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살전5:19절, 딤전1:19절
소주제3: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지요?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까지는 다 좋아하고 믿는데 성령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 어떤 분이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안 믿어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신이 사람의 아들이 있냐고...
안 믿어지면 성경을 자주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신다..
처음에 누가 믿어지겠습니까.. 처음에 남녀가 만나서 사랑한다고 그다음 날 결혼합니까..
5,6년 사귀면서 서로 테스트 합니다. 결혼해도 될 만한 사람인가.. 믿을만한 사람인가..
우리가 남남이더라도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 그 사람이 어떠냐..
완전히 의지하게 되고 의탁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도 무조건 믿으라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신뢰하도록 은혜를 주는지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은혜를 경험하니까 여러분이 코로나를 이기고 지금까지 예배를 드리고 주님을 찬양 하는 겁니다. 그 은혜와 사랑 없이는 안 됩니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탁하고 믿도록 전적으로 신뢰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95%를 신뢰하면 5% 때문에 가라앉습니다. 100%를 신뢰하도록 얼마나 은혜를 많이 주는지 모릅니다.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자명하고 너무나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땅을 보면서 모르는 것이 어디 있으며 안보는 것이 뭐가 있으며 안 듣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오죽했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눈이 너를 바라보며 얼마나 아름답게 여깁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귀는 너의 신음소리조차 응답하신다는 겁니다.
우리가 너무 힘이 들 때는 기도가 안 나옵니다. 신음소리만 납니다.
가슴앓이를 하는 소리를 들으시면서 응답하십니다.
어떤 때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풀리지 않는 삶속에서 힘들어할 때 아침이 되면 누군가가 일어나라고 합니다. 일어나서 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새벽에 새벽기도 나가라고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깜짝 놀라서 일어나면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면서 주님을 신뢰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자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고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환영합니다. 우리에게 오시옵소서.. 초청해야 성령님은 오십니다.
만약에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본인이 영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성령님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하면 성령이 임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바울이 열심히 기도할 때 앉아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우리도 한참 기도할 때 입에서 방언이 나옵니다.
저도 처음에 하늘 산 기도원에서 방언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하나의 징조로 방언이 나오기도 하고 몸이 떨리기도 하고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찬양을 부르기도 하고 워십을 하기도 하고 예언을 하기도 하고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때 사람들이 잘못해서 보면서 오해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가 그리워지고 말씀이 그리워지고 찬양을 하기 시작하고 가정예배가 시작 됩니다.
가정에서 항상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이렇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다시 말해서 소멸이라는 것은 없어져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성령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라든지 성령의 감동이라든지 성령의 역사하심이라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든지 성령의 역사하시는 모든 현상이 사라집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기도할 때..
하나님.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가져가실지라도 저는 감사하지만 성령만은 거두지 마옵소서..
성령을 거두지 않도록 다윗은 기도합니다.
다윗이 임금이 왕이 성령이 뭐길래 모든 것을 다 가져가더라도 성령만은 거두지 말라고 합니까.. 성령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때는 성령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지도 못하고 낳는 장면도 못 봤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분, 거룩하신 분.. 이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로 부르도록 성령이 이끌어 주시고 롬8장에 보면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롬12장에 보면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주라 부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보지 못한 예수님을 주님, 주님 할 때는 성령이 임한 겁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면 성령이 임하지 않은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입니다.
온 인류의 주이고 온 세계에 주님이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주님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처음에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 사함을 받게 되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인을 치는 겁니다.
성경에 인을 친다는 말이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인은 도장을 찍는다는 겁니다.
너는 내 것이야..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서 너는 내 것이야..
어둠의 권세나 사단이 뱅뱅 돌면서 유혹은 해도 어떻게 못 합니다.
하나님의 권세아래 놓여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지옥의 권세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초등학생 어린이가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마귀가 교회를 다닙니까..
마귀는 교회를 못 다닙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할 때는 성령을 소멸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유를 알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도록 따라서 살게 되지만 만약에 교회가 성령을 거부하거나 거역하거나 감동을 죽이거나 감동을 소멸하거나 인도를 따르지 않거나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면 성령은 소멸됩니다.
임재가 없고 그분의 역사가 없고 감동이 없고 예배가 약해지고 찬양도 없어지고 기도가 약해집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과 인간의 지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롬8장에 보면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돕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는데 성령이 도와줍니다.
성령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할것인가를 알려줍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힘이 없고 여당이 약해서 넘어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일어나면 힘을 얻습니다.
탄력을 받게 되고 통찰력과 지혜와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성령을 소멸하게 되느냐..
성령이 없으면 영적생활이 무감각해집니다.
무지해집니다. 무분별해집니다. 나중에는 성령도 모릅니다.
1. 소멸하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이~
1)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2) 감동을 죽이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는데 제가 죽였어요.. 진짜 하나님의 감동일까요..
진짜 하나님의 감동이면 죽일 수가 없습니다. 감동은 훅하고 들어왔는데 너무 강하고 크고 확실해서 부인이 안 됩니다. 감동은 하나님의 숨입니다. 훅하고 들어왔는데 어떻게 죽입니까..
예영수 박사님이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큰 부흥이 일어날 때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서 넘어지고 울고 소리 지르고 별일이 다 일어났을 때 성령의 큰 역사 때문에 큰 부흥이 되었는데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한국이 참 안타깝다..
또다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큰 부흥이 일어나도록 성령의 감동을 죽이지 않도록 감동을 한번 죽이면 성령이 가만히 계십니다. 또 죽이면 가만히 계십니다. 그런데 세 번 죽이면 그 사람에게는 감동이 없어집니다.
양심이 마비가 됩니다. 하나님을 성령을 자꾸 거역하는데 어떻게 양심이 살아 있습니까..
죄를 짓는 것도 안 되지만 죄를 짓고 양심이 파선 될 때는 회개를 안 할 때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 거짓말하고 죄를 짓 습니다.
물건 팔 때도 죄를 짓 습니다. 거짓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예수님의 거룩한 피가 우리 마음을 씻어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감동을 주실 때 감동을 억눌리면 안 됩니다.
목사는 감동 따라 살고 감동으로 목회를 합니다.
내 생각으로 내 지혜로 내 지식으로 하면 못합니다.
모든 말씀에 감동이 오지 않으면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안주시면 밤새 잠을 못잡니다.
감동 없이는 못합니다.
목사는 감동을 죽이면 자신의 양심도 파멸되는 겁니다.
2) 감동을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경홀히 다루지 말라는 겁니다. 갈라디아서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홀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감동은 작은 것 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도하고 있습니다. 감동을 따라 인도를 받으면 틀림없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어제 미술을 공부하러 가는데 선생님께 드릴 김장김치와 삼겹살을 사가고 싶어서 사갔습니다.
선생님 손자가 휴가를 왔는데 다음날이 손자 생일이었던 거에요.
미술선생님이 깜짝 놀라는 겁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우리 손자가 삼겹살을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마음으로 성령님 감사합니다. 감동을 따라 했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사람을 만나도 어디를 가도 그렇습니다.
은행을 가든 구청을 가든 세무서를 가든 알아서 다 일을 해줍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놓치면 하루 종일 힘이 듭니다.
성령의 감동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3)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엡4:30절 에베소 교회가 서로 싸우고 욕하고 하니까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 성령 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 치심을 받았다.. 같은 자녀끼리 왜 이렇게 싸우느냐..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라.. 성령이 싫어하는 죄를 저지르지 말라..
성령의 역사할 수 없는 일을 하지 말라..
4) 성령을 훼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12:31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성령을 훼방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일을 훼방하는데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신하여 용서를 한다고 하겠습니까..
사람과 사람끼리 싸울 때는 하나님이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잘못 했을 때는 누가 하겠습니까.. 성령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엡2: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령을 거역하고 성령을 근심되게 하고 성령의 감동을 소홀히 여기고 경홀히 여기고 감동을 죽이고 무지하게 무분별하게 무감각하게 되어 버리면 성령을 계속 거역하고 성령을 계속 훼방하면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믿음이 파선됩니다.
깨져서 가라앉아버립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장할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
성령 충만 해라.. 그래야 악하고 빠른 세월을 지혜롭게 살 수 있다..
성령을 소명하지 맙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