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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달의 이동경로☆]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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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동경로]
이서진 시집 / J.H.CLASSIC 006 / 도서출판 지혜(2016.06.1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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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동경로
이서빈
첫 이마를 숙인 밤하늘에 생채기난 달 하나가 떠있다. 고원의 순례자들은 출발할 때 이마에 달 하나를 챙겨간다. 그 밝기로 험로를 오체투지로 간다.
이마가 땅에 닿을 때마다 신들은 따끔따끔거릴 것같다. 이마가 헐고, 조금씩 상처가 나 오래된 표시로 딱지가 앉는다. 거뭇한 이마에 굳은살로 뜬 붉은달.
티벳 여행길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순례자를 만났다. 몇 달 며칠을 이마에 달띄우며 간다. 달은 언제나 찬란한 가난을 닮았다. 한동안 배고프고 또 한동안 배부르다 다시 배고픈 달. 장엄한 사육제다.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를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닥을 함께 기는 그림자 푸른밤. 살 다 내리고 채우기를 몇 번 함께 기는 그림자의 눈이 푸른밤. 지순한 보름달에 세상이 환하다. 지나가던 차를 멈추고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푸르스름한 지폐 몇 장을 보시한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또 넘으면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마지막 사원 앞에 가서야 남루한 달 하나가 뜬다.
거뭇한 이마를 밝힐 평생의 달 하나 얻는다.
오리시계
이서빈
겨울오리가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저녁이면 다시 걸어나온다
연못으로 들어간 발자국과 나간 발자국으로 눈은 녹는다. 시침으로 웅덩이가 닫히고, 방수까지 되는 시간들
오리는 손목이 없는 대신 뭉툭한 부리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 무심한 時報를 알린다. 시침과 분침이 걸어나간 연못은 점점 얼어간다
여름 지나 가을 가는 사이 흰날짜 표지 건널목처럼 가지런하다
시계안엔 날짜없고 시간만 있다
반복하는 시차만 있다
오리 날아간 날짜들, 어느 달은 28마리, 어느 달은 31마리
가끔 붉거나 푸른 자국도 있다
모두 암호로 날아가고
무게가 덜 찬 몇 마리만 얼어있는 웅덩이를 보면
손목시계보다 벗어놓고간 시계가 더 많을 것같다
결빙된 시간을 깨면
수 세기 전 물 속에 스며있던 오차들이
꽥꽥거리며 걸어 나올 것같다
웅크렸던 깃털을 털고
꽁꽁 얼다 풀리다 할 것같다
오늘밤 웅덩이는 캄캄하고
수억 광년 연대기를 기록한 저 별빛들이 가득 들어있는 하늘은
누군가 잃어버린 야광 시계다
소금사막길
이서빈
낙타들, 지루한 행렬로 소금사막 건넌다
낙타몸엔 경적이 흘러나오지않는다
무릎꿇어 소릴 내거나 기다릴 뿐
스스로 창을 닫은 긴 눈썹과
발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
푸른바람 걸린 나뭇가지 위를 지나다보면
흰소금 쌓인 지점을 지나가게 된다
어느새 끼어든 제설차가 염화칼슘 뿌려대며 지나간다
흰사막인 듯 눈천지가 돼버린 길
가끔 낙타울음같은 경적이 끼어들어 미끄러운 길
닭들이 득실거리는 트럭 저만치 앞서가고
파란술병든빨간치마와 야자나무그늘이 느리게 지나가는 길
깊들은 순간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옛날 소금길은 좁아터져 정체되었지만
오늘 이 길은 넓어서 더 엉킨다
갓길표지도 없이
서로서로 위험 속도 내며 지나갈 뿐이다
터널을 지나 저물어가는 산 돌아가
저녁대문을 향해가는 후미등 붉은 행렬들이 흐른다
모래언덕은 속도를 잠그고 바람을 풀어놓는다
처음보는 겨울 그림자 한 폭이
길 한복판에 걸려있다
긴장한 낙타의 귀들이 허공에 펄펄 살아서 걸려있다
다 쉬테캐비르 사막, 그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 걸까
지구공소금사막길혹속에 남은 연료양은 아무도알지못한다
카츄사 오빠
이서빈
어디실까?
주말마다 미제 초컬릿을 주고 사랑방 사탕을, 여학생 잡지를, 일기장을 사주고, 미제 휘파람으로 나의 사춘기를 공갈빵처럼 부풀려놓은 하얗게 잘 생긴, 토요일 오후면 통기타를 치며 팝송을 불러 주던
주말하늘은 구름 한 알갱이 없이 푸르고, 빛들은 물비늘처럼 뛰어다니고 바람을 솜털을 날리며 춤췄네. 늦잠이 사리지고, 안 하던 청소를 하고, 돌돌 말린 하루살이양말을 치우고 뒤집어 벗어놓은 으뜸부끄럼가리개를 치웠네. 내가 게으름을 피우면 카츄샤 오빠 온다는 말로 부지런으로 길들였네. 오빠가 사온 분홍벙어리장감은 한여름에도 덥지않았네. 벙어리가 아니었네. 방긋방긋 분홍스럽게, 내 손이 물들었네. 이 다음에 너 다 크면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빨간말 들으면서 덜 큰 내가 싫었네. 비행기처럼 빨리 날아가서 크고 싶었네
친오빠는 불친절했고, 카츄샤 오빠는 친절했네. 주말은 왔고, 카츄샤는 안 왔고. 아침은 자라서 점심이 되고, 저녁이 되고, 밤중이 되고, 통금 사이렌이 지랄스럽게 울리고, 별빛이 글썽이고, 달빛은 뒤안뜰 대나무숲에서 흐느끼고, ‘목마와 숙녀’가 울고 대신 ‘밤을 잊은 그대’가 밤마다 찾아왔네
별빛도 자라고, 달빛도 자라고, ‘목마와 숙녀’도 자라 졸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도 카츄샤는 오지않았네. 벙어리 장갑 끈은 너무 짧았고, 이별의 끈은 너무 길었네
친오빠를 졸랐네, 친오빤 속 다 보이는 하얀 말만 했네. 그 토요일은 어느 먼 지구별에 홀로 손 한 번 잡지않은 그 카츄샤 오빠가 따뜻한 온돌방처럼 그립네
메밀베개와 구름베개
이서빈
어릴 적 동생은 메밀베개를 베고 나는 구름베개를 뱄다
동생은 서걱거리는 훗날에 대해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달밤에 피는 꽃말을 많이 하고 빨간눈금달린 3각자 모으는 게 취미였다
난 아찔하거나 뜬 구름잡는 꿈을 많이 꾸고 늘 젖어있는 구름을 베고잤다
구름속에서 걸어나오는 얼룩무늬에 새잠 들었다
밤마다 눌린 귀근처엔 새잠이 하얗게 쌓였다
가위눌림을 골라낸 부드러운 깃털구름과 눈썹먹 올린 속눈썹이 충돌할 때마다
동생과 나 사이에서는 놀란 새들이 날아나왔다
동생은 메밀국수를 좋아하고, 나는 부글거리는 메밀거품을 좋아했다. 동생은 아들이었고, 나는 물소리가 요란한 우렁각시였다. 동생은 사막에서 피라밋을 지키는 스핑크스 직업을 갖고 싶어했다
나의 베개속엔 솜이 아닌 흰눈이 가득 들어있다. 자고나면 녹아있는 흥건한 울음, 한여름에도 머릴 털면 흰눈이 나비나비로 쏟아졌다
밤이 어두운 건 밤마다 눈을 감기 때문이란 말 들었다. 인증이 길면 베개를 더 오래 베고 잘 수 있다는 말 들었다. 지금도 눈이 내리면 친정․ 시댁가는 두 길의 발자국을 훔쳐볼 수 있다. 동생은 처가․친가․외갓길이란 세 곳의 집합 지점을 남달리 챙기고 있어 역시 뒷꼭지에 피어있는 매화꽃도 잘 살펴보지 못했다
잠은 두 눈을 뜬 채 베개를 베고 연연하다가, 새소리와 꽃베개와 꿀잠은 서로서로 샐녘까지 기대기만 한다.
뒷모습
이서빈
거울에 비친 글귀
‘호444층4원병 양요 품명’
현대판 고려장의 또 다른 이름
사유의 경쾌함과 성찰적 지성으로
감각 세계를 탐닉하던 젊음이
아직 뚜껑을 닫지않은 관에 누워있다
멋진 환상과 흥미로운 발상법의 리얼리스틱한 문장
허리 굽혀 젊을 줍던 힘마저 다 방전되어
지금은 현실의 문제점들에 대한
사유와 성찰만이 교직되고 있다
주제와 소재마저 구분되지않는
헐렁한 문장
이상과 직관이 잘 결합된
꽃과 벌의 눈물처럼
영롱하고 부드럽던 살결문장
윤기 잘잘 흐르던 감정은 물기가 제거되고
살 다 내려 뼈만 앙상한 문장엔
가혹한 서러움만 말줄임표를 찍고 있다
젖빨던 아기가 엄마 쳐다보듯
씨익, 웃는 난해한 상형 문자
시집을 베고자다 문장을 통째 삼켜
손톱밑도 땀구멍도 혀도 입술도 모두
시가 되어 누워있는
재현 불가능한 아들과 딸은 객관적 상관물이 되고
며느리는 자신의 독특한 언어와 색채감 풍부하고
화려한 무늬들을 직조해내 일상의 평범함을
생생한 감정의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대중 친화적인 필연성을 보여준 것이다
입술을 달싹이며 며느,며느,…꼬리 잘려
토막난 말로 며느릴 부른다
가랑가랑 숨 몰아쉰다
주위가 휘고 있다
감성적 문장이 낡아 뼈까지 구멍 숭숭 뚫렸다
단어마다 바람소리 새어나온다
섣부른 변신은 금물이다
각주도 없이 해석이 불가능한 우리의 모순된 삶을
비판적 문장으로 연설하고 있다
숙성된 문체로 비린 산소를 공급하는 푸른 줄
아무리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 유리창같은
저4차원의 뒷모습 그 앞에 누가 있는 것일까
적막의 두께를 뚫고
사이렌 소리가 불경스럽게 달려온다
박제된 신전
이서빈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서
누구도 직접 볼 수 없는 머릿속 가마
간혹 쌍가마를 가진 이도 있다
가마는 머리꼭대기서 밥을 짓거나 누룽지를 만들어
가난한 영혼의 끼니를 짓는다
화기가 너무 강해 펄펄 끓어오르면
수시로 뚜껑을 열어 김을 날리고
화기를 식혀 체온 조절을 한다
열 못 식혀 손을 부르르 떠는 것은
손가락마다 가마의 부족장인 지문 하나씩을
수문장으로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그만 일에도 뚜껑을 들썩이는 인내
부글부글 끓을 때마다
무쇠도 녹이겠다며
가마위에 똬리 하나 동그랗게 틀어올리고
맑은 샘물 찰랑찰랑 길어
가마솥을 채우는 지혜 서로 사용했다
우주를 끓이고 있는 저
무쇠가마솥 하나
그렇다면 머리통은 얼마나 뜨거운 곳인가
평생 딱 한 번 불이 꺼진다는
보이지 않는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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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慧書
이서빈
물빠진 갯벌에 새발자국이 어지럽다.
물렁한 이론처럼 앞 뒤가 없다.
취약한 꽁지와 작은 구멍 속에 사는 것들에겐 섞이고 섞여 어지러운 문자가 제격일 것이다
물이 차면 풀어지는 空紙가 되는
물렁한 내용들
가장 불안한 곳에 지혜서를 꽂아두는 것같지만
한때 밟고 지나치는 곳마다 족적은
불안이 불안을 일깨울 뿐인 不立文字다.
새발자국은 세 개의 방향이고
갯지렁이는 두 개의 방향이므로, 새는 한 개의 방향을 더 숨겨놓고 있다.
납작하게 압축된 발자국들
돌에 박혀 상형문자가 되기도 한다.
문자를 읽으면 돌틈새로 새의 비명소리가 날아오른다.
계절의 순환이 여러 번 돌아오면 반지의 안쪽 두께가 얇아지고,
호미가 밭고랑 속에서 줄어들고 공원 입구 청동상의 손가락이 남몰래 가늘어지듯.
현혹의 문자이고, 어지러운 문자
지혜서를 통달한 물부리들은 문장을 냉큼 통째 삼킨다.
하나의 흔적이 여럿의 흔적을 부른다.
먹과 각이 필요없는 문자
좌표도 없이 매일 새로 쓰이고, 허물어지며 물의 허기를 채우는 문자
그러므로 읽는 사람도 없고, 읽을 수도 없다.
밀물 한 장이 펄럭, 넘어간다.
먹지
이서빈
파란눈의 귀머거리고양이 사뿐사뿐 천궁을 관찰 중이다. 흰몸에 검은줄 몇 개 얻은 사뿐한 생이다. 지난해 담장밑에 있던 나무가 올해는 담장을 넘겨다보고 있다. 분명 달없는 밤에 누군가 먹지를 대로 미리 그어놓은 궤적을 따라 자랐을 것이다.
이 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 먹줄을 튕기고, 벽이 생기고, 고양이가 새겨지고 나무들의 예상치가 높이 자랐다.
민둥산같은 눈썹을 가진 하현달 젖꼭지를 오물대며 깃털구름을 베고 잠들었다. 청둥빛별 글썽인다는 말에서 떨어진 반짝이는 빛들이 눈을 알알하게 찌르는, 그늘 몇 장 주운 바람, 덜컹거리며 먹장 하늘 길을 닫아건다.
낡은 혓바닥으로 더듬거리는 낱말이나 귀와 귀 사이로 저장되는 수천 개의 소리줄이 먹지에 음각되고있다. 한밤중 나무들을 보면 검은먹지를 따라 열심히 흔들린다. 그려진 대로 이리저리 댓잎처럼 자란 푸른먹지에서 점점이 영근 문장들이 풀씨처럼 쏟아진다.
똑같은 밤이 계속되고 있다.
나무를 더듬거나 검은줄무늬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손이 검다.
아침이면 팔랑, 종이가 날아간다.
하늘 세탁소
이서빈
먹구름․ 흰구름 분리해 세칵기에 담고
달빛과 별빛 한 스푼 넣고 전원 누르면
물고기는 드럼을 돈다.
버튼은 모든 금기 사항 뒤 끝에 있다.
구름들은 쭈글쭈글하거나 녹아버릴 수 있어 조심한다.
소나기 쏟아지는 탈수를 사람들은 비내린다고 한다.
그때 비린내나는 건 물고기 때문
가끔 욕설 분노도 한 줌씩 섞는다.
이때 회오리 일고, 번개 일고 물고기는 펄럭인다.
빗물 밍밍한 맛
가벼운 물맛
한 줄 긴 비행운에 걸리는 흰구름
할아버지와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입고 올라간
수의가 펄럭거린다.
절릴 것같은 비행운으로 흩어지는 빨랫줄.
부드러운 울샴푸로 실크빛 노을과 새털구름을 세탁하고 헹구면
아기기저귀가 뽀송뽀송 휘날린다.
노동은 여전히 손목과 목덜미와 바짓단을 더럽힌다.
침대 시트 위에 널브러진 잠
가위눌림에 걸려들어 빙빙 돌다보면
수선을 한 구름에서 구멍이 뚫린다.
폭언한 얼룩이 그대로 남는다.
무지개빨래하는 날은 하늘이 온통 파랗고도 높아
손가락으로 찌르면 쪽빛물이 주루룩 흐를 것만 같은
하늘 한 켠 먹구름자락 할머니의 목소리
‘빨래 걷어라’, 소리가 들릴 듯한 날씨다.
종소리에 달린 귀
이서빈
종소리엔 귀가 있다.
얇은 귀 두꺼운 귀 수억 년을 횡단하는
무수한 기도들이 손 모으고 있는 귀
합장한 손가락 기슭마다
간절한 염원 꽃피는 소리 붉다.
허공의 껍질을 뚫고나오는 비명은
파란촉을 틔운다.
종소리엔 신들의 웃자란 말이 있다.
‘천기 하강하고, 지기 상승하고’
죄없는 세상을 만든다.
이어폰의 푸른이끼 낀 귀에서 곰팡내가 난다.
날선 말과 습기찬 말로
비극적 신화가 울릴 때마다
새 한 마리씩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튀어나온다.
흩어지기 위해 흘러가는
양떼구름처럼 종을 치는 일은
공중을 푸르게 하는 일이다.
방울뱀의 방울소리도 세상에 그 어떤 소리도
종소리만큼 귀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아침 종은 새빛을 쏟아내고
저녁 종은 긴 그림자를 삼킨다.
귀씻는 소리,
한 귀로 흘리며 귀를 틀어막아
중이염을 앓는 귀가 너무 아프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이서빈
전철안 앞자리 서너 살쯤 된 아기가 한 손에 딱지를 들고 밤벌레 같은 손가락으로 꼬물꼬물 코딱지를 후비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풋내기시절 오빠와 남동생이 딱지를 다 잃고 오면 내가 나서서 다시 따왔다. 딱지에 별이 많을수록 계급이 높은 동그란 별딱지는 수백 장씩 따서 5성 장군이라도 된 양 까만봉지에 담아들고 오면 할머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 한다며 혀를 찼다. 몰래 의자를 갖다놓고 천장을 칼로 죽 긋고 그 속에다 딱지를 감춰놓고 자면, 밤새도록 별빛이 우수수 쏟아져 꿈을 밝히던 시절.
내 속내를 읽었는지 나를 쳐다보는 아기눈망울에 별빛이 총총하다. 대낮에 별구경하다 내릴 역을 놓쳤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딱지는 하나에 몇억이 왔다갔다라고, 붉은딱지는 집과 자동차에 붙어 하루아침을 공중 분해시키기도 한다. 그놈의 딱지는 사람을 억,억,피토하게 하고 공중을 날게도 한다.
딱지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 딱지 좋아하지 말라는 말, 딱지치기를 잘 못하는 오빠와 동생들은 잠잠하게 살고, 딱지치기 잘하던 나는 딱지바람이 불 때마다 볕이 기울 듯 그쪽으로 기운다. 덕분에 코딱지만 한 집에 코딱지 후비던 손가락으로 딱지치기를 하는 두 아들과 귀에 딱지가 지도록 딱지소리를 들으며 산다.
딱지라는 말을 자꾸 듣다보니, 덕지덕지란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은밀한 포식자 이빨같은 딱지….
징
이서빈
그때도 울고 있었어, 하필
귀는 그 소리들을 훔치고 있었고
까닭모를 길고 슬픈소리를 쏟아내며
눈물은 비릿한 바람에 휘었지.
울음을 뭉쳐만든 징,
살짝만 건드려도 우르르 떨어지는 천지 간
구타만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운명
징징징 퍼지는 저 시퍼런 結氣
발가벗은 소리는 페르세포네의 눈물
빛보다 빠른 속도로 흩어졌지.
사라지기 위해 태어나는 둥근소리
별귀고리가 달랑거렸지.
우주에 미아로 떠돌 저 울음 속엔
먼저 간 인류의 염원이 가득했어.
바닷속 통발이 육지로 올아오던
45억 년 전 지구엔 아무 생명도 없었어.
처음 육지로 올라와 홀로 소용돌이 친 목숨줄에
햇살 몇 그램 공기 몇 포기 물방울 몇 수를 주는
神의 보시로 소리를 기를 수 있었어.
작은 멧새 한 마리도 없는 적막한 육지
암울한 적막을 감치며 울었을 징.
저 징 우는 소리는
수십억 년 전과 지금이 하나로 겹친
不二問열리는 소리야.
물고기 화석
이서빈
꼬드득, 꼬마가 물고기꼬리를 깨문다.
어느 물고기가 오래되면
꼬리에서부터 머리까지 달달한 맛이 될 수 있을까.
달고빛나는 화석 속에 세월은 썩지 않는다.
파도가 출렁이는 돌속에서
금빛비늘 반짝이며 비린내 풍기던 물고기
회전판을 돌리면
어지럽게 헤엄치던 물고기가 뽑혀나와
아이의 손으로 옮겨간다.
해탈한 물고기는 맛이 밍밍하다.
도통, 도통 맛을 모르겠다.
비릿한 냄새도 가시도 없이 화석이 될 수 있는지
파란 지느러미와 금빛비늘, 뻐끔대던 아가미
고스란히 화석이 되었다.
저 딱딱한 몸속으로 바람불고, 햇살이 비치고
수많은 시간도 지나갔을 것.
저 어린 표정은 어느 옛날을 뽑아들고 저리 좋아할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입속에서 녹아 사라질 물고기의 지루한 연대
회전판이 몇 바퀴 돌고나면 또 어느 시대를 내놓을까.
모두 빙빙 도는 회전판에
화석으로 돌고있는 까마득한 과거가 있다.
꼬리없는 금빛화석을 들고 어린이가 뛰어간다.
와락, 어미에게 안긴다. 즐거운 화석이다.
회전판은 계속돌고.
길
이서빈
뱀 한 마리가 새를 삼키고 있다.
구불구불 새의 발가락이 사라지고 있다.
뱀의 뱃속엔 얼마나 많은 발들이 있는 것일까.
발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뱀
분실한 발자국이란 없지만
돌아보지 않은 발자국들 주워먹는
짐승들이 길에 살고
머리와 발까지 먹어치우는 일은 고행이다.
발자국들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먹어치우는 것이다.
방금 찍힌 족적을 맛있게 먹고 있는
진창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발들은 질척한 아가리 근처를 지나간 것이라고.
풀벌레들 꺼졌던 목청을 켜 꿈틀거리는 벌레울음과 풀잎처럼 날선 바람의 힘줄과 빗새가 떨어뜨린 연녹색 휘파람조각을 삼키며 꿈틀 몸을 키운다.
발자국 먹으며 따라오는
기척을 느낀 적 있었다면, 돌아보았다면
발자국은 모두 캄캄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의 발자국은
발이 없는 뱀의 뱃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꿈은 초침속에서 걸어나온다
이서빈
수없이 돌기를 계속하는 초침,
햇빛․ 달빛은 둥근모습을 가졌을 것이다.
둥근고리 체인돌로 밤낮은 이어져 계절이 되고
바퀴는 앞으로만 굴러간다.
수시로 몸을 포개는 동그라미들
초․분․시침한자리 머문 잠깐의 시간 서로가
같은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맺은 약속은 뒷걸음질 치지 않는 것
늘 내딛는 숨소리다.
시침․ 분침을 움직이는 저 초침 알고보면
할딱거리는 숨이다.
물의 뒤척임이다.
쉽없이 어딘가로 가고있는 행보다.
내 어머니를 데려간 그곳이고
초조한 찰나다.
가끔 바람을 어루만지듯
흘러간 시간을 만지고 싶을 때가 있다.
꿈을 접어 유리벽에 걸어둔다.
지친 뻐꾸기가 둥지로 드는 밤
시계추 늘어진 하품을 하며 자명종소리 속으로 들어간다.
조각으로 나눈 하루는 자정으로 되돌아오고
결국 자정 끝에 하나로 뭉쳐 떨어진
하루의 스위치를 켜고끈다.
짧고 분명한 손길이
내 손목을 꽉 잡고있다.
無
이서빈
없을 ‘無’자 하나를 벽에 걸어놓고 보면
훤한 빈곳들은 더 잘 보인다.
많고 넘치는 것들 컴퓨터 바탕화면 휴지통에
문서를 버리고 확인해보면
없을 ‘無’자 하나가 비좁게 들어앉아있다.
비우라고 있는 현혹, 정말 없다면 無자도 없을 것인데
자신은 턱 버티고 나머지만 없다 한다.
가끔 虛자로 보이기도 한다
다리가 네 개나 달려있는 ‘無’자는 다리 뻗을 곳 봐가며 방향을 정한다.
이때 쥐털소리 찍찍거리다,
다리 하나를 더 달아 허둥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망각
포근한 눈을 덮고 겨울잠을 자는 봄에 입김을 불어넣어
황무지에 무지가 돋고 검은 등걸에
삐죽삐죽 눈을 돋아나게 하는 ‘無;
분명 있으면서 없는 ‘無’
이름없음을 無名이라 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광활한 범위인가.
‘無’자 이전에 ‘有’자가 살았다는 기록은 본 적 없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구름같은 ‘無’
밤새도록 ‘無’자를 생각하다 ‘無’자에게 침식당한 밤
새벽까지만 해도 없던 아침이 환히 떠오른다.
‘無’는 돌아보면 무수히 많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
그처럼 큰말도 없지싶다.
밤이 풀려나왔다
이서빈
어디서 풀려나왔는지
애벌레 한 마리가 꾸물거린다.
필시 집안 어딘가가 풀려있을 것이다.
상형문자를 그리고 손발없는 문장으로 구불구불 기어다녔을.
자정쯤에는 애벌레가 풀어놓은 틈으로 비가 내렸다.
숲을 부풀리던 여름밤이 접힌다.
견고한 나무의 옆구리를 뚫던 싱싱한 집중력은
주름의 힘.
세상을 주름잡는 사람도
무릎과 팔꿈치, 목과 이마까지 접고 펴기를 반복하며
와이셔츠와 바지에 칼주름을 만들었다.
애벌레는 주름이 많다.
저 징그러운 주름으로 꿈틀거리고, 문을 여닫고 수축과 팽창을 하며 딱딱한 나무속을 파고든다.
전위의 촉수
오래전 할머니도 주름으로 잠을 뚫고 멀리 가셨다.
꿈틀거리는 머리맡을 두고 잠을 잤다.
잠의 껍질을 뚫고 아기를 꿈속에서 깨우는 꿈틀.
애벌레가 밤새 풀어놓은 통로를 못 찾겠다.
주름을 잡느라 평생을 바친 감침질에도 어딘가 풀린 곳이있어 그곳으로 전기세가 새고, 수도세가 새고, 자동차 기름이 새고, 끝내 마음까지 새고야 말 저, 쭈글쭈글한 주름.
우리가 모르는 무량한 틈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꿈틀.
쉬와, 쉬와, 쉬
이서빈
할미가 손주바지를 내리고 쉬-하자, 쉬라는 말줄기따라 따듯한 김 모락모락 나는 쉬가 포물선을 그린다.
먹다남은 생선토막에 쉬 한 타래 슬어놓고는 휘 날아가 하얗게 쉬어버린, 쉰내나는 할미 머리카락 위에 앉는 파리아가씨 한 마리.
손주는 검지손가락 입술 위에 새로다지로 세우며 쉬쉬-한다. 할미도 덩달아서 검지손가락 입술에다 갔다대며 쉬쉬-한다. 꼬마는 까치발을 세우며 살금살금 다가가서 팍, 순간 파리아가씨는 쉬-날아가고, 손주는 쉬 파릴 못 잡아 쉬할미를 빤히 쳐다보며 곰스럽게 꽁꽁거리며 못내못내 아쉬워한다.
쉬할 수 없는 일은 쉬이 쉬이빠져 쉰내가 난다.
쉬할미가 쉬를 보러가면 쉬할미를 따라가 쉬-오줌을 뉘는 쉬손주. 오늘따라 쉬파리는 덤벼들지 않는다.
쉬라는 말조차 쉬쉬하면, 쉬는 쉬이 해결될 일도 진짜진짜 어려워진다. 쉽게도 어려워진다.
오늘도 쉬라는 말이 하루 종일 쉬지않고 쉽게도 따라붙을 것같은 고런고런 하루다.
여름조차 다 갉아먹는 중동호흡기 증후군인가 뭔가 고놈 메르스 창궐들 쉬 물러감 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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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오체투지로 혼을 갈고
지혜를 갈았다
시껍질
한 거풀 벗기는 데 오늘까지 걸렸다.
남은 껍질들
한 거풀
또 한 거풀 벗겨
누구도 보지 못한 신비로운 시의 알몸을 보고 싶다.
오로지 벗기기 위한 연장을 버리는 일로
오늘도 놀고 있다.
2016년 봄
이서빈
★★
반경환의 ‘5체투지의 시학’ 때문에
-李書彬의 시집 ‘달의 이동 경로’머리말을……
반경환의 ‘5체투지의 시학’을 읽어보고는 깜작 놀라, 넉달간이나 李書彬의 시집 『달의 이동 경로』머릿말을 쓰지 못한다. 내 평생 55년 간 文林에 몸담아 왔으니, 시집 해설로 이렇게도 극찬한 평론글은 첨 봤기 때문이다. 가슴이 꽉 막히고, 강심장인 줄 알았던 내 심장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이 시집이 나가면 또 小局 뱁새들의 지저귐이 넝쿨질 것같다.
2014년 書彬의 《東亞日報》 당선시 「오리시계」에도 불개미처럼 모여들어 인터넷으로 픽션을 넌픽션 말잔치로 몰아 ‘마녀사냥’하듯 잿불을 놓은 현역들이 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으로 소월의「진달래꽃」을 검색하면, 위나 단군 시절의 ‘山有花’,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로부터 시작해 ‘산에는 꽃이 핀다’는 무수한 시구절들이 봄가을 유행가처럼 뜬다. 문제는 우연의 일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인터넷에 올려 배고픈 값으로 남을 해코지해가면서라도 허위 보상을 받아보려는 이상 심리적인 시인들이 아직도 이 땅엔 더러들 살고 있다는 것에 (사실이) 있다. 이들이 살기 좋은 지구공위에 뿌린 흑색 문자 바이러스에 1차․ 2차…감염된 순진한 세상 독자들도 많기에 하는 말이다.
나와 이서빈 시인과의 만남은 하늘이 맺어준 天命이며, 나는 이제 이 ‘천명’의 소임에 따라서, 이서빈 시인의 시집인 ‘달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략)… 이서빈 시인의 ‘온몸의 시학’은 ‘五體投地의 시학’이다. …(중략)… ‘5체투지의 시학’은 붉디붉은 피로 쓰는 시학이며,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의 시학이다. …(중략)… 도처에 명명의 힘이고, 도처에 최고급의 지혜가 살아 움직이는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놀라움과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략)… 왜 나는 이 신출내기 시인이며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이서빈의 출현에 놀라움과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중략)… ‘5체투지의 시학’은 다시 말해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며, 한국문학사의 새로운 기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서빈 시인의 수천 년을 찍어누른 듯한 잠언과 경구앞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만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놀라움과 충격은 그 즉시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경의의 대상이 되고, 저절로 두 무릎을 꿇고 이 세상에서 제일 공손한 자세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중략)… 나는 이제 이서빈 시인의 ‘5체투지의 시학’속의 ‘언어의 현상학’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략)… 이서빈 시인의 시 ‘마침표(․)’를 읽다가보면 그는 ‘언어의 현상학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중략)… ‘마침표의 현상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참으로 아름답고 현란한 말솜씨이며, 하느님도 감동할 만큼의 ‘마침표의 현상학’이라고 하지않을 수가 없다. …(중략)… 이서빈 시인의 이러한 ‘마침표의 현상학’은 ‘수다의 현상학’으로 이어지고, 이 ‘수다의 현상학’은 ‘쉬의 현상학’으로 이어진다. 이 ‘쉬의 현상학’은 ‘無의 현상학’으로 이어지고, 이 ‘무의 현상학’은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현상학’으로 이어진다. …(중략)… ‘無는 천지창조의 텃밭’이며, 이 ‘無의 현상학의 대가’는 그 이름도 거룩한 이서빈, 즉 ‘언어의 현상학의 대가’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한다. …(중략)… 이서빈 시인은 언어의 현상학자로서 ‘마침표의 현상학’과 ‘수다의 현상학’, 그리고 ‘쉬의 현상학’과 ‘無의 현상학’을 연출해냈고, 그리하여 ‘마침표’와 ‘수다’와 ‘쉬’와 ‘無’ 등의 존재와 그 생산성과 유용성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시들로써 증명해낸 바가 있다. …(중략)… 이서빈 시인의 시들은 그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무오류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마침표(․)’, ‘식탁에 둘러앉아’, ‘쉬와, 쉬와, 쉬’,‘無’, ‘달의 이동 경로’등의 시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중략)… 잠언과 경구를 자유 자재롭게 쓸 수 있는 최고급의 인식의 힘은 그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중략)… 이서빈 시인의 ‘언어의 현상학’이나 ‘5체투지의 시학’이 저절로, 우연히 정립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의 붉디붉은 피로 정립된 것이다. …(중략)… ‘5체투지의 시학’은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열정의 소산이며,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시는 붉디붉은 피로 씌어진 것이고, 이 티없이 맑고 순수한 피가 모든 인류의 더럽고 때묻은 피를 씻어주게 될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시집 ‘달의 이동 경로’는 한국 文林의 경사이며, 우리 대한 민국과 우리 한국어의 영광을 위해서 그 지혜의 등불을 영원히 밝히게 될 것이다
-반경환의『5체투지의 시학』에서
만약 위의 평설을 申世薰이가 썼더라면, 저 말많은 詩林社會에서 그냥 넘어갈 수가 있을까싶다. 스승과 제자사이에다, 같은 소태백 경상 분지의 안동 문화권(그녀는 榮州, 나는 義城) 품속 안태 고향이면서도 두 족벌(진성 李氏+慶州 申) 윗대부터 서로 통혼을 해오던 혈족 관계라서 더욱 그러하다. 다행히 생면부지의 실력있는 문학평론가 반경환이 침마르도록 극찬에 극찬을 다 해버렸으니, 정작 나는 이서빈의 시에 대해 반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저 내가 이 시집 서문을 못 쓸 정도로 그간 붓끝을 잡지 못하게 심장을 마냥 뛰게 했던 이 땅의 용감한 문학평론가의 양심바른 評氣風에 눌려 지은이 대신 고개 숙여 마음속 꽃을 꺾어 사례드릴 뿐이다.
기왕 붓잡은 김이라서 시인의 인품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그녀는 독서력이 대단할 뿐 아니라, 고전이란 고전은 거의 다 훑은 효녀․ 효부시인이다. 매사에 사리가 밝고, 의리가 있으며, 가정 안팎의 잡사나 공적인 일에까지도 매우 똑바르게 처리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늘 지켜보고 있다.
‘家和萬事成’이라, 가정은 물론 형제․ 자매간에도 지혜롭게 처신하고, 위로는 어른과 수평․ 수하로 남달리 화목하게 받들면서도 내리 사랑으로 잘 꾸려나가는 모습 옆에서 보기정말 흐뭇하고 부럽기까지 할 정도이다. 현대와 고전 의식을 다 갖춘, 중용의 길을 가는 현모 양처형의 다재다능한 여성 시인이다. 일찍부터 한문학도 꿰뚫고 있고, 서예도 하면서 꽃꽂이 강사 자격증도 지닌 주부 아닌 주부 시인이다.
내가 가끔 우스개소리로 ‘시집을 잘 가서 훌륭한 부군을 만나 천만 다행이다’라고 한 마디씩 던지면, 그녀는 그때마다 곧받아치는 만잔치로 ‘내가 시집을 잘 간 게 아니라, 남편이 내게 장가를 잘 온것’이라고 말바꾸기도 곧잘 하는 재치 여성 재원이다.
뿐만이 아니라 2014년 《강원일보》신춘문예에 시「메밀베개와 구름베개」가 당선됐다는 통보를 받고도 그녀는 “마침 ‘東亞日報’에서도 당선됐다는 소식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상자리’를 사양하겠다”고 거침없이 당선 영예를 양보할 줄 아는 미덕도 갖춘 교양미 흐르는 여인이다. 그 시가 ‘東亞’ 당선시와 함께 이 시집속에 나란히 들어있는 백 년내 보기 드문 시집이다.
-한기10953(한웅기5914:단기4349:동아공기:2567:남방불기2560:서기2016).5.23.小滿節.筆洞 ‘自由文學’에서
我山 申世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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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빈 詩集 [※달의 이동경로※]
[ 해설 ] -
오체투지의 시학
반경환 철학예술가
이서빈 시인은 누구이며, 여러분은 이서빈 시인을 알고 있는가? 이서빈 시인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4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을 한 바가 있다. 그는 ‘진성 이씨 19대 손’(「체인의 한때」)이며, 어릴 때는 딱지치기를 좋아했지만, “딱지에 별이 많을수록 계급이 높은 동그란 별딱지를 수백 장씩 따서 5성 장군이라도 된 양 까만봉지에 담아들고 오면 할머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 한다며 혀를 찼다. 몰래 의자를 갖다놓고 천장을 칼로 죽 긋고 그 속에다 딱지를 감춰놓고 자면, 밤새도록 별빛이 우수수 쏟아져 꿈을 밝히던 시절”이라는 시구에서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딱지 하나가 몇 억이 왔다갔다”(「쓸모없는 것의 쓸모」)하는 현실보다는 천상 시인이 될 운명의 팔자를 타고 났던 것이다. 경북 영주는 소백산과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기는 하지만 도시화의 혜택이 비껴간 곳이고, 따라서 이서빈 시인은 주경야독晝耕夜讀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그 결과 매우 뒤늦은 나이로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을 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서빈 시인은 2014년 『애지』가을호에「고삐」와 「마침표」를 발표한 바가 있었고,「애지」2015년 겨울호에 「옥양목의 유전자」와「파도다듬기」를, 그리고『애지』2016년 봄호에「흰뱀」,「無」,「물병자리」,「겨울神」,「금, 같다」를 발표한 바가 있었다. 내가 이서빈 시인에게 원고를 청탁한 것은 그가《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을 했고, 비록, 신출내기이기는 하지만, 매우 아름답고 뛰어난 시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백」,「마침표」,「흰뱀」,「無」등은 제일급의 명시들이며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한다’는 나의 말을 가장 잘 증명해주고 있는 시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서빈 시인의 사상과 이념과 취향을 모르고, 또한 그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한다. 나와 이서빈 시인과의 만남은 하늘이 맺어준 천명天命이며, 나는 이제 이 ‘천명의 소임’에 따라서, 이서빈 시인의 시집인 『달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고자 한다.
종소리엔 신들의 웃자란 말이 있다/천기 하강하고, 지기 상승하고/죄없는 세상을 만든다
-「종소리에 달린 귀」부분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발버둥엔 탄력이 생긴다
-「발버둥」부분
비스듬히 앉은 듯 모로 누운 암캐의 빈젖통들/붉은 파산이다
-「파산」부분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속이고/불을 훔쳐낸 고통이 만장으로 펄럭인다
-「외짝 바리춤」부분
天孫의 피묻은 울음이 대를 이어/오늘 밤도 달빛으로 헹구며 신비 속에 잠긴 신전은 言語道斷의 극치다
-「神殿」부분
발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
-「소금사막길」부분
벙어리장갑 끈은 너무 짧았고, 이별의 끈은 너무 길었네
-「카츄사 오빠」부분
근심이 많은 잠은 뿌리가 얕다
-「메밀, 꿈」부분
삶이란 말에 죽음이 살고/죽음이란 말속에 삶이 죽는 것이다
-「부조화의 조화」부분
가시 많다는 건 겁 많다는 것이 아닐까
-「직립의 꿈」부분
저 하루살이의 시작과 끝엔 반일을 살고가는/피울음 장엄한 해와 달이 있다
-「하루살이, 반날살이」부분
젖빨던 아기가 엄마 쳐다보듯/씨익, 웃는 난해한 상형 문자/시집을 베고 자다 문장을 통째 삼켜/손톱밑도 땀구멍도 혀도 입술도 모두/시가 되어 누워있는
-「뒷모습」부분
옛시절 깜깜했던 막장 하나씩 폐에 집어 넣고/사람들 떠난 자리 노다지 찾는 사람들
-「사북역이 젖다」부분
코 꿰고, 고삐 메고 굴레씌운 소를 보면 나는 순해진다, 이것은 굴종의 기호 연대다
-「고백」부분
떡잎을 보면 그 나무의 미래를 알 수가 있고, 단 한 줄의 시구로 그 시인의 영광을 알아 볼 수가 있다. 이서빈 시인의 「달의 이동 경로」의 대부분의 시편들은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말, 즉, 잠언과 경구로 씌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소리엔 신들의 웃자란 말이 있다/천기 하강하고, 자기 상승하고/죄없는 세상을 만든다”라는 「종소리에 달린 귀」, “죽음이 가가워올수록 발버둥엔 탄력이 생긴다”라는「발버둥」.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속이고/불을 훔쳐 낸 고통이 만장으로 펄럭인다”라는「외짝 바라춤」, “天孫의 피묻은 울음이 대를 이어/오늘밤도 달빛으로 헹구며 신비 속에 잠긴 신전은 言語道斷의 극치다”라는「神殿」. “발굽 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라는「소금 사막길」,“벙어리장갑 끈은 너무 짧았고, 이별의 끈은 너무 길었네”라는「카츄사 오빠」등의 시가 그렇고, “근심이 많은 잠은 뿌리가 얕다”라는「메밀, 꿈」, “삶이란 말에 죽음이 살고/죽음이란 말속에 삶이 죽는 것이다”라는「부조화의 조화」, “가시 많다는 건 겁 많다는 것이 아닐까”라는「직립의 꿈」, “저 하루살이의 시작과 끝엔 반일을 살고 가는/피울음 장엄한 해와 달이 있다”라는「하루살이, 반날살이」, “젖빨던 아기가 엄마 쳐다보듯/씨익, 웃는 난해한 상형 문자/시집을 베고 자다 문장을 통째 삼켜/손톱밑도 땀구멍도 혀도 입술도 모두/시가 누워 있는”이라는「뒷모습」, “옛시절 깜깜했던 막장 하나씩 폐에 집어넣고/사람들 떠난 자리 노다지 찾는 사람들”이라는 「사북역이 젖다」, “코 꿰고, 고삐 메고 굴레 씌운 소를 보면 나는 순해진다. 이것은 굴종의 기호 연대다”라는「고백」등이 그렇다. 모든 신전의 종소리들에는 “천기 하강하고 자기 상승”하며 “죄없는 세상을” 만드는 염원이 담겨 있고, 생존(죽음)의 위기에 몰린 자의 발버둥이 가장 장엄하고 처절할 수도 있다. 일곱 마리의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낸 “암캐의 빈젖통들이” “붉은 파산”의 그것일 수도 있고, 신성모독자로서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이 만장으로 펄럭일 수도 있다. 수많은 메밀꽃들처럼, 근심이 많은 잠은 뿌리가 얕을 수도 있고, 가시가 많은 갈치는 겁이 많을 수도 있다.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반일을 살고 가는 해와 달이 장엄한 피울음을 토할 수도 있고, “삶이란 말에 죽음이 살고/죽음이란 말 속에 삶이 죽는”「부조화의 조화」도 있을 수가 있다. 잠언箴言이란 무엇이고, 경구警句란 무엇인가? 잠언이란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과도 같이 삶의 교훈을 던져주는 말을 뜻하고, 경구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도 같이 어떤 사상이나 진리를 가장 간결하고 가장 날카롭게 표현해낸 말을 뜻한다. 잠언과 경구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이 압축되어 있고, 우리 인간들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경전들이 잠언과 경구로 되어 있듯이, 시는 잠언이고 경구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서빈 시인은 비록, 신출내기 무명시인에 불과하지만, 한국시문학사상, 이 잠언과 경구들을 가장 정교하고 세련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처에 명명의 힘이고, 도처에 최고급의 지혜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한국어의 영광이 천지창조의 첫날처럼 밝아오며, 그 아름답고 찬란한 황금의 왕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기적이다. 아니, 이 모든 것은 기적이 아니라, “젖빨던 아기가 엄마 쳐다보듯이/씨익, 웃는 난해한 상형문자/시집을 베고 자다 문장을 통째 삼켜/손톱밑도 땀구멍도 혀도 입술도 모두/시가”(「뒷모습」)된 ‘온몸의 시학’의 소산인 것이다. 이서빈 시인은 그 길고 긴 ‘무명의 쳇바퀴’를 마치, 필연의 힘으로 ‘천재의 쳇바퀴’로 돌리면서, 자기 자신의 붉디 붉은 피로 시를 써왔던 것이다. 언어는 시인의 붉디 붉은 피이며, 그의 생명과도 같다. 이 언어의 꽃이 잠언과 경구들이 최고급의 지혜로서 모든 인류들을 구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꿈과 희망을 잃고 방황을 하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해주는 것도 시인이고, 이글이글 생살이 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다 죽어가고 있는 인간들을 구원해주는 것도 시인이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그 어떠한 장애물과 시련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도 시인이고, 비록, 잠시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환희에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것도 시인이다. 잠언과 경구만이 우리 인간들을 구원해 줄 수가 있고, 모든 훌륭한 시인들은 이 잠언과 경구를 창출해내기 위하여 그토록 어렵고 힘든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온몸의 시학’은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시학’이다.
첫 이마를 숙인 밤하늘에 생채기난 달 하나가 떠있다. 고원의 순례자들은 출발할 때 이마에 달 하나를 챙겨간다. 그 밝기로 험로를 오체투지로 간다.
이마가 땅에 닿을 때마다 신들은 따끔따끔거릴 것 같다. 이마가 헐고, 조금씩 상처가 나 오래된 표시로 따지가 앉는다. 거뭇한 이마에 굳은살로 뜬 붉은달.
티벳 여행길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가는 순례자를 만났다. 몇 달 며칠을 이마에 달띄우며 간다. 달은 언제나 찬란한 가난을 닮았다. 한동안 배고프고 또 한동안 배부르다 다시 배고픈 달, 장엄한 사육제다.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를 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닥을 함께 가는 그림자 푸른밤, 살 다 내리고 채우기를 몇 번 함께 가는 그림자의 눈이 푸른밤, 지순한 보름달에 세상이 환하다. 지나가던 차를 멈추고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푸르스름한 지폐 몇 장을 보시한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또 넘으면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마지막 사원앞에 가서야 남루한 달 하나가 뜬다.
거룻한 이마를 밝힐 평생의 달 하나 얻는다
-「달의 이동 경로」전문
이서빈 시인은 티벳불교신자들의 순례길을 ‘달의 이동 경로’라고 명명을 하고, 그 ‘오체투지의 시학’을 장엄한 사육제다라고 말한다. 이때의 사육제謝肉祭는 사순재四旬齋, 즉, 금욕과 단식을 앞둔 날들의 축제가 아니라, 고통으로 밥을 먹고 고통으로 춤을 추는 것을 말하고,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를” 말한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또 넘으면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마지막 사원앞에 가서야 남루한 달 하나가 뜬다/거뭇한 이마를 밝힐 평생의 달 하나 얻는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오체투지의 시학’은 붉디 붉은 피로 쓰는 시학이며,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의 시학이다. 하나의 신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전들이 파괴되어야 하듯이, 영원불멸의 성자(시인)가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되풀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달이며, 모든 인간들을 지상낙원으로 인도해 주는 달이다.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아니며, 그 모든 욕망을 다 비운 고원의 순례잘들이 피워올리고 있는 달이다. “天孫의 피묻은 울음이 대를 이어/오늘밤도 달빛으로 헹구며 신비 속에 잠긴 신전은 言語道斷의 극치다”(「神殿」)라는 시구와 “저 하루살이의 시작과 끝엔 반일을 살고 가는/피울음 장엄한 해와 달이 있다”(「하루살이, 반날살이」)라는 시구들에서처럼, 달은 순례자들의 고행으로 그 힘을 얻고, 그들의 고행을 통해서 전인류의 지혜의 등불로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시인은 어제의 사람도 아니고, 오늘의 사람도 아니며, 미래의 사람도 아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날이면 날마다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오늘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다. 편견이나 고정관념도 시인을 죽이고, 머무름이나 휴식도 시인을 죽인다. 시인은 흐르는 물이며 솟아오르는 안개이며 머나먼 하늘을 향해서 끊임없이 날아가는 영원한 철새이다.
이서빈 시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여러분은 도대체 이서빈 시인을 알고 있는가? 그는 도대체, 왜 시를 썼고,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서 시를 배웠단 말인가? 도처에 명명의 힘이고, 도처에 최고급의 지혜가 살아 움직이는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나는 놀라움과 충격에 바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불세출의 대형비평가였던 김현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그의 유일한 젖줄이었던 ‘문지’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반경환 -, 유종호, 김우창, 김윤식, 백낙청, 정과리, 고은, 신경림, 이문열, 신경숙, 박노해, 김용택, 정현종, 황동규, 황지우, 이성복 등을 모조리 비판하고 한국사회로부터 영원히 생매장을 당해야만 했던 반경환-. 왜, 나는 이 신출내기 시인이며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이서빈의 출현에 놀라움과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십자가나 ‘卍’자/성호를 긋는 것 모두 신이 쳐놓은 울타리이듯/이쪽서 보면 인연이고, 저쪽서 보면 악연이다//담장이 없는 밤은/밤새도록 귀가 열려 잠이 불안하다”라는 「투명담장」. 제 입맛에 맞으면 ‘은어’라고 했다가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도루묵’이 된다는「묵, 혹은 도루묵」, “코 꿰고, 고삐 메고 굴레 씌운 소를 보면 나는 순해진다. 이것은 굴종의 기호 연대다”라는 「고삐」등의 ‘오체투지의 시학’은 다시 말해서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며, 한국문학사의 새로운 기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서빈 시인의 수천 년을 찍어누른 듯한 잠언과 경구 앞에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만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놀라움과 충격은 그 즉시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경의의 대상이 되고, 저절로 두 무릎을 꿇고 이 세상에서 제일 공손한 자세로 경의를 표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모든 앎은 그것이 경제학이든, 법률이든, 철학이든, 역사이든, 문학이든, 시인든, 미술이든지 간에 잠언과 경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한 줄의 시가 아니라 한 줄의 경구인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신은 죽었다’ ‘세계는 범죄의 표상이다.’ ‘나는 신성모독을 범한다, 고로 존대한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않는다.’ ‘신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최종심급은 경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전쟁과 가난은 자연의 인구법칙이다.’ ‘모든 욕망은 성적 욕망이다.’
모든 앎의 투쟁은 이처럼 최고급의 지혜를 얻기 위한 투쟁이며, 최고급의 지혜, 즉, 사상과 이론을 정립한 인간만이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천재란 하늘이 빚어낸 사람이며, 그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재의 탄생을 볼 수가 없으며, 오직 그의 출현과정만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천재는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왔던 것이지만,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느닷없는 출현에 그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서빈 시인의 ‘오체투지의 시학’ 속의 ‘언어의 현상학’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침표의 현상학’과 ‘수다의 현상학’과 ‘쉬의 현상학’과 ‘無의 현상학’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침표 하나 찍어놓고 보면 가장 좁은 문같기도 하고, 감옥을 막고 있는 철문같기도 하다. 마침표가 없는 책은 없다. 어떤 빛나는 철학이나 슬픔, 기쁨에도 마침표는 있다.
외눈박이 눈은 그 사람을 막고 있는 점이다. 내 어렸을 때 던졌던 조약돌 같아 읽고 있던 책에서 퐁당퐁당 소리가 물방울처럼 뛰어오른다.
이야기 하나에는 수많은 점이 있다. 점 하나 잘못 찍어 넘어, 남이 되기도 하고, 궁이 공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마침표가 마침표가 되기도 한다.
작은 점 하나에서 아주 큰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글자가 검어 나오고 초록 선율과 붉은 선비가 콩나물 자라듯 자라기도 한다.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점 하나, 점 안 모셔놓은 부처도 점안을 해야 비로소 눈뜬 부처가 된다. 부처의 눈알은 지구 공같기도 하다. 바둑을 두면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고, 마지막 돌 하나로 길을 막을 수도 있다.
말이나 문장 뒤에 찍지 않고 슬쩍 넘어가기도 하는 점, 긴장감에 꿀꺽 삼킨 침 한 방울같은 것,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한 뒤 살짝 열어놓기도 하지만, 며칠 뒤엔 사라지는 점, 한적하게 비어있는 곳엔 작은 점 하나 찍혀 있다.
실수․ 노여움․ 슬픔은 모두 마침표를 안 찍은 것들, 우주를 반복하는 저 꽃잎도 언젠가 한 번은 찬란한 마침표를 꾹 찍을 것이다.
-「마침표․」전문
시인은 언어의 사제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예술가이다. 시인의 말에 의해서 하늘과 땅이 탄생했고, 시인의 말에 의해서 모든 동식물들이 탄생했다. 시인의 말에 의해서 어린 아이들이 탄생했고, 시인의 말에 의해서 사랑의 대상이 탄생했다. 시인의 말에 의해서 미움이 탄생했고, 시인의 말에 의해서 싸움이 탄생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이 말씀으로 이 세계를 창출해냈던 것이다. 모든 시인들은 최초의 시인이자 최후의 시인인 호머의 또다른 분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서빈 시인의「마침표․」를 읽다가 보면 그는 언어의 현상학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현상론자는 사물의 겉모습만을 보지만, 현상학자는 두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유형은 다종다양하고 그 쓰임새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진실한 말, 거짓의 말, 사랑의 말, 증오의 말, 익살광대극의 말, 사악하고 잔인한 말, 간사하고 음탕한 말, 싸늘하고 날카로운 말, 마음껏 야유하고 조롱하는 말 등이 있고, 그 부화와 기호마저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서빈 시인을 언어의 현상학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좁혀서 말한다면 ‘마침표의 현상학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우선 “마침표 하나 찍어놓고 보면 가장 좁은 문같기도 하고, 감옥을 막고 있는 철문같기도 하다”라고 말하고, 그는 또한 “마침표가 없는 책은 없다. 어떤 빛나는 철학이나 슬픔, 기쁨에도 마침표는 있다”라고 말한다. 마침표는 좁은 문이며, 좁은 문은 탄생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수억 개의 정자들 중의 하나에서 탄생했고, 그 좁은 문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마침표는 감옥이며, 감옥은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감옥은 존재의 활동영역-좁은 의미에서-이며, 그는 그 감옥 속의 삶을 살다가 죽어가게 된다. 마침표는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죽음이다. 마침표 없는 책도 없고, 마침표 없는 철학도 없다. 마침표 없는 슬픔도 없고, 마침표 없는 기쁨도 없다. 제일급의 대가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그 모든 일들의 맺고 끝맺는 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모든 제일급의 대가들은 마침표의 대가이거니와 이 마침표에 의해서 그들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삶이 그 예술성과 영원성을 획득하게 된다. 호모, 단테, 세익스피어, 괴테, 보들레르, 랭보, 베토벤, 모차르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마르크스 등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외눈박이 눈은 그 사람을 막고 있는 점”이고, “내 어렸을 때 던졌던 조약돌”과도 같다. 외눈박이 눈은 조약돌이 되고, 외눈박이가 쓴 책은 시냇물이 되어서 내가 던진 조약돌에 의해서 퐁당퐁당 소리가 나게 된다. “이야기 하나에도 수많은 점이”있고, “점 하나 잘못 찍어 님이, 남이 되기도”한다. “궁이 공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마침표가 미침표가 되기도 한다.” “작은 점 하나에서 아주 큰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하고,” 작은 점 하나에서 “글자가 걸어 나오고 초록 선율과 붉은 신비가 콩나물 자라듯 자라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점 하나, 절 안 모셔놓은 부처도 점안을 해야 비로소 눈뜬 부처”가 되고, 그 “부처의 눈알은 지구 공같기도 하다.” “바둑을 두면 집 한 채를 지을 수도 있고, 마지막 돌 하나로 길을 막을 수도 있다.” “말이나 문장 뒤에 찍지 않고 슬쩍 넘어가기도 하는 점, 긴장감에 꿀꺽 삼킨 침 한 방울같은 것,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한 뒤 살짝 열어놓기도 하지만, 며칠 뒤엔 사라지는 점, 한적하게 비어있는 곳엔 작은 점 하나 찍혀있다.// 실수․노여움 ․ 슬픔은 모두 마침표를 안 찍은 것들, 우주를 반복하는 저 꽃잎도 언젠가 한 번은 찬란한 마침표를 꾹 찍을 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현란한 말솜씨이며, 하나님도 감동할 만큼의 ‘마침표의 현상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점-님-남-궁-공-마침표’는 ‘마침표의 말놀이’에 의한 자유연상의 기법이며, 그 수사법은 환유적이다. 환유는 인접성의 법칙이며, “점 하나 잘못 찍어 님이, 남이 되기도 하고, 궁이 공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마침표가 미침표가 되기도 한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자유연상이 ‘마침표의 말놀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점-눈알-바둑알-집’은 ‘마침표의 말놀이’에 의한 상징주의자의 기법이며, 그 수사법은 은유적이다. 은유는 유사성의 법칙이며, 점에서 눈알로, 눈알에서 바둑알로, 바둑알에서 집으로의 이미지는 그 유사성에 의한 ‘마침표의 말놀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나 문장 뒤에 찍지 않고 슬쩍 넘어가기도 하는 점”은 은근슬쩍을 좋아하는 야비한 인간의 마침표를 뜻하고, “긴장감에 꿀꺽 삼킨 침 한 방울같은 것”은 큰일을 앞둔 자의 마침표를 뜻한다.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한 뒤 살짝 열어놓기도 하지만, 며칠 뒤엔 사라지는 점”은 그 어느 누구에겐가 극적인 혜택을 주는 자의 마침표를 뜻하고, “한적하게 비어있는 곳엔 작은 점 하나 찍혀 있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일들의 마침표를 뜻한다. “실수․노여움․슬픔은 모두 마침표를 안 찍은 것들”이라는 것은 그 실수, 노여움, 슬픔의 무한한 연속성을 뜻하고, “우주를 반복하는 저 꽃잎도 언젠가 한번은 찬란한 마침표를 꾹 찍을 것이다”라는 시구는, 우주의 역사도, 그 우주 속의 별들의 역사도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이러한 ‘마침표의 현상학’은 ‘수다의 현상학’으로 이어지고, 이 ‘수다의 현상학’은 ‘쉬의 현상학’으로 이어진다. 이 ‘쉬의 현상학’은 ‘무無의 현상학’으로 이어지고, 이 ‘무의 현상학’은 궁극적으로는 언어의 현상학으로 이어진다.
옛 친구 셋이 수다 한 상 차렸다
이야기를 사과껍질처럼 돌려 깎는다
흘러내리는 추억들 구불구불 쟁반에 쌓이고
접시에 담긴 말들
아삭아삭 사과맛이 난다
새콤달콤 이야기 당도가 올라간다
쓴말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입에 붙는 말만 포크로 찍어 서로에게 권한다
수다가 몸집을 불리자
제 입맛과 다르다고 투덜대는 여자들
깔끔한 성격과 결혼한 친구는 결벽증에
낭만과 결혼한 친구는 과소비에
일편단심과 결혼한 친구는
그 질긴 고집에 못 살겠단다
여자들, 식탁에 둘러앉아
접시에 펼쳐놓은 말 자꾸 맛보는 여자들
과식으로 배가 부르다
어느새 바닥에 깔고 앉은 하루도 지루해지고
먹다 남은 과일 누렇게 변했다
배고픈 집들
아내 엄마 며느리를 찾기 시작했다
-「식탁에 둘러앉아」전문
조국을 떠나 외국생활을 하다가 보면 그 무엇보다도 제일 그리운 것이 모국어라고 한다. 비록, 몸은 머나먼 타향살이를 하고 있을지라도 모국어로 사유하고 모국어를 꿈을 꾸며, 모국어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모국어는 어머니의 언어이며, 우리 인간들은 모국어가 없으면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듯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견디면 말이 고파진다. 말이 고플 때에는 혼잣말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게 된다. 말을 하고 싶다는 것은 말이 고프다는 것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서 반드시 말의 허기를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의 말도 있고, 다정다감한 정담의 말도 있다. 이 세상의 도덕과 법률과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고담준론도 있을 수가 있고, 상호간의 사상과 이념과 취향에 따른 열띤 논쟁의 말도 있을 수가 있다. ‘수다’는 쓸데없이 말수가 많다는 것을 뜻하지만, 다른 말로 말하자면 아주 가까운 사람들끼리 둘러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을 말한다. 수다의 대상은 흉허물이 없는 사이이며, 서로간에 그 모든 마음을 탁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이다. 옛 친구 셋이 수다 한 상을 차렸고, 사과껍질처럼 이야기를 돌려깎는다. 아삭아삭 사과맛이 나고, 새콤달콤 이야기의 당도가 올라간다. 입맛에 맞는 말만 포크로 찍어 서로에게 권하고, 쓴말은 따로 골라서 쓰레기통에다가 버린다. 수다가 몸짓을 불리면, 서로가 제 입맛과 다르다고 그 여자들은 투덜댄다. 깔끔한 성격과 결혼한 친구는 그 남편의 결벽증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고, 낭만과 결혼한 친구는 그 남편의 과소비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며, 일편단심과 결혼한 친구는 그 남편의 황소 고집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다. 이서빈 시인의 「식탁 위에 둘러앉아」는 말들의 성찬을 보여주고 있는 시이며, ‘수다의 현상학’이 이야기꽃으로 피어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이 고프면 수다를 떨게 되고, 수다를 떨게 되면 “배고픈 집들”에서 “아내와 엄마와 며느리를 찾기 시작”할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게 된다. ‘수다의 현상학’에서는 경제는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으며, 요컨대 최종심급은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말은 욕망이며, 식욕이고, 우리 인간들의 존재의 근거이다. 말은 권력이고, 돈이며, 이 세계는 말들의 위계질서로 조직되어 있다.
할미가 손주바지를 내리고 쉬-하자, 쉬라는 말줄기 따라 따뜻한 김 모락모락 나는 쉬가 포물선을 그린다.
먹다 남은 생선토막에 쉬 한 타래 슬어놓고는 휘 날아가 하얗게 쉬어버린, 쉰내나는 할미머리카락 위에 앉는 파리아가씨 한 마리.
손주는 검지손가락 입술 위에 세로다지로 세우며 쉬쉬-한다. 할미도 덩달아서 검지손가락 입술에다 갖다 대며 쉬쉬-한다. 꼬마는 까치발을 세우며 살금살금 다가가서 팍, 순간 파리아가씨는 쉬-날아가고, 손주는 쉬 파릴 못 잡아 쉬할미를 빤히 쳐다보며 곰스럽게 꽁꽁거리며 못내못내 아쉬워한다.
쉬할 수 없는 일은 쉬이 쉬어빠진 쉰내가 난다
쉬할미가 쉬를 보러가면 쉬할미를 따라가 쉬-오줌을 뉘는 쉬손주, 오늘따라 쉬파리는 덤벼들지 않는다
쉬라는 말조차 쉬쉬하면, 쉬는 수이 해결될 일도 진짜진짜 어려워진다. 쉽게도 어려워진다
오늘도 쉬라는 말이 하루종일 쉬지않고 쉽게도 따라붙을 것같은 고런고런 하루다
여름조차 다 갉아먹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인가 뭔가 고놈 메르스 창궐들 쉬 물러감 딱 좋겠다
-「쉬와, 쉬와, 쉬」전문
이서빈 시인의 「쉬와, 쉬와, 쉬」는 ‘쉬의 현상학’으로서의 이서빈 시인의 시적 재능과 그 성찰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할미가 손주바지를 내리고 하는 ‘쉬’는 손주의 오줌을 뜻하고, “먹다 남은 생선토막에 쉬 한 타래 슬어놓고”의 ‘쉬’는 파리의 그것을 뜻한다. 손주가 검지손가락을 입술 위에 세우며 하는 쉬쉬는 ‘조용히 하라’는 것을 뜻하고, “꼬마는 까치발을 세우며 살금살금 다가가서 팍하는 순간 파리아가씨는 쉬-날아가고”는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날아갔다는 것을 뜻한다. “쉬할 수 없는 일은 쉬이 쉬어빠져 쉰내가 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은 쉽게 쉬어빠져 쉰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쉬라는 말조차도 쉬쉬하면, 쉬는 쉬이 해결될 일도 진짜진짜 어려워”지게 된다. 오줌의 쉬, 파리의 쉬, 쉬쉬(조용히 하라)의 쉬, 쉬운 일의 쉬, 쉰내난다의 쉬 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쉬의 현상학’은 그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즉, ‘메르스의 창궐들’마저도 쉽게 물러갔으면 좋겠다는 시인의 간절한 서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없을 ‘無’자 하나를 벽에 걸어놓고 보면
훤한 빈곳들은 더 잘 보인다
많고 넘치는 것들 컴퓨터 바탕화면 휴지통에
문서를 버리고 확인해보면
없음 ‘無’자 하나가 비좁게 들어 앉아있다
비우라고 있는 현혹, 정말 없다면 無자도 없을 것인데
자신은 턱 버티고 나머지만 없다 한다
가끔 虛자로 보이기도 한다
다리가 네 개나 달려있는 ‘無’자는 다리 뻗을 곳 봐가며 방향을 정한다
이때 쥐털소리 찍찍거린다
다리 하나를 더 달아 허둥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망각
포근한 눈을 덮고 겨울잠을 자는 봄에 입김을 불어넣어
황무지에 무지가 돋고 검은 등걸에
삐죽삐죽 눈을 돋아나게 하는 ‘無’
분명 있으면서 없는 ‘無’
밤새도록 ‘無’자를 생각하다 ‘無’자에게 침식당한 밤
새벽까지만 해도 없던 아침이 환히 떠오른다
‘無’는 돌아보면 무수히 많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
그처럼 큰말도 없지 싶다
-「無」전문
이서빈 시인의「無」는 ‘무의 현상학’으로서의 무의 존재와 무의 생산성과 무의 유용성을 역사 철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매우 아름답고 뛰어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무는 ‘없을 무’이며,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킬 수 있는 무이다. “없을 ‘無’자 하나를 벽에 걸어놓고 보면/훤한 빈곳들이 더 잘”보이듯이, “자신은 턱 버티고 나머지만 없다고 한다.” 무는 “다리가 네 개나 달려” 있고, 늘, 언제나 “다리 뻗을 곳을 봐가며 방향을 정한다.” 무는 “쥐털소리를 찍찍거리”게도 하고, “겨울잠을 자는 봄에 입김을 불어넣”기도 한다. “황무지에 무지가 돋고 검은 등걸에/삐죽삐죽 눈을 돋아나게 하는 無” “분명 있으면서 없는 無”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구름같은 無-” 무는 그 어디에도 있고 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무는 천변만화하는 요술쟁이이며, 이 ‘무의 생산성’을 통해서 모든 ‘유有’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는 훤한 빈곳을 더 잘 보이게도 하고, “포근한 눈을 덮고 겨울잠을 자는 봄에 입김을 불어넣어” 만물이 태어나게도 한다. 무는 “황무지에 무지가 돋고” 모든 쥐털소리를 찍찍거리게도 만든다. “無자 이전에 ‘有’자가 살았다는 기록은 본 적도 없고” 따라서 이 무의 여신은 천지창조의 여신과도 같다.
‘無’는 돌아보면 무수히 많다
아무 것도 없다는 말
그처럼 큰말도 없지 싶다
이서빈 시인은 ‘무의 현상학’을 통해서 이처럼 무에게 그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 유용성을 통해서 무의 생산성을 창출해내게 되었다. 모든 것은 무에 의해서 태어나고, 모든 것은 무에 의해서 죽어간다. 무는 천지창조의 텃밭이며, 이 ‘무의 현상학의 대가’는 그 이름도 거룩한 이서빈, 즉, ‘언어의 현상학의 대가’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한다.
현상학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구별하고, 어떤 말의 의미와 그 말이 배제하고 있는 의미를 구별한다. 오직 나만을 알 수 있다는 ‘유아론唯我論’에서 나의 마음과 행동양식을 통하여 타인의 행동양식을 보고 그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는 ‘유비론類比論’을 정립해내고, 이 유비론의 약점을 통하여 또다시 ‘유아론의 정당성’을 연출해내게 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지만, 그러나 다양한 현상들을 탐구함으로써 그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현상학자는 점과 선, 선과 평면, 평면과 입체, 입체와 입체, 입체와 우주, 우주와 무한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학자 중의 학자라고 할 수가 있다. 이서빈 시인은 언어의 현상학자로서 ‘마침표의 현상학’과 ‘수다의 현상학’ 그리고 ‘쉬의 현상학’과 ‘無 ’의 현상학‘을 연출해냈고, 그리하여 ’마침표‘와 ’수다‘와 ’쉬‘와 ’무‘등의 존재와 그 생산성과 유용성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시들로서 증명해낸 바가 있다. 사상과 이론은 논리적이고, 이 딱딱하고 난해한 논리는 시의 예술성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이서빈 시인의 시들은 그 수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무오류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마침표․」,「식탁에 둘러 앉아」,「쉬와, 쉬와, 쉬」,「無」,「달의 이동 경로」등의 시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만일, 그렇다면, “열린 문은 반드시 닫힌다”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발버둥엔 탄력이 생긴다.” “불을 훔쳐낸 고통이 만장으로 펄럭인다.” “발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 “벙어리장갑 끈은 너무 짧았고, 이별의 끈은 너무 길었네.” “근심 많은 잠은 뿌리가 얕다.” “삶이란 말에 죽음이 살고/죽음이란 말속에 삶이 죽는 것이다.” “가시 많다는 건 겁 많다는 것이 아닐까.” “저 하루살이의 시작과 끝엔 반일을 살고가는/피울음 장엄한 해와 달이 있다”라는 잠언과 경구를 자유자재롭게 쓸 수 있는 최고급의 인식의 힘은 그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나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 한국인들이여, 참으로 고전다운 고전을 읽으라. 고전 속에서 최고급의 지혜를 배우고, 이 고전의 힘으로 새로운 지혜를 창출해내라” 첫째도 공부이고, 둘째도 공부이고, 셋째도 공부이다. 모든 시인들의 사명은 이 불멸의 고전들을 읽고 그 ‘명명의 힘’을 기르는 것이며, 이 ‘명명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언어의 현상학’이나 ‘오체투지의 시학’이 저절로, 우연히 정립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의 붉디 붉은 피로 정립된 것이다.
시인은 모든 가치의 창조자이자 세계의 창조자이고, 언어의 기원을 소유한 종족의 창시자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지만, 신은 전지전능하고 무한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러나 태초에 말씀으로 이 세계를 창조했듯이, 그 유한성의 한계를 뚫고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우리 시인들이었다고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다. “삶이란 말에 죽음이 살고/죽음이란 말속에 삶이 죽는 것이다(「부조화의 조화」)” 이 세상의 근본이치는 ‘부조화의 조하’이며, ‘어울리지 않는 것의 어울림’이다. 우리 인간들의 자유와 개성은 부조하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이 부조화의 부조화를 통해서 반드시 조화를 이루어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부조화 속에서 만물이 생겨나고, 부조화 속에서 만물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서빈 시인의 말대로, 부조화는 만물의 아버지이며, 그 모든 것이다. 종합적인 시선이란 부분을 전체와 관련시켜 이해하고, 전체는 부분과 관련시켜 이해하는 시선을 말한다. 종합적인 시선의 소유자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이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어려움과 장애물들을 만나게 될지라도 결코 우회하거나 좌절할 줄을 모른다. ‘오체투지의 시학’은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열정의 소산이며,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시는 붉디 붉은 피로 씌어진 것이고, 이 티없이 맑고 순수한 피가 모든 인류의 더럽고 때묻는 피를 씻어주게 될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달의 이동 경로」는 한국문단의 경사이며,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한국어의 영광을 위해서 그 지혜의 등불을 영원히 밝히게 될 것이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운 사상에 빠지게 된다.(공자) 나는 배우면서 늙어간다는 어느 현자의 말씀도 있지만, 우리는 배우면서 더욱더 젊어져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앎처럼 즐겁고, 앎처럼 기쁘며, 앎처럼 최고급의 행복을 연출해낸 것도 없다. 아는 것은 힘이고, 아는 것만큼 보인다. 이 앎의 힘은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며, 그 모든 것들의 생사를 움켜쥘 수 있는 힘이다. 앎은 전체군주이며, 앎 앞에서의 만인평등은 없다. 모든 싸움은 이 앎을 소유하기 위한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일 뿐인 것이다.
지혜(앎)는 모든 만물들의 양식이다. 지혜로서 살고 지혜로서 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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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반경환의 ‘5체투지의 시학’을 읽어보고는 깜작 놀라, 넉달간이나 李書彬의 시집 『달의 이동 경로』머릿말을 쓰지 못한다. 내 평생 55년 간 文林에 몸담아 왔으니, 시집 해설로 이렇게도 극찬한 평론글은 첨 봤기 때문이다. 가슴이 꽉 막히고, 강심장인 줄 알았던 내 심장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이 시집이 나가면 또 小局 뱁새들의 지저귐이 넝쿨질 것같다.
2014년 書彬의 《東亞日報》 당선시 「오리시계」에도 불개미처럼 모여들어 인터넷으로 픽션을 넌픽션 말잔치로 몰아 ‘마녀사냥’하듯 잿불을 놓은 현역들이 있다. (……)
현대와 고전 의식을 다 갖춘, 중용의 길을 가는 현모 양처형의 다재다능한 여성 시인이다. 일찍부터 한문학도 꿰뚫고 있고, 서예도 하면서 꽃꽂이 강사 자격증도 지닌 주부 아닌 주부 시인이다.
― 신세훈 시인. 전 문인협회 이사장
이서빈 시인은 티벳불교신자들의 순례길을 ‘달의 이동 경로’라고 명명을 하고, 그 ‘오체투지의 시학’을 장엄한 사육제다라고 말한다. 이때의 사육제謝肉祭는 사순재四旬齋, 즉, 금욕과 단식을 앞둔 날들의 축제가 아니라, 고통으로 밥을 먹고 고통으로 춤을 추는 것을 말하고,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를” 말한다.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또 넘으면 붉은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마지막 사원앞에 가서야 남루한 달 하나가 뜬다/거뭇한 이마를 밝힐 평생의 달 하나 얻는다”라는 시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오체투지의 시학’은 붉디 붉은 피로 쓰는 시학이며, ‘태어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듭나기’의 시학이다. 하나의 신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전들이 파괴되어야 하듯이, 영원불멸의 성자(시인)가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되풀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달이며, 모든 인간들을 지상낙원으로 인도해 주는 달이다.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아니며, 그 모든 욕망을 다 비운 고원의 순례잘들이 피워올리고 있는 달이다. “天孫의 피묻은 울음이 대를 이어/오늘밤도 달빛으로 헹구며 신비 속에 잠긴 신전은 言語道斷의 극치다”(「神殿」)라는 시구와 “저 하루살이의 시작과 끝엔 반일을 살고 가는/피울음 장엄한 해와 달이 있다”(「하루살이, 반날살이」)라는 시구들에서처럼, 달은 순례자들의 고행으로 그 힘을 얻고, 그들의 고행을 통해서 전인류의 지혜의 등불로서 그 빛을 발하게 된다.
― 반경환, 『애지』주간. 철학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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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빈 시인∥
∙ 이서빈 시인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고, 민조시집 『저토록 완연한 뒷모습』이 있다. 『달의 이동경로』는두 번재 시집이며, ‘오체투지의 시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굽닿는 자리에 소금 부서지는 소리가 짜다([소금사막길])”, “벙어리장갑 끈은 너무 짧았고, 이별의 끈은 너무 길었네([카츄사 오빠]), “근심이 많은 잠은 뿌리가 얕다([메밀, 꿈]).” “가시 많다는 건 겁 많다는 것이 아닐까([직립의 꿈]).” 도처에 명명의 힘이고, 도처에 최고급의 지혜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출현한다. ‘오체투지의 시학’은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열정의 소산이며, 시인은 단어 하나, 토씨 하나에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시는 붉디 붉은 피로 씌어진 것이고, 이 티없이 맑고 순수한 피가 모든 인류의 더럽고 때묻은 피를 씻어주게 될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달의 이동 경로』는 한국문단의 경사이며,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한국어의 영광을 위해서 그 지혜의 등불을 영원히 밝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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