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꽃을 보며 / 박재명
오월의 신록이 화려하다. 제각각 틀리는듯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낸 푸른 숲에는 녹색 에너지가 넘친다. 정신없이 지나쳐버렸던 지난 두 달, 오랜만에 집에서 즐기는 휴일의 무료함도 달랠 겸, 도심 속 작은 공원에 나무 풀꽃은 어떻게 변했을까도 궁금하여 진재공원에 나가 보았다.
화려한 봄의 축제를 열었던 벚꽃, 배꽃, 매화는 모두 어디로 가고 떼죽나무와 산딸나무 꽃이 그 뒤풀이를 하는 듯 대신하였다. 나뭇잎이 나오기도 전에 꽃으로 장식하는 초봄의 나무들은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그러나 푸른 잎사귀 품에서 꽃을 피워내는 지금의 나무들은 드러내고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이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진다.
나무 숲 사이 낮은 곳에는 풀꽃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풀 속에도 5월의 마지막 향연이 한창이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보리뺑이, 쇠별꽃, 괭이밥이 소중한 주인공들, 한창 꽃을 피우기도 하고 씨를 날리기도 하며 오월의 풀숲을 장식하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아서 아파트로 돌아오는데 대나무 숲에서 뭔가 이상함이 느낌이 들었다. 뒤 돌아 보니 푸르게 우거져야 할 대나무가 대궁은 물론 잎까지 누렇게 떠서 꺼칠하였다. 자세히 보니 길쭉길쭉 힘찬 모습으로 뻗어야 할 잎사귀는 짧고 촘촘하게 뒤엉켰으며, 곤충들이 뽑아낸 고치실 같은 것들에 의해 털북숭이처럼 달려있었다.
문득 100년 만에 핀다는 대나무 꽃이라며 인터넷에 돌아다닌 그림이 노루귀 꽃이었으며, 반면에 대나무 꽃이 이런 것이라며 보여준 사진이 기억났다. 그때 본 대나무꽃에 대한 기억은 말라죽은 옥수수와도 같았는데, 지금 마주하고 있는 대나무와 무척 닮았다. 일단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대나무 꽃이라는 기억에 마음이 흥분되어 일단 카메라에 담았다.
자세히 보니 진재공원에서 보고 온 꽃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 꽃이라고 하기엔 하찮은 모습이었다. 잎이 달려야 할 자리에 보리이삭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것의 하나하나마다 가늘고 긴 꽃 수술이 나와서 바람에 한들거렸다. 이것이 꽃이겠거니 하는 짐작은 제각각 달린 꽃 수술이 유일한 단서였으며, 여러 송이가 함께 모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 모습이 꽃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벌레가 달려들어 만들어 놓은 집처럼 보였다.
대나무가 꽃이 피는 현상은 제 수명을 다한 마지막 모습이라고 한다. 찾아 본 바로 대나무에 한 번 꽃피면 2~3년 계속하다가 3년째는 꽃만 달고 그대로 고사(枯死)한다고 한다. 고사하는 원인도 주기설, 영양설, 기후설 같은 의견으로 분분하다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영양설에 가장 큰 믿음이 간다.
영양설에 따르면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동안 성장과 번식한 결과로 대나무 밭에 영양분이 부족하게 된다. 이로 인해 더 이상 뿌리번식이 불가능해지면 대나무는 마지막으로 남은 에너지를 모아 꽃을 피워 번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나무꽃은 보고 있자면, 자신을 죽음으로 희생하여 자손을 살려내는 모성애를 보는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온지 벌써 5년째이다.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여 이곳에 입주할 때 주차장을 지하로 설계하였고, 지상에는 소나무와 메타세콰이어 같은 아름드리 관목이 들어섰다. 붕어가 헤엄치는 연못과 철따라 꽃을 피워내는 화단이 잘 어우러지는 정성이 돋보인 아파트였다.
그 때 대나무 숲도 세 군데나 조성 되었다. 긴 장대 같은 대나무를 꽂았는데 제대로 잘 자랄까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싹을 틔워 자리 잡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 대나무꽃을 피움으로써 5년 만에 헤어지게 될 운명에 처했다. 대나무 밭의 수명이 최소한 60년 이상이라는데 그에 비하면 너무 짧은 만남에 불과하지 않는가.
도심 속의 땅이 아주 기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무가 금방 죽을 정도로 척박할 줄은 몰랐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입주초기에는 아파트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내려다보는 즐거움도 적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중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내리 죽어 나갔다. 캐내고 심기를 세 번이나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인공 재배된 작은 반송(盤松)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자연에서 살던 나무들을 도심 속 정원으로 옮기는 일이 부쩍 눈에 띤다. 그러나 그들은 도심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우리 곁을 떠나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한사코 싫어하는 나무들을 도심으로 데려와 함께 살자하고, 나무들은 온 몸으로 거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어찌 보면 자연은 사람위주의 욕심에 대해 온 몸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죽음으로 저항해야 할 정도로 이곳을 싫어하는 것일까?
첫댓글 처음 보는 대나무 꽃입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대나무 꽃이 항상 궁금만 했었는데..사진을 보니 저도 본것 갔습니다.우리집 울타리에도 대나무로 둘러쌓여 있어서 지금 생각하니 그때도 사진속의 그림이 떠 오르네요...잘 읽었습니다.
대나무 꽃이라는 이름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요. 꽃이 피면 열매가 맺고 더욱 종을 번식히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대나무 꽃은 제수명을 다한 마지막 모습이라고 하니 더 유심히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귀한꽃도 보여주시고...
저는 대나무꽃을 처음 봅니다. 유익한 정보도 고맙고요. 산골 살았는데도 대나무가 꽃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사진 고맙습니다. 참말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늘 행복하소서.
처음보는 대나무 꽃 참으로 신기하네요.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 안녕하시죠?
대나무 생태에 대하여 많은 내용을 배우고 갑니다.
수업을 마치고 새로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