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의 길안천은 둑길 따라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며 빚어내는 빛이 곱고 명랑하다. 들녘은 조금씩 노랗게 물들고 그 위를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날갯짓에도 가을이 잔뜩 실려 있다. 이즈음의 길안천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하늘빛을 닮은 물빛 고운 길안천을 건너 만휴정으로 오르는 길섶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길손을 향해 향기로 말을 걸어온다. 그 향기에 취해 느릿느릿 느린 걸음으로 만휴정으로 찾아가는 길은 그윽한 물빛 그리움처럼 더없이 맑고 아름다워 가히 세상 모든 시름을 떨쳐내게 해 준다.
만휴정과 송암폭포
만휴정이 자리 잡은 묵계리는 1리와 2리로 나누는데 묵계 1리에는 선항리(仙巷里), 상리(上里), 하리(下里), 새마을, 구만(九滿)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묵계 2리는 묵계 북동쪽의 넓은 마을로 오락(五樂)이라 부르는데, 김정호(金廷豪)가 이 마을에는 다섯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하여 오락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오락이란 산, 물, 나무, 물고기, 복숭아를 말한다. 묵계는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 불렸는데 1500년(연산군 6)에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선생이 풍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묵촌(黙村)으로 고쳐 부르다가 만년에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건립하고 정자 앞을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묵계라 고쳐 불렀다.
만휴정으로 오르는 길은 묵계서원에서 그리 멀지 않다. 길안천을 건너 아랫마로 접어들면 마당 한 켠 따사로운 햇볕을 옴 몸으로 받으며 빨갛게 물들어가는 고추가 어찌나 예쁜지 걸음을 자꾸만 늦추게 한다. 만휴정으로 오르는 길은 어머니 품속같이 아늑하고 고향을 찾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해서 더 행복하다. 마을을 지나 산 계곡으로 방향을 잡으면 마을길은 좁으나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길을 걷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산 중턱을 향하여 솟구친다. 어느 사이엔가 계곡의 바닥은 저 아래쪽으로 물러나고 길은 산 중턱에 올라붙었다. 땀을 훔칠 때쯤 가을장마에 불어 난 계곡물 소리가 싱그럽게 귓전을 때린다. 계곡물 소리에 끌리듯 길을 버리고 한 걸음 아래로 내려서면 비탈의 끝은 계곡의 한쪽으로 절벽을 이루고 시선 방향으로 폭포와 함께 그 위에 옆으로 살짝 비켜 서 있는 만휴정의 한옥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만휴정,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되면서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나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사랑’은 총 쏘는 것보다 어렵고, 더 위험하고 더 뜨거운 것”이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폭포는 계곡을 가로질러 우뚝하다. 갈라진 틈 하나 없는 바위에 억겁의 세월을 딛고 물길이 열리고 폭포를 이루고 그 아래 선녀가 내려와 금방이라도 목욕하고 갈 것 같은 맑은 소를 이루었으니 바로 송암폭포다. 폭포는 여느 그것과 달리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굉음도 없고 물길도 세차지 않다. 그저 생긴 그대로 자연을 안고 흘러내린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길이 예쁘다. 너무 빨리 흘러내리기 위해 게거품을 물은 탓인지 아니면 너무 빨리 흘러내리지 않기 위해 발을 버틴 때문인지 폭포를 이룬 바위 면에는 물비늘 같은 흰 거품이 포도송이처럼 인다. 어느 화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한 폭 그림을 화폭 위에 그려 놓을 수 있을까. 한 폭 동양화보다 더 동양화 같은 신비스러운 곳~ 그 비경 속에 나와 자연이 하나 될 수 있도록 자연 속에 나를 동화시켜 낸 선생의 안목이 놀라울 뿐이다. 그랬다. 송암폭포는 폭포 위 한쪽으로 비켜선 만휴정이 있어 하나의 자연으로 완성되었다. 바위와 물과 인간의 건축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화음의 공간, 만휴정은 보는 이들에게 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해 내고 있다.
묵계리에 자리 잡고 있는 보백당종택
만휴정의 주인인 보백당 김계행 선생은 연산군의 폭정을 보고 홀연히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했다. 그 후 지금의 풍산 소산에서 풍천 가일의 경계를 이루는 '설못' 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이어서 늘 번잡하고 시끄러우니 만년을 보내기에 좋은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 『연보』에 의하면 "선생은 일찍이 송암동 폭포 위에 정자를 짓고 만휴정이라 이름하였으니 만년에 휴식한다는 의미를 취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폭포와 만휴정이 들어서 있는 이 계곡은 송암동(松巖洞)이라 불린 것을 알 수 있다. 만휴정은 폭포를 옆에 두고 바위 위로 올라서면 마주할 수 있다. 폭포의 아래쪽에 정자를 앉히지 않고 폭포 위에 정자를 앉힌 것은 폭포가 바라보이는 지점에는 집을 앉히기에 마땅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폭포수가 쏟아져 내는 세찬 소리를 조금은 누그러뜨려 잔잔하게 들려오는 곳에 집을 지어 만년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한 주인의 의지가 담겨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폭포 위쪽은 평탄한 계곡이지만 골이 깊다.
만휴정 중수기의 기록을 보면, “상류는 전의곡으로 이곳으로부터 계곡이 동쪽으로 멀리 치달려 오는데 굽어지고 휘어진 것이 10여 리에 이르러 홀연 마당같이 넓은 바위가 나타나니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산과 계곡이 모여든 듯하고…(중략)”라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마당같이 넓은 바위가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만휴정의 영역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의 전면 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 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 난간을 돌렸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처마선이 날렵하여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만휴정에 들어가려면 오던 길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야 한다. 계곡에는 만휴정에 닿을 수 있도록 좁직한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는 만휴정의 축대 한끝과 건너편 길 아래쪽의 불룩 솟아오른 바위의 한 면을 잇고 있다. 만휴정은 커다랗고 둥그런 바위를 등에 지고 물길로부터 조금 안쪽으로 움푹 패 들어간 터에 자리 잡았다. 만휴정이 등지고 있는 바위의 아래쪽은 상당한 단층면을 이루고 있으나 위쪽은 밋밋한 곡선을 드러내고 있고 그 위에는 여기저기 세력이 그리 왕성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만휴정은 물길이 흘러가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앞쪽 산허리의 중간쯤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물길의 흐름, 산허리의 흐름과 직각으로 만나는 시선 방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공간분할은 만휴정이 자연이라는 경계를 이용하여 세상의 번잡함으로부터 적절하게 분리되어 나 홀로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족할 수 있는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만휴정 위 천석 위로 흐르는 계류가 아름답다.
만휴정에 오르면 위쪽에서 계곡의 물이 너럭바위의 사면을 타고 지렁이 몸짓으로 내려와 이룬 소와 그것이 또 태극의 형상을 지으며 짧은 유영을 한 끝의 아래쪽에 만들어 놓은 소가 내려다보인다. 아래쪽 소의 한쪽을 칼끝처럼 비집고 들어와 사선으로 차단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라 새긴 바위 글씨를 볼 수 있다. 마루에는 나지막한 난간을 둘러쳤고 마루 위 천장 서까래 아래쪽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쪽에 있는 방 앞에 달린 나무판에는 “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돈후하게 사람을 대하라.(持身謹愼 待人忠厚)”라는 선생의 유훈이 전하고 있고, 서쪽 방의 앞에는 “내 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외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그중에서 중수기를 지은 김양근의 시를 옮긴다.
층층이 급한 물 쏟아져 내리니 물 돌아가는 곳에 저절로 물가마가 생겼구나 십장 높이에 옥처럼 푸른 빛 떠오르니 그 속에 신의 손길이 담긴 물건이로다
폭포와 연못은 가끔씩 널려 있고 너럭바위는 넓게 펼쳐져 있구나 희디 흰 것이 갈아낸 돌과 같으니 가히 백 사람쯤은 앉을 수 있겠도다
앞을 보니 세 개 물가마가 어울려 있어 시흥이 날개 짓으로 솟구쳐 오르네 지천으로 피어난 꽃들은 웃음을 다투고 마치 산 전체가 물속에 든 형국이로다 | 만휴정으로 들어올 수 있는 쪽문마저 앙증스럽다. |
만휴정과 송암폭포 일대는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명승이란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높고 우리 선조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전통적인 문화공간이자, 지역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체의 원천이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명승은 자연 유산적 가치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모두 담고 있으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까지 담아내고 있어서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까지 두루 갈무리하는 곳이다. 따라서 만휴정 원림은 계곡에 넓게 펼쳐져 있는 반석과 흐르는 물, 기암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송암폭포의 위용, 솔향 그윽한 아름드리 소나무에서 느낄 수 있는 그윽함과 그 속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듯한 만휴정 정자는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어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과 가치관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