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잠이 오지 않아 추억을 더듬어 봅니다.
갑자기 첫사랑이 떠올려 지네요.
같은 B형끼리는 진짜 천생연분인가?
내 첫사랑과 나는 정말로 환상 궁합이었슴당
욕하든가 말든가~~~~~~,
우린 겉 궁합은 물론 속 궁합도 환상이었띠영*^^*
만나고 헤어지자 마자 금새 또 보고 싶궁,
서로 목소리가 그리워 전화 하다 보니
한참 동안 통화중 걸려서 신경질 벅벅 거리다가
서로 나중 사실 알고는 깔갈 거리궁~~~~~~.
우리들의 만남은 진짜 골 때렸습니당 .
제가 미국서 나온 지 얼마 안되었을 적 일 입니다.
마냥 놀구 있기 모해서 알바를 시작 했는디요.
당시, 부평 시계로타리에 현대 롤러장이라고 있었네요.
거기하궁 대한극장 앞, 궁전 다방에 DJ로 용돈 벌이 시작 했띠요.
음악 다방 보수야 벌거 없었지만,
롤러장 보수는 제법 짭짤 했어용. 거의 나이트 DJ페이 수준~~~~~~.
렙 멘트 욜띰히 하면서리, 욜라게 음악 뛰우는데,
스테이지 앞에서 왠 지지배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 보데요?
갑자기 기분 더럽 드만요. 그래서 나가 일침을 가했지요.
"거기 얼굴 반지르르한 아가씨! 롤러 탈줄 모르면 앞에서 헤매지 마시궁
저기 구석탱이에서 쭈구리고 벌서고 계세영. 아니면 신발 벗고
나 음악 끝날때 까정 기둘리시던가. 대신 나 밥사주는거 잊으면
엉덩이에 꼬추장 발라서 구워 묵는당"
어느 새 사라 졌더군요.
"흐흐흐~~~지지배 까불고 있엉. 듀글라궁~~~~~~."
제 시간 끝나고 막 나갈려구 하는데,
영업 부장이 날 부르더만요.
자기친구 동생인데 놀러 왔다고, 30분만 놀다가 가주래네요.
"아~~씨. 나 롤러 못타는데, 걍 갈래요."
장사 수단이라는 말에 체면 불구 신발 신었슴다.
"이런 나쁜 지지배!"
그 새 대여실 알바에게 나 롤러 못타는거 알고는 일부러 날 지목 한거 있지여?
상상에 맡기겄습니다.
마치 펭귄처럼 뒤뚱뒤뚱 거리는 내 모습에
그날 왔던 모든 뇨자들이 배꼽 잡고 웃었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마치 걸음마 하는 송아지 새끼 처럼~~~~~~.
내 쪽팔림은 그 지지배의 손에 이끌려서리
중앙 기둥과 딥키스를 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당.
영업부장이 놀래서리 휴지 들고 쫓아 오데요?
알고 봤더니 내코에서 코피가 나오드만영~~~ㅠ..ㅠ;
"두고봐라. 나가 이 달 채우공 여기 뜬당 ㅠ..ㅠ;"
하루는, 궁전에서 음악 보고 있었을때입니다.
알바가 왠 오렌지 쥬스를 가지고 음악실로 와서리 내게 건네주더구만요.
"이거 왠거니?"
"오빠 저기 앞에 아가씨가 갖다 주라는데요?
오빠 저 아가씨하고 몬일 있었지요? 코피 쏟은 데는
오렌지 쥬스가 최고라고 하면 알꺼라고 하던데?"
"헉, 저 웬수가 어케 여기 까정 알고 왔을까?"
저 그 날 진땀 뺐습니다.
주방 누이로 시작해서리 심지어는 주인 아줌씨 까정
야시시한 눈으로 보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지영.
오줌은 마려운데 화장실 갈라 치면, 옆으로 슥 지나치면서리
식구들이 던지는 한 말.
"밤 새 운동 했나 보넹? 코피까정 흘리공~~~~~~."
3시간 동안의 음악 시간이 마치 3박4일 처럼 느껴진때는
그때가 제 일생 처음이었슴당.
버스 정류장 앞에 서있는데,
"아저씨! 약속지킬께요. 따라 오세요."
"아니, 이지지배가 두번 골탕 먹였으면 되었징
또 몬 술수를 쓸려구 이러시나~~~"아무튼지 따라 갔습니다.
안따라 가면 또 후환이 두려워서리~~~~~~.
당시, 부평극장 쪽에 보면, 도이치랜드라는 경양식집이 있었지요.
"오모나! 최소한 돈까스가 나를 반기겠군."
흥분을 감추지 못하궁 그새 당한 일은 까마득 하게 잊어 버렸습니당.
그녀는 비프스테이크. 난 돈까스 곱배기.
체면이 어디있어영? 모라 생각하든지 무조건 곱배기로 달라구 했지용.
내꼬 다먹궁 그녀음식도 나가 절반 뱃속으로 집어 넣었지용.
"흐흐흐~~다 용서 하마! 나 배부르니께~~~ㅋㅋㅋ"
이런 내 속 뜻을 그녀가 알든 모르든 정말 맛있었띠요.
자기 대신 나 보고 음악좀 신청 해달라고 합니다.
그녀의 신청곡은,
"사랑의 듀엣 : 꽃과 어린왕자"
음식은 맛있었는데, 그 음악이 후진 도이치 랜드에 있을리가 없지요.
음악이 없다는 DJ의 말에 몹시 서운해 하더라구영.
"음 이지지배가 이 노래를 몹시 듣고 싶은가 보넹?"
난 그녀에게 물었지요.
"아가씨 이 노래 내가 듣게 해줄까요?"
"정말이요?"
"아가씨가 나 밥 사줬으니까 제가 술은 못해도 이 음악 만은
꼭 내 손으로 들려 드릴께요. 이 음악 들을라면, 주점 가야해요."
우리는 부평극장 건너 편 '왕 학사주점'으로 갔습니다.
후배가 그 곳에서 음악 보던 터라, 스페샬 타임으로
30분짜리 음악 타임을 가졌습니다.
저 음악 보는동안 내내 그녀의 눈빛은 빛났습니다.
그 눈빛을 대하면서 내 맘이 왜 이리도 쿵당쿵당 뛰는지~~~~~~.
집으로 돌아와서리 잠 한숨도 못 잤습니다.
"에이~~~지지배 내 맘을 훔쳐 가버렸네?"
그 후로, 우리는 일주일에 최소 세번씩은 만났습니다.
주로 제가 음악 보는 곳에 그녀가 나타나는 것으로,
만나다 보니 거의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요.
만난지 3개월 만에,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아 봤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집이 의정부 였다는 사실도 알았고요.
인천에는 학교 때문에 자취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나는 내가 봐도 내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대요.
짧은 시간이지만, 4년 동안의 미국 생활과
돌아 온 후의, 한국 생활이 이렇게도 180도로
바뀔수가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랬습니다.
미국서의 그 자유 뷴방?했던 삶이
어떻게 이렇게 쑥맥과 같은 삶으로 바뀔수가 있었던지,
결론은 한가지에 봉착 되어집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았다는것.
아무리 한국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보편화 된 보수적인 잔재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녀의 손을 떨리는 맘으로 눈치보면서 넌지시 잡으니까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이제야 손을 잡아 주는거야?"
순간, 온 몸에 전기가 찌르르 오는게 손에서 땀이 다 나더군요.
처음이 힘든 법.
그 녀의 말에 힘입어 그날 첫 키스 까정 성공 했다는거 아닙니까?
그 다음은 상상들 하세요.
누가 먼저랄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내가 있는 동안은,
세상의 그 누구도 감히 근접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 만큼 우리의 성벽은 아주 견고했고,
같이 쳐 놓은 울타리는 우리 둘 말고는 그 누구도
들어 올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영원 한것은 없는 법 .
철벽일것만 같았던 우리의 사랑은,
제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입관식날.
전 너무도 슬픈 나머지 잠깐 실신 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도 제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오빠가 이러고 있는 모습 보면서
지금 몹시 슬퍼 하고 있어. 이제는 제발 놓아 드려.
오빠가 계속 이러면 나 엄마 한테 혼나. 알았지?"
그녀의 말대로 나올려고 하는 눈물도 더 이상 안흘릴려고
틀어 막았습니다.
저의 방황이 길어질까봐 그녀는 한 동안 제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녀의 밥상을 받고,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들어 오시네요.
안그래도 그녀는 일주일만 같이 내곁에 있어줄 맘이었는데
그녀의 친구 덕에? 마지막 저녁 식사가
영원한 마지막 저녁 식사로 끝날줄은 몰랐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끌려 간지 5일째 되던 날.
그녀의 아버님의 호출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내가 떠나 온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군요.
더 이상의 연락은 물론, 만남을 허락 할수 없다는 아버님의 말이
제 가슴을 찢고,후비고 마침내는
제 마음의 호수에 큰 소용돌이를 만들어 놓고 일어섭니다.
제가 지금도 안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북어국은 안먹습니다.
그녀가 끌려가던날.
우리의 마지막 밥상에는,
그녀가 손수 끓여준 북어국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거든요.
그 국을 한 수저 뜨던 순간,
저는 어머니를 잃은 것도 모자라 내 첫 사랑도
잃어 버렸다는 사실을 직감 하게 되었답니다.
지금도 식당 같은데서 북어국을 대할때면,
먹지는 않아도 첫사랑의 그 님을 떠 올립니다.
사랑의 듀엣의 노래를 일부러 틀어 놓고 그 님을 떠 올립니다.
지금은 어엿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서,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 님도 가끔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주리라는 희망은 안합니다.
그렇다고 서운 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내곁에 있어줘서 고마웠던 그 님이면 족합니다.
내 어머니가 너무도 이뻐라 하셨던 그 님이었기에
내 어머니의 길일만 되면 매년 항상 그립습니다.
내 생명도 구해줬던 그 님입니다.
제가 정말 어려운 상황에 접했을때,
소위 부도라는 불명예를 얻어 맞았을때,
자살이라는 소동을 피운 적도 있었습니다.
제 가족과 집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생명을 구해준 사람 또한 그 님입니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말 합니다.
"오빠! 이러지마.
엄마도 그렇지만, 나도 오빠 이러는 모습 싫어.
다시 우리 시작하자. 내가 오빠 응원 하잖아."
깨어나 보니 삼일 만에 제가 눈을 뜬거라네요.
내 첫사랑은 소중 합니다.
여 운의 첫 사랑 본문 중에서...
첫댓글 진짜 첫사랑은안이뤄지나요궁금하네
예쁜추억을 간직하고 계시군요멋진사랑 일구시고 울 주막식구들에게도 쪼금씩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흠.,...자랑이네...나도 자랑하고 싶다~~ㅎㅎㅎㅎ
나의 첫사랑은 어디서 멀 할까 지금쯤 파파 할아버지가 되어 계실거야~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