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굴업도
‘서해의 독도’라 불리는 굴업도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화산섬이다. 당시의 화산 폭발과 지진 활동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오랜 세월 바닷물이 깎고 녹여 빚어낸 침식 지형은 가히 국보급이다. 독특한 지형은 굴업도만의 특이한 기후 현상을 일으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식생 환경을 만들어내고, 변화무쌍한 침식 지형과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구에 다양한 곤충과 양서·파충류가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1년 반 동안 굴업도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다양한 생물상까지 조사해 온 이상영 지리학 박사의 도움을 받아 이번 특집을 마련했다. 굴업도의 동식물상은 서해 가까운 섬 환경과 비슷한 점도 있겠으나 땅의 생성 역사, 지형 및 기후 환경의 특이성과 함께 그 안에 살아가는 동식물을 이해해 보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글․사진 이상영 관동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sylee7179@hanmail.net
탐사팀 박희선 차장, 이주희, 손상봉 기자
굴업도 가이드
인천에서 뱃길로 두 시간, 숨어 있는 보석 섬
한때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을 둘러싸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굴업도는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경기만 남쪽에 떠 있다. 인천항에서 덕적도까지 뱃길로 1시간 10분, 덕적도에서 다시 뱃길로 짧게는 30분 걸린다. ‘짧게는’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은 덕적도 주변 섬 지역을 도는 여객선이 물때에 따라 항로를 수시로 바꾸기 때문이다. 덕적도를 출발해 굴업도로 곧장 닿으면 30분, 다른 섬을 다 돌고 마지막에 들르면 2시간 30분이나 걸린다. 섬은 전체적으로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여러 가닥으로 두터운 산지형 다리를 뻗고 심장부로는 반달형 해안선들이 오목하게 파고든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좌우가 다 뚫린 채 잘록하게 뻗어 있는 멋진 모래 해변도 있지만 섬 전체를 구석구석 돌아보자면 발품을 꽤 팔아야 한다. 하지만 섬에서 제일 높은 산이 해발 120여 미터밖에 되지 않고, 험해 보이는 바위지대도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미끄럽지 않으니 걷기는 제법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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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의 지형과 지질
화산과 지진,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비경
화산 폭발 및 지진 흔적이 곳곳에
크고 작은 섬들이 연이어진 경기만 서쪽 바다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굴업도는 거대한 공룡들과 날아다니는 파충류인 익룡이 번성했던 중생대 백악기(1억3천600만 년~7천100만 년 전)에 화산 폭발로 만들어졌다. 지질은 화산 폭발 때 터져 나온 암석과 화산재가 쌓여 응고된 응회암 등이 주를 이룬다. 화산 폭발 때 터져 나와 화산재 속에 갇혀 있는 암석들을 ‘포획암’이라고 한다. 화강암, 편마암, 응결응회암, 유문암, 적색 세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응회암은 시멘트와 모래, 자갈 등이 잘 섞여 굳은 콘크리트 구조물 같다. 이처럼 다양한 암석으로 구성된 굴업도는 지하수 물맛이 특히 좋다.
지형은 여러 갈래로 뿌리를 내렸으며, 그 모양이 마치 사람이 엎드린 모습 같다고 해서 굴업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화산이 폭발했던 분화구가 섬 주변 가까운 바다에 있어 반원 모양 지형이 곳곳에 있다. 굴업도가 생기고 난 뒤에도 화산 폭발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섬 전체 해안을 둘러 나 있는 다양한 퇴적층 흔적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강력한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틈에 화성암이 들어와 가래떡 같이 된 암맥도 섬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띈다. 여객선이 닿는 선착장 앞 바다에는 높이가 100미터쯤 되는 수직 절벽 단층이 있어 이 부근에서 화산과 지진 활동이 제일 강도 높게 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현생지질시대에 강력한 지진 활동이 일어난 활성단층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굴업도 주변 바다가 유난히 깊은 것도 그토록 왕성했던 화산 지진 활동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굴업도는 한반도 서남해안 섬들 중에서도 유독 독특하고 차별화된 해안 침식지형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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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기미 해수욕장과 연육사구
굴업도 동섬과 서섬을 연결하는 모래사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연육 사빈’이다. 사빈 곳곳에 모래가 많이 쌓인 사구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지금도 해안 지형이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어 살아 움직이는 해안지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덕물산에 오르며 내려다본 목기미 연육사빈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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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의 기후와 식생
날씨 마법사가 독특한 식생 환경을 만든다
서남해안에서 가장 깊은 바다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갈 때 여객선은 문갑도를 지나며 바로 정면에 있는 굴업도로 직진하지 못하고 덕적도와 선미도가 있는 오른쪽으로 빙 돌아간다. 덕적도와 문갑도 사이 바다 깊이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걸어 다녀도 될 정도인 수심 30센티미터에서 1미터 안팎인 곳이 많아 직선으로 가면 풀등이라고 불리는 모래밭에 파묻혀 꼼짝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맞닿은 서해의 평균 수심은 42.5미터로 동해에 비해 매우 얕으며, 인천에서 덕적도까지 뱃길 구간 깊이도 1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인천 앞바다인 경기만은 수심이 얕아 풀등이 많고, 밀물과 썰물의 높이 차이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 이 또한 바다 깊이가 얕기 때문에 달의 인력이 크게 작용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굴업도 주변은 선착장 앞 바다가 수심 100미터에 달할 만큼 대단히 깊다. 한반도 서남해에서 가장 깊은 지역이다. 과거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강력한 화산 지진 활동이 일어나 커다란 분화구가 생기고 지층이 갈라져 100미터나 되는 수직 절벽 단층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렇게 깊은 바다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곳은 밀물과 썰물의 흐름과 계절에 따라 바닷물 흐름이 바뀌는 ‘바다 속의 강’이 되었다. 즉, 굴업도는 깊은 ‘바다 호수’ 가운데 우뚝 선 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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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보리사초 대극종류
원추리
굴업도의 동물상
섬에 고립되어 적응한 동물, 섬을 찾는 동물
먹구렁이
멸종위기 먹구렁이가 사는 섬
빙하기 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하나의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빙하기가 끝난 1만 년 전부터 기온이 오르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서로 다른 땅 덩어리로 나뉘었다. 그 후 약 2천 년이 지나 해수면이 안정되어 지금의 해안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굴업도가 생성된 백악기 이후부터 최종 빙하기까지는 서해가 육지였고,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 사는 동식물이 같거나 서로 교류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빙하기가 지나 해수면이 서서히 높아지면서 산봉우리만 둥실 남아 섬이 되었고, 동물들도 살겠다고 높은 곳으로 피하다 보니 결국 섬에 고립되었을 것이다. 덩치가 크고 빠른 동물들은 더 안전한 육지로 피난 가고, 작고 느린 녀석들은 덕적도 같은 가깝고 큰 섬으로 이사 갔다. 결국 굴업도에 남은 동물은 곤충, 파충류, 양서류이며, 젖먹이동물은 최근 주민들이 들여온 가축과 집쥐뿐이다. 그 중에서도 굴업도의 진정한 주인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동물 Ⅰ급인 먹구렁이다. 참을성 많고 독이 없는 느림보 먹구렁이는 화산섬 바위틈이 살기에 안성맞춤이었는지 지금까지 굴업도를 지키고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풍부한 산소와 다습한 환경은 동식물들이 거대한 크기로 자라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여름철 해안가 사구와 풀밭을 지나다 보면 참새 떼가 날아오르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커다란 메뚜기들이 날아오른다. 풀무치, 콩중이와 체형과 모양은 같으나 몸길이가 12~14센티미터로 육지에 사는 녀석들보다 크고 얼굴색이 다르다. 그 부피감이 마치 굴업도가 탄생한 백악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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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이 기르는 개 봉달이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애벌레) 명주잠자리
굴업도의 당나귀 한쌍
굴업도 탐사 후기
탐사 1년 반, 섬 전체가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굴업도를 꾸준히 탐사해 온 지 1년 6개월이 되었고, 탐사일 만도 100일이 훌쩍 넘었다. 1990년대 초, 굴업도를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선정하기 전에 정밀한 지형‧지질 조사가 있었고, 환경부에서도 매년 다양한 자연환경조사와 특정도서 및 무인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특이한 지형은 모두 조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굴업도에 도착하자 신세계를 보는 듯했던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 먼저 해식와의 형성단계가 교과서처럼 나타난 연평산과 토끼섬의 해식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기후지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식 지형으로써 굴업도의 특이 기후에 의한 염풍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 달 뒤 다시 탐사해 지형학회에 학술 논문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심의 및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후 굴업도 해안지형을 본격적으로 탐사한 결과, 이곳에서 파식과 염풍화에 의한 해안 침식이 유난히 강하게 나타나는 원인이 바다 속 지형과 바닷물 깊이에 따른 기후 변화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해식지형 침식 기상인자의 정량적 측정을 위해 자동기상관측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한 곳에 공존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특이 식생군락 다섯 곳에서 자동기상관측을 실시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굴업도의 지형과 해상·기상 기후, 자연생태 환경, 그리고 이곳에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학술적으로 소중한 유물이다. 그러니 굴업도는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며, 특히 굴업도의 기후환경은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온난화 영향에 대응하는 시험연구학습장으로서도 안성맞춤이다.
첫댓글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주위환경이 너무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