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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필요한 신앙인의 덕목이 있습니다.(행18:18-22)
2026, 10/2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8:18-22절 말씀으로“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필요한 신앙인의 덕목이 있습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얼마 전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다투길래 가봤더니 빈자리에 내 차를 대겠다고 선점하고, 주차장이 비었으니 먼저 온 사람이 주차해야겠다고 싸웁니다. 둘 다 맞는 말 같고, 조금만 양보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서로 내 이익이 우선이라는 이기주의로 싸움이 일어난 겁니다. 언제든 이런 상황은 내 일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이런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 좋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평안하고 행복한 삶 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에서 아내의 내조도 남편의 외조도 필요합니다.(18절)
둘째로, 참된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19절)
셋째로, 신앙인은 교회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22절)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바울이 고린도 사역을 마무리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에 에베소에서 브아 부부와 함께 복음을 전했는데, 에베소는 본래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반대로 뜻을 접은 곳입니다.(행16:6)
바울은 이 에베소에서 약 2년 3개월 정도 복음을 전하다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후 안디옥 교회로 귀환함으로써 49-52년까지 약 3년여간의 2차 전도 여행은 끝냅니다.
그러다 바울은 얼마 후 3차 전도 여행을 떠나는데, 이처럼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자신의 평안함을 조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가 됩니다.
우리는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복음 전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롬1:14-15, 10:14). 이 복음 전하며 은혜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신앙생활에서 아내의 내조도 남편의 외조도 필요합니다.(18절)
본문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아멘.
하나님은 18절에서 믿음으로 오직 주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던 신실한 한 부부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이 부부를 만나 함께 생업과 복음 전했는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도 이들 부부는 사도바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납니다.
이들은 원래 본도 출신 유대인으로 로마에 거주하던 중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할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이주해 왔다가(행18:2) 사도바울을 만나 고린도에서 약 18개월을 함께 사역했다가 바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났는데, 이는 사도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부부는 죽을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합니다. 이 과정에서 항상 즐겁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실은 대부분 많이 다투고 싸우고, 심각하게 충돌하면서 한평생 살아가는데, 부부가 싸우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서 궁금한 게 그렇다면 브아 부부는 싸우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왜 안 싸웠겠습니까?
싸우지만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이 우선이고, 주의 일이 우선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다 보니 가능한 한 싸우지 않거나, 싸워도 빨리 화해했을 것입니다.
정말 이들 부부는 주를 믿는 모든 가정의 좋은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이들 부부의 이름에서 아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만 그런 게 아니라 신약성경에 이들 부부의 이름이 모두 6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4번이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여러분!!! 당시는 모든 게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대로 여성은 애 낳는 도구에 불과했던 시대에 그녀의 이름이 먼저 언급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은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녀가 어떻게 했길래 성경은 그런 파격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부부가 주 앞에서 열심히 헌신했어도 브리스길라는 더 큰 믿음으로 더 많은 일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신앙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열렬하다.’고 말했는데, 실제 교회에서 믿음이 좋거나 신앙에 열심을 내는 쪽은 남자보다 여자인 경우는 대부분입니다. 브아 부부처럼 남편보다 아내가 더 열심이고 적극적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아굴라의 신앙이 브리스길라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만약 남편이 아내의 신앙생활을 도와주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굴라는 아내가 열정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굴라는 자기 아내가 사도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고, 밀려드는 신도들을 돌보며,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을 제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아내를 도와주고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굴라는 브리스길라가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외조(外助)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심지어 바울조차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던 시대에 아내의 이름이 먼저 기록된 것은 그만큼 남편 아굴라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특히 남편되신 여러분!!! 여러분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아굴라가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는 안 하면서 열심히 하려는 아내에게 질투심으로 은근한 압박을 가하여 교회에 거리두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오늘날 남편들은 생업과 사회 활동 때문에 주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관계로 오늘 아굴라처럼 열심 있는 아내가 주를 위해 더욱 헌신하도록 외조한다면? 이것도 주의 일을 하는 한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기도하는 시간도, 주께 헌신하는 시간도 부족한데, 그 부족한 부분을 배우자가 채워준다면 가정이 복 받는데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요?
다윗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은 원래 나발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도와주었음에도 나발은 다윗이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지 않아 위기가 닥치자 아비가일이 남편 대신 다윗을 도움으로 가정의 큰 위기를 해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기도와 충성과 헌신으로 내 가정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면 남편도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충분히 외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남편이든 아내든 주의 일을 하기 위해 가정에 충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앙인은 가정일도 책잡히지 않도록 잘 하셔야 합니다.
어쨌든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수하고 맘에 안 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배우자는 서로를 비판하고 무시하기보다 이해하고 도와서 일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벧전3:7절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남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아내의 내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남편 또한 아내를 외조해야 합니다. 아내의 못다 한 학업이나, 자아실현을 돕거나, 아굴라처럼 아내가 주의 거룩한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서 부부간에 서로 내조와 외조를 통해 주의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참된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19절)
본문 1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아멘.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따로 쉬도록 다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만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합니다. 우리는 이 19절에서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라는 바로 이 부분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함께 온 이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에게 별도의 장소에서 쉬도록 배려하고 혼자 유대인 회당으로 변론하러 갔는데, 사실 사도바울이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을 찾은 것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낯설고, 비판적이며 전투적인 유대인을 만나려면 가능한 한 지지자를 많이 데리고 가는 것이 유리할 텐데도 지금 부아 부부를 쉬게 하고 그들에게 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사도바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데, 그가 홀로 회당에 들어간 것은 아마도 힘들게 에베소까지 따라온 브아 부부를 쉬도록 배려했고, 또 혹 있을지도 모를 유대인들의 돌발적 행동에서 이 부부를 보호하려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가 손해를 보고 희생할지라도 자기를 따르던 형제와 동역자들을 배려하고 보호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바로 이런 모습은 모든 지도자가 가져야 할 태도고, 모든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자세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몸에 배어야 합니다. 주님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도 사랑하고 배려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하물며 함께 복음을 전하고, 주를 위해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공동체 형제라면 더더욱 그래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바울의 마음과는 반대입니다. 국가 지도자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일의 결과가 나쁘면 주변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보니 심약한 자들은 자살을 합니다. 이런 자는 지도자는 물론이고 팔로우도 될 수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인정과 믿음입니다. 이런 덕목은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이런 기본적인 덕목도 갖추지 못한 자가 국가나 교회 지도자가 된다면 전제 구성원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위대한 지도자인 다윗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백성들이 고통당할 때 백성들을 변호하며 대신 자신과 아비의 집을 징벌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삼하24:17).
또 주님도 대제사장이 보낸 병졸들이 당신을 체포하러 왔을 때 제자들 뒤에 숨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며 제자들을 안전하게 보내달라고 부탁하십니다(요18:8).
그래서 여러분도 만약 세상이나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될 때 결코 아랫사람을 무시 홀대하거나 자신을 위한 방패막이로 삼으면 절대 안 됩니다.
오늘 사도바울처럼 형제를 배려하고, 희생하며,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세상도 칭찬할 것이요 하나님도 우리를 더 높이 올려주십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백성들 뒤로 숨었던 사울 왕은 낮추시고(삼상15:20-23), 양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맹수와 싸웠던 다윗은(삼상17:34-35) 크게 높여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사람으로 책임을 다하는 신실한 신앙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신앙인은 교회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아멘.
사도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자른 후 에베소를 거쳐 가이사랴에 상륙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아주 인상적인 사도바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가이사랴에 도착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항상 분주하고 바빴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선교를 마치면 항상 예루살렘 교회를 먼저 찾아가서 선교 보고를 했고, 그런 후에 안디옥 교회, 다시 말해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선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끊임없이 기도해 준 모 교회,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사도입니다. 그것도 이름만 사도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 많이 수고했고, 신학적 지식으로도 최고이며, 은사나 능력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정말 최일선에서 복음을 전하며 주의 나라 확장을 위해 확장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최고의 사도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그토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모 교회를 두고 먼저 예루살렘 교회로 가서 인사하고 보고를 올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도 전도 여행을 나설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항상 그렇게 해왔는데, 여러분!!!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업적이 좋아도 신앙인은 교회의 권위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교회의 권위에 대한 존중함이 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히13:17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질서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 또는 업적이 뛰어나면 이걸로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고 넘어서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사람의 권위는 결코 교회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 재능이나 기여도 경험 등을 이유로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사울왕처럼, 엘리의 두 아들처럼 신앙인으로 끝까지 살아 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목회자의 연령이 나보다 어리거나, 내가 볼 때 경험이 적거나, 많이 미숙하거나, 다소 능력이 떨어질 때 교회의 권위를 넘어서려는 교만이 싹틉니다. 그러나 이걸 이겨야 합니다. 목회자와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셨고, 백성들을 천국으로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 권위를 무시하거나 불순종하는 것은 곧 그를 세우신 하나님과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탁월함에도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여 따랐던 사도바울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교회 권위와 가르침에도 순종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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