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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보는 민족의 기원
시작하며
한국의 역사는 미스테리입니다. 부족한 기록, 부족한 유물 사이에서도 감춰진 역사의 거대함이 느껴집니다만, 항상 그 연결고리의 부재에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연재될 제 글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과 유물에 저의 상상력을 더하여 한국의 고대사를 완성해 보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분에 따라서 설득력 있는 부분도 있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일단 연결하여 완성한다는 목표가 있었으므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부분은 많은 연구를 진행 중이시고, 또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상식과 다를 수도 있고, 한국인으로써 기분 나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는 의미로 재밌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이와 같은 역사 팩션을 쓰게 만든 몇 가지 기본 자극제가 있었습니다.
1. 황룡사 9층 목탑의 존재입니다. 이들이 밝히고 있는 韓겨레의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韓겨레와 전혀 다름을 암시합니다. 선입견을 깨고 있습니다.
2. 삼국사기에 우리민족이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의 자손이라 써 있는 부분입니다. 중화사상으로 해석해왔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3. 조선 천독과 인도 천독은 같다는 문구입니다. 이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기록임에도 애써 무시하거나 풀지 못해온 부분입니다.
4. 진한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편두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를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기록과 유물에 수없이 퍼져있는 퍼즐을 저의 의도대로 맞추어가며 풀어가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역사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 발음, 기본적인 단어 등이 중요한 열쇠를 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였습니다.
크다, 밝다, 희다, 평평하다, 위, 능, 땅, 쇠, 금, 새 . 언덕, 땅 , 벌, 달 등의 기본적인 단어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힌트를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 전문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제 글의 기본은 우리를 구성하는 기본 부족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거대한 역사에 대하여 논할 것입니다. 이들은 섬서, 하남, 하북, 오르도스의 황하지방이 우리 민족의 근원지가 될 것이며, 산동, 요령, 절강성 등등도 물론 중요한 뿌리가 될 것입니다. 하∙은∙주 춘추전국에서 漢나라까지도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이들에서 뻗어나간 대월지 소월지에 의한 천축국도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음을 논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과 한국의 역사 미스테리고 이들 기본 민족에 의해서 풀어가면서 다른 각도의 시선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글을 쓰면서 재밌었던 에피소드로는, 기본적인 골격을 마치고 부듯하지만,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동트는 새벽에 사무실에서 나오던 참이었습니다. 일단의 글을 마쳤기에 기쁜 마음으로 나오던 참이었는데, 사무실 밖에 까치가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절보고는 계속 따라 다녔더랬습니다. 첨보는 까치가 종종걸음으로 사무실 의자까지 쫒아 들어와 손과 머리에 앉기 까지 하더라구요. 한참 새토템에 관련하여 편두를 쫓아서 글을 마치고 나와서 까치가 절 반겨주니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역사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이유로 부분 부분 부정확한 부분에 대하여 양해를 구합니다.
01. 한민족의 기원
(1) 홍산 문명
(2) 대문구 문명
(3) 앙소 문명
(4) 수메르, 인더스 문명
02. 오르도스와 청동기문화
03. 오르도스와 삭방
04. 아사달과 조선
05. 조선, 숙신, 낙랑
06. 하은주 / 춘추전국
하은주 / 춘추전국
하∙은∙주는 중국 역사의 기원으로써 삼황오제에 의해 문명이 시작된 후 최초의 나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夏는 유물/유적으로는 확인되지 못하고 商周부터 유물이 확인되어지고 있습니다.
A. 夏
사기의 夏本記에 의하면 하왕조 우왕은 BC 2070 개국하여 황하강 홍수를 다스리는데 노력하여 그 공으로 왕이 되었다고 나옵니다. 이때부터 왕위가 상속이 되어 진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夏왕조와 이리두문화(하남성부근, 청동기 문화)라고 하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기록상으로 황제 헌원을 이어받는 夏 왕조의 최초 시조는 복희와 여와의 만남으로 부터 찾아야 할듯합니다. 夏본기에서 보듯 이들의 중심 거주지가 황하의 섬서, 하남 지방으로 이리두 문화가 바로 이지역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앙소문명이 바로 이지역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앙소는 채도 그릇과 물고기 숭배로 유명한 문명입니다. 이 물고기 숭배는 스키타이, 인도북부, 수메르 등 많은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쌍어 숭배 (혹은 일목삼신어)는 복희와 여와 (동과 서, 음과 양)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반인 반수(뱀) 모습의 복희-여와의 컴파스와 자를 든 모습은 동서양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들의 만남을 쌍어로 표현하며 이들 동이족의 선조라고 불리우는 복희-여와는 뒤엉킨 물고기 형태의 쌍태극문양, 삼태극 문양으로 한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에게 남아있습니다. (스키타이, 월지, 켈트 등등도 물고기 숭배를 합니다.)
夏는 옛 발음으로 gara/gyara 라고 읽으며 ‘ 크다, 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夏족에 의해 문명을 이룬 나라들끼리 "가라" 라고 자칭하며 스스로 겨레라는 의식을 가지게 하는 계기도 바로 夏(가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夏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周나라의 경우, 희姬성을 쓰며 韓도 같은 의미로 사용했는데, (어머니계 성, 아버지계 씨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 역시 韓도 하르/한 또는 가라 라고 읽고 있습니다. 복희는 복이란 발음은, 복/반/편/벌 등의 발음은 역시 크다, 밝다, 편편하다 라는 뜻을 가지며, 박트리아, 발흐, 페르시아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여아 (오르도스/알타이)에 비해 서구의 세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서구적인 용모를 가졌던 이들을 弁韓이라 칭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합니다. 공손씨, 희씨, 헌원씨 등은 황제 헌원을 조상으로 삼고 있는데, 한국의 변邊씨 또 한 헌원을 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弁韓의 변/번 이란 발음이 夏족의 판/변/박 의 발음과 닿아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복희와 여와의 결합은 희/기+아르 = 기아르/가라 의 발음으로 남고, 여와와 염제(단족, 예맥)의 결합이 알 + 타이 = 알타이 로 남으며, 여와자체로는 오르/위/아족으로 불리며, 염제(예맥)자체로 代족, 毒, 蜀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봅니다.
韓의 경우도 夏처럼 gyar/gara 라고 발음된다고 하였는데 韓의 글자구성도 日 + 韋 입니다. 즉, 희/기 + 위/아르 ...의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아르/가라 라고 발음되는 글자로 적합해 보입니다.
B. 商
상은 BC 1600 년에 황하강 지역에서 흥하여서 BC1046 년에 周무왕에게 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한자의 기원 갑골문으로도 유명하지만, 夏와 周와 다른 이질 부족 (동이의 선조)로도 유명한 고대국가입니다. 처음 발흥이 황하강 지역이지만, (앙소 - 이리두 문명지역) 후에 은허라고 불리우는 하남성 안양 부근으로 천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귀족들의 반발도 강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곳 지배층의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商은 헌원의 자손인 小昊金天을 선조로 삼는다고 나오는데, 바로 金 + 天 의 결합이 북방에서 내려온 사카(삭족)과 단(염제, 예맥)의 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숙신족과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산동지방에서 앙소지역의 예처럼 일단의 외부 문명의 유입으로 ( 수메르일부지역과 매우 유사한 내용) 특이한 문명을 이루는데, 소위 대문구 문명 (후에 산동 용산 문명)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문구 문명은 태양숭배, 새숭배, 편두, 발치 등으로 유명하며, 이런 이유로 商나라 계열의 나라들에서 현조(검은새)가 항상 등장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산동지방에 거주하던 상의 부족이 鬼방이며 이들이 염제를 도와 헌원과 싸우다가 패하고 남중국으로 내려가 淮夷가 되었다는 치우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회이는 묘만의 선조가 되며, 후에 倭의 선조가 됩니다.) 鬼方과 淮夷는 상나라의 주요 구성원으로 이 두 부족이 합쳐서 魏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鬼 + 倭)
후에 이 지역에 기자조선이 내려와 나라를 세우는 것도 우연이 아닌 같은 뿌리의 나라에 건국을 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처음 도읍지인 황하지방은 역시 앙소문명에 영향을 받은 알타이/오르도스 계통에서 은허로 옮기면서 좀더 대문구의 영향을 받은 사카족 계통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들 계통 나라에서 현조(제비나 까마귀, 태양조인 삼족오도 소호금천계통) 가 신화로 등장하며, 이들이 알을 낳는 건국신화 등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예맥/단족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편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기자조선을 이어받은 쿠샨, 진한 ,훈족)등에서 편두를 보이는데, 이것으로 이들의 연속성을 가진 고대국가가 어떤 것인지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학자에 따라, 산동 대문구의 편두와 진한의 편두는 전자는 앞뒤를 판으로 눌르는 형태고 진한은 돌로 누르는 형태라 산동의 동이와 한반도의 동이는 다른 것이라 단정하기도 하지만, 두개골에 변형을 주어 새를 형태로 만들어 숭배하는 공통성만으로도 둘 간의 관계성은 충분하다고 보입니다. 단지 그 변형방법은 수천년이 흐르는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매년 유행도 변하는데, 수천년 동안 두개골 변형방법이 똑같을 거란 생각자체가 너무 고정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두 태양숭배, 새토템, 비슷한 건국신화, 기록상의 연관성..등을 따질 때 상,조선, 진한, 신라 등의 관계를 부정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특히 이 지역에서 발견된 해+달+산 의 문양은 몽골을 위시하여 동이계열 국가에 많이 나타나는데, 아르+ 사르(사카) + 다르 (단) , 이 세종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대문구의 인적구성)
C. 周
주나라는 夏를 계승했다 하며 황제 헌원의 성씨 姬를 왕성으로 씁니다. 그리고 왕성으로 韓을 혼용하는데, 이것은 夏와 같은 발음을 가진 韓으로써 日 + 韋 = 히 + 위(아르) = 기아르/가라, 에서 가라, 한, 위, 귀, 기 등의 음가가 모두 이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鬼, 箕, 魏, 爲, 貴 등 이와 연결되는 성씨나 나라들을 지속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역시 섬서성 위수지역에서 발흥하여, 夏와 비슷한 문명을 가졌음을 알 수 있고 북으로는 여전히 鬼方, 서로는 羌戎 등을 부족을 거느리며 후에 제후국으로 발전하여 춘추 전국시대를 여는 장본인입니다. 이들 모두 대규모 노예국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바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달랐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토착민/고 아시아인등을 이들 夏商周 인들이 지배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商이 스키타이,알타이족의 언어는 역시 알타이어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이나, 夏어는 수메르/이란어에 가까운 SVO 형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漢文이 이들의 어순에 맞추어 쓰여진게 아닌가 합니다. 즉, 복희와 여와중 복희라고 불리는 세력이 서쪽에서 온 세력이고 여와가 알타이계통의 언어를 쓰는 종족인데, 이들 둘이 합해지면서, 어떤 식의 언어를 썼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일단 한문의 어순은 이들의 어순을 따른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秦이 통일하고 나서 분서갱유를 벌인 이유도 이러한 언어적 혼란과 이방 민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들 姬/韓 계통이 동북아에서 수천년을 살면서 결국 언어적으로 알타이에 동화가 되었을 거라 생각되며, 그들의 흔적이 한국어나 일본어에 남아 수메르, 혹은 타밀(역시 수메르)와 닮은 어휘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韓어, 사카어, 알타이어가 섞인 한국어/일본어는 일반적인 여타 알타이어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D. 춘추전국
周나라 중심의 제후국 체제에서 각 제후들의 힘이 커지면서 각자 왕을 자처하며 패권을 다투는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후국 시절은 황성 姬씨가 다스리는 나라들과 비姬성의 국가들로 나눠지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晉과 秦 입니다. 그 외에 오월은 倭인으로써 우리역사에 등장하며, 燕 또한 요령에 근접한 국가로써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국과 연관이 큽니다.晉에 대해선 후에 자세한 설명이 있겠으나 이들이 韓, 魏, 趙 로 나뉘면서 부족간의 특성이 다름을 보여주고, 韓의 경우 周의 姬성계열 제후국이였으나, 조선 準왕이 韓을 점령하고 韓왕을 자처하다가 辰으로 고쳐 魏세력과 함께 이동하게 되고 후에 이들이 월지국이 됩니다.
<중국고금지명사전>에 기록된,<韓古國名, 在今河北固安縣東南, 漢之三韓, 卽其後, 左傳所謂 晉應韓>
이곳에 남은 이들이 바로 漢을 세우게 되니, 韓은 오래된 국명이고, 하북 고안현 동남에 위치하며 漢 의 三韓 이며, 좌전에서 그 장소를 이르되 晉의 韓이라 한다....라는 대목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秦은 서융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원에서 이동한 것으로 되어있으며, 최초 이들이 살던 곳이 大丘(犬丘)였던 점, 현조가 건국신화로 이용되는 점, 소호금천을 시조로 삼는점 등등, 사카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후에 신라형성의 중요한 구성원이 됨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역시 이들의 언어도 알타이 + 韓 어가 아니였을까 싶으며 한국어와 매우 닮아 있을 거라 봅니다.
吳越은 太伯 을 선조로 한다는 점, 문신 등의 풍습 등 倭와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데 기록상으로도 왜는 오월을 조상으로 한다고 나옵니다. 또 치우의 전설을 보면 탁록대전에서 패하고 이곳으로와 나라를 세우는데 이들이 묘만족이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상나라시절의 이 지역은 淮夷가 살던 지역으로 淮의 옛 발음은 ghrweǝ̄/ɣrweǝ̄j 로써 그뤄/흐뤄 에 가까운 발음입니다. 후에 huai 로 불리 웁니다. 옛 발음은 역시 북쪽의 鬼方과 비슷한 발음이나 (치우는 동이/귀방세력?), 남만의 발음으로 변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며, 倭와 매우 비슷한 음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바로 이들 상나라 세력인 鬼(方)과 倭 (淮夷)가 합쳐져서 魏족을 형성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후에 바로 이들 상나라 세력들이 있는 자리에 기자조선 준왕이 와서 韓을 세우는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7. 三晉에 관한 설명..시작하며..
진(晉)이란 나라는 夏나라의 제후국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 중 하나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晉 황제의 성씨인 姬씨 계열 제후국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바로 三晉이 三韓의 모태라는 겁니다. 이들이 조선/기자조선과 秦유민과도 합쳐지면서 三韓 이 태어난다는 과정을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즉, 이들로 부터 후에 마한/진한/변한이 갈라져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중심 역활을 하는 세력으로써 月枝, 韓, 辰, 魏 /貴, 등의 나라, 혹은 성씨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랫 글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하겠으나, 위만에게 밀려온 조선準왕이 韓(晉) 을 점령하며 왕을 자처하는데, 이들이 곧 辰국으로 국명을 바꾸게 되고, 다시 西進 하면서 주변의 月氏 세력을 포함하면서 세력이 커지면서, 大月枝 로 거듭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입니다.
신라의 조상이라는 苗 (옛 발음 mraw)족의 명칭 자체가 바로 月氏(옛 발음 ngwat + ge ) 의 月, 月枝 (옛발음 ngwat + ke )의 月 과 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신라의 조상이 묘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기록은 바로 苗族이 삼한을 형성하게 되고 또한 이들이 월씨/월지등도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魏 나라도 ‘크다/높다/위’ 라는 글자를 택하였고 趙나라의 경우 城地을 받으며 국명과 성씨를 받은 경우지만, 趙나라도 유독, 馬과 관계가 깊고 无 라는 성씨도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충 시나리오를 한번 짜본다면, 三晉이 秦에게 망하고 다시 秦이 망하고 나서 조선의 준왕이 韓(晉)을 정복하고 삼진을 晉에서 辰국으로 바꿔 칭하며 韓왕을 자처 합니다 (BC 2세기)(이미 그 전에도 조선엔 제나라와 조나라 등의 유민이 많이 유입되었음은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魏라는글자를 보아도 鬼 + 倭 의 결합으로 되어있습니다. 전 글에서 말씀드렸던 鬼方과 淮夷의 결합으로 바로 상을 구성했던 세력들입니다. 여기에 상의 후손인 조선준왕이 터를 잡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韓(晉)도 6국에서 발전 되었다고 하고 魏도6국에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진한6국 혹은 변한 6국과의 연관성도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은 감숙, 섬서에서 발현해 흉노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秦의 부역을 피한 유민들이 韓에 와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말은 秦이 건재할 때를 말하므로 三韓보다 전시대를 의미합니다. 秦어를 사용하는 본토인들 중, 노역에 종사할만한 평민을 요령까지 데리고 와서 노역을 시켰다는 설정은 좀 무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즉, 원래 秦의 영토와 붙어있던 韓에 秦人들이 옮겨 살았고 여기에 조선준왕이 들어와 처음에 韓王을 자처하다가 辰國을 세웠다는 가정입니다. 바로 이들이 조선유민, 秦인 들이 주축이 되고 황제헌원의 후손이라는 韓인들까지 합쳐져 韓/辰국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이들이 어떤 이유에선가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이 부분은 漢편에서 더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미 중앙아시아에 자리 잡고있던 月氏세력과 통합해나갑니다. 그러면서 세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지배계층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닌가 합니다. 즉, 기자준왕세력이 후손이 없다고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魏나라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서 月枝라는 이름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와 전쟁을 하면서 점차 인도 북부로 이동합니다. 박트리아는 알렉산드로스 세력 중 박트라라는 도시를 점령한 부하가 독립하면서 생긴 나라라고 하는데, 이곳은 결국 월지국/사카에 의해 점령되게 됩니다. 후에 이들 월지국/사카계열의 세력 중 貴霜 족에 의해 통일되면서 쿠샨왕조시대를 엽니다. 당시 쿠샨계통 박트리아에 유명한 쿠샨왕자의 두상이 유물로 발견되었는데 바로 변한/사카족의 꼬깔모자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saka라는 종족은 이곳에서 꽃피우는 불교와도 관계가 깊으며, 동양뿐만 아니라 가끔 서양에서도 보이는 kim씨가 발생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한서에 이들을 색족과 연결하기도 하지만,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미스테리 국가입니다. 서방에서는 이시기에 이 지역을 seres/sereka를 파악하고 있기도 합니다. 金과 사카의 관계는 한국어 발음을 추적해 봐도 연관성을 떠올릴수 있는데, 金을 한국어로 kim/kum 이라고 발음하고 쇠/소히 라고 읽기도 합니다.
알타이/사카/박트리아 계통에 따라 받침을 조금씩 다르게 발음하는 경향을 느끼게 되는데, 예를 들어 알타이 계통에서 발음하는 ㄹ는 사카에서는 ㅋ 에 가까운 발음이 아닐까하며, 박트리아계통은 ㅎ/ㅋ 의 발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느낍니다.
즉, 예를 들어, r = ㄹ (알타이) = ㅋ (사카) = ㅎ/ㅋ (박트리아) 라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r을 읽는 발음에 이런 나라별/민족별 다양성이 있습니다.)
박트리아계통의 ㅎ 발음은 후에 ㅍ 의 발음으로도 전용이 되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박트리아계라하면 복희를 비롯한 서방계통을 편의상 박트리아계라고 불렀는데요, 페(르시아), 벌, 변(한), 벵(골)...등의 발음들이 이런 계통이 아니 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후한서에 보면 변진은 진한과 더불어 섞여 살며 성곽과 의복은 모두 같고, 사람의 모습은 모두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하며 머리칼이 아름답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외모의 차이가 후에 신라에서 성골/진골의 골품제 (골격을 의미하는)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금을 쇠/스히 라고 읽는 것이 사카와도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즉, sara/saka/saha, 사라, 사카, 사하 등의 발음은 서로 같은 개념을 뜻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뒷글에서 나오겠지만, 사카, 역시 큰 언덕 (크다+크다) 이란 의미인데 金도 큼/킴 이라고 읽는 것도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알타이에서 비롯된 ‘알틴/알튼’ 도 ‘금’을 뜻하는데, 알(아르 : 크다) , 튼 (덕 : 크다)도 역시 같은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지역의 월지국은 5부족이 통치하는 체제가 되면서 천축5국이라 동양권에선 불리우며 그 안에서도 신독, 간다라, 사카-박트리아 등의 칭호도 보입니다. 그 후 貴霜(쿠샨)왕조를 세워지며 인도 북중부를 평정합니다. 여기서 밀려난 세력이 1차적으로 마한/월지를 형성하여 요령/발해만까지 이르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 잘 알려졌다시피 소월지는 감숙에 남아있었기 후에 파르티아에게 밀려나온 귀상족과 이들 소월지세력의 일부가, 그 후 삼한에 다시 합쳐지는 추가 세력이 된다는 것이 제 추측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이들 중 일부가 서진하면서 아틸라 더 훈 이라 불리는 훈족이 된 것이라 보는거 입니다. 이부분도 나중에 다시 설명 드립니다. 사서에서 기록하는 삼한의 위치가 사실 제각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晉의 땅이 후에 삼한땅이라는 등...삼한은 낙랑의 땅이라는 등...또 기록에서 말하는 위치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미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이들 세력은 비교적 짧은 시간 (BC 2-AD 2)에 매우 광대한 지역을 이동하였었기 때문 아닐까요.
이들의 이동과정을 외부에서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기록해놓은 삼한이 어느 순간의 삼한인지 파악하기 힘들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위치를 기록한 것은 漢나라시대 중반이후가 아닌가 싶습니다.
8. 韓 (晉)
晉은 周나라의 제후국으로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입니다. 晉은 秦과 함께 중원의 쟁패를 경쟁한 나라이기도하지만, 후에 갈라지는 三晉 (韓, 魏, 趙) 은 여러모로 한국과 관련이 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晉의 智佰을 암살하고 한, 조, 위 세가문에 의해 독립국이 탄생합니다. 姓氏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선 성씨에 관한 개념을 잡아야 할듯합니다. 고대엔 姓과 氏를 엄격히 구분하여 모계사회의 흔적으로서 姓은 어머니 계통을 말하며, 氏는 아버지 계통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의미가 변하여 천자가 내리는 것을 주로 姓이라하고 (주로 한 글자), 씨는 국왕이나 제후가 내리는 것으로 주로 두 글자라 합니다.(이부분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황제 헌원의 성은 姬로 알려져 있고 씨는 韓으로 알려진 이유가 이것입니다. 좌전에 의하면 韓魏梁 등은 모두 姬성이고 晉에게 망했다고 나옵니다.
1. 韓
20세기에 편찬된 역사 지리서 <중국 고금 지명 대사전>의 기록을 보면...춘추시대 전에 한(韓)이 있었는데 희씨(姬氏) 성의 한(韓)으로 무왕(武王) 때 수봉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섬서(陝西) 한성현(韓城縣) 남쪽에 있었고, 춘추 때 진국(晉國)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晉에 병합되는 섬서 한성현 남쪽에는 周 무왕이 아우를 봉했던 韓 이 존재합니다. 이곳은 晉에 합병되나 후에 晉과 秦이 쟁패를 다투는 韓原으로도 유명합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섬서의 韓과 하북의 韓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삼한과 晉에 연결하고 있습니다.
<韓古國名, 在今河北固安縣東南, 漢之三韓, 卽其後, 左傳所謂 晉應韓>
韓은 옛 국가명이다. 지금의 하북 고안현 동남의 위치이다. 漢의 三韓이며, 이때 이후의 위치를 말한다. 좌전은 그 장소를 이르기를 晉의 韓을 의미한다....... 즉, 晉에 속하던 섬서성의 韓이 漢시대에는 하북 고안현 동남에 위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晉의 韓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韓에 관련된 정보와 기록들을 훑어보면....
a. 이 책에선 6국이 있은 후에 韓이 되었다는 기록도 나와 있습니다.
<亦故國名 在今陝西韓城縣南, 春秋時入於晉, 六國之韓卽其後, 左傳所謂 楊韓魏, 皆姬性也, 而晉滅之>
b. 또한 이곳은 주나라 위열왕 (BC418) 23년에 魏. 趙 로 나뉘었고 도읍지는 평양 (平壤)이고 지금의 섬서성 임분현에서 다스렸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한의 도읍도 평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절강성 임분현도 예전에 평양이라 불리웠음)
<戰國時國名, 春秋時晉封韓武子於韓原, 在今陝西韓城縣南八十里, 其後世爲大夫, 周威烈王二十三年, 與趙魏分晉列 諸侯, 都平壤, 今山西臨汾縣治, 中略.>
c. 섬서성의 韓은 옛날의 梁나라 임을 기록되고 있습니다.
<韓城縣, 本古梁國, 戰國初魏少梁邑…隋改置韓城縣, 唐改名韓原. >
d. 윗 구절은 김수로왕의 허황후 묘비와도 관계 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허황후의 묘비에는 허황후의 나라, 아유타국은 남 천축국의 나라로 殷/商, 梁, 魏, 邪 나라들의 먼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황후는 普州 태후라고 하는데, 위/양 나라와 관계있는 후손들이라면, 晋을 普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의심 됩니다.
.. 金海 옆에 위치한 晋州의 존재로 보아서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닌듯합니다. 이시기가 東漢 광무제 24년의 이야기로 1세기 초중엽 즈음이며, 허황후는 157살을 산 것으로 나오는 걸로 봐서 역사 상황에 맞추어 역사적 연대를 조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 한치윤의 해동역사 삼한편에서 나온 韓의 풀이를 보면 韓은 양이요, 토끼요, 닭이라고 나옵니다. 이 구절은 나중에 설명이 나오겠지만, 韓과 漢 (묘+금+도) 의 관계에 대하여 암시하고있기도 합니다.
<劉熙釋名, 韓羊韓兎韓鷄, 本法出韓國所謂也,>
f. 위에서 살펴봤듯, 전국시대의 韓과 삼한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할 만한 기록이 많습니다. 韓 이란 글자는 헌원황제의 (성)씨로써 姬 이나 夏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듯합니다. 韓의 옛 발음은 "gra" "gara" 로써 夏 의 발음인 gra를 생각해 볼때도 황제헌원의 정통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韓이란 글자 자체가 日 + 韋 의 구조로 <히 + 위 /히 + 아르>의 발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희와 여와의 결합을 나타낸다고 해석하였습니다.
9. 魏
조상은 주(周)나라 왕실과 동족인 필공고(畢公高)이며 그의 자손 필만(畢萬)은 진(晉)나라의 헌공(獻公)으로부터 위에 봉해져 진나라의 대부(大夫)가 되고, 위강(魏絳)은 경(卿)에 임명되어 진나라 6경의 한 사람으로서 정권을 쥐었다. BC 453년 위의 환자(桓子)가 한(韓)·조(趙)와 더불어 실질적으로 진나라를 3분하고, BC 403년 주나라 위열왕(威烈王)으로부터 제후(諸侯)로서 독립이 공인되었다. 위는 安邑에 도읍을 정하고 지금의 산시성 남서부, 산시성·허베이성·산둥성에 걸친 대국이 되었다. 전국 초기에는 최강국이었다. 그러나 점차 진(秦)나라에 눌려, BC 361년 대량으로 천도하고, BC 329년 상군(上郡) 15현(縣)을 진나라에 헌상하여 화의를 청하였다. 한때 신릉군(信陵君)의 활약으로 열세를 만회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BC 225년 진나라 시황제(始皇帝)에 의해 멸망하였다. 역시 魏에 대한 정보와 기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a. 魏는 옛 발음으로 ŋwǝj /ngwo(j) 에 가깝습니다. 즉 (응)워(즈) 라고 표현할까요...나라이름 "위"로 알고 있지만, 빼어나다, 혹은 높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죠. 바로 우리말, "위/上"과 상응된다 하겠습니다. (참고로 月의 옛 발음은 ŋwat, 支 = ke, 氏 = g(h)e, 姬 = kǝ / klǝ, 韓 = gar/gan/gara, 夏=g(h)rāh) 즉, 魏支 = ŋwǝj ke, 月支 = ŋwat ke, 月氏 = ŋwat g(h)e
b. 재밌는 부분은 魏라는 글자가 우리에게 익숙한 두 글자의 합이라는 것입니다. 즉 倭 + 鬼 인데요..
倭는 잘 아시다시피 삼한과 항상 붙어 다니는 倭입니다. 鬼는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厶 자가 보입니다.
弁자에서 보시듯 꼬갈모자의 모습으로 "사사 사""아무 모"라는 뜻/발음을 볼 수 있습니다. 厶의 옛 발음은 알아내기 힘들었으나, 현대엔 사/시, 모 등의 음가가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魏씨와 사마씨가 같다 라는 기록 등이 있는 것도 바로 사/모 라는 발음과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鬼와 倭의 결합을 전 글에서 鬼方과 淮夷 의 결합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회이는 오월의 조상으로 역시 倭인들이 조상으로 삼는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즉, 商나라 구성부족으로써, 기자조선 준왕이 점령하게 된 이유도 이런 연관성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였습니다.
c. 三晉의 魏 후에 다시 그곳에 등장한 魏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조조의 魏입니다.
조조는 아버지 조승이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갔던 이유로 曺씨성을 받았으나 그전까지는 夏候씨였다. 夏候씨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기록되었듯, 흉노의 선조이며 묘족이라고 알려진 성씨(夏后)와 닮아있습니다. 조조의 후손들이 옛 魏나라지역에 나라를 세워 국명을 魏 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들 하후씨가 魏나라의 최상위 귀족신분이였던 것으로 보아 魏나라, 하후씨, 묘족, 月족, 匈족 등이 서로 연결이 되어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d. 조조의 魏 이후에 등장한 晋의 건국과정을 보면 조조를 비롯, 魏의 황실에 權臣이였던 사마의의 후손 사마염이 조염으로 부터 황위를 빼앗으면서 晋나라(서晉)을 세우게 됩니다.
280년에 오나라를 평정하여 통일을 이루나 3대 4대 황제가 살해되며 晉은 일단 멸망합니다. 사마예가 건읍에 다시 東晋을 세우게 되며 역시 무장 劉裕가 선위 받아 宋을 일으키나 얼마못가 멸망합니다. 훗날 조조의 처가 세력인 선비족, 탁발씨가 北魏를 386년에 다시 세우게 됩니다. 5호16국 등이 국명을 지을 때 중화를 흠모하여 중원의 국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중원세력이 이들 알타이 유목계열 부족들이였으며, 이들이 국명을 정할 때나 황후를 선택할 때 아무 인연 없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적 친연성이 작용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夏候씨는 魏를 세우고 사마씨는 晋을 세웠으며 다시 탁발씨는 北魏를 세웁니다. 모두 魏, 月,사마 등의 공통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탁발부가 세운 北魏는 원래 나라명이 代 (옛 발음 teuk) 이므로 바로 오르도스/언덕세력의 덕족, 예맥/염제의 단족, 과 관계있는 부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鮮碑 족이라 칭해지는 것이나, 朝鮮에 鮮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해양세력(예맥)과 북방세력(사카/오르)등의 합을 말하는 辰/숙신세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辰, 代, 毒 등등 모두 다르/단/덕 등을 의미합니다.
e. 한편, 신라라는 나라는 당나라와 외교활동을 하기 전엔 매우 중원에 대해 폐쇄적인 외교활동을 보이는데, 西晉에 조공한 서기 286년 이후 91년간 공백, 前秦에 조공한 382년 후 126년간 공백, 北魏에 사신을 파견한 521년 이후 43년간 국교 공백의 상태였던 미스테리한 국가였고, 서진도 원래 魏 였던 감안하면 신라와 魏/前秦 사이에는 특별한 혈통적인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또한 魏의 관구검이 세력일부가 신라로 동화되었음은 위나라가 辰/秦/弁과 가까운 혈통임을 알려주는 단라고 봅니다..
f. 백제는 조조의 魏 , 관구검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후 남조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남조와 연합하여 북위와 십여년의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무령왕릉 ( 523년)에서 양나라로부터 받은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란 호칭이나 무덤 양식 등은 양나라와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내줍니다.
g. 倭 왕 히미코도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239년 魏나라에 친위왜왕의 작위를 받습니다. 248, 266에 魏에 사신을 보내고 266년엔 내부 전쟁이 있다고 암시합니다. 396년부터 왜오왕(讚·珍·濟·興·武)이 남조(동진/송/양)에 보낸 사신들이 백제/진한/마한/신라/왜/임나의 왕임을 자처.
송나라로부터 무왕은 (478) 안동대장군이란 호칭을 얻습니다. 후에 양나라로부터 진동대장군이란 호칭도 얻습니다.(502)
h. 魏란 이름은 鬼 + 倭로 이루어진 글자로써 바로 인도애 쿠샨왕조를 세운 월지족이 바로 귀상(貴霜)부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에 설명이 나오겠지만, 두 세력 간 유사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i. 魏는 "나라이름 위" 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크다, 높다, 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고시대에 쓰인 글자들은 높다/크다/넓다 란 뜻이 함께 혼용되어 쓰이곤 하는데, 魏 란 말이 우리나라말 "위(上)"과도 통하는 발음이고 高자도 고대발음은 Kaw로써 "크(다)"와 통하는 발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단/다르/당 이란 발음도 넓다, 크다, 높다라는 뜻입니다.
후에 우리도 잘 아는 이연이 세운 唐도 사실은 헌원황제의 韓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었다는데, 晉(韓)의 원래 이름이 唐이였던것을 보면, 韓 /唐/魏 간에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0. 趙
역시, 晉에 속해 있다가 독립한 나라로 전국칠웅의 하나였습니다. 북으로는 燕나라와, 서로는 秦, 남으로은 魏와 맞닿아있습니다. 전차, 기병, 말생산으로 유명하며, 수도가 邯鄲 (감단을 한단으로 발음)이였습니다. 조씨는 周유왕을 도와 서언왕의 난을 해결한 공으로 趙城 (산서성)에 봉해지면서 조씨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씨 시조의 어머니 여수 (呂씨)는 현조의 알을 삼키고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즉, 동이계열의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秦나라처럼 소호금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趙나라의 기록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a. 趙나라가 동이계열의 나라라는 풍속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b. 반축 반농의 국가로써 말 생산으로 유명한곳입니다. 사기, 자객열전에서는 조양자가 원수인 지백의 두개골을 바가지로 썼고 이는 중앙아시아의 풍속이며 조양자 자신이 융적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 조나라는 秦과 함께 동이에서 나왓다 하여 그 시조의 어머니 여수가 현조의 알을 삼키고 태어났으며 이는 상, 조선, 만족의 탄생설화와 같다고 합니다. 兄終弟及制, 즉 형의 뒤를 동생이 잇는 제도를 썼으며 이는 흉노나 만주, 몽고 등의 중앙아시아 유목계열의 제도입니다.
c. 특이한 점은 馬을 특징으로 삼는 趙나라에서 유독 무씨(无)가 많음이 눈에 띱니다.
d.조순의 어머니는 鬼씨로써 鬼方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魏란 이름도 鬼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하는 중국학자들의 견해가 있습니다. 어쨌든 趙, 魏 모두, 鬼方등과 연관시켜 東夷 계열와의 연관성도 생각 해보게 합니다.
e. 참고로 鬼方은 역경, 시경, 상서, 죽서기년 등에 기록되어 있는 부족/국가로써 殷/周나라와의 거대한 전쟁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결국 주가 정복한 것으로 기록되지만, 그 동일세력은 흉노의 여러 세력으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국유의 귀방곤이험윤고-鬼方昆夷..考 란 말은 귀방, 곤이, 험윤이 같은 세력이란 말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들 귀방의 위치는 周나라시절에는 중국 서남에서 서북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으며 이는 감숙, 섬서, 귀주지역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전국시대의 魏의 위치와 비슷합니다. ( 상나라시절에는 하북/산동지역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임가징이 貴州通志를 편수하는 과정에서나 1980년 귀주인민출판사의 "귀주사전제고"등에서도 鬼方의 영역이 귀주지역이냐 아니냐에 대하여 논란이 있고, 귀주에는 오래전부터 묘족의 일파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여, 鬼方과 貴州와 苗족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들 묘족은 long-horn mio로 알려져서 뿔과 관계있는 역사와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치우와도 관계가 있어보이죠 http://en.wikipedia.org/wiki/Guizhou )
즉, 貴와 鬼의 연관관계를 여기서 확인 해볼 수 있습니다.
11. 秦 (사카는 언덕이다..)
삼한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수 없는 나라가 秦나라 입니다. 秦은 아시다시피 전욱 고양의 후손 여수가 현조(검은새)의 알을 낳아 秦의 선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계로는 소호금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은나라시절에 嬴씨성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주 효왕 때 이들이 선대 평왕를 도왔던 사실을 계기로 秦邑(현 감숙)에 봉하면서 제후국 秦이 탄생하게 됩니다.
사기 권13 삼대세표에 보면 秦의 선조는 嬴 씨이고 이것이 분화하여 유서씨, 담씨, 여씨, 종여씨, 운엄씨, 토구씨, 장량씨, 황씨, 강씨, 수어씨, 백명씨, 비렴씨, 진(秦)씨 등이 있는데 진의 직접조상은 조성에 봉해졌던 조씨라고 나옵니다. 이 말은 즉, 같은 소호금천을 조상으로 섬기는 趙나라와 秦나라는 같은 계열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趙씨의 非子가 秦邑에 봉해지며 (bc 900년 즈음) 嬴씨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秦은 辰韓의 주요구성 부족 중 하나였고 그런 이유로 신라와 진한어는 秦어와 비슷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신라가 秦의 선진문물을 받아드려 진의 언어와 풍습을 따라했다고 교과서에 나온다는데, 신라건국 200년도 전에 망한 나라를, 그것도 현재 중원에 거대한 통일국가들이 버티고 있는 시점에서 언어를 따라했다는 기록은 말이 되지않다고 보입니다. 또 秦의 언어가 신라어/한국어와 비슷했다는 이야기인데, 즉, 알타이+韓 어의 구조를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辰이 秦이고 嬴씨라는 구절도 있어 辰과 秦시황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秦의 선조인 非子의 부족이 처음에 살던 곳은 중원의 大丘라는곳이며, 周황제가 비자에게 내린 도읍지인 秦邑이 첫 도읍지이나, 다음왕인 壯公은 도읍을 秦邑에서 犬丘 로 옮긴다고 나오는데 서쪽에 다시 犬丘라는 지명을 그들이 만든게 아닐까 합니다. 헌데 도읍의 이름에 犬을 쓴다는 것은 부적절해보이며 秦의 원래 선조들의 고향인 大丘를 생각해 볼때 犬이 아니고 大 였던 것 같고 어떤 이유에서건 후에 犬자로 잘못 표기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적대세력에 의해 폄하된 기록인 듯 합니다.) 또한 秦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신라도 처음 자리 잡은 곳의 명칭이 大丘임을 감안하면 이 명칭은 이들 秦人들이 특별히 여기는 장소에 붙이는 명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가 "丘 는 殷의 후손이다" 라고 말했다 하는데, 공자의 이름인 丘 였기에 공자가 스스로 은의 후손이라, 말한 것이라 해석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공자가 동이족임은 여러 군데서 확인 됩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大丘도 조선시절 공자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邱로 개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본인을 칭할때 이름을 써서 칭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즉, 기자가 丘 라 칭한 것은 이들 秦枝와 동질세력을 말하는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大丘는 큰 언덕이란 뜻으로 옛 발음으로는 dhac/thac + khwǝ 로써 대커/쌔커/자커 라는 발음에 가까움을 알 수 있습니다. 대커/쌔커라는 발음이 이제껏 제가 설명해온 글에서 많이 보시던 발음이 아니던가요.. 네, 大丘는 사카와 매우 비슷한 발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오르도스, 알타이, 연독(신독) 등을 언덕으로 엉뚱하다면 엉뚱하게 해석해본 것도, 바로 오르도스, 섬서, 하남의 아.사.달. 세력들이 저마다 <언덕>이란 개념을 부족명이나 지명으로 사용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아르/魏/알> 모두 크다/높다 라는 뜻이고, <타이/타르/덕/단/땅> 도 크다/넓다 라는 뜻입니다. 즉 언덕은 크다 + 크다 = 큰땅...의 개념입니다. 언덕이란 뜻입니다. 大丘의 大도 다/多/모두 의 뜻이고, 丘 도 역시 구/쿠...크다..라는 발음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역시, 大丘도 크다 + 크다 = 큰땅....의 개념입니다. 언덕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大丘의 발음은 다커/싸커/자커 로써 바로 이들도 싸커족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싸커라는 뜻이 언덕을 의미한다는 것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대구와 사카와 언덕의 관계에 아직 의문이 드신다면...일본의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일본어로도 "사카"는 언덕을 뜻합니다. 잘 아시는 "오 -사카" 가 바로 큰 언덕을 말합니다. ( 일본은 大를 "오오" 라고 읽습니다.) 오-사카의 한문표기도 大坂 이지요. 바로 큰 언덕이란 뜻입니다. 이 부분은 후에 설명 드리겠지만, 바로 오사카가 신라인들이 열도에 진출한 곳이었으며, 이곳을 오사카...라고 부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부여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일본의 억양이 오히려 경상도 억양을 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오사카지역이 심하지요...바로 이런 이유라고 봅니다. 오-사카는 옛날에는 오-자카 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th 발음 때문인 듯 한데, "자" "사" "다"의 중간쯤 되는 발음..(아시겠지만) 인듯합니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영어의 th 발음은 z 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서양기록을 통해 秦에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중국을 예로부터 서방에선 seres / sares / sereka 혹은 sina / china라고 불리어왔습니다. 이는 비단이란 발음이 중국지역의 사람과 지역을 통칭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Silk 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지만 이것도 sereka 등의 발음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지역의 비단 무역은 대단히 고급품이며 첨단 테크닉을 통해 만든 제품으로 서방에서는 이것이 동물성인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합니다. seres 라는 어원을 중국은 細 (중국발음 : Xi 옛 발음 : Seh) 등에서 찾지만 우리나라 발음인 실/시르라는 발음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eres 란 글자는 보통 秦의발음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졌지만, 그전에 이미 비슷한 발음의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은∙주∙진에 이르기까지 서방에선 중국대륙과 비단무역이 활발한데, 그후에 Seres라고 불리던 지역이 인도북부로 옮겨진 것을 기록상으로 볼 수 있는데 漢대에 되서야 서방에선 seres에 나라에서 사신을 처음 보내보기로 하고 漢과 접촉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후에 인도북부에 자리 잡는 사카를 세레스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이들 秦유민이 삼한과 함께 인도 북부에 자리 잡으며 인도-사카라고 불리던 세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글에서 설명 드리길...
아르/月 족은 r 을 "ㄹ" 으로 발음하며,
代/毒/덕족은 r 을 "ㄴ" 으로 발음하며,
사카족은 r 을 " ㅋ" 으로 발음하며.
夏/韓족은 r 을 "ㅎ/ㅋ"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이런 부족별 발음을 하는 경향으로 미루어 볼 때.. 이들 thac-khwa 족을 일컬어 서방에서 사카라고 부르는데, 또한 이들을 세레스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부족별 r 을 발음하는 방법에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즉, sara 를 사카 라고도 읽고 사라스 라고도 읽는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오- 사카는 진한/신라인이 만든 도시로써, 大坂 이라고도 불리 웁니다. 둘다 언덕이란 뜻인데...
전글에서 말씀드렸듯,
크다/넓다는 의미로 아르/月/魏 족은 오르/위/언/알 등의 발음이 나타나고
代/毒/덕족은 단/타르/타이/ 당/땅 등의 발음이 나타나며
사카족은 크/키/코 등의 발음이 나타나고
夏/韓족은 파/바/하/가 등의 발음이 나타납니다.
즉, 夏족 (복희 + 여와)중 특히 복희 계열은 크다 라는 표현을 파/바/벌/변 등으로 발음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페르시아, 파르티아, 변한, 발흐, 박 트리아, 벤골 등에서 인지할 수 있습니다. 대구를 달구벌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바로 대구 + 벌, 즉, 사카와 변한의 발음이 섞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오사카에서도 나타나는데요, 오사카는 바로 大阪(언덕판) 이라 불리 웁니다. 즉, 사카를 판 이라고 발음한다는 뜻이지요. 대구/달구 를 "벌" 이라고 표현하듯, 오사카를 대판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인도편에서 설명 드리겠지만 마로 석탈해 (사카세력)의 출신이 龍成國 혹은 다파나國이라 하는데, 둘다 같은 나라를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龍은 동물 용 말고도 언덕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자전을 찾아보시면 나옴). 또한 龍成의 옛 발음은 yun -deŋ 에 가깝습니다. 석탈해의 기록에서만으로도 사카(석)와 언덕(용성)과 대판(다파나)가 서로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연덴 = 언덕입니다. 다파나 도, 다판/대판/大坂...언덕을 의미합니다. 사카 = 용성 = 다파나 = 오사카 = 대구 =석 (탈해).....모두 언덕에서 기원하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석탈해가 열도의 오사카/다파나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천축국에서 생긴 일입니다...후에 자세한 설명 드립니다.)
12. 三晉과 三韓
삼한에 대해선 그동안 여러 가지 가정과 설들이 많습니다. 대륙삼한, 또는 반도의 유적과 역사적 기록을 끼워 맞추기 위해 원 삼국 이란 용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대륙에서는 오래전부터 거대국가가 형성되었던 것에 반해 기원후까지도 국가체제도 갖추지못한 원시국가 형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한반도에 들어온 韓민족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삼한인들이 많은 이동을 해왔으며 이들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당시 처음으로 반도에 들어오는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치 육이오를 막 치룬후의 당시 한국을 마치 그 전까지는 국가형성을 제대로 못했던 부족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삼국의 유물이나 풍습과 DNA를 봐도 중앙아시아 등의 대륙과 연관성이 깊어 보입니다. 기록으로도 많은 증거들이 남아있습니다. 오르도스, 훈족, 秦나라, 천축국, 흉노, 스키타이 유물과 유전자로 보이는 연관성은 팩트로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역사로 연결을 지어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 연관성을 굳이 피하고자 애쓰려하지 말고, 좀 더 열린 눈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면, 매우 놀라운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韓이란 의미는 결국, 황제헌원으로 비롯된 韓이 결국 기자조선에서부터 시작된 韓 과 같은 국가였음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라 봅니다. 여기서 바로
• 신라는 황제헌원과 소호금천의 후손이라는 기록.
• 황룡사 9층목탑의 韓겨레의 범위.
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기록을 신뢰한다면 韓의 비밀을 풀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진한이 고조선의 후손임을 보여주는 기록 (편두의 증명) 역시 신뢰한다면, 거대한 韓민족의 역사퍼즐을 맟춰질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어쨌거나 진한을 이어받은 신라가 통일한 한국은 그 거대한 역사의 정통성은 가질 수 있는 게 아닐 가 생각해봅니다. 윗글에서 보여드린 많은 기록들은 삼한과 매우 많은 연관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정리해보자면....
다시 이해를 돕기위해 정리를 해드리면,
a. 韓(晉)은 황제헌원의 후손임을 자처하였다는 점.
b. 晉의 韓이 漢나라때의 삼한의 땅이라고 증거 한 점.
c. 晉의 韓의 도읍지가 平壤 이라는 점.
기자조선의 마지막왕 준왕이 마한을 세운 곳도 평양.
기자가 조선왕이 되고 정한 도읍도 平陽
d. 삼진의 韓은 6국이 있은 후 韓이 되었다는 점.
e. 삼진의 魏는 鬼 + 倭 로 이루어진 글자로 꼬깔모(弁)를 연상시키는 厶자를 포함한다는 점.
f. 魏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鬼方은 옛 부터 동이/흉노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
g.황룡사 목탑에 의하면 倭도 韓계열이라는 점.
h.삼진의 땅에서 일어난 조조의 魏는 하후씨의 후손이며 즉, 묘족의 후손이라는 점.
i. 신라는 6세기까지 중원의 다른 나라와 소통하지 않고 西晉, 前秦, 北魏 에만 한정적으로 소통했던 점
j. 秦과 趙 나라는 여러곳에서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k. 백제도 魏晋의 남조와 이상할정도로 친밀성을 보인 점.
l. 왜도 남조와 이상할정도의 친밀성을 보인 점.
m. 대월지/소월지는 bc 2세기정도에 감숙/섬서 지방에서 나타나는데 이들의 건국위치과 건국시기가 晉과 겹친다는 점 (마한의 건국시기와도 일치한다는 점)
n. 趙나라도 동이의 풍습을 보이며, 秦과의 동질성을 보인다는 점.
o. 趙나라는 馬이 특징적인 국가였다는 점. ( 무씨도 다수 존재했다는 점 => 馬韓의 국명과 연관성)
p. 鬼方은 묘족과 관계가 깊어 보이며 이들 귀방이 있던곳이 貴州로도 알려져 있어 하북/산동의 귀방이 貴州로 내려 온 정황이 치우의 전설과 일치하며 貴와 鬼의 관계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
q. 조선준왕이 마한을 세울때 바다를 건너 韓地에 다다라 마한을 세웠다 알려져 있는데 (후한서), 하북/요녕에서 晉사이에는 고비사막이 존재했다는 점.
r. 晉唐에서 확인했듯 이연의 唐나라도 韓의 후손임을 뜻하는 국명 이였고 이들이 韓임을 역시 황룡사 목탑이 확인해 준다는 점
조선 準왕의 고비사막 부분은 秦이 망한 BC 206년 즈음에 연의 위만이 조선의 준왕 (기자의 후손)의 왕위를 찬탈하게 되고 준왕은 海 를 건너韓地를 점령하고 韓왕을 자처했다고 나옵니다. 사막을 海로 표현해 온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三晉과 대월지와의 관계는 어떨까요. 대월지국의 이동 역사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a. 중앙아시아의 대월지는 감숙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북부에 자리 잡습니다. 박트리아 그리스계통과도 전쟁과 접촉을 계속하며 결국 월지의 쿠샨왕조가 인도북부를 통일합니다. 이들은 월지 5족 중 貴霜족으로 魏의 鬼方과 연결지어 볼 수 있습니다. (貴州는 귀방이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b. 월지 5국과 사카국이 결국 천축5국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 천축은 조선천독/천축에서 보듯 우리민족과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불교의 발상지로써 변한/진한과 연관되어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
c. 가야의 수로왕과 혼인한 허황후의 묘비를 보면 아유타는 남천축국의 하나로 알려져 있고 허황후의 묘비에 殷/商, 晉계열 (梁, 魏, ) 邪 나라들의 먼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허황후는 普州 태후라고 하는데, 晋을 普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 가 의심됩니다. 金海 옆에 위치한 晋州의 존재도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d. 뒤에 설명드리 겠지만, saka국의 동서양의 kim씨의 전래라든지, 그 지역에 나타나는 벵골, 방글라데시 등의 弁韓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즉, 천축국은 晉 (魏) 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고 천축5국이 월지국이라 한다면, 晉의 魏나라와 월지국의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국명/민족들의 옛 발음을 살펴볼까요?
a. 魏 = ŋwǝj /ngwo(j), 月 = ŋwat ,
支 = ke, 氏 = g(h)e,
즉, 魏支 = ŋwǝj ke, 月支 = ŋwat ke
b. 姬 = kǝ / klǝ,
c. 韓 = gar/gan/gara, 夏=g(h)rāh)
여기서 韓은 姬씨와 혼용해서 사용되었다면 ( ke / he) 로 발음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c. 馬 = mra, 韓 = gara /ke
즉, 馬韓 = mra gara / mra ke
d. 弁 = b(h)ranh / b(h)en
弁韓 = b(h)ranh gara / b(h)ranh ke
e. 辰 = d(h)ǝr / d(h)ǝn
辰韓 = d(h)ǝr gara / d(h)ǝr ke / d(h)ǝn gara
f. 大 = dhac/thac 丘 = khwǝ
大丘 = dhac/thac khwǝ
g. 苗/描 = mraw
즉, 月支 =(응)워 케 , 魏支 = (응)워 케, 魏韓 = (응)워 케 / (응) 워가라
馬韓 =(음)롸 케 / (음)롸가라/므라가라 , 弁韓 = 브롼 케 / 벤 케 / 벤 가라
여기서 馬 등의 발음이 마/와/워 와 혼용되어 나타나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mra 란 발음은 약간의 발음 차이로 여러 글자로 음차 될 수 있습니다. (음)롸, 므라, (음)와 등등.....지역의 방언처럼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서 魏와 月(枝), 馬(韓)의 발음도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 月/魏 세력이 삼한의 주요세력 (월지국)이라면 바로 월지의 통제를 받았다는 신라도 김알지가 바로 월지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삼한이 인도북부에 잠시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저로서는 박트리아와 간다라 지방을 점령했던 월지세력을 바로 김알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苗족이 바로 月이나 馬의 선조격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들 발음은 (음)워/ (음)라/므라 등이 됨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도 삼국 편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으나 월지/마한이 백제에게 일단 멸망한 후 다시 부활하게 되는 세력이 바로 임라가라로써, 마한 = mra gara 를 므라 가라로 발음하기도 하지만, 음라 가라로도 발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임라가라 세력은 월지국/마한의 연속선상에 있는 나라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덕분에 까막눈이 밝아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