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권위
인간의 역사는 앎의 투쟁의 역사이며, 앎의 투쟁의 역사는 권력 투쟁의 역사이다. 따라서 권력의 행사 자체가 안정되고 순조롭게 진행되면 그 사회의 평화와 삶의 풍요로움이 이루어지지만, 권력의 행사 자체가 안정되지 못하고 위태롭게 진행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삶의 빈곤화가 진행되기 마련인 것이다. 권력은 삶의 본능의 옹호이며, 모든 민주주의 형식들은 반권력적인 생명부정에의 의지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어느 때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사상의 칼날을 지닌 자가 그보다 못한 자에게 패배를 하고 면종복배를 한 적이 있었으며, 또한 언제, 어느 때 그 권력(앎)의 무모함을 역설하면서, 그토록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교육제도를 폐기한 적이 있었던가? 앎과 권력은 오직 불평등 속에 기초해 있으며 폭력적인 서열제도만을 확대 재생산해 내게 된다. 일류와 삼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문화선진국과 문화후진국, 선과 악, 우와 열, 백인과 흑인, 고귀함과 비천함, 좋음과 나쁨, 강대국과 약소국,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남과 녀, 상사와 부하, 장군과 병졸, 대통령과 국민 등, 이 모든 관계들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권력은 노골적인 힘을 드러내고, 권위는 그 노골적인 힘을 은폐한다. 권력은 야만적인 나체주의자이며, 권위는 문화적인 장식주의자이다. 예컨대, 그는 ‘권력자로서, 학자로서, 회장님으로서,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권위가 있다’고 할 때나, 또는 그 반대 방향에서, 그는 ‘권력자로서, 학자로서, 회장님으로서,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의 권위가 없다’고 할 때의 그 권위는 바로 그의 옷이며 문화적인 표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권위란 그에 대한 세간의 정평을 뜻하게 된다. 삶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자는 권위를 세울 수가 있지만, 삶의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자는 권위를 세울 수가 없다.
----반경환, [사색인의 십계명 제2장 ]({행복의 깊이 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