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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능선 용출봉, 단아하지 않은가?
신선 인연 헤아릴 제 오래된 줄 아나니 仙分商量久自知
우연히 머물러도 전에 약속한 것 같다 偶然留滯亦前期
평소에 은거할 땅 없는 것이 아니거니 平生長往非無地
종신토록 은거할 터로 삼기 알맞구나 終老幽棲合借基
그대와 술 한 잔 나누기에 적당하고 正耐從君攜酒處
더욱이 누대 기댄 나를 보게 되는 곳 更須看我倚樓時
푸른 산 맑은 물 나직이 읊조렸나니 山靑水白微吟罷
이번 산행 없었으면 비경을 놓쳤으리 不有玆行定負奇
――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 「북한산 4수(北漢 四首)」 중 제3수
▶ 산행일시 : 2018년 11월 25일(일), 구름 많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거리 : GPS 도상 13.2km
▶ 산행시간 : 7시간 19분
▶ 교 통 편 : 전철과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8 : 45 - 북한산 우이역, 산행시작
09 : 06 - 육모정공원 지킴터
09 : 42 - 육모정고개
10 : 05 - 503.4m봉, 토치카
10 : 28 - 영봉(靈峰, 604m)
11 : 24 - 백운봉 암문
11 : 58 - 용암문(龍岩門), 일출봉(617m)
12 : 17 - 동장대(柴丹峰, 601.0m)
12 : 26 ~ 12 : 47 - 대동문, 점심
12 : 59 - 보국문
13 : 21 - 대성문
13 : 29 - 대남문
13 : 42 - 남장대(△715.5m)
14 : 36 - 용혈봉(581m)
14 : 46 - 용출봉(571m)
15 : 09 - 의상봉(501.5m)
15 : 52 - 북한산성길
16 : 04 - 북한산성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1. 북한산 지도
2. 산행 고도표
▶ 영봉(靈峰, 604m)
가을이면 나무들이 활엽의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생존의 방편이기도 하다. 어제 함박눈이 내
린 도심 근린공원의 나무들 중 침엽의 소나무에게는 횡액이었다.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해 가
지는 물론 허리가 부러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활엽인 느티나무나 단풍나무, 복자기, 산수유,
산딸나무, 은행나무 등이 활엽을 그대로 달고 있었더라면 온전히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우이령 쪽 가는 길 주변의 소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다수가 웬만한 태풍이 불 때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었다. 잠풍한 날씨 탓에 눈이 빨리 녹았다. 비포장한 길은 진창이다. 길섶의 녹지
않은 눈을 밟으며 걷자니 오르막이라 미끄러워 엎어질 듯 비틀거린다. 도성사 굿당 갈림길을
지나고 우이역에서부터 MT 예약 받는다고 플래카드 광고한 청산가든 몇 미터 앞에서 왼쪽
철조망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영봉 들머리인 육모정공원 지킴터이다.
소로의 산길이 시작된다. 여태 자욱하던 안개 속에서 벗어난다. 어제 많은 사람들이 이쪽 눈
길을 다녀갔다. 신검사와 용덕사 절집 지나고도 눈길 발자국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
르막에서는 금방 비지땀을 흘린다. 겉옷 벗고 팔 걷어붙인다. 두꺼운 겨울바지를 입은 게 잘
못이다. 허벅지가 땀에 감겨 걷기에 여간 거북하지 않다.
큰 바위 아래 오목한 ‘육모정 깔딱샘’이 넘쳐흐른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여 있어 한 바가지
떠서 벌컥 들이켜니 신가이버 님의 얼음물 못지않게 시원하고 상쾌하다. 깔딱고개가 시작된
다. 침목계단을 오른다. 가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숨 고르며 온 길을 뒤돌아보는데 나뭇가
지 사이로 대단한 원근 경치가 펼쳐진다. 나는 운해 심연에서 빠져나왔고 멀리 불암산이 절
해고도다.
나뭇가지 사이를 기웃거리느라 침목계단을 뒷걸음질로 오른다. 마지막 피치 데크계단이 나
오고 육모정고개다. 예전에 이 고갯마루에 육모정(육각정자)이 있었나 보다. 내가 처음 이
고개를 올랐을 때 지현 이창열(趾玄 李昌烈, 1917~1974) 박사의 추모비를 보았었다.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한국산악회장 이은상의 글이었
다. 지금은 철거하여 없다.
막아놓은 상장능선 쪽 초소이며 눈길에 아무 발자국이 없이 조용하여 나 역시 갈등이 일지
않는다. 거기로 발자국이 있었다면 어찌할까 망설였을 것. 안심하여 영봉을 향한다. 선답의
발자국은 말간 빙판이라 비켜간다. 이제는 봉봉이 경점이다. 카메라를 꺼내든다. 뒤돌아보는
상장능선 너머 도봉산이 반갑다. 오봉이 조약돌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숨이 멎을 듯 웅장하다. 오봉샘에서 능선에 올라 오봉을 처음 보던 날 그 벅찬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토치카가 있는 503.4m봉은 암봉이다.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오른다. 영봉 뒤로 불쑥 솟
아오르는 당찬 인수봉을 볼 수 있고, 노송이 차일한 테라스에 내려서면 멀리는 수락산과 불
암산의 아미 같은 장릉을, 바로 앞에는 험준한 해골바위, 코끼리바위를 일군 설릉을 감상할
수 있다. 잠시 하늘 가린 소나무 숲속 길에 들어 눈(眼)을 휴식케 한다.
헬기장 지나고 철주 박은 쇠줄 잡고 눈 쌓인 슬랩을 오르면 사방이 시원스레 트이는 경점이
다. 내 발걸음으로 도봉산과 수락산, 불암산을 줌아웃한다. 밧줄 잡고 직벽을 내렸다가 다시
한 차례 쇠줄 잡고 슬랩을 오르면 영봉이다. 인수봉의 위용을 실감하기 여기보다 더 좋은 곳
을 나는 알지 못한다. 겨울이면 더욱 강인한 인수봉이다.
3. 육모정 고개 가는 길에 뒤돌아본 불암산
4. 수락산과 불암산
5. 왼쪽은 도봉산 오봉, 오른쪽은 도봉산 주릉
6. 도봉산 오봉
7. 해골바위 지능선
8. 불쑥 솟아오른 인수봉
9. 가운데 도봉산 신선대
10. 만경대와 인수봉
11. 인수봉
▶ 남장대(△715.5m)
북한산의 지정 등로만을 고려할 경우 나는 최고의 경점으로 인수봉을 마주볼 수 있는 영봉,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동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출봉, 용출봉을 마주 볼 수 있는 용혈
봉, 의상봉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북한산성 주차장을 꼽는다. 인수봉 숨은벽과 설교벽
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망운대,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를 한눈에 넣는 노적봉은 비지정
등로다.
영봉 슬랩을 내리고 데크계단과 박석 깔린 대로를 내리면 하루재다. 도선사 쪽에서 오는 많
은 등산객들과 섞인다. 돌길이 더러 얼어 있어 아이젠을 차고도 대부분 조심스런 걸음들이
다. 나는 웬만해서는 아이젠을 차지 않으려고 한다. 바위나 나무뿌리가 아이젠 발톱에 긁히
고 찍히는 게 안타깝고 오히려 그 보다는 겨울 산을 가는 즐거움을 미끌미끌한 발밑에서 느
끼기 위해서다.
인수암 지나고 백운산장 가는 계곡의 너덜 길은 지체와 정체를 반복한다. 계류는 등산객들의
요란스런 발걸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면에 들어갔다. 백운산장의 널찍한 마당은 양광이 가
득하여 휴식하기 썩 좋다마는 음주를 단속한다 하니 이국인양 낯설고 맨송맨송하다. 점점 산
행하기 힘든 시절이다. 철주 붙들고 바윗길이나 오른다.
백운봉 암문. 예전에는 위문(衛門)이었다. 백운대는 오르지 않기로 한다.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만경대 돌아가는 길은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잔도다. 그런 아래를 내려다보
며 가면 더욱 재미난다. 목책 난간에 다가가 노적봉과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를 자세히 바라
본다. 노적봉은 실은 변발이지만 뒷모습은 단정한 춘향이다.
노적봉 갈림길 안부를 얼른 지난다. 목책 넘어 노적봉을 들르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
해서다. 양지바른 등로는 제법 수북하게 쌓인 눈이 녹아 질퍽질퍽한 곤죽이 되었다. 등산객
들과 마주칠 때는 살금살금 걸어야지 막 걷다가는 곤죽이 방향 없이 튄다. 용암문. ‘龍暗
門’이 아니라 ‘龍岩門’이다.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동벽을 보러 일출봉 성곽 계단 길로
간다.
계단 오르는 걸음마다 경점이다. 곧추선 수려한 암벽이며, 만경대 동벽 동릉의 주상절리 험
준함, 준봉들의 일원으로 영봉(英峰) 같은 영봉, 그 뒤로 나한(羅漢)인 듯한 오봉. 오히려 인
수봉이 이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이다. 일출봉을 내리고 계속 이어지는 성곽 길은 시단봉(柴
丹峰) 동장대를 경유한다. 해돋이를 보기로는 일출봉보다 시단봉이 더 좋다고 한다.
시단봉 계단 길 내려 성곽을 벗어나서 580m봉 산허리를 길게 돌아 넘으면 대동문이다. 언제
나처럼 장터다. 나도 한쪽 자리 차지하여 점심밥 먹는다. 점심밥은 햇반과 컵라면이다. 북한
산을 우습게 본 소이다. 보온병에 커피 두 잔을 타 마실 물은 남았다. 라면은 물론 커피조차
신마담의 손맛에 당최 미치지 못하니 부실하기 짝이 없다.
12. 인수봉
13. 인수암 위쪽에서 올려다본 인수봉
14. 원효봉
15. 백운대, 오른쪽 능선에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다
16. 의상봉, 이때는 온순해 보인다
17. 노적봉
18. 염초봉
19. 용암봉과 만경대
칼바위능선 갈림길에서 성곽에 올라 발돋움하여 칼바위의 날렵한 모습을 둘러보고 내린다.
보국문을 지나 한 차례 숨 가쁘게 오르면 암봉인 615m봉이다. 빼어난 경점이다. 한풀이라도
한 듯 마음대로 내리쏟은 보현봉 남릉이며 그 자락 주변을 빙 둘러 도드라진 농담의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은 소백산의 구봉팔문을 연상케 한다.
바윗길을 두 차례 내려 대성문이다. 가파른 성곽 길을 오르면 보현봉 형제봉능선과 사자능선
이 분기하는 658.7m봉이고 그 너머가 대남문이다. 이번에는 우회길 덕 좀 보자하고 오른쪽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처음 100여 미터는 늘어진 걸음이었으나 이어 200여 미터는 숨찬 된
오르막길이라 별로 덕을 본 것 같지 아니하다. 조삼모사다.
대남문에서 문수봉 넘어 부왕동암문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문수봉 북사면 도는 길은 한겨울
눈길이다. 문수봉의 기기묘묘한 암릉 암봉을 감상하기는 부왕동암문에서 금줄 너머 성곽 위
쪽이 좋다. 금줄을 벗어나면 △715.5m봉 남장대다. 북한산 남쪽과 서쪽의 경관을 일수 책임
지는 남장대다. 그중 백미는 단연 의상능선이다. 남장대에 서면 누구라도 거기를 가고 싶어
발싸심하기 마련이다.
또한 가을이면 남장대 북릉을 타고 행궁터로 내리는 길은 단풍이 고래로 절창이다.
나는 동요 ‘기러기’에서 ‘북한산 단풍’이 여기라도 생각한다. 그 1절이다.
기러기떼 기럭 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렀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요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
부언하자면 이 동요는 윤석중(1911~2003)이 시를 지었고 곡조는 미국 작곡가 포스터의
‘Massa's In De Cold, Cold Ground(주인은 차가운 땅속에)’라는 노래에서 따왔다. 원곡은
‘기러기’와는 달리 매우 슬프다.
Round de meadows am a ringing
De darkeys' mournful song,
While de mocking-bird am singing,
Happy as de day am long.
Where de ivy am creeping
O'er de grassy mound,
Dare old massa am a sleeping,
Sleeping in de cold, cold ground.
(…)
20. 앞 왼쪽은 만경대 동릉, 가운데는 영봉, 그 뒤는 도봉산 오봉
21. 왼쪽부터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 남장대
22. 칼바위봉
23. 보현봉
24. 왼쪽부터 형제봉, 백악산, 인왕산, 안산
25. 문수봉
26. 앞은 나월봉, 왼쪽은 용출봉, 오른쪽은 원효봉
27. 용출봉
▶ 의상봉(501.5m)
남장대 슬랩 내리는 길이 정체다. 대전 늘뫼산악회 대부대가 원행 왔다. 나월봉까지 줄이 길
게 늘어섰다. 철주 쇠줄을 안팎에서 붙잡고 교행한다. 나한봉의 나이프 릿지 닮은 전망 좋은
능선은 걸음걸음이 사진 찍는 포인트라서 아예 지체한다. 원근고저 전후좌우로 펼쳐지는 가
경에 그들이 감탄을 연발하여 나도 덩달아 새삼 감탄한다.
나월봉의 금줄 친 반침니 오르막과 이어지는 절벽의 좁은 테라스 트래버스 구간은 등산객들
이 밀려 덤벼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래쪽 우회로로 간다. 우회로도 슬랩에 눈이 살짝 깔려
있어 지나기가 약간 까다롭다. 길게 돌아 나월봉 주릉에 올라서고 가파른 내리막이다. 북한
산 주릉에서 이처럼 깊게 뚝 떨어지는 내리막은 드물다. 숫제 주저앉은 자세하고 내린다.
안부는 부왕동암문이다. 증취봉 오르는 길도 손맛 보는 바윗길 슬랩이다. 증취봉 정상의 너
른 암반에 들러 지나온 능선을 둘러보고 간다. 내가 산을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대부분의 등
산객들은 의상봉 쪽에서 온다. 내 먼저 길을 양보하여 그 틈에 잠시 가쁜 숨을 고르곤 한다.
용혈봉. 암봉에 올라 의상능선의 1,275m봉이라고 할 수 있는 용출봉을 감상한다. 언제보아
도 단아한 모습이다. 어찌 보면 돌탑을 쌓아올린 것 같다.
용암봉 암벽을 트래버스 하여 내리는 길도, 용출봉에 다가가는 암릉과 철계단도 여러 등산객
들과 마주쳐 더딘 걸음이다. 용출봉 내리는 단석 근처의 바위 슬랩이 쇠줄 잡고도 미끄러워
까다롭다. 의상봉이 눈으로는 가깝지만 바윗길이라 발로는 멀다. 뚝 떨어져 내린 안부는 ╋
자 갈림길에 가사당암문이 있다. 바로 오른쪽 사면에 터 잡은 국녕사를 오가는 소로는 눈길
이다. 왼쪽은 백화사로 간다.
의상봉. 근경인 북한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북한산 최고의 경점이다. 여기서 보는 원효봉,
염초봉, 노적봉, 만경대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봉능선, 응봉능선, 용출봉 서릉이
장릉 장성이다. 의상봉에서 매운바람 맞으며 마시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이 비길 데 없는 달콤
한 맛이다. 하산. 눈이 시도록 사방 둘러보고 내린다.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그 많던 등산객들과 헤어진 혼자 가는 산행이다. 슬랩이 눈이 다 녹았
어도 미끄러운 건 숱한 발길로 닳아서다. 몇 번 넉장거리하고 나서야 낮은 자세하여 재며 간
다. 오후 들어 꾸무럭한 날씨라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의상봉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발걸음
이 급하다. 이제 눈 들어 볼만한 경치는 없다. 막 간다.
산길을 빠져나와 산성 대로에 내려선다. 만추의 스산한 해거름이다. 북한산성 주차장은 의상
봉을 비롯한 북한산의 준봉들로 둘러싸인 요처다. 고개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몽블랑을
위시한 설산 준봉들로 둘러싸인 샤모니를 똑 닮은 그 미니어처다. 카메라를 비로소 배낭 속
에 넣고 버스승강장을 향한다.
28. 맨 왼쪽은 염초봉, 가운데 앞은 노적봉
29. 강아지바위
30. 용출봉과 의상봉
31. 의상봉과 원효봉
32. 의상봉
33. 원효봉
34. 앞 왼쪽은 용출봉, 멀리 가운데는 비봉, 가운데 능선은 응봉능선
35. 앞 왼쪽은 원효봉
36.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용출봉(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