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의 배우 우리문학을 읽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우 정보석이 임노월의 소설 ‘악마의 사랑’을 읽고 있는 장면. [사진 EBS]](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unday.joins.com%2Fwp-content%2Fuploads%2Fsites%2F2%2F2015%2F11%2F14061.jpg)
낭독의 묘미를 느끼려면 스스로 소리 내어 글을 읽어보아야만 할까.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고전이나 책을 읽어준다면 이 역시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런 즐거움을 선사하는 ‘낭독 콘텐트’는 어느덧 두꺼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단명하리라 예상했던 낭독 라디오 방송이 장수하는가 하면, 스마트폰 기반의 개인방송인 팟캐스트에도 책이나 낭독 콘텐트가 인기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EBS FM 라디오는 2012년 3월 무모한 시도를 시작한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를 표방하고 편성의 대부분을 낭독과 관련한 프로그램으로 채운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라니. 당시만 해도 ‘청취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EBS라서 가능한 시도’라는 혹평과 함께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로부터 3년8개월이 지난 지금, 우려는 기우가 됐고 전망은 엇나갔다. EBS는 오히려 지난해 가을 개편을 통해 보다 다양한 장르의 낭독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책 중에서도 라디오 전달성이 뛰어난 시·동화·에세이·단편소설 등을 음악과 함께 청취할 수 있게 선택의 폭을 넓혔다. 현재 EBS FM 프로그램 중 67.3%가 낭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청취자의 반응도 꾸준하다. ‘음악이 흐르는 책방, 홍대광입니다’를 연출하고 있는 정정화 PD는 “편성 초기 청취율이 떨어졌지만 청취 반응의 즉시성과 같은 책과 라디오의 장점을 프로그램에 엮어 나감으로써 청취율도 다시 상승세로 전환됐다”며 “홈페이지나 문자 사연을 통해 콘텐트에 대한 높은 만족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 PD는 “낭독 프로그램은 단순히 방송용이라기보다 보존가치가 있는 책이나 자료를 선정해 웰 메이드 콘텐트로 제작해 공공도서관이나 일선 학교 현장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BS는 지난 7월부터 한국문학 100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를 진행 중이다. 한국 근현대 문학 중 주요 소설 100편을 낭독하는데, 박정자·강부자·송승환·예지원 등 친숙한 배우 100명이 참여했다. 오디오북 형태로 제작돼 전국 공공도서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오디오북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콘텐트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종이책과는 다른 독자적인 콘텐트로서의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은 저자와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낭독 콘텐트로써 오디오북이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가령 『1만 시간의 법칙』 『다윗과 골리앗』 등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 맬컴 글래드웰은 자신이 직접 오디오북 제작에 참여했다. 이렇게 되면 저자의 어투를 생생히 들으면서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에선 전자책을 제작하는 대부분의 업체가 TTS(Text To Speach)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다. TTS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음이 전자책의 활자를 읽어주는 기능이다. 김상훈 리디북스 홍보실장은 “처음에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눈으로 읽는 게 빠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막상 반응을 살펴보니 한번 들어보신 분들은 꾸준히 청취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재 리디북스 가입자 200만 명 중 TTS 기능을 한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은 40%를 넘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직장인 김재승(36·경기도 일산)씨는 TTS 기능을 이용해 월평균 7~8권씩 읽는다.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까지 승용차를 운전하는 출퇴근길이 지겹지 않다. 김씨는 “구매한 책이 바로 책장으로 직행해 먼지만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TTS 기능을 이용하면 운전을 하면서도 3~4일이면 소설 1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을 꾹꾹 눌러 담은 스마트폰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낭독은 중요한 콘텐트가 되고 있다. 팟캐스트에서는 영화평론가·작가·성우 등 다양한 진행자가 고전부터 소설·에세이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책 전부 또는 일부를 읽거나 해설해준다. 책을 읽은 사람은 감상을 되살릴 수 있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낭독 콘텐트의 대상은 주로 문학이다. 하지만 꼭 문학만 낭독돼야 할 이유는 없다. 뉴스나 보고서 등 실용적인 글을 읽어준다면 어떨까. 실제로 영어권에서는 낭독의 다양한 가능성에 투자하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기사를 읽어주는 뉴스 리딩 애플리케이션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사용자의 성향과 기호에 따라 뉴스를 간추리고 추천해 읽어주는 기능으로까지 진화했다.
낭독과 책 이야기 표방하는 인기 팟캐스트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진행,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일부를 낭독하는 ‘소리 나는 책’ 코너 운영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이 읽은 책 한 권을 선정, 이에 대한 낭독과 해설을 맡는 형식

명로진 작가와 개그우먼 권진영이 사기(史記), 오이디푸스왕, 안중근 평전 등 동서양 고전을 소개

성우 윤소라가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는 형식. 책 1권을 3회(회당 1시간 내외)로 나눠 낭독

출판사 창비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라디오. 문학계 현안과 다양한 책을 주제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