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산(燕岩山), 삼준산(三峻山 壓輝峰) 들꽃 탐방 산행기> 부합되게 천장사는 제비바위가 있는 산중턱에 깊이 숨어있다 - 두 산 모두 가야산과 유명한 수덕사의 덕숭산에 가려 조금은 생소한 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망은 실제 해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산이다 장요리임도 입구⇒ 천장사⇒제비바위⇒연암산⇒연장이고개⇒갯골재⇒삼준산 ⇒갯골재⇒장요리임도 입구 <산행개념도> <구글궤적> ※ GPS를 천장사에서 켜놓아 궤적은 천장사에서 부터 잡혔음
요금 7,200원 1시간 30분소요)편을 이용할 수 있겠으나 천장사를 볼 목적이면 고북을 통해 오르는 버스편을 검토해야한다. <서울에서 서산까지 이동> <서산터미널에서 고북 장요리버스>
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내포가 어디냐 하면 가야산 줄기의 앞뒤로 있는 서산, 예산, 당진, 홍성 등의 여러 고을을 일컬어 부르는 총칭입니다 아직 산행을 해보지 못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오늘 내가 산행을 하게될 연암산과 삼준산입니다. 서산 가야산 지구에 있는 산군들을 여러 곳 다녀보면서 늘 조망으로만 짚어보던 산입니다. 그 궁금증을 오늘 실현시켜 주는 날이기도 하구요. 또한 오늘은 내 개인적인 소망을 담은 연암산, 삼준산 산행과 더불어 산과야생화카페 회원님들과 들꽃탐방도 병행하며 널널한 산길에 봄내음을 맞으며 인사하는 계획으로 잡혀있습니다. 겨울산님과 8시에 서산 터미널에서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구요. 야촌님은 전에 산행하다가 뵌 적이 있었구요. 서니님은 처음 인사를 나눕니다. 곧이어 두 번 산행을 같이 했었던 단아님도 서울에서 내려와서 동행을 합니다. 승용차는 고북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서 장요리 시골마을 끝자락에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 도착을 합니다. 임도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해놓습니다. 원래 천장사까지는 승용차가 오를 수 있습니다. 천장사 아래 주차장이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하여도 되는데 우리 팀은 산을 한바퀴 돌아 이곳으로 원점 회귀하려 하니 여기서 주차를 한 것이지요. 산행 개념도로 보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듯시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기대 만땅입니다. 법력 높고 유명하신 경허스님이 머무시며 정진하시던 천정사란 수덕사의 말사를 거느린 산이란 예비 지식이 있었기에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천장사가 보여질까 하는 기대감이 대단하였지요. 솔향이 그득한 송림 속으로 한발작 한 발작 옮겨놓습니다.. 등로 옆에 한적함을 더해주는 폐가도 보이구요. 아~ 노란 동백꽃이 먼저 반겨주는군요. 나는 금년들어 생강나무가 꽃피운 것을 오늘 처음 만나 봅니다. 코끝을 살짝 대어봅니다. 꿀맛 같은 향~ 달콤하고 좋지요. 봄날에 생강나무 향이 흐르는 산길 절로 몸이 이완되어 피로가 서서히 풀립니다. 모두 모두 반겨주는 아침입니다
커다란 바위가 떡 버티고 있는 곳에서 좌측 돌계단이 가지런히 나 있는 곳으로 오릅니다. 고즈넉한 느낌이 좋습니다.
돌계단을 통해서 아래에서 올라오다 보니 대웅전으로 바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였군요. 마음 셀레이며 올라온 천장사..
하나는 맞배지붕 단아한 느낌의 고풍스런 건물이고 또 하나는 요즘 지은 것 같은 붉은 벽돌집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제 해우소를 지나고 나면 천장사 요사채입니다. 색 바랜 기와와 기둥에서 아련한 옛 정취들이 스며듭니다. 이곳 요사체 우측 한 켠 앞에 맑은 물이 넘쳐나는 약수가 있구요. 윗 편으로 올라가서 내려봐야 천장사의 위치에 대한 감이 잡힐 것 같군요. 요사채는 "ㄱ" 자 집입니다. 아래에서 볼 때는 정면6칸의 맞배지붕의 건축인줄 알았었습니다. 나중에 증축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요사채에서 좌측 서편 위로는 나중에 찾아보니 마음의 화살을 쏘는 문이란 뜻이네요. 요사채 아래에서부터 축대를 촘촘히 쌓아 올린 그 위 편에 세웠습니다. 스님들이 동안거(冬安居)나 하안거(夏安居)시에 수도에 정진하는 곳이지요. 약수 한 모금 떠 마시고 윗 편으로 바로 올라가 봅니다. 이제 대웅전 법당이 있는 곳입니다.
앞 뜰에 칠층석탑과 석등이 두 개 보이구요. 새로 세운듯한 석가여래상이 보입니다
천장사가 유명한 것은 조선말기에 태어나 조선의 불교를 다시 일으키신 경허스님이 이곳에 기거하시던 흔적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경허스님이 동학사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이곳에 와서 정진한 곳이라 하구요.
9세때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하며 각종경전 및 제자백가서를 섭렵했다. 25세에 동학사의 강사로 추대되어 경전의 대가로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게된다. 동학사에서 견성(見性)한뒤, 연암산 천장사에서 1년동안 오후보임(悟後保任)을 하여 득도했다. 이후 못 말릴 기행과 흉내낼 수 없는 무애행(無碍行)에 여러 좋지 않은 평판도 많았던 분이다. 하지만 작금의 평판은 매우 긍정적이다. "한국의 달마, 한국 근대 선의 첫새벽"등등의 찬사가 쏟아지는 분이다. 천정사 절이 원래 그 당시에 경허스님 형이 주지스님이였었답니다. 그를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연이 있으니 자리잡은 계기가 되었을거란 내 개인적인 생각도 듭니다. 문둥병으로 온몸이 짓무른 여자 나병환자와도 보름동안 침식을 같이했엇다고 하는군요.
"모든 것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나리라" 하며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라는 말로 무애행을 했었지요. 경허스님의 불법도 몸으로 몸소 실천하는 그런 불법인가 봅니다. 시주 받은 쌀이 담긴 바랑을 짊어진 만공이 무겁다고 투덜거렸다. 경허는 들은 척도 않고 앞서 휘휘 걷다가 물동이를 이고 우물로 가는 동네 아낙의 귀를 잡고 느닷없는 입맞춤을 해댔다. 물동이가 떨어져 박살났고, 아낙의 비명을 듣고 몰려나온 사내들이 몽둥이를 꼬나들고 경허와 만공의 뒤를 ?았다. 스승과 제자는 죽자 사자 20리를 냅다 뛰어야 했다. 악착같이 추격하던 사내들이 포기하고 돌아서자 만공이 그제야 소리쳤다. "스님!도대체 그게 무슨 짓입니까?" "하하, 덕분에 이렇게 쉽게 오지 않았느냐?" "쉽게 오긴요? 맞아죽는 줄 알았습니다." " 하하. 그래. 맞아죽을 마음으로 뛰니까 바랑이 무거운 줄도 모르겠지? 그게 마음이니라." 자~ 이제 천장사를 세세히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뒤편 산신각이 있는 곳으로 먼저 올라가 봅니다.
맞배지붕처럼 단아한 형체도 가미된 건축물입니다.
법당 좌측 왼편 염궁선원 바로 앞에는 새로 세운듯한 것이 있구요 법당 너른 마당 앞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2호의 7층 석탑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다시 짜 맞추어 놓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고 옆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네요. 염궁선원은 수행중이니 출입을 삼가라는 안내문이 있구요. 올라와서 보니까 현판도 잘 아니 보이구요.
이곳 천장사는 모든 건축물이 돌축대로 잘 자잘하게 잘 다져 놓은 것 같습니다. 대웅전의 현판을 자세히 보니 많이 색 바랬어요. 법당을 우측으로 돌아 측면에서 산쪽으로 붙은 골방이 하나 보이는데 원구문(圓求門)이라고 적힌 것이 보입니다. 아~ 이곳이 바로 경허 스님이 바로 정진에 들었던 곳입니다. 조용 조용 원구문 근처를 다가갔습니다. 근데 별안간 옆 쪽 방의 문이 열리면서 주지스님인 듯 한 분 나오시네요. 깜짝 놀라 얼른 합장을 하고 예를 표했습니다. 내 발자국 소리를 조심히 했는데 들으셨나 봅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으시길래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곳에 오면 모두들 그냥 스쳐 지나는데 경허스님을 알고 물어보니 궁금증을 풀어주겠다고 하신다. 작은 쪽방문을 열고 미닫이 문이 또 하나 있었는데 내 눈이 의심이 간다. 정말 작은 쪽방이다. 사진을 못 찍었지만 어린시절 시골집 머슴부리며 사는 분들 집안 대문 옆 쪽방 보다도 더 작았다. 대충 폭이 약1.5m, 길이 폭이 약3m의 정도 내 눈썰미가 좀 부족해서 그런가 아무튼 아주 비좁은 방이다. 경허스님이 육척장신이라는데 일어서면 머리도 닿겠네요~
아~ 이런 것이였구나 혼자말을 해봅니다. 내가 지금 다리뻗고 뒹글고 잠자며 살고 있는 방은 대궐이였습니다. 그 때 스님이 차 한잔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감사해서 머뭇거리는데 저 산 윗 편에서 겨울산님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 일행들이 있었군요. 어서 살펴가세요~ 올라 가면서 부도하나 잘 살펴보라"고 하시면서요. 감사의 합장 인사를 드리고는 바로 올랐습니다. <천장사의 봄> 이제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경허스님 어머니 부도라고 합니다. 뭔 글씨가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산불이 났었던 흔적이 경사면에 여러 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고사목이 되어 자유 분방하게 창공을 찌르는 날카로움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산불 조심하자고 가슴 찌르듯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듭니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더니 이제 제비바위에 이릅니다. 천장사가 그 제비집에 알이 있는 위치에 있다 하구요. 경허스님의 불법이 영향을 미쳤는지 명당터라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망이 시원한 것으로 보아 명당터는 맞는 것 같습니다. 서향과 북서, 남서향으로 천수만 간월호와 멀리 도비산도 조망 되구요. 가까이 산 아래로는 너른 내포평야와 시원하게 달리는 서해안고속도로... 짙푸른 호수 아니 고북저수지..... 제비봉에서 동쪽으로 진로방향을 바꾸어서 경사를 타고 오릅니다. 이곳은 굴참나무가 군락으로 자라고 있군요. 점차 고도를 높이면서 남향과 남동향으로 조망이 터오기 시작합니다. 연암산 정상에 오르는 산객들 환영을 하여주려는가 굴참나무 가지 끝에 어치 한 마리가 날아들어 까악~ 깍 울어대는 모습도 보이구요. 좀 힘들지? 하고 희롱하는 듯한 울음으로 나는 들리는데... 연암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시각은 11시10분입니다. 북향으로 한서대 방향으로는 나뭇가지에 가려서 조망이 아니 좋습니다. 동향으로 멀리 용봉산과 수암산의 능선도 산뜻하게 들어옵니다. 정상에서 간단히 간식을 들어가며 잠깐의 조망을 즐겼습니다.
산불 화마에서 멀쩡하게 피해갈 수 있었던 천장사를 다시 한번 조망해 봅니다. 연암산 정상에서 고도를 낮추어 가는 능선 길에 나무 꽃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실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이름불러 보는 실습을 합니다. 들꽃 탐방은 역시 현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물의 크기와 촉감도 느낄 수 있구요. 오래 오래 마음속 깊이 기억공간에 저장됩니다. 생강나무는 암수 딴 그루에서 꽃이 피어 암꽃과 수꽃을 구분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나는 老眼이라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아니 보여서 찾아보기 힘들군요. 올괴불나무, 길마가지나무 등 등... [▼ 길마가지나무] [▼올괴불나무] [▼딱총나무] 무너미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사거리 의 흔적이 있습니다. 우측으로는 천장사 쪽 임도 방향으로 만나는 길이구요. 좌측으로는 대곡로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되겠지요. 좌측 북향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더니 잘 정리된 묘지가 보이는군요 무너미고개를 지나면서 계속 나무꽃들을 관찰하게 됩니다 꽃이 아직 피지 않은 꽃눈과 잎눈이 살짝 올라온 상태인데 아주 귀엽지요. 만져주고 싶습니다. 굴피나무는 지난해의 결실들이 매달려 있어서 쉽게 구분 하구요. 이 나무는 수피가 세로로 갈라지면서 깊게 거칠게 파인게 개성이 있습니다 연암산 정상아래 능선에서부터 나무공부를 하며 내려오다 보니 연장이고개에 떨어집니다. 우측 서편으로 내려가면 오전에 승용차 주차시킨 들머리 임도 입구로 연결되었구요.
최근에 시산제를 지냈는지 실타래가 매달려 있군요. 이제 삼준산으로 지역으로 변합니다. 다시 고도를 높이는 경사가 조금 급한 구간입니다. 준비소홀로 오르 내림길에 결국 고생 좀 합니다.
급한 경사를 오르고 나서 완만한 능선을 지나고 나니 앞에 거대한 바위지대가 나타나는군요. 벽장바위라고 합니다. 한번 벽장에 올라가 볼까요.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안방 아랫목 위편으로 벽장이 있었는데 왜 그리 그곳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했는지 그 생각이 나는군요. 나만의 공간 뭐 그런 셈이지요. 한번 벽장에 올라가 볼까요~ 벽장바위에 올라서니 북서방향으로 다녀 온 연암산이 바로 앞에 산뜻하게 조망이 되는군요.
세상살이 숨가쁘게 하다가 탁 막힐 일이 생기면 이곳에 올라서서 숨 호흡 크게 한번 하면 모든 체증이 싹 사라질 것 같은 멋진 조망터입니다.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습니다. [▼파노라마사진] 바위 봉우리를 하나 치고 넘어가서 능선을 거닐다가 다시 안부로 떨어집니다. 이정목이 두 군데 서있구요. 이곳 이정목에 거리표시는 믿지 마십시오. 잘못 기재된 것 같습니다. 우측 장요리 방향으로는 삼준산 정상을 밟은 후에 되돌아와서 우리가 하산하여 내려갈 곳입니다. 좌측으로는 가곡주차장이라고 적어 놓았는데 오늘 점심식사를 할 곳을 그 쪽 방향에서 잡기로 합니다. 바람을 등지고 있으니 따스한 곳이라서... 좌측으로 산허리를 타고 돌아 내려갔습니다. 어~ 지도상에 못 보던 민가가 보입니다. 수양전의 유래라고 비석에 써있는데 한번 읽어 보시지요. 당췌 이게 뭔 소리인지 한글도 제대로 나는 읽어 갈수 없고 뜻을 모르겠군요. 어떤 사람들이 이런 글을 읽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겨울산님과 함께 그 민가 쪽으로 다가갔지요. 집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남자분 한 분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여기가 무슨 절이냐고 했더니 유선교라고 하던가 그럽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여러 가지 복합된 종교를 믿는 그런 곳이군요. 천주님도, 불교도 유교 등등.... 지금은 이상한 종교를 믿는 곳이 되었지마는.... 옛 절터임을 알 수 있는 고목들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구요. 사리탑을 안치했었던 석탑의 흔적이 한군데 남아있습니다. 이곳 옛 삼준암 절터 앞 양지 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중식시간을 가져봅니다. 풍성한 식탁입니다. 김밥, 여러가지 과일... 내가 중식시간 자리 편 것을 별로 사진을 아니 찍는데 오늘은 여러 회원님들이 가져오신 과일이 중복되는 것 없이 제 각각이라 한번 펼친 자리를 찍어봅니다 막걸리도 한 잔씩 건배를 했구요. 커피 한잔을 하면서 약50여분 동안 즐거운 휴식 겸 중식시간을 갖었습니다. 이곳 절터에도 양지바른 곳이라 그런지 꽃을 피운 길마가지나무도 많이있구요. 묘지 위 양지바른 곳에는 할미꽃도 보이구요. 남산제비꽃도 하얗게 소담스레 핀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 중식을 마치고 다시 갯골재로 올라섰구요. 삼준산으로 향합니다. 돌아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가곡리는 좌측에 위치하는데 잘못 생각하면 장요리로 가는 길인 줄 알고 들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정표식입니다. 바로 위 편에 삼준산 정상이 있군요. 연암산과 삼준산은 동서남북으로 막힘 없이 시원한 조망을 산객에서 아낌없이 보여주는 멋진 산입니다.
정상석에 삼준산 압휘봉(壓輝峰)이라고 적혀있군요. 주변을 압도할 만한 밝은 빛을 발현하는 그런 산이란 뜻인가.... 거침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을 동서남북으로 빙둘러 살펴보면서 여행자에게 아낌없이 펼쳐주는 아름다움을 느껴보게 되니 괜스리 벅찬 감동에 울컥해집니다. 나만 그런가.... 이렇게 삼준산과 연암산의 첫 느낌이 나는 좋았습니다. 두 산 모두 내 친한 연인으로 만들고 싶어집니다. (▲ 좌측 저수지는 대사리에 있는 대사저수지이고 옆의 뾰족한 산은 봉화산(228m)입니다) 이제 조망을 끝내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오늘 스틱 아니 갖고 온 댓가 많이 치룹니다. 아주 하산하기가 불편하군요. 왜 이리 미끄러운지.... 이제 숲에서 벗어나 임도로 내리섰습니다. 임도를 따라 거닐어 내려가다 보니 우측으로 화계사입구란 입석이 보이는군요 내려가면서 음매애~음매애~ 울어대는 흰 염소를 두 마리나 만났지요. 한 마리는 뿔이 달렸구요. 또 한 마리는 뿔은 없는데 긴 수염을 달았군요. 누가 어른인지... 이제 오늘의 산행 날머리 장요리 임도입구로 원점회귀를 합니다. 시각은 15시10분입니다. 오늘 연암산과 삼준산의 산행은 짧은 시간이였지만 아주 인상 깊었었던 산길이였습니다. 경허스님이 머물었었던 천장사에서 내 자신을 되짚어보는 짧은 답사시간이 있었구요. 봉우리마다 펼쳐지는 조망에서 감탄을 했습니다. 능선 곳곳에서 이여 지는 나무꽃과 풀꽃들의 봄 인사와 더불어 들꽃공부도 많이 한 흥겨운 봄날의 아쉬운 시간들이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산길을 거닐며 즐거운 시간, 흥겨운 시간을 만들어 주신 shinjong님, 야촌님, 서니님, 단아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연암산에서 삼준산을 거닐며 스쳐 지났던 여러 식생의 인연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출처: 청랑(淸浪) 원문보기 글쓴이: 淸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