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90) 실패한 정략 결혼
한편 제위에 오른 원술은 막상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하의 제후들에게 자신이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지지를 받으려 하였는데 그 누구도 자신의 뜻에 따라, 축하를 한다든지 천자로 옹립해 주겠다는 제후가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술은 고민 끝에 만조 백관들을 불러 모은 뒤에 입을 열었다.
"각지 제후들에게 내가 황제가 되었다고 조서를 보냈건만 한 사람도 대꾸가 없으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한 백관이 아뢴다.
"그것은 아마도 조서를 받아본 제후들이 폐하의 처사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원술은,
"아니, 세상에, 이런 혼란한 시기에 황제가 못 된 놈이 바보지, 어째서 내가 그들의 축하는 고사하고 괄시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폐하, 아무런 대꾸도 없는 것을 보니, 필시 저들은 연합하여 우리에게 쳐들어 올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한 백관이 이렇게 말하자, 원술의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면 좋겠소?"
그러자 국사 도저(國師 陶貯)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폐하, 이럴 때 일수록 우리를 도와줄 우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오니 가까운 여포를 우리쪽에 기울게 하는 계책을 쓰면 어떻겠습니까?"
도저의 말을 듣고 원술의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계책? 그것이 무엇이오?"
"여포는 정실 부인 엄씨(正室 婦人 嚴氏)와의 사이에 묘령의 딸이 하나 있사온데, 여포는 무남독녀인 그 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만약 그 처녀를 폐하께서 자부(子婦)로 삼으신다면 그때부터는 천하의 맹장인 여포와 사돈간이 되므로 폐하의 더할 나위 없는 힘이 되어 줄 것이옵니다."
"음, 그것 참 좋은 생각이로군!"
원술은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그리고 곧 청혼의 편지를 써서 한윤을 중매로 삼아 많은 예물과 함께 여포에게로 보냈다.
원래 여포에게는 이처 일첩(二妻 一妾)이 있었으니, 첫째 부인은 엄씨(嚴氏)이고, 둘째 부인은 조씨(曺氏)였다. 그리고 첩의 이름은 초선(貂蟬)이었으니, 여포가 장안에 있을 때, 왕윤(王允)의 수양딸인 초선을 무척 사랑했으나 동탁에게 빼앗긴 일이 있었다.
그 후에 초선은 자결을 했지만, 여포는 그녀의 대한 연민을 잊지 못하고 새로 취한 처첩의 이름을 <초선>이라 고쳐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포는 원술의 청혼 편지를 받아 보고 내심 크게 기뻐하며, 본 마누라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혼인을 어떻게 생각하오?"
"저는 매우 흡족하게 생각합니다. 원술 장군께서 이미 제위에 오르시었으니, 우리 아이가 그분의 외아들과 혼인을 한다면 머지않아 황후(皇后)가 될 게 아니옵니까?"
"음 .... 당신도 뱃속이 어지간하구려, 하하하!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오!"
여포는 마침내 혼인을 허락해 버렸다.
그리곤 당장 결혼 준비를 서둘렀다.
가지가지 비단 옷을 만들고, 사방에서 금은 보화를 모아, 예물을 준비하고, 시녀들을 시켜 자신의 딸을 눈부시게 단장시켰다.
그리고 한윤의 요구에 따라 신부를 수레에 태운 뒤 호위군사를 딸려서 남양의 원술에게로 출발 시켰다.
신부를 태운 수레가 서주 성문을 막 빠져 나왔을 때, 그 앞에는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진궁이 말을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레가 다가오자 진궁이 한윤을 보고 호령한다.
"멈추시오!"
"공대 선생! 길은 왜 막으시오?"
한윤이 말을 멈추고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러자 진궁이,
"수레안에 상 장군 따님이 계신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윤이 당연하다는 어조로,
"그렇소! 허나, 이 분은 이미 원씨 황제의 태자비이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진궁은,
"황당하군! 그런 대사를 당신은 어째서 이렇게 대충 처리하는가?"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한윤은 고개를 뻣뻣이 세운 채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오?"
그러자 진궁의 경우를 밝힌 소리가 터져나왔다.
"혼례를 할 때에는 관례라는 게 있소. 이른바 천자는 일년, 제후와 대부는 반년, 고관은 석달, 범인은 한달인데, 원씨 황제는 혼담을 꺼내자마자 신부를 데려 가다니, 말이 되는가?"
진궁의 추궁은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어서 말을 한다.
"우리 상 장군님의 따님이 서민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그러자 한윤의 대꾸가 이어진다.
"폐하께서는 지금 어지러운 세상이니, 혼사가 결정된 이상, 예기치 못한 변고에 대비해서 속히 처리하라 하셨소."
그러자 진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아니오! 원공은 이미 제위에 올랐고, 지금은 태자비를 맞이하는 것이니, 당연히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어서 천자의 예법에 따라야 하오. 황제께 고하시오. 앞으로 일년 뒤에 모시러 오라고."
이렇게 말한 진궁은 수레를 호위하는 병사에게 소리친다.
"명을 받들라! 당장 수레를 성 안으로 돌려라!"
그러자 호위 장수가 마상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머리를 돌리며 병사들에게 명한다.
"수레를 돌려라!"
"옛!"
성안으로 들어온 뒤, 여포와 마주한 진궁은 앉아있는 여포의 앞을 왔다갔다 하며, 불만스러운 말을 쏟아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런 큰 실수를 범하다니, 하마트면 원술과 사돈이 될 뻔 하지않았소?"
그러자 여포 역시 진궁에게 불만스러운 말로 대꾸하였다.
"원술이 황제가 되었다고 하고, 내 딸은 태자비가 된다는데 어때서요? 우리 입장에서는 원술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기는 것인데, 이렇게 된다면 누가 우리 서주를 넘보겠소이까?"
"원술이 역적질을 했으니, 그자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거지요. 설마하니 역적의 사돈이 되서, 함께 매장되고 싶은거요? 아시오? 조조가 역적 토벌 공문을 공포하고, 천하 제후들에게 원술을 제거하라고 명했소. 게다가 본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으니, 열흘 안에 천지가 진동할 전쟁이 벌어지게 될 거요! 이럴때 혼약을 맺는 것은 장군을 화살받이로 쓰겠다는 말인데, 모르시겠소?"
여포는 진궁의 책망을 받자 순간 머슥해지며 말한다.
"그럼 어쩜니까? 원술한테 이미 승낙했는데..."
"원술에게는 이미 승낙했다 해도, 사자에게 분명히 말했소. 천자의 예법에 따라 일년 후에 신부를 데려가라고 말이오. 원술이 황제자리에 올라, 얼마나 버티나 봅시다. 그때까지 버티면 태자비가 될 테고, 버티지 못한다면 우린 큰 화를 면하게 되는 것이오."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듣고서,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좋군요. 좋습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고 진궁에게 미안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그러자 목소리가 누그러진 진궁이,
"봉선!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필히. 나와 상의한 뒤에 결정하시오. 아시겠소?"
여포는 눈을 꿈쩍이며 겸언쩍은 어조로 대답한다.
"아, 알겠소. 선생에게 상의한 뒤에 결정하지요."
두 사람이 이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때, 수하 병사 하나가,
"보고합니다!"
하고 소리치며 뛰어든다.
"상장군! 천자의 조서가 왔습니다!"
"모셔라!"
진궁이 대답하였고, 두 사람은 꿇어 앉아 천자의 사신을 맞아 들였다.
천자의 사신이 조서를 읽어 내린다.
"원술은 황제를 배반한 천하의 역적이다. 짐은 조조를 호국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천하 군권을 수여해 원술 토벌을 명하였다. 이에 여포를 서주목에 봉하니,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원술을 멸하라. 이상!"
여포와 진궁은 조사를 가져온 사신에게 엎드려 큰절을 하며,
"폐하의 조서를 받들겠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었다.
사신이 물러가자, 여포는 조서를 펼쳐 본 뒤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진궁에게 조서를 건넨다.
"선생, 조정에서 결국 나를 서주목에 봉했군요."
그러자 진궁이,
"조정이 아니라 조조요."
하고 여포를 올려다 보며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조조가 장군을 서주목에 봉한 것은 원술이 장군에게 사돈을 맺자는 것 처럼, 장군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오."
"그랬었군요. 그러면 조서를 받들고 출병해야 합니까?"
"조서는 받드시오. 그러나 출병은 안 되오. 조조와 원술의 싸움을 지켜보기나 합시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