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수호지 - 수호지 86
- 오용은 역시 오용
송강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 오용은 짐짓 헛기침까지 해가며, 송강의 애를 태우면서 말했다.
"지금 저들의 성 안에는 군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교도청의 도술만 믿고 있었는데, 이 지경이 되니
구원군 조차 올 곳이 없고, 그저 막연하게 성을 지키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높은 데서 성 안을 내려다 보니 모두 어깻죽지를 축 늘어뜨리고 멍하니 앉아 있더군요.
그래서 말입니다.
그들에게 살아날 길을가르쳐 주면, 저희들 손으로 저희들 장수를 묶어 우리에게 바칠 것 아닙니까 ?"
송강은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그거 참 묘안 중의 묘안이군."
오용은 곧 송강과 상의하여 소덕성 주민을 설득할 방문을 작성하여 그것을 수십 장 베끼도록 했다.
<성 안의 백성들은 들으라. 지금까지 전호의 횡포에 시달려 온 것을 천군은 잘 알고 있도다. 그러므로 항복하는 자는 누구든 용서를 할것이로되, 반항하는 자는 칼로서 다스리겠노라. 누구든 반역자의 목을 베어 오는 자는 황제께 아뢰어 벼슬을 내릴 터이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지지 말지어다.>
송강군은 방문을 화살 끝에 매어 사방으로부터 성 안으로 쏘아 날리게 했다.
그리고 각 성문마다 공격의 손을 늦추고 안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하룻밤 자고 나자 돌연 성 안에서 때아닌 함성이 오르더니 사방에 항복의 깃발이 올랐다.
송강은 항복 의사가 있는 장수, 병졸, 주민들은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성벽 위에 올라가 서 있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성 안 모든 사람이 하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성벽 위에 올라가 천군 만세를 불렀다.
뿐만 아니라 성문이 열리더니 이규, 노지심, 무송, 유당, 포욱, 항충, 이곤, 당빈 등을 가마에 태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군사들을 이끌고 입성했다.
이규는 송강을 보자 소맷자락에 매달려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송강 일행이 잔뜩 축제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는데, 노준의의 진영에 있던 대종이 못 보던 장수 한 사람을
데리고 나타나 송강에게 인사를 했다.
"제가 데리고 온 이 사람은 지금 백곡령에 갇혀 있는교도청과 함께 출전했던 북군 장수였는데, 지금은
우리 진영에 귀순을 했습니다. 손안이란 이 장수는 교도청과 한 고향 친구로 자기가 백곡령으로가 교도청을
설득하여 귀순하도록 하겠답니다."
송강이 얼굴을 들어 대종이 데리고 온 손안을 보니, 위풍이 당당한 젊은 장수였다.
손안은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에 꿇어 엎드렸다.
"교도청과 저는 각별한 사이입니다. 저를 보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여 그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손승이 대찬성을 하자 송강은 손안을 계곡으로 들여보냈다.
한편 교도청은 양식이 없어 군사들이 칡뿌리를 캐 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교도청은 문득 자기 자신의 앞날이 한심해서 우울하게 앉아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 보니, 고향 친구 손안이 거기 서있는 게 아닌가. 교도청은 자기눈을 의심했다.
'아니지, 손안이 여기 나타날 리가 없지. 내가 허깨비를 본 게로군.'
그러나 그 허깨비는 어적어적 걸어오더니 교도청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아니, 자넨 진정 손안이렷다."
"암, 손안이고말고. 자네를 보러 여기까지 왔다네."
"자네는 군사를 거느리고 위승성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 산 밑에는 송군이 우글우글할 텐데
붙잡히지 않고 용케도 왔구먼."
"자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다네."
"할 말이 있다고?"
교도청은 이거 심상치 않은 노릇인데 하고 속으로 연거푸 고갯짓을 하고 있는데, 손안은 다시 말을 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말을 잘 귀담아 들어 보게나."
손안은 우선 자신이 어떻게 송강군에 귀순하게 되었는가를 자세히 들려주고 난 후, 이어서 현재의
전쟁 상황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다.
교도청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손안은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귀순을 하고 나서 알게 된 일이지만, 송강은 본디 의를 소중히 여기는 알뜰한 분으로서, 나라에 대한
충성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더군. 누구든 투항을 하면 천자께 아뢰어 벼슬을 내리겠다는 게 그분의
생각이더라고, 그리고 자넨 아까운 인재라면서 나보고 자네를 꼭 설득시켜 데려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네."
교도청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가세. 나도 귀순을 하겠네."
교도청은 부하 장수 비진과 설찬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손안이 공손승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공손승은 진 밖에까지 나가 교도청을 맞이했다.
교도청은 이마를 땅에 대고 무엄하게 대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공손승은 그 인자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고 교도청을 귀한 손님인양 정중하게 모셨다.
교도청은 공손승의 그와 같은 기풍을 보고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소인은 눈이 있으나 대인을 몰라보았으니, 가히 눈먼 봉사라 하겠습니다."
공손승은 교도청, 비진, 설찬 등을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송강에게 대면시켰다.
교도청은 송강이 겸손하고 온화한 인물임을 보자 차츰차츰 그에 대해 숭배의 생각을 더해 가게 되었다.
그날 밤, 송강은 두령들을 성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윽고 잔치는 끝나고 밤은 조용히 깊어 갔다.
송강은 밤을 꼬박 새우며 소덕성을 얻은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는 글을 쓴 다음, 숙 태위에게도 따로
승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특히 위주, 진령, 소덕, 개주, 능천, 고평 등 여섯 고을의 관리를 빨리 임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으레 그래 왔듯이 대종이 동경을 다녀오기로 했다.
대종은 명령을 받자 곧 바로 병졸 한 사람을 데리고 곧장 출발했다.
대종은 축지법을 쓰기 때문에 이틀 만에 동경에 도착하여 우선 숙 태위의 집부터 찾아갔다.
다음 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