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제법실상(한국SGI및정법정의실현) 원문보기 글쓴이: 염라대왕
| |||||||||||||||||||||||||||||||||||||
99년 8월부터 전국에 배포되기 시작한 문건 ‘창가르네상스’는 ‘박재일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해가려는 도덕적 용기를 기대한다’고 서두에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언로가 닫쳐있는 압제하의 조직현실을 감안해서 익명으로 할 수 밖에 없음을 양해 바란다’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이후 6개월 동안 12회에 걸쳐 본부간부 및 각 방면과 권 4부간부를 대상으로 발송되었다. 이 문건의 파급력은 회를 거듭함에 따라 급속도로 커져갔다. 그것은 그 문건에서 제기된 의혹들의 사실관계가 그때그때 입증되었고, 그 불편한 진실을 유포할 수밖에 없는 바의 진정성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을 원하는 회원들이 급속도로 번져갔다. 이런 조직적인 동향에 당황한 집행부는 일단 ‘비대위’나 ‘대구선의연대’를 ‘파화합승’ 또는 ‘닛켄종’ 등으로 규정해놓고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해명한다는 것이 황당한 거짓말뿐이고, 다시 거짓말로 그 거짓말을 꾸미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SGI본부와 충분한 협의도 없이 수백억 단위의 제주프린스호텔을 사들였다. 그리고 구로동 본부 옆 교회체육관을 묘광건설(대표 김영웅)로 하여금 한국SGI법인의 은행예치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도록 해서 사들이는 상식 밖의 행동들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법인성격의 단체로서 부동산구입 등의 중대한 법인업무의 집행에 앞서 그 행위가 본래의 목적에 부합되는지 그리고 절차상 적법성여부나 미래가치평가 등이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박재일씨는 이사장으로서의 권력을 남용해서 생산해낸 의혹을 덮고 회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광기어린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한국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SGI본부에서는 수개월의 침묵을 깨고 사태수습을 위해 내한한다. 2000년 3월 당시 와다(和田)SGI이사장을 대표로 해서 이즈미지도장과 교대되어 한국지도장으로 임명된 야마자키(山崎)지도장 그리고 아키야마(秋山)부인부장 스기야마(杉山)남자부장 등이 한국에 파견되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이 한국SGI최고협의회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이 최고협의회 위원으로는 SGI본부한국파견간부와 한국SGI원로들로 구성되었다. 오직 보신만을 위해 조직악을 고착시키는데 이바지한 여상락씨 화려한 건축물을 짓는 것으로 이사장의 치적으로 하려 한다거나 집행부의 권위를 세우려 한다면 회원들을 이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회관건축사업은 법인의 회무를 책임지는 이사장 본연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SGI이사장은 제도상 종단을 대표하는 총책임자로서 이사회무보다도 조직을 관장하고 회원들이 낙오 없이 신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국SGI가 화합승단으로서 회원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사제직결해서 일국의 마성과 일전을 불사하는 장군의 모습이 이사장으로서 본연의 모습이다. 그런데 지난 십 수 년 동안은 일선의 좌담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형식화되어 환희나 약동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반면 화려한 건물만 급속히 증가해왔다. 그리고 한국SGI회관은 화려한 건물일수록 어둡고 수치스런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이미 한국SGI회관 건물은 건축업자와 몇몇 관계자들의 비밀을 담은 타임캡슐을 초석 밑에 묻어놓았다. 여상락이사장이 퇴임시 권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빚이 많아 이사장을 더하려고 했는데...’ 운운 등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여상락씨는 자신의 이사장 재임기간동안 청빈했음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대다수의 간부들은 ‘맹구의 짜장면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후일담도 있었다. 아마도 후대의 역사는 여상락씨의 행적을 ‘어부지리로 권력을 얻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보신만을 위해 세월을 이기면서 조직악을 고착시키는데 이바지했다’라고 적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