008년 북경 올림픽에서도 한 어린이가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군인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강대한 조국이여/ 내가 태어나고 자라 난 /... 모든 곳이 평화의 햇빛으로 가득하네” 예전 우리의 건전가요를 연상케 하면서도, 더 노골적으로 자국을 찬양하는 가사이다.
실제 전투에서는 처음 한국군 2사단이 저격 능선을, 미7사단이 삼각 고지를 공격했으나, 10월25일부터는 한국군이 양쪽 고지 모두에서 전투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줄곧 미군이 등장한다. 항미(抗美)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른다.
미제의 침략에 맞서서 조선을 구해 준 정의로운 전쟁”으로 미국과의 전쟁에 승리하였음을 기념하여 단둥(丹東)에 ‘항미원조전쟁기념관(抗美援朝記念館)’까지 건립하였다.
2019년 10월1일 중국 건국 70주년 행사 때에도 열병식에 최신 무기들을 선 보이면서, 6.25 때 항미원조전쟁에서 승리한 부대들을 등장시킨다.
6·25 당시 중국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로부터 '만세군(萬歲軍)' 칭호를 받은 제82집단군(옛 38군)도 참가했다.
1950년 11월 이 부대가 미군에 크게 승리했다는 보고를 받은 펑더화이가 "38군 만세"라고 해 ‘만세군’으로 불린다고 한다.
평안북도 청천강 이북부터 압록강 사이에서 벌어진 대규모 공중전에 참전했던 공군 4사단, 중국이 '항미원조전쟁(6·25) 최대 승리'로 선전하는 상감령 전투 당시 '특급전투영웅' 칭호를 받은 황지광(黃繼光)의 소속 부대였던 제15군 등 이들은 모두 6·25전쟁 당시 미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던 부대들이다. 이는 미국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중국인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항미원조’ 뒤에 구호하나가 더 붙어있다. ‘보가위국(保家衛國)’이란 말이다.
제집과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들을 자원입대로 대거 동원하여 단기간에 승패가 갈리는 싸움을 마다하고 저변을 일반 국민 모두로 넓혀, 전쟁을 오래 끌어서 승리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래서 중국군대의 공식 명칭은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이지만, 인민지원군(人民志願軍)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2020.10.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6.25전쟁 시 중국 참전 70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6.25 전쟁에 대해 “제국주의 침략 확대를 억제하고 중국의 안전을 수호한 것”이라며 “침략자(미국)를 때려눕혀 ‘신중국(新中國)’의 대국 지위를 세계에 보여 주었다”고 연설하였다.
2021.7.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기념식에 맞추어, ‘장진호(長津湖)’를 개봉한다.
이는 1950년 미해병 1사단 1만2000명이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매복작전에 걸린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미군은 17일 만에 포위망을 뚫었지만, 중국에서는 이전투를 미국의 패전이라고 규정한다.
이 영화 제작비는 13억 인구에 걸맞게 13억 위안(약2,200억원)이나 투입되었고, 이외도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항미원조와 항일전쟁을 다룬 영화 등 22편을 재 개봉 한다고 한다.
이는 6.25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의 지원 약속을 받은 북한 김일성의 남침 전쟁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대한민국 입장에서 볼 때는 북한 김일성이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서 동족상잔의 참혹한 6.25 전쟁을 도발하였지만, UN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적의 공격을 저지시키고,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북진하여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중공군이 개입으로 북진통일이 좌절되었으며, 이후 2년 반 동안은 사실상 중공공군과 전투였다가 휴전이 되어서, 분단 국가가 된 것임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은 임진왜란 시에도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여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었으며, 집안 지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해서도 중국 동북 변방의 고구려라는 한 소수민족 있었을 뿐이라는 우월감을 지닌 역사 인식이 뿌리 깊게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도 이 시각만큼은 쉽게 뒤집히지 않을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일본에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겼던 중국은 6.25전쟁 때 한국으로 돌아와, 오늘날까지도 한반도의 통일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2023.5.28. 의령남씨 대종회 자유게시판 남인우씨의 글 위 제목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