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서제(光緖帝)의 동생 순친왕(醇親王) 재풍(載?)의 아들. 1908년 3세로 아이신줴뤄가[愛新覺羅家]의 제12대 황제가 되어 선통제(宣統帝)라 하였으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1912년에 퇴위하였다. 1924년 펑위샹[馮玉祥]에게 쫓겨 베이징[北京]을 빠져나와 일본 공사관(公使館)에 피하였으며, 나중에 톈진[天津]의 일본 조계(租界)에 한거(閑居)하였다. 만주사변(滿洲事變) 때 일본군에 의해 몰래 끌려나와 1932년 만주국을 집정(執政), 1934년 왕이 되었다. 1935년과 1940년에 일본을 방문하였으며, 1945년에 만주국이 붕괴됨으로써 퇴위하였다.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하바로프스크에 억류되었으며,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 때 증인으로 출두하였다. 1950년 공산정권하의 중국에 송환되어 수감되었다가, 1959년 특사로 풀려나와 식물원 정원사로 일했다. 1964년 인민정치협상회의(人民政治協商會議) 전국위원(全國委員)이 되었으며, 저서 《나의 전반생(前半生)》을 출판하였다.
1967년 10월 16일 사망 후 베이징 시내의 팔보산(八寶山) 공동묘지의 인민납골당에 유해가 안치되었다가, 1980년 5월 팔보산 혁명공묘(革命公墓)로 옮겨졌고, 1995년 1월 26일 베이징 남서쪽 허베이성[河北省] 이현[易縣]에 있는 청나라 황릉(皇陵)으로 이장되었다. 이로써 사망한 지 28년 만에 청나라 황제로 복권되었다. 한편, 그의 저서 《나의 전반생》이 감독 B.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로 영화화되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황제의 영화를 보면서 , 강호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일본의 만주국의 허수아비황제인 푸이.
정말 비운의 슬픈 일대기를 보였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비운의 황제 푸이. 그의 마지막은 정말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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