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동교회 이병석 목사의 주일오전 설교문
감사가 사라지는 시대(맥추감사)
디모데후서 3:1~5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을 불확신성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조재가 있으나 존재가 없는 것 같은 시대..
옛날에는 날벼락 사고를 당할 일이 거의 없다...
(거의 일상의 평범한 계획으로 살고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계획으로 살아간다는 것,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이다.
- 길 가다가 난데없이 옆을 지나가는 사람에게로부터
- 건널목을 잘 지내 가다가 난데없이 닥치는 교통법규 위반차량.
/ 내 운전 잘하다가 난데없이 다가온 상대차량의 추돌.
/ 내 운전 잘하다가 난데없이 닥치는 급발진 사고...
/ 출근 잘하여 내 작업장에서 일 잘하고 있는데 불시에 닥친 火魔...
-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데 이사하여 온 어떤 이웃(아랫, 윗층)
- 그냥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걸려온 옛날 친구의 전화한 통....
이런 시대임에도 우리가 버티면서, 피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죽이려 악착같이 찾고 추격하지만
거기에서 버티면서, 피하면서 살아가는 다윗!
(이것이 잘 피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다...)
/ 이 기간 동안 다윗은 하나님께 해야 할 수많은 감사 해야 할 꺼리를 얻어가고 있다.
! 이 때는 피하느라, 도망다니느라 기도로서만, 말로서만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狀況이지만
이 상황이 끝나고 나면 다윗은 현실에서 감사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 현장의 일에서 감격으로, 감사를 한다. - 말, 기도로..)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 상항이 끝나고 안정되었을 때
현실에서 감사를 해야 할 그 때는 그냥 넘어가 버린다....)
☞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다.
-그 위기의 때가 지나고 왕이 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 위기의 순간에 말로 했던 감사를 현실에서, 몸으로, 땀으로,
/ 춤으로, 물질로서, 찬양대를 조직함으로서....(아삽, 헤만, 여두둔)
그 때의 그 현장에서, 그 때의 그 현장 아둘람 굴에서는,
엔게디 굴에서는 읇조리는 소리로, 숨죽이는 소리로 감사를 했지만
Vs 이제는 춤을 추면서, 직접 시를 지어서......
이제는 대대적인 찬양대를 만들어서 만 천하가 듣도록.......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가 무엇인가? ⇨ 감사다.
부모에 대한 감사, 스승에 대한 감사, 도움을 준 자에게, 하나님께 감사......
○부모에 대한 감사?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 그 자체 만으로도 감사를 받아야 될 분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불신이고 책망을 받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에게는?
-에서? 하나님께는 좀 그렇지만 부모에게는 그렇지 않다, 효도 하는 자.
맛나는 고기, 그리고 이삭이 죽었을 때 야곱과 함께 장례를 치룬다.
-요셉의 효도! 우리가 잘 안다...
-「슬로보핫의 딸들」 아버지는 죽었지만 효도하는 있다.
-노아의 아들들은 그들의 믿음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방주를 만드는 효
/ 노아의 아들들은 효가 됨과 동시에 그들에게 구원이 되어진다...
Vs 부모님께 감사가 되고, 효가 되나 구원이 되지 못하는....!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선지라」(민16:27)
⇨ 땅이 갈라져 같이 죽는다....(효가 되나 구원이 되지 못함)
Vs 그러나 일부 「고라의 아들」들은 그 아버지를 떠난다.
(시편에서 이 후손들이 주님을 찬양한다...
시 42/ 43/ 45/ 46/ 47/ 48/ 49/ 84/ 85/ 87/ 88)
⇨ 성경은 이 부모에 대한 감사를 인간 세상에서의 제1법으로 말씀하고 있다.
부모에 대한 감사가 무너지게 되면 다음 것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둑이 터진 것처럼 무너진다.
“그의 부모를 輕忽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
○스승에 대한 감사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성경도 그렇고 동양도 그렇고 부모와 스승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스승의 모습, 가르침이 부모와 동일선상에서의 가르침이 되어야 하고,
제자의 모습도 부모와의 동일성에서의 감사가 있어야 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하나님께 대한 감사(주님께 대한 감사)
가르치는 자에게도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는데....
당연히 하나님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무조건 감사, 찬양 받기를 원한다.
(사람은 당연히 해야 한다.)
왜?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음이니라」
우리의 모든 것의 출처,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낳으시고 기르셨다. - 하지만? 그 이전에?
- 하나님이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139:13)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사 44:2)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사 44:24)
- 하나님이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다.- 나오게 하시지 않으면, 사생자로 죽어서.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시 22:9)
- 태어나고 난 후에 하님은 우리들에게?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시 22:10)
/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드셨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 주님이 우리를 부르지 않고 그대로 지옥 자식으로 놔 두어도
우리는 왜 나는 부르지 않느냐고 항의할 우리가 아니다.
! 주님이 구원하여 주시지 않아도 왜 나는 구원하여 주지 않느냐?
항의할 우리가 아닌데도....
Vs 오히려 왜 나를 자꾸 부르냐고? 왜 자꾸 나를 찾아 오냐고?
오늘 말씀은 말세 때에 일어나게 되는 사회현상을 말하고 있다...
자기 사랑/ 돈을 사랑, 자랑/ 교만/ 비방/ 부모거역/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 원통을 풀지 않으며/ 모함/ 절제 못함/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
조급 / 자만 /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은 없는./
⇨ 이것들을 오늘 「감사」와 연결 지으면 모두가 감사와 반대 개념
-자기 중심을 두는 사고
Vs 부모중심, 스승중심, 하나님 중심, 선 중심, 경건중심,...
-자기를 중심에 두니? 가진 돈을 자랑, 사랑하고
무정, 감사가 없고, 부모를 거역하고, 배신하고,
-자기를 중심에 두니? 성질 나는대로 행하는 사나움, 조급, 무절제...
남을 모함하고, 원통함을 풀지 못한다....
-자기를 중심에 두면 자기를 아껴야 할 것인데 쾌락을 사랑하여 망쳐간다.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오히려 쾌락 더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말씀을 대적, 변조...
-그러면서 경건의 모양(이미테이션)만 가지고 있다....
지금의 전형적인 위조의 모습이다....
믿음의 모양/ 효도의 모양 / 감사의 모양/ 구제의 모양/
감사, 정직, 정의 선함의 모양....만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세대에 우리교회와 성도들은 감사를 찾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를 도와주신 것에, 나를 키워주신 것에, 나를 가르치신 것에,
나를 구원하신 것에...... - 그것들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이 모든 것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감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
이것만 온전하다면 자동적으로 뒤의 것은 뒤따르게 된다....
하나님께 감사로 더욱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축복을 받아가는 성도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