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詩하늘』시 낭송회는 평사리문학 대상을 받고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를 상재하신 대구의 이해리 시인과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시집 『신발론』을 상재하신 서울의 마경덕 시인을 함께 모시고 가을밤을 시의 열정 속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이해리 시인의 시에는 삶에 대한 서사가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날카롭게 현실을 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문학의 본질적 의미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김용락 시인)
이해리 시인은 감수성과 언어감각이 첨예하며, 삶의 깊이를 꿰뚫어 보는 개성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시인이다. 사물이나 세계, 주어진 삶에 대한 나름의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풀이하며 끌어안는 자유분방한 감수성과 개성적 상상력이 돋보인다.(이태수 시인)
마경덕의 시 곳곳에는 따뜻한 인간의 체취가 배어 있다. 사물, 공간, 자연, 이웃, 가족 등등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자상한 관심을 통하여 시인은 세계와 자아의 합일을 향한 동일성의 시정신을 구현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전형적인 서정시의 품격을 잘 갖추고 있어서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그의 시어는 굴절과 왜곡을 지향하는 실험의 언어가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융합을 추구하는 서정의 언어이다. 개성 있는 시선을 통하여 세계 안에 내재한 시적 순간과 상황을 읽어낸다.(김종태 시인)
라고 평을 받고 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모쪼록 귀한 시간 내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고, 아울러 시인들과 즐거운 담소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 일시: 10월 20일(금) 오후 7시 30분
- 장소: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 빌딩 지하 1층 카페 ■스타지오■
- 회비: 10,000원 (식사와 음료, ■시하늘■책자 제공)
- 주차: 3시간 무료
詩하늘 운영위원 일동 올림.
*시인 약력
* 이해리 시인
-대구 출생
-2003년 평사리문학 대상
-2005년 시집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5년 시집 『신발론』
*시편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이슬의 눈 속에
-이해리
여름 아침
토란잎이 가만히 받쳐들고 있는
이슬을 보아라 간밤에 분명
누군가가 울고 간 흔적이 있다
얼마나 투명하고 깊은 슬픔이
몰래 밤길 다녀 간 것일까
바람이 일렁이면
초록 손바닥 펴드는 토란잎 위에서
깨어질 듯 방울방울 빛나는 눈물
산도 하늘도 새소리도 그 속으로 들어가
한 방울 보석되어 고요하다
함부로 울 수 없는 세상
몰래 울고 난 자국 저렇듯 영롱할 수 있다면
나도 한 방울
찬란한 슬픔이 되고 싶다
비, 토끼풀꽃
-이해리
빗소리 자박자박
야산 기슭으로 진군해 온다 유월의 빗소리엔
하얗게 눈뜨고 죽은 군화소리가 들어있어
붉은꽃 발가락마다 축축한 무덤 하나씩 동여매고
내게로 건너오는 빗소리
빗방울 흐드러진 산야에 수많은 토끼풀꽃 피워낸다
토끼풀꽃 가만 보면 누군가의 눈물 맺힌 뼈 같애
조그만 주먹밥 방울방울 흩어놓고
땅 속에서 솟아오른 어린 병사의 유서 같애
그 겨울 백두산까지 끌려간 소년병 아버지
부상의 아픈 눈썹뼈 자국
늬 아부지 겁이 많아서 바람 속 수선화처럼 떨었단다
말도 마라 말도 마라 총알은 함박눈으로 쏟아지지 거대한 괴물처럼
어둠은 덮쳐오지 꽝꽝 언 참호를 야전 삽 하나로
소리 안내고 파라는 명령
꽃피는 마을로 돌아가 얼른 죽음을 벗고 싶은
이름들 이 산하의 토끼풀만큼 쓰러져 갔어.......
뭐라고 웅얼웅얼 못 다한 말하고 있어
아무리 들으려해도 그 마지막 소리
빗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네
우우 세계로 뻗어 가는 붉은 물소리 들릴 뿐
토끼풀꽃 딛고 헝클어진 서해해전 소식 들릴 뿐
나무의 길
-이해리
참나무는 밑동이
하늘을 향하도록 해서 태운다
나무의 길대로 태워야 좋은 숯이 되는데
나무의 길은 하늘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 쪽으로 나 있다는 것이다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있는 동안 나무는
순순히 갈 수 잇는 길 혹은 가고 싶은 길
땅 속에 꼭꼭 숨겨두고
길 아닌 길을 무성하게 피워 올린 셈이다
무언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반대의 길을 강요받은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나뭇가지와 잎과 열매들은
나무의 아픔 혹은 상처가 아니었을까
가끔 누군가의 아픔이나 상처가 세상을 푸르게 한다
잎을 달고 새를 품고 구름을 우러르는 동안
뻗어나갈 듯 자꾸 막히는 캄캄한 나무의 길은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을까
아무에게도 내색 않은 갈등을 몸 속에 숨겼다가
죽어 숯가마에 들면 비로소
섭씨 6,000도의 불꽃에 활활 몸을 맡기고 엿새 밤낮을
타오르며 거꾸로 피워 올렸던 힘들고 고단했던 길을
뜨겁게 밝히는 숯나무
그리고 숯, 또 하나의 길로 완성되었을 그
순도 높은 인내
혹은 뜨거운 마감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갈 때 그렇게
뜨겁고 깨끗한 길 하나 낼 수 있을까
철새는 그리움의 힘으로 날아간다
-이해리
제 떠나왔던 도래지로 날아가려는 겨울 철새는 맹목적이다
공중에서 비행기를 만나도 피하지 않는다
한 마리 고까도요새가
비행기와 충돌했다 새의 몸은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엔진이
망가진 비행기는 허둥지둥 회항한다
조그만 새의 의지를 거대한 비행기가 꺾지 못하는 이유, 무어라
설명할까 조류학자들은 인상받기*라 명명했지만 차가운 동체에 묻힌
한 점 혈흔의 가없음으로 나는 그 맹목이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라
유추해 본다 총을 쏘고 경음기 폭음기 다 동원해도 청, 청, 청
푸른 하늘 들이받으며 날아오르던 새, 그렇지 그리움이란 것, 제
떠나왔던 물가의 물소리 바람소리 사무친 기억 같은 것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것, 지구의 반 바퀴나 되는 비행거리를
찬 날개 두 쪽과 가슴에 오므려 붙인 가느다란 두 발이 전부인
行裝으로 날아가도 서럽지 않은 것, 그 망망한 외로움을 위해
한 목숨 분쇄되는 장애물도 두려워 않는 것, 펄럭펄럭 붉은 석양이
적시는 흰 가슴 날개로 제 몸 매질하여 구 만리 장천을 후회 없이
날아가는 것, 그리움도 그쯤은 되어야 지상의 계절을 번갈을 수 있지,
한 세상 사랑해서 건너왔다 할 수 있지
* 인상받기 : 철새들은 한 곳에서 받은 인상을 잊지 못해 그 인상 받은 곳을 향해 필사적으로 비행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안전기지
-이해리
아기가 처음 일어설 때,
이 세상 첫발자국 두어 걸음 떼다간 꼭
뒤를 돌아본다네, 엄마가 지켜보는지 돌아본다네
그 때 아기가 돌아보는 엄마를 심리학에선
안전기지라고 부른다네, 안전기지란 그 어감(語感) 딱딱하지만
아기를 지켜볼 엄마의 모습은 고향집 먼 불빛 같이 뭉클해서
입 속에서 가만히 뇌어 보았다네
다가오는 막막한 세상 걸음걸이 서툴러 비틀비틀 쓰러지면
울면서 돌아갈 곳, 밤중에라도 찾아가면
코눈물 닦아 안아줄 그 곳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무장경비 튼튼한 철옹성이 아니라
바람 숭숭 등뼈 허술한 어머니 가슴이란 걸
가르치지 않아도 아기는 아는 모양이라네
그래서 다 늙어 꼬부라진 고향 어머니들 손마디 안엔
솥단지 하나씩 숨어있고
그 솥단지 안에 국과 밥 따뜻하게 묻혀 있는가
껑껑 언 얼음 깨어 머리 감고 정월대보름 찬 하늘에
치성으로 燒 紙올리며 용왕도 먹이시는가 나,
내 안전기지였던 어머니 돌아보며 첫걸음 걸어 또 한 채
안전기지 되었지만 코스모스 사잇길로 어머니 상여 나가는 날 어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으신다네, 북망산천 어둡고 막막한 길
코스모스 덤불 흔들어 영영 감추신 뒤론 어른이어도 나는
안전기지 잃어버린 고아가된다네
도꾸리蘭
-이해리
베란다 화초들 중에
가장 볼품 없는 도꾸리蘭
언제 꽃 한 번 피운 적도 없고
이파리란 것이 꼭
빗다 만 머리카락처럼 부스스한 그것에게
날마다 물뿌리개 기울여 뿌린 물은
물이 아니라 무관심이었음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른 잎 뜯어주려 손 내밀자 순식간에
쓱싹,
손가락을 베어 버린다 뭉클
치솟는 핏방울 감싸쥐고 바라보니
시퍼런 칼을 철컥,
칼집에 넣고 있었다
가방, 혹은 여자
-마경덕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는 죽은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종일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다. 틈만 나면 잔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골목이 고양이를 키운다
-마경덕
막다른 집에서 시작된 골목이 동네를 돌아다녀요. 막다른 집에서 걸어 나와 구불구불 기어간 골목의 등이 보여요. 집과 집 사이로 용케 피해 다니며 골목은 종일 고양이와 놀아요. 지붕에서 옥상으로 아찔한 난간으로 휙휙 고양이를 던지며 하루를 보내요. 즐거워라,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 골목끼리 고양이를 주고받으며 놀아요.
또 던지려나 봐요. 수채 구멍에 쥐새끼를 풀고 수백 톤의 어둠을 골목에 부려요. 냉장고 음식을 봉투에 싸서 집 앞에 내놓아요. 봉투를 찢고 악취를 끄집어내고 죽은 쥐를 뒤꼍에 던져요. 불안한 눈 의심 많은 귀를 못된 고양이 얼굴에 달고 있어요. 벽을 디밀고 뛰어 넘어! 골목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아. 으름장도 쳐요. 막다른 집 골목이 벽을 타고 올라가요. 다시 골목이 시작돼요. 휘익, 고양이가 날아와요.
빈둥빈둥 늙는 집
-마경덕
지지난 봄, 집 앞에 들어선 연립 한 동, 분양을 알리던 현수막은 바람에 시들었다. 해를 넘겨도 팔리지 않는 집. 빈방에 어둠이 살고 있다. 빛 바랜 만국기를 붙들고 집이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어둠이 야금야금 집을 뜯어먹는다. 하수구를 막고 지붕을 걷어내고 벽에 금을 긋는다. 불법 입주한 어둠은 난폭한 세입자, 뒤꼍에 모여 이 곳에 뼈를 묻자고 소곤대는 소리에 벽지가 풀썩 무너져 내렸다. 빈둥빈둥 집이 늙고 5층 꼭대기로 벽돌을 져 나르던 늙은 여자는 노임을 포기하고 떠났다. 어둠이 옥탑으로 올라간 뒤 목을 뽑고 내려다보던 건달 같은 사내도 보이지 않는다. 뒤꼍에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던 사내마저 치우고, 집은 덩그렇다. 마당에 그림자를 내려놓고 잠든 빈집. 창문은 서랍처럼 닫혀있다.
목공소에서
-마경덕
희고 매끄러운 널빤지에 나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나무는 제 몸에 지도를 그려 넣고 손도장을 꾹꾹 찍어 두었다. 어떤 다짐을 속 깊이 새겨 넣은 것일까. 겹겹이 쟁여둔 지도에 옹이가 박혔다. 생전의 꿈을 탁본 해둔 나무, 빛을 향해 달려간 뿌리의 마음이 물처럼 흐른다.
퉤퉤 손바닥에 침을 뱉는 목공. 완강한 톱날에 잘려지는 등고선. 피에 젖은 지도 한 장 대팻날에 돌돌 말려 나온다. 죽은 나무의 몸이 향기롭다.
칙. 칙, 압력솥
-마경덕
추가 움직인다. 소리가 뜨겁다
달리는 기차처럼 숨이 가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추를 마구 흔든다
지금 당장 말리지 않으면
머리를 들이받고 자폭할 기세다
저 맹렬한 힘은 무엇인가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신음이 고여 있는가
슬픔이 몸을 찢고 나온다
소리가 집 한 채를 끌고 달린다
밤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한 여자처럼
속이 탄다. 부글부글.
얼굴
-마경덕
심벌이 불거진 근육질 남자, 브래지어 팬티 한 장 걸친 미끈한 여자, 버젓이 대로변에 서있는 목 잘린 속옷가게 마네킹들
죄짓고 싶었네. 뻔뻔하고 싶었네. 많은 사람에게 면목 없고 싶었네
저런, 쳐죽일, 배터지게 욕먹고 싶었네
목 위에 얼굴만 달리지 않았다면
기왕이면 여러 개의 목을 갖고 싶었네 꽁꽁 머리통 숨겨두고
일회용 목으로 바꿔 달고 싶었네. 재빠른 자라목이 되고 싶었네
왜 목은 하나일까
건드리면 부러지는, 한심한
목 위엔 얼굴이 있고 얼굴에는 마경덕이라는 이름이 있네
걸핏 짐승발톱이 돋네. 제발 나이값 좀 하라고 엄마는 말하네
첫댓글 팔방미인 마경덕시인은 이년전에 몇번 뵙고는 그 후로 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좀 부지런하면야 차라도 한잔 할 수 있으련만 게으름을 빙자하는 안일함이란 세월의 간격을 한참 건너뛰게 합니다. 하마 잘하면 가서 만날 수 있을까 일정이 좋기만을 바래봅니다.
진란 님~ 그 날 별일 없을거예요. ^^ 보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많아서요.*^^*
일정이 좋기를 기원해야겠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니, 낭송회날 오시리라 믿어요. *^^*
두 분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자유로운 상상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짝짝~!!!
오늘은 시 낭송회 날입니다. 즐거운 만남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차표가 매진이라네요. 터미널에 갔다가 아쉬운 발걸음 돌렸습니다.
그랬군요,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좋은 가늘 되세요~
120회 시하늘 낭송회 무사히 마쳤습니다 시하늘 운영위원 여러분과 참석하여 축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고맙습니다. 만나 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시를 사랑하시는 시하늘 여러분, 사랑합니다^^ - 마경덕-
만나 뵈어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주신 시집도 고맙습니다. 늘 좋은 가을날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