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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실록5권, 정종 2년 8월 4일 丙申 7/7 기사 / 1400년 명 건문(建文) 2년
경연에서 동지사 이첨이 고시(古詩)를 익힐 것을 권하며 두시 300수를 뽑아 올리다
경연(經筵)에 나아가니, 동지사(同知事) 이첨(李詹)이 말하였다.
"지난번에 주상께서 고시(古詩)를 보고자 하시었는데, 인군 된 이가 또한 익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대풍가(大風歌)를 지었고, 한나라 무제(武帝)가 추풍사(秋風詞)를 지었고, 아래로 수(隋)나라 양제(煬帝)에 내려와 또한 사장(詞章)을 좋아하였으나, 그러나, 남보다 뛰어나는 재주를 꺼려 고의로 설도형(薛道衡)·왕주(王胄)를 죽였습니다. 정내(鄭鼐)가 두시(杜詩) 3백 수(首)를 초출(抄出)하였는데, 대개 《시경(詩經)》 3백 편(篇)을 모방한 것입니다. 빌건대, 경연에서 아울러 보소서."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御經筵。 同知事李詹進曰: "頃上欲覽古詩。 爲人君者, 亦不可不習也。 昔漢 高祖製《大風歌》, 武帝製《秋風詞》, 下及于隋 煬帝, 亦好詞章。 然忌上人之才, 故殺薛道衡、王冑、鄭鼐。 抄《杜詩》百首, 蓋倣《詩》之三百篇也。 乞於經筵幷觀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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抄《杜詩》百首, 蓋倣《詩》之三百篇也.三자누락
抄《杜詩》百首, 蓋倣《詩》之三百篇也->《杜詩》三百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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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 조선왕조실록 > 신역 정종실록 > 정종 2년 경진 > 8월 4일 > 최종정보
정종 2년 경진(1400) 8월 4일(병신) 양력 1400-08-23
02-08-04[07] 경연에서 동지경연사 이첨이 고시를 익히도록 권하다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이첨(李詹)이 나아와 아뢰었다.
“지난번에 주상께서 고시(古詩)를 보려 한다고 하셨는데, 임금은 또한 시를 익히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대풍가(大風歌)〉를 지었고 한나라 무제(武帝)가 〈추풍사(秋風詞)〉를 지었으며 그 아래로 수(隋)나라 양제(煬帝)에 이르러는 그가 또한 사장(詞章)을 좋아하였으나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시기하여 고의로 설도형(薛道衡)과 왕주(王胄)를 죽였습니다. 정내(鄭鼐)가 두시(杜詩) 삼백 수(首)를 뽑아서 편찬하였는데, 《시경》 삼백 편(篇)을 본뜬 것입니다. 경연에서 아울러 어람(御覽)하소서.”
[주-D001] 한(漢)나라 …… 지었고 : 한 고조(漢高祖)가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의 반란을 진압하고 고향인 풍패(豐沛)를 지나가다가 부로(父老)들을 불러 놓고서 주연(酒宴)을 베풀며 “큰 바람이 일어나 구름이 흩날렸도다. 위엄을 온 천하에 떨치고 고향에 돌아왔도다. 어찌하면 용맹한 장사를 얻어서 사방을 지킬꼬.”라는 시를 지어 그 감회를 읊었다. 《史記 高祖本紀》[주-D002] 한나라 …… 지었으며 : 한 무제(漢武帝)가 하동(河東)을 순시할 적에 후토(后土)에 제사를 지내고 배를 띄우고 신하들과 연음(宴飮)하면서 “가을바람이 일어나니 흰구름이 흩날리고, 초목이 시들어 떨어지니 기러기는 남으로 돌아가도다.……환락이 극에 이르러 슬픈 정이 많아지도다. 젊은 시절이 얼마나 되랴. 늙어 감을 어이할꼬.”라는 시를 지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였다. 《漢書 武帝紀》[주-D003] 수(隋)나라 …… 죽였습니다 : 수나라 양제가 스스로 문학에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였는데, 설도형이 명문(名文)으로 칭송을 받자 시기하여 죽이고 조롱하였다. 왕주도 뛰어난 글솜씨로 시샘을 받아 죽음을 당하였다. 《資治通鑑 卷182 隋紀6 煬皇帝中》 《隋書 薛道衡列傳, 王胄列傳》[주-D004] 정내(鄭鼐)가 …… 편찬하였는데 : 원(元)나라의 학자 정내가 두보(杜甫)의 시(詩)를 엄선하여 《두공부시범덕기비선(杜工部詩範德機批選)》 6권을 편찬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박한라 구범진 (공역)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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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工部詩範德機批選->두공부시범덕기비선 (杜工部詩范德機批選)
*范梈(1272—1330),字亨父、德机,人称“文白先生”,元清江(今江西樟树)人[1],著名诗人,与虞集、杨载、揭傒斯并称“元诗四大家”,论诗主雅正,有《范德机诗集》七卷传世。旧题范梈的《杜工部诗范德机批选》、《李翰林诗范德机批选》二书在文学史上曾产生较大影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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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집 부록 / 서(序)
목은시정선(牧隱詩精選) 서문(序文) [달성군(達城君) 서거정(徐居正,1420~1488)]
광악(光嶽)의 기운이 사람에게 한데 모여야 문장(文章)을 만들어 내는 법이니, 문장이라는 것이 참으로 보기 드물게 어쩌다 세상에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한 번 나오기만 하면 그야말로 위대하고 걸출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모든 사람들 위에 우뚝 군림하게 마련이다. 한대(漢代)의 문장은 가의(賈誼), 동중서(董仲舒), 사마천(司馬遷), 반고(班固) 때에 성황을 이루었고, 당대(唐代)의 문장은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에서 극에 이르렀으며, 송대(宋代)에는 구양수(歐陽脩),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왕안석(王安石)이 배출되었고, 원대(元代)에는 양재(楊載), 우집(虞集), 게혜사(揭傒斯), 범형(范梈)이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위대하고 걸출한 문장의 소유자로서 참으로 보기 드물게 세상에 나와 모든 사람들 위에 우뚝 군림한 이들이라 할 것이다.
우리 동방은 예로부터 시서(詩書)의 나라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장으로 한 세상을 풍미한 이들이 각 시대마다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으니,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高句麗)에서 이름을 드날렸고, 설총(薛聰)과 최치원(崔致遠)은 신라(新羅)에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다가 고려씨(高麗氏)가 새로 나라를 열면서 문치(文治)가 크게 일어난 결과, 문열(文烈) 김부식(金富軾)과 간의(諫議) 정지상(鄭知常)이 앞에서 창도(唱導)하고, 보궐(補闕) 진화(陳澕)와 대간(大諫) 이인로(李仁老)와 학사(學士) 이규보(李奎報)와 원외(員外) 김극기(金克己)와 상사(上舍) 임춘(林椿)이 한 시대에 이름을 나란히 하였으니, 이에 시도(詩道)가 한 번 중흥(中興)을 맞이하였다.
그 뒤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이 문충공(李文忠公)이 나와서 문풍(文風)을 떨쳐 일으키고, 가정(稼亭 이곡(李穀)) 이 문효공(李文孝公)이 그 뒤를 이어 발전시켰는데, 선생은 바로 가정의 아들이요 익로(益老)의 문생이다. 따라서 선생의 문장은 이미 가법(家法)과 연원(淵源)의 바름을 얻었다고 할 것인데, 여기에 또 이른 나이에 원조(元朝)의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나서 한원(翰院)에서 주선(周旋)하는 동안 터득한 바가 또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를 수렴(收斂)하여 우리 동방으로 돌아와서 한편으로는 문장으로 펼쳐내고 한편으로는 국가의 사업에 적용함으로써, 성예(聲譽)와 명망(名望)이 울연(蔚然)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원(元)나라의 학사(學士)인 구양 문충공(歐陽文忠公 구양현(歐陽玄))이 일찍이 선생을 한 번 보고는, 선생의 뛰어난 재질에 깊이 탄복한 나머지 “의발(衣鉢)이 해외(海外)로 전해졌다.”는 구절을 남기면서부터 선생의 명성이 은연중에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대개 선생의 문장은 육경(六經)을 근본으로 삼고,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참작하였으며, 제자(諸子)를 가지고 윤색(潤色)하였다. 그리하여 한 번 붓을 잡고서 휘젓기 시작하면, 뭉게뭉게 구름이 일면서 벼락이 치고, 찬란하게 빛나면서 북두성 별자리가 되고, 세차게 쏟아지면서 강하(江河)의 물줄기가 되고, 높이 뛰어오르면서 용과 호랑이가 되는 등 변화하는 그 모습이 무궁무진하였으므로, 마치 맑게 갠 날 종남산(終南山) 정상에 올라서서 눈앞에 주름살처럼 펼쳐진 뭇 산들의 경치를 대하노라면 볼거리가 하도 많아서 미처 다 감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탄식을 자아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시대의 문인(文人)과 재사(才士)들 모두가 누구 할 것 없이 선생을 종주(宗主)로 삼고서 그윽한 그 향기에 흠뻑 몸을 적셨으니, 가령 정포은(鄭圃隱 정몽주(鄭夢周))과 같은 웅준(雄峻)함이나, 이도은(李陶隱 이숭인(李崇仁))과 같은 간결(簡潔)함이나, 정삼봉(鄭三峯 정도전(鄭道傳))과 같은 호매(豪邁)함이나, 권양촌(權陽村 권근(權近))과 같은 전아(典雅)함 모두가 선생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생의 문장이야말로 위에서 말한 대로 위대하고 걸출한 모습을 보여 주면서 세상에 보기 드물게 모든 사람들의 위에 우뚝 군림한 그런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선생의 성대한 공명(功名)과 도덕(道德)이 또 한 시대의 으뜸이 되었고 보면, 어찌 유독 문장만 그러했다고 하겠는가.
선생의 유고(遺稿)를 합하면 모두 수십 권에 이른다. 그런데 선생의 종손(宗孫)인 문열공(文烈公) 휘(諱) 계전(季甸)이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의 고시(古詩)와 율시(律詩)를 뽑아 부문별로 분류해서 정선(精選) 6권을 만들었는데, 지금 증손(曾孫)인 부윤(府尹) 휘 봉(封)이 이것을 간행하려 하면서 나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나름대로 일찍이 살펴보건대, 선생은 시를 지을 때에 하나의 격식에 얽매이는 법이 없이 여러 가지 시체(詩體)를 모두 구비하여 활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웅혼(雄渾)한 것도 있고 여조(麗藻)한 것도 있고 충담(沖澹)한 것도 있고 준결(峻潔)한 것도 있으며, 호섬(豪贍)한 것도 있고 엄중(嚴重)한 것도 있고 심오(深奧)한 것도 있고 전아(典雅)한 것도 있다. 따라서 선생의 전집(全集)을 모두 합쳐서 보아야만 그 기상(氣象)이 얼마나 넓고 풍부한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니, 정선(精選)하는 것을 어찌 또 일삼을 것이 있다 하겠는가. 비록 그렇긴 하나, 선생의 시를 보면 경사(經史)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법도(法度)가 삼엄(森嚴)하다고는 하더라도, 다시 노장(老莊)과 불교(佛敎)의 서책을 종횡으로 출입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패관(稗官)의 소설(小說)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두루 채집하고 있기 때문에, 견문이 넓지 않은 말학(末學)의 입장에서는 책을 펼치자마자 망연(茫然)해져서 망양(望洋)의 탄식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정선(精選)을 어찌 또 엮어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 시가(詩家)가 나온 이래로 가장 으뜸으로 꼽는 이는 바로 두보(杜甫)인데, 그렇기 때문에 소인(騷人)과 아사(雅士)들 모두가 그를 시의 조상으로 추앙하면서 숭상해 오고 있는 터이다. 그런데 다만 그 시의 표현과 의미가 심오(深奧)해서 읽기 어려운 점이 있었으므로, 다시 정내(鄭鼐)와 우집(虞集)이 정선(精選)하는 수고를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선생의 시를 보아도 그지없이 심오하기만 하니, 문열(文烈 이계전(李季甸))이 정선(精選)에 힘을 쏟은 것 역시 정내와 우집이 보여 준 그 뜻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 선생이 시서(詩書)로 끼쳐 준 그 은택이 후세에까지 멀리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 또 문열(文烈)이 문장과 사업으로 성대하게 국가를 빛낸 뒤를 이어, 부윤(府尹)이 다시 일찌감치 장원 급제하고 나서 대각(臺閣)의 직책을 두루 역임하며 장차 사문(斯文)의 중책을 한 몸에 지려 하고 있으니, 부조(父祖)의 가업(家業)을 제대로 계승하면서 문장의 정인(正印)을 전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아, 얼마나 성대한 일인가.
[주-D001] 광악(光嶽) : 삼광(三光) 즉 일(日)ㆍ월(月)ㆍ성(星)과 다섯 명산(名山)이라는 말로, 보통 천지(天地)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주-D002] 망양(望洋)의 탄식 : 바다를 보고 탄식한다는 말로,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위대한 경지를 접하고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한 것을 한탄함을 이른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에, 황하 귀신인 하백(河伯)이 끝이 보이지 않는 북해(北海)에 처음 이르러서 자신의 좁은 소견을 탄식하는 이야기가 나온다.[주-D003] 정내(鄭鼐)와 …… 수고 : 원(元)나라 정내가 두시(杜詩)에서 뽑아 《두공부시비선(杜工部詩批選)》 6권을 편찬한 것과, 원나라 우집(虞集)이 《두율우주(杜律虞註)》 2권을 편찬한 것을 가리키는데, 세종(世宗) 13년에 정내의 6권이 간행되고, 성종(成宗) 2년에 우집의 2권이 처음 간행된 이래로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간행되면서 조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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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徐居正 | 1420 | 1488 | 達城 | 剛中, 剛仲, 子元 | 四佳亭, 亭亭亭 | 文忠 | 達城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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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양산 대성암 두공부시범덕기비선 (梁山大聖庵所藏杜工部詩范德機批選)
대성암소장 두공부시범덕기비선바로가기
분류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간본수량/면적1책지정(등록)일2003.09.18소재지경남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산9번지 대성암시대조선 태종 10년(1410)소유자 (소유단체)대한불교조계종대성암 관리자 (관리단체)대한불교조계종대성암
설명
형태는 저지(楮紙)에 목판본(木版本) 선장(線裝)으로 영락 8년, 즉 조선 태종 10년(1410)에 간행된 것이다. 제3권에서 제6권까지의 4권 1책으로, 반곽의 크기는 25.1cm×16.7cm이다.
내용은 두보의 시를 청강(淸江) 범덕기(范德機)가 선별하여 비평을 가한 책이다.
비록 낙질이긴 하지만 말책(末冊)이어서, 해주목사(海州牧使) 유은지(柳隱之)의 지원 하에 간행되었고 영락 8년 경인년 11월에 연안부(延安府)의 유학교수관(儒學敎授官) 송석견(宋石堅)이 발문을 썼다는 간기가 뚜렷한 데다, 기존의 여러 도서 목록에도 보이지 않는 책이므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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诗学禁脔
范德机撰古籍
《诗学禁脔》是元代范德机撰写的诗法理论著作,原名《诗格》,属于文学理论批评类典籍,为童蒙入门诗法之学 [2-4]。所谓“禁脔”,比喻为后学指示诗法门径 [6]。全书分十五种诗格,每格选取一首唐诗作为范例逐句解析 [2-4]。该书作者旧署范梈,但历来有学者质疑其真实性,明代许学夷《诗源辩体》及清代《四库全书总目》均斥其浅陋,疑为伪托 [6] [16]。该书与《木天禁语》《杨仲弘诗教》共同构成《翰林诗法》的核心内容。清代四库全书收录两江总督采进本一卷,四库馆臣评价其议论庸陋且质疑可能并非真本。元明时期该书与《诗学权舆》《诗学大成》等同类型书籍多以坊间刻本流通,常被用作村学教材 [2] [5]。郑振铎在《插图本中国文学史》中指出,元代批评家著作如《诗学禁脔》等虽无特殊见解,但属有系统、有组织的著作,复兴了唐人诗格的作风 [7-8] [18]。该书有何文焕《历代诗话》、王启原《谈艺珠丛》等诸多版本 [6] [9]。今人整理者有张健《元代诗法校考》本(北京大学出版社,2001年) [6]。2014年,中华书局出版了《木天禁语·诗学禁脔》评注本,列入“中华经典诗话”系列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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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梈(pēng)(1272—1330),字亨父,一字德机,人称文白先生,清江(今江西省樟树)人。元代中期官员、著名诗人、书法家,与虞集、杨载、揭傒斯并称为“元诗四大家” [7]。
范梈出身贫寒,自幼丧父,母亲熊氏守节“不他适”,教他读书写字。范梈则天资聪颖,敏而好学,善于记诵,其耽嗜于书,钻研于文,用功数十倍于人,人鲜或知也。
元至大元年(1308年),年36岁进京,被朝中大臣推荐为翰林院编修。后升为海北海南道廉访司照磨,所到之处,兴办学校,教育民众。且不畏艰难险阻,巡查遍及海南各偏远地方,亲自审查案件,澄清和洗刷了许多沉积多年的冤假错案。被选为翰林应奉。
不久改任福建闽海道知事,改革当地弊俗。天历二年(1329年),授湖南岭北道廉访司经历。 范梈因母亲病重拒不赴任,回到家乡清江母亲的身边。这一年,范母病亡,他十分悲痛,抑郁成疾,于次年10月病逝,终年59岁。吴澄为其撰写碑文,把他比作东汉时的梁鸿、张衡、赵壹、郦炎等一批正直的君子。
其一生恪尽职守、清正廉洁,为人正直,具有君子风范,深得时人和后人的赞誉。特别在诗歌和书法方面成就突出,其诗好为古体,风格清健淳朴,用力精深,有《范德机诗集》 [1]。其诗代表了元代中期诗歌的主要风格特点,在元代乃至中国诗歌史上有着重要影响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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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宸丨范梈批选李杜诗辨伪
书目文献
2021-07-21 07:43
关注
范梈批选李杜诗辨伪
唐 宸
摘要:旧题元人范梈批选、郑鼐编刻的《杜工部诗范德机批选》、《李翰林诗范德机批选》二种,在李杜诗接受史上曾产生较大影响,但其版本、真伪问题尚有值得探讨的空间。论文在详细梳理二书版本源流的基础上纠正诸家著录失误,进而分析其书序跋、批语的诸多破绽,推断序跋皆出自元末书坊主伪托。范梈同乡周霆震亲见冠有虞序的范批杜诗,称其为伪托之作,这为郑鼐编刻范批李杜诗系伪书提供了有力支持。
关键词:范梈;《杜工部诗范德机批选》;《李翰林诗范德机批选》;版本考辨;辨伪
范梈(1272—1330),字亨父、德机,人称“文白先生”,元清江(今江西樟树)人[1],著名诗人,与虞集、杨载、揭傒斯并称“元诗四大家”,论诗主雅正,有《范德机诗集》七卷传世。旧题范梈的《杜工部诗范德机批选》、《李翰林诗范德机批选》二书在文学史上曾产生较大影响,前者受单复、张
等杜诗学家推崇,后者为现存最早李诗选本之一,但二书的版本和真伪问题都有进一步讨论的空间。本文拟就以下几个问题展开探讨:一、版本源流。因二书版本源流不清[2],目录著录互相抵牾,故不得不详加考辨;二、诸家失误。学者论及二书版本时失误较多,有进行全面清理的必要;三、真伪问题。范批李杜诗刊本有虞集序一篇、郑鼐跋二篇,今人颇多引用,但未见怀疑其真伪者。今在版本考辨基础上分析其中破绽,进而对全书真伪提出怀疑。
一、范批李杜诗版本考辨
(一)范批杜诗
1.《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唐杜甫撰,元范梈批选、元郑鼐编次,元末郑鼐刻本
简称“杜诗郑编元本”。半页11行,行22字,小字双行。左右双栏,版框17.8×11.7厘米。小黑口,双鱼尾。前冠虞集序,次目录,次正文,末页刻郑鼐跋文,文中“皇元”二字提格。卷端题“杜工部诗范德机批选”,“高密郑鼐编次”,下有木刻“郑氏鼎夫”印记。此本有明显元刻本风貌,缪荃孙跋、曹元忠跋、王国维叙录[3]皆定为元刻本,可从。傅增湘定为明刊本(或将刊刻者误作同名明代进士郑鼐,说详后文)[4]。
台北“国家图书馆”有藏本,两册,笔者经眼。书末郑鼐跋残缺,有缪荃孙、曹元忠(1911)二人为收藏者傅增湘手书题跋,可知傅氏于“南中旧家”同时获得此书与郑鼐编《李翰林诗范德机批选》,合为双璧。二本后经蒋汝藻传书堂、张乃熊适园递藏,张氏于抗战时期售予中央图书馆,终至台湾。台湾大通书局《杜诗丛刊》据以影印(未印缪、曹二跋)。
此书选杜诗311首以合《诗经》之数。先分体后编年,偶有批注。体分五言古诗、七言古诗、五言律诗、五言长律、七言律诗、七言长律、七言绝句七类。编年、批注多沿袭宋人旧注,有范批者仅23首,且多只言片语。
2.《杜工部诗千家注》六卷,唐杜甫撰,宋黄鹤补注、元范梈批选,明刻本
简称“杜诗明刻本”。半页12行,行20字,小注双行。四周双框,版框19.3×13.9厘米。黑口,双鱼尾。无虞集序。卷端题“临川黄鹤叔似补注”、“清江范梈德机批选”。王重民暂定为元明间刻本[5],赵万里进一步定为明刻本[6]。今台北“故宫图书文献处”明确鉴定为“明刊黑口本”,可从。
台北“故宫图书文献处”、宁波天一阁有藏本。台北藏本为全帙五册,笔者经眼。卷一末有杨守敬跋(1897),称偶见于上海寄观阁古玩铺。[7]卷内印章有挖补痕迹,殆贾人所为。据馆员告知此本原藏北平图书馆,1985年由台北“中央图书馆”移交“故宫图书文献处”;天一阁藏本为残帙一册,存卷三至卷五。
此书是在杜诗郑编元本基础上保留范批、删去编年、增益一些宋人旧注而成,故分体、选诗皆与前一版本相同,当系书贾推陈出新所制。
3.《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唐杜甫撰,元范梈批选、元郑鼐编次,明嘉靖七年(1528)朝鲜闵寿千重刊宣德六年(1431)本
简称“杜诗朝鲜甲本”。半页11行,行19字,小注双行。四周单框,版框24.0×15.8厘米。白口,单鱼尾。各卷端题“杜工部诗范德机批选”,随后径接正文,不列编著人名氏。书后刻郑鼐跋。
韩国首尔奎章阁有藏本,一册,笔者经眼。卷首残缺,故不见序文、目录。书后郑鼐跋虽残,仍可补他本之不足。据馆藏叙录,此本于朝鲜世宗十三年(宣德六年,1431)初刊于海州,后板木磨损残缺,闵寿千于中宗二十八年(嘉靖七年,1528)重刊。
此书是在杜诗郑编元本基础上增录宋人旧注而成。因各诗前标注有郑编本编年,而前揭杜诗明刻本无此体例,可知此书祖本当出自杜诗郑编元本。
4.《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唐杜甫撰,元郑鼐编次,明朝鲜李纬等编刻,明朝鲜刻本
简称“杜诗朝鲜乙本”。半页11行,行19字,小注双行。四周单框,版框24.4×16.3厘米。大黑口,双鱼尾,有郑鼐跋、弘治辛酉(1501)腊月前司宪府持平安彭寿跋、嘉靖戊子(1528)端午奉直郎都事蔡世英跋。《韩国所藏中国汉籍总目》著录。
韩国延世大学图书馆有藏本,一册,笔者未经眼。《韩国所藏中国汉籍总目》称此本为“李纬等编”。李纬为朝鲜大臣李荪(1439—1520)之孙,生于弘治二年(1489)[7],曾担任朝鲜淳昌郡守[9]。书后蔡世英跋成于嘉靖七年,但是否刊刻于此年尚待详考。值得注意的是,蔡跋的署名时间和前揭甲本的刊刻时间相同,且二书行款类似,可能属于同一版本系统。
5.《范太史精选杜诗》两卷,唐杜甫撰,宋蔡梦弼会笺、元郑鼐编次,明朝鲜活字本
简称“杜诗朝鲜丙本”。活字本,半页9行,行17字,小注双行。四周单框,版框21.8×14.4厘米。双鱼尾。
韩国延世大学图书馆有藏本,一册,笔者未经眼。馆藏叙录称采用乙亥字排印,乙亥字铸造于朝鲜世祖元年(景泰六年,1456),则排印晚于此年,具体时间不详。从卷端“宋蔡梦弼会笺”来看,此书性质应和前揭杜诗明刻本类似。
6.《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明朝鲜刻本
简称“杜诗朝鲜丁本”。半叶11行,行21字,小注双行。四周单框,版框19.9×13.1厘米。双鱼尾。
韩国延世大学图书馆有藏本,一册,存五卷。笔者未经眼,因馆藏著录信息有限,版本年代、编刻者、内容体例不详。
7.《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明朝鲜刻本(存疑)
简称“杜诗朝鲜戊本”。半叶10行,行17字。版框20.5×16.5厘米。黑口,双鱼尾。此版本信息仅见于《韩国所藏中国汉籍总目》,称藏于延世大学,但不见于延世大学图书馆编目。《总目》称此本一册,存卷一至卷五,竟和丁本册数、存卷数相同,怀疑《总目》著录有误,待考。
(二)范批李诗
1.《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唐李白撰,元范梈批选、元郑鼐编次,元末郑鼐刻本
简称“李诗郑编元本”。半页11行,行22字,小字双行。左右双栏,版框17.9×11.6厘米。小黑口,双鱼尾。末页刻郑鼐跋。卷端题“李翰林诗范德机批选”,“高密郑鼐编次”,下有木刻“郑氏鼎夫”印记。缪荃孙跋、曹元忠跋皆定为元刻本,傅增湘定为明刊本。[10]
台北“国家图书馆”有藏本,两册,笔者经眼。目录存卷三、卷四,郑鼐跋有残损。此本由文征明及其孙从龙递藏,至清末为傅增湘所得,和杜诗郑编元本合为双璧,随后递藏源流见前揭“杜诗郑编元本”条。
此书选李诗280余首,先分类后分体,偶有批注。类分为古风、古乐府、歌吟、赠、寄、留别、送、酬答、游宴、登览、行役、怀古、闲适、怀思、写怀、咏物、题、闺情、哀伤十九类;每类下分五言、七言、长短句三体。有范批者仅20余首。
2.《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唐李白撰,元范梈批选、元郑鼐编次,明嘉靖刻本
简称“李诗嘉靖本”。半叶10行,行16字,小字双行。四周单栏,版框17.2×13.2厘米,白口,上鱼尾。前冠周臣辑语(1538),次目录,次正文,末页刻郑鼐跋。卷端题“李翰林诗范德机批选”,“高密郑鼐编次”,无木刻印记。
重庆图书馆、清华大学图书馆有藏本:重图藏本装订二册,为国立罗斯福图书馆旧藏,现已列入第三批《国家珍贵古籍名录》;清华藏本装订六册。又清人《天一阁书目》著录藏本一种,今未见。[11]
笔者经眼清华大学藏本,内容与李诗郑编元本完全相同,属重刻本。书前可能原有李阳冰旧序(据清人《天一阁书目》),但此本卷首残脱严重,故未见。署名“嘉靖戊戍之秋吴门周臣辑”的历代名家评语前二叶缺失,现存评语五家,经查摘自严羽《沧浪诗话》、朱熹《朱子语类》、高棅《唐诗正声·凡例》、胡缵宗《跋李诗后》和李濂《唐李白诗序》。
二、诸家失误举例
(一)缪荃孙跋
缪跋云:“元范德机批选李杜诗,高密郑鼐编,元刊本,杜六卷、李四卷,杜诗编年,李诗分类。范批杜诗图书馆有原刻本,即黄鹤千家注本加批点。此则单行无注,有虞集序。李诗见《天一阁书目》,有李阳冰序,此脱,然天一阁所收有李无杜,可见明中叶流传已少。沅叔(引者注:傅增湘)得此全册,其珍爱当何如?荃孙。”[12]
按,缪跋失误之处有二:一是误将杜诗明刻本当作初刻本。所谓“范批杜诗图书馆有原刻本,即黄鹤千家注本加批点”,指的是当年北平图书馆所藏、题有“千家注”、署名黄鹤的杜诗明刻本。然考杜诗郑编元本郑鼐跋云:
鼐得以服膺焉,因请是篇录之,敬寿诸梓,与学者共。然初本年谱先后为序,今僭以五七言分类编次,欲便于学也。
郑鼐刊刻范批杜诗时依据的是“本年谱先后为序”但未分体编次的底稿,他做的“编次”工作,最重要的一点就是用五七言分体编排311首杜诗。倘若杜诗明刻本才是郑鼐本的祖本,其风貌应是未分体编排的,然而台北所藏杜诗明刻本却和郑鼐本一样是分体编排,选诗数量、内容、次序也全同,只不过是在郑鼐本基础上增加了一些宋人旧注,并删去诗前编年而已。范批杜诗的初刻本当为郑编元刻本。[13]
二是混淆李诗郑编元本和李诗嘉靖本。所谓“李诗见《天一阁书目》,有李阳冰序”,指的是曾收藏于天一阁的一部李诗嘉靖本。清人《天一阁书目》云:“范德机批选李翰林诗四卷,刊本,唐李白撰,郑鼐编。……宝应元年李阳冰序,嘉靖壬辰周臣辑语。”[14]有嘉靖周臣辑语,显系李诗嘉靖本,不能和元本相提并论。
(二)曹元忠跋、王国维《传书堂藏书志》、詹瑛《李白集稀见版本考略》
曹跋云:“高密郑鼐编次《范德机批选李翰林诗》四卷、《杜工部诗》八卷,皆半叶十行、行二十一字本,为元椠之精者……是书仅于抱经堂本《补元艺文志》存其目,藏书家率未之见,断种久矣。沅叔于南中旧家得之……宣统辛亥七月元忠。”[15]
按,曹跋偶误记行款,傅增湘藏本行款为半页十一行、行二十二字,有馆藏实物为证,所谓十行二十一字本并不存在。此一失误对后来学者产生很多误导,例如:
王国维《传书堂藏书志》云:“《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元刻本。高密郑鼐编次,虞集序,郑鼐跋,缪艺风手跋。每半叶十行,行二十一字。此书《四库》未著录,仅见于卢抱经《补元史艺文志》。天一阁藏明刻《范选李诗》今在余家,无杜诗。此元刊元印,二种具存,尤为罕见……”[16]按,《传书堂藏书志》是王氏替藏书家蒋汝藻编纂的善本书志,它著录的李、杜诗郑编元本二种即傅增湘旧藏而缪、曹二人题跋者,王《志》内容受到缪、曹二跋影响,行款数字照抄曹跋,沿袭其误。
詹瑛《李白集稀见版本考略》云:“曹元忠介绍的元刻本每半叶十行,行二十一字,而傅增湘所藏的明刊本则为每半叶十一行,行二十二字,可见是两个本子。”[17]按,对于傅增湘所藏的李杜诗郑编元本二种,缪荃孙、曹元忠定为元刻本,傅增湘误定为明刻本,只是针对同一藏本产生不同鉴定意见而已,原不至于产生“是两个本子”的误解。因曹元忠误记行款,才使詹文判断产生偏差,误以为尚有所谓十行二十一字本存在。
(三)《杜集书目提要》
《杜集书目提要》著录相关版本三种,皆有误。
其一:“《杜工部诗范德机批选》……初刻于元代,我们所见者即此刻本……半页十行,行二十二字。”[18]按,行款错误。《提要》所指应为杜诗郑编元本,半页十一行,行二十二字。
其二:“此书另有一种,为元明间刻本,无虞集序,有杨守敬跋。各卷首行题‘杜工部诗千家注’,次行署‘临川黄鹤叔似补注’,‘清江范德机批选’,半页十行,行二十字。分体而不标写作时间,注释甚详。”[19]按,行款错误。此为杜诗明刻本,半页十二行,行二十字。
其三:“明嘉靖三十七年(1558)江阳朱茹刊本;一九七四年台湾省大通书局据明嘉靖三十七年江阳朱茹刊本影印《杜诗丛刊》本。”[20]按,误植他书版本。《提要》所见嘉靖本实为《杜律颇解》,其书有嘉靖戊子江阳朱茹《刻杜律颇解序》。因《杜诗丛刊》将《杜律颇解》和《杜工部诗范德机批选》合订为一册[21],导致《提要》将《杜律颇解》的版本信息误植于范批杜诗中。
(四)《中国古籍善本书目》、《版刻质疑》、《中国古籍总目》、《第三批国家珍贵古籍名录》
《中国古籍善本书目》著录相关版本二种,皆有误。
第一种:“《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唐李白撰,元范梈批点,明郑鼐辑,明嘉靖郑鼐刻本。”馆藏地:重庆图书馆、清华大学图书馆。[22]按,作者年代、版本皆有误。明代郑鼐为天顺元年(1457)进士,字公实,常州武进人,生于永乐十七年(1419)。[23]字号、籍贯与元人郑鼐不同,且生年距元末已五十余年,二者并非一人。此本实为李诗嘉靖本,故“明郑鼐辑”应作“元郑鼐编”,“明嘉靖郑鼐刻本”应作“明嘉靖刻本”;
第二种:“《杜工部诗千家注》六卷,唐杜甫撰,宋黄鹤补注,元范梈批点,元刻本。存三卷(三至五)。”馆藏地:天一阁。[24]按,版本有误。此为杜诗明刻本,故“元刻本”应作“明刻本”。
《中国古籍善本书目》的上述失误也产生了一些误导,例如:
瞿冕良《版刻质疑》云“(曹元忠跋)称李诗四卷,杜诗六卷,‘皆半页十行,行二十一字本,为元椠之精者’,标题亦冠以‘元椠’二字。今查得《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明郑鼐辑,嘉靖自刻本,十行十六字;然则编刻者乃嘉靖间人,此书必非‘元椠’。考《明清进士题名碑录索引》,郑鼐乃明天顺元年进士,直隶武进人。天顺元年与嘉靖相隔六十余年,如以二十岁中进士计,则嘉靖间当已八十多岁,似否即此人,固未可必,然笺经室所记行款,与嘉靖本亦不相同,盖其书既非元椠,更非郑刻本可知。”[25]按,瞿氏受《善目》错误影响,产生一系列失误:先误认元人郑鼐为明人郑鼐,继而判定郑编元本李杜诗皆非元刻本;又因郑编元本与嘉靖本行款不同(他依据的曹元忠跋行款有误),误定前者非郑鼐所编。
《中国古籍总目》著录相关版本三种,其中两种有误。第一种:“《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唐李白撰,元范梈批点,明郑鼐辑。明嘉靖间郑鼐刻本:清华、重庆。”[26]按,应修正为“元郑鼐辑,明嘉靖刻本”;第二种:“《杜工部诗千家注》六卷,唐杜甫撰,元范梈批选。元刻本:天一阁(存卷三至五);明刻本:台图。”[27]按,作者、版本、馆藏地皆有误,且误将同一版本分为两条。此为杜诗明刻本,应修正为“唐杜甫撰,元范梈批选。明刻本:天一阁(存卷三至五)、台湾故宫”;第三种:“《杜工部诗范德机批选》六卷,唐杜甫撰,元范梈批点,元郑鼐编。元刻本:台图。”[28]按,此条著录正确。唯前述第一种称“明郑鼐”,此处又称“元郑鼐”,实已自相矛盾。
《第三批国家珍贵古籍名录》云:“《李翰林诗范德机批选》四卷,唐李白撰,元范梈批点,明郑鼐辑,明嘉靖郑鼐刻本……重庆图书馆藏。”[29]按:沿袭《善目》和《总目》之误,当修正为“元郑鼐辑,明嘉靖刻本”。
三、范批李杜诗的真伪问题
在厘清范批李杜诗的版本源流之后,得以进一步讨论其真伪问题。旧题范梈所作诗学著作有《木天禁语》、《诗学禁脔》等,明人许学夷、四库馆臣皆疑其伪,张伯伟先生《元代诗学伪书考》复加详考[30],实为不刊之论。至于范批李杜诗,笔者认为疑点同样较多。
(一)虞集序系伪托之作
杜诗郑编元本前有署名虞集序文一篇,为手书摹刻上板,开篇云:
豫章郑鼐鼎夫编次范德机氏批点杜工部诗凡六卷,其用心勤矣。夫杜公之诗冲远浑厚,上薄风雅,下陵沈宋。每篇之中有句法、章法,截乎不可紊。姑以赠韦左相一篇观之,前辈以为布置最得正体,如官府、甲第、厅堂、房室,各有定处,不可乱也。至于以正为变,以变为正,妙用无方,如行云流水,初无定质,出于精微,夺乎天造,是大难以形器求矣。
这段话占虞序篇幅五分之一,作者引用“前辈”语对杜甫《奉赠韦左丞丈》一诗给予很高评价,然而范批杜诗选录的311首杜诗中却并未选录此诗,这与作序常理不合。至于所引“前辈”语,实出自宋人范温《潜溪诗眼》。《诗眼》已佚,清人仇兆鳌《杜诗详注》引曰:
范元实《诗眼》曰:山谷谓文章必谨布置,每见后学,多告以《原道》命意曲折。后予以此概考古人法度,如子美赠韦左丞诗云:纨绔不饿死,儒冠多误身……此诗前贤录为压卷,其布置最得正体,如官府、甲第、厅堂、房舍,各有定处,不可乱也。韩文公《原道》与《书》之《尧典》盖如此。其他皆谓之变体可也。[31]
黄庭坚在谈论文章布置时每每强调韩愈“《原道》命意曲折”,弟子范温受到启发,“以此概考古人法度”,将山谷文论用于分析杜诗:他以韩愈《原道》章法比附杜甫《奉赠韦左丞丈》诗,得出后者“布置最得正体”的结论。虞序中“前辈以为布置最得正体……不可乱也”一段显然出自范温“布置最得正体……不可乱也”等语,乍看之下并无问题,然而结合另一版本《诗眼》佚文可以发现,虞序后文“至于以正为变”等句疑点颇多,宋人王霆震引曰:
《诗眼》云:山谷每言文章必谨布置,布置必得正体,如官府、甲第、厅堂、房室各有定处,不可乱也。韩文公《原道》与《书》之《尧典》盖如此,其他皆谓之变体可也。譬如山林园圃各有首尾前后,至于以正为变,以变为正,以首为尾,以尾为首,临时变化,妙用无方,如行云流水,初无定质,出于精微,夺乎天造,是又难以形器求矣。然要以正体为本,自然法度行乎其间。譬如用兵,奇正相生,若初不知正而径出于奇,则纷然无复纲纪、终于败乱而已矣。[32]
范温举杜诗为例是为了强调“布置必得正体”,与后文所谓“变体”无关。虞序在引用时忽略范温中心论题,将正体、变体之论混而言之,割裂拼凑之迹昭然可见。虞序下文又曰“三百篇,经也;杜诗,史也”云云,多属文人浅论;称郑鼐“以所选杜诗分类编次”,和其书分体编年的体例自相矛盾[33],皆非虞集所能为。众所周知,虞集是元明书坊伪托牟利之明星人物,此虞序既不见于虞集文集,手书书法、印章木记亦去虞集真迹甚远,当属伪托之作。
(二)郑鼐跋文及其破绽
范批李杜诗郑编元本二种皆署名高密郑鼐编。伪虞序称郑鼐为“豫章郑鼐鼎夫”,并说“鼎夫承德机之教”,“诗正而有则”,“尝为校官”。考元人陈基《乾坤草亭诗序》云:“余熟西昌郑氏之贤久矣。今年春,鼎夫由天台弃官。”[34]知郑鼐其人确实存在。然而,范批杜诗郑编元本伪虞序曰:
吴文正公称其(引者注:范梈)清修苦节,有东汉诸君子之风,信矣!
所引吴澄语见于其为范梈所撰墓志铭[35],因此伪虞序撰写时间应在范梈卒年(1330)之后。又同书郑鼐跋云:
右杜工部诗三百十一首,清江范太史德机先生所选而批点者也……盖先生于诗深得古人性情之真,而能极其法度之密……(杜诗)凡千四百有五首,而今□□□□□□□无取乎?是盖不然。今夫宫室□□□□□□度可概见也,学者得于此而博观□□□□度亦岂外是?又何去取之慊哉!先生既去史馆,还官江海之上,行役所经,过从者数。每论经史治道,亶亶忘倦,间及诗文之法,率穷极体要。鼐得以服膺焉,因请是篇录之,敬寿诸梓,与学者共……[36]
“深得古人性情之真,而能极其法度之密”、“今夫宫室……度可概见也”等语,与伪虞序所引《诗眼》佚文“概考古人法度”、“官府、甲第、厅堂、房舍”相似,很可能是从伪虞序的长篇大论中提炼出来的。“因请是篇录之,敬寿诸梓”一句若属实,则撰跋时范梈尚在世,而前文已考伪虞序撰写时间在范梈卒后,郑跋显然是无法预知伪虞序内容并受其影响的。
李诗郑编元本郑鼐跋语云:
余既刻范选杜诗已,读者便之,因复取先生批选李集,并锓诸梓。[37]
作者自称看到范批杜诗市场反响较好,“读者便之”,才又找来范批李诗并推向市场,这是坊刻本常见的书贾语气。可见此跋应是元末一书坊主托郑鼐之名而作,而文意浅薄的伪虞序很可能也出自他的手笔。
(三)范批李杜诗出于伪托
范批李杜诗的序跋均系伪托,那所谓“范批”是否可靠也便成了问题。对于这一点,早在元末即有人提出怀疑,但一直未引起学者注意。元人周霆震《张梅间诗序》云:
余昔以诗文谒桂隐刘先生,时张君梅间出其门,年甚少,已工吟咏,尤善行草书……丧乱重逢,刘先生没已久,余与张君亦俱老矣。独吟思未落,展卷求评……余僅守故步,何足以知君?然有感焉,近时谈者尚异,糠秕前闻……或托范德机之名,选少陵集止取三百十一篇,以求合于夫子删诗之数。一唱群和,梓本散行。贤不肖靡然师宗,以为圣人复起,殆不可易。余何人也,而敢与之言哉?……曷尝布置先后,若律令条格秩然不可易哉?[38]
“布置先后,若律令条格”脱胎自范批杜诗伪虞序,可知周霆震所见时人伪托范梈选杜诗311篇而成的“梓本”就是带有伪虞序的郑鼐编《杜工部诗范德机批选》。周霆震(1292—1379),字亨远,号石初,江西安成(今江西安福)人,是虞集、范梈的同乡。他和张梅间相逢于元末丧乱中,当时桂隐先生刘诜(1268—1350)去世“已久”,可见他撰写此序当在元末1360年前后(明朝立国在1368年),去范梈卒年不过三十年。周霆震其人,四库馆臣称为“元末之诗史”,所记当属不诬。倘若范批杜诗属于伪托,同样署名郑鼐编次并推上市场的范批李诗也当是伪托之作了。
范批若是伪托之作,质量必然不高。以范批杜诗为例,《杜甫全集校注》附录之“重要杜集评注本简介”云:
《杜工部诗范德机批选》所录之诗大半为无注之白文,行间有圈点。有注者亦极简略,大多为典故训释、背景介绍,多径用宋人旧注原文而不标出处。范氏此著,较有特色者是其编年,年月清楚者细列出,不清者则标注大致时期。其作法既有编年之效,又无牵强之弊。[39]
《校注》在指出其书注释简略、沿袭旧注缺点的同时,对范氏编年标注给予了肯定,然而杜诗郑编元本郑鼐跋却说:
初本年谱先后为序,今僭以五七言分类编次,欲便于学也,而并疏年谱于篇什之首、不厌其繁者,亦足以考岁月……[40]
可见此书“较有特色”之编年标注实出于刊刻者之手,和范梈无关。书中编年内容,如《游龙门奉先寺》等标注“开元间留东都”,前后《出塞》等标注“天宝以来在东都”,《北征》等标注“至德二载归至凤翔”,皆属宋人年谱旧文。至于范批杜诗311首,除去袭用宋人旧注者,所剩仅23首,多数只言片语,未见出彩之处。伪虞序谓范批“分章析理,发其奥典”,郑鼐跋称“先生之点选是编,灿然表句法之精,截然得章法之妙。其批切而要,其注简而明,其有补于学者不少也”,言过其实,皆书坊推销广告而已。
周霆震说托名范批杜诗在当时“一唱群和,梓本散行”,这从现存朝鲜刻本数量之多可见一斑。明人单复《读杜诗愚得序》(1382)自称曾读“范德机氏分类批抹杜诗”。成书于正统六年(1441)的《文渊阁书目》著录有“《李诗范选》一部一册(阙)”和“《杜诗范选》一部五册(阙)”[41],而成书于弘治十七年(1504)的《建阳县志续集》记录当时建阳书坊所存板片也有“杜诗选六卷,范得〔德〕机批点,郑鼐编次……李太白诗选四卷,范得〔德〕机批点,郑鼐编次”的记录。[42]从这些书目并列范批李杜诗二种来看,所录版本皆衍出自托名郑鼐编次的元刻本系统。[43]
致谢:初稿成于2017年10月,承蒙李开升、严程、管仁杰诸友协助调查资料,匿名评审专家提出宝贵修改意见,一并致谢!
项目:教育部人文社会科学重点研究基地项目“安徽诗歌、诗学文献综合整理与研究”(GXXT-2020-026)资助。
[1]刘大力:《范梈籍贯为江西清江考》,《文学遗产》1986年第3期。
[2]《杜集叙录》云:“是书元明间均有刻本,然刊刻年月不详。”参见张忠纲等:《杜集叙录》,齐鲁书社,2008年10月版,第121页。
[3]王国维:《传书堂藏书志》卷四,上海古籍出版社,2014年8月版,第867页。
[4]傅增湘:《藏园群书经眼录》集部,中华书局,2009年4月版,第860页。
[5]王重民:《中国善本书提要》,上海古籍出版社,1983年8月版,第500页。
[6]赵万里:《北平图书馆善本书目》,载《明清以来公藏书目汇刊》,北京图书馆出版社,2008年6月版,第15册,第327页。
[7]跋文亦收录于王重民《中国善本书提要》,王氏称杨氏“似不知此为选本也”,可见杨氏观书仓促。此书在流落坊市前可能曾经清末姚觐元收藏,故为《咫进斋善本书目》著录,此不赘考。
[8]《朝鲜王朝实录·中宗实录》卷十六,正德七年(1512)九月四日条:“李纬之年二十四, 而前年为瓦署别坐。”
[9]《朝鲜王朝实录·中宗实录》卷八十二,嘉靖十五年(1536)七月二十七日条:“淳昌郡守李纬……”
[10]傅增湘:《藏园群书经眼录》集部,第847页。
[11]清范邦甸等:《天一阁书目》卷四,清嘉庆文选楼刻本。按,据李开升研究员告知,天一阁内已无此书,重庆、清华二种之中是否即有天一阁故物,暂难确定。
[12]跋文亦见于张廷银、朱玉麒主编:《缪荃孙全集》诗文第2册,凤凰出版社,2014年3月版,第227页。
[13]《杜集书目提要》亦认为杜诗明刻本“晚于郑鼐所编印之本,黄鹤补注当是后人所增入”,参见郑庆笃等:《杜集书目提要》,齐鲁书社,1986年9月版,第56页。
[14]清范邦甸等:《天一阁书目》卷四。
[15]跋文亦见于清曹元忠:《笺经室遗集》卷十二,吴县王氏学礼斋,1941年版。
[16]王国维:《传书堂藏书志》,第867页。
[17]詹瑛《李白集稀见版本考略》,载傅璇琮、许逸民主编:《中国古籍研究》第一卷,上海古籍出版社,1996年11月版,第356页。
[18]郑庆笃等:《杜集书目提要》,第55页。
[19]同上,第56页。
[20]同上,第57页。
[21]该册为《杜工部诗范德机批选》元刊本和《杜律七言颇解》嘉靖三十七年江阳朱氏刊本的合订本,参见黄永武辑:《杜诗丛刊》第一辑,台湾大通书局,1974年10月版。
[22]《中国古籍善本书目》,上海古籍出版社,1996年12月版,集部,第59页。
[23]《天顺元年进士登科录》,《明代登科录汇编》影印明天顺刻本,台湾学生书局,1969年版,第12页。
[24]《中国古籍善本书目》,集部,第73页。
[25]瞿冕良:《版刻质疑》,齐鲁书社1987年3月版,第23页。
[26]《中国古籍总目》,中华书局、上海古籍出版社,2012年7月版,集部第1册,第72页。
[27]同上,第82页。
[28]同上,第89页。
[29]中国国家图书馆、中国国家古籍保护中心编:《第三批国家珍贵古籍名录图录》,国家图书馆出版社,2012年5月版,第5册,第252页。
[30]张伯伟:《元代诗学伪书考》,《文学遗产》1997年第3期。
[31]清仇兆鳌:《杜诗详注》,1979年10月版,第78页。
[32]宋王霆震:《古文集成前集》卷六十八,清文渊阁《四库全书》本。
[33]《杜集书目提要》亦指出:“虞集序谓此书分类,而实则不分类,以诗体分卷。”参见郑庆笃等:《杜集书目提要》,第55页。
[34]元陈基:《夷白斋稿》卷一五,《四部丛刊》三编景明钞本。
[35]元吴澄《故承务郎湖南岭北道肃政廉访司经历范亨父墓志铭》:“余恶乎不以东汉诸君子例之哉!清江范梈亨父,一字德机,家贫早孤……苦节困穷,竭力奉母。”载吴澄:《吴文正集》卷八十五,清文渊阁《四库全书》本。
[36]底本残缺,据杜诗朝鲜甲本(韩国奎章阁藏本)补。
[37]底本残缺,据李诗嘉靖本(清华大学藏本)补。
[38]元周霆震:《石初集》卷六,清文渊阁《四库全书》本。
[39]萧涤非主编:《杜甫全集校注》,人民文学出版社,2014年1月版,第12册,第7047页。
[40]底本残缺,据杜诗朝鲜甲本(韩国奎章阁藏本)补。
[41]明杨士奇:《文渊阁书目》卷十“月字号第一厨书目”,清文渊阁《四库全书》本。
[42]明袁铦:《建阳县志续集·典籍》,明弘治十七年续修刻本。
[43]文渊阁本李、杜齐全,而前揭明刻本有杜无李,故文渊阁本必为杜诗郑编元本系统。又杜诗明刻本署名黄鹤、范梈,无“郑鼐编次”,故署名郑鼐的建阳书坊板片亦必属于郑编元本系统。至于台图所藏的郑编元本(竹纸,帘纹约3厘米)是否即出自建阳书坊,尚难遽下判断。
【作者简介】唐宸(1988- ),安徽歙县人,浙江大学文学博士,现为安徽大学文学院讲师、《古籍研究》编辑,主要从事版本目录学、三礼经学、古典文献学研究,创办“中国古典文献资源导航系统”网站(www.kuizhangge.cn)。
注:本文发表于《中国典籍与文化》2021年第3期,此据作者原稿。引用请以原刊本为准。感谢唐宸老师授权发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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