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웅 개인전
침묵의 공간, 정화된 풍경
작가의 작업은 분명 현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표현을 통해 일정한 서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그저 구상의 피상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독특한 경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빛으로 차단되어진 특정한 공간 속에서이루어지는 또 다른 풍경과도 같은 것이다.
글 | 김상철(미술세계 편집주관)
[2009. 10. 14 - 10. 20 인사아트센터, 갤러리 루벤]
[인사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02-736-1020
홈페이지로 가기 http://www.insaartcenter.com
작가 노태웅은 일상적이고 평이한 풍경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굳이 특별한 명승이나 빼어난 풍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언저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풍경들이다. 탄광촌이나 기차 역, 그리고 단순한 직선의 건축구도와 슬레이트로 지붕이 인상적인 서민적 도시 풍경들과 한적한 농촌, 어촌의 풍경들이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작가는 분명 비록 중심에서 빗겨나 오히려 더욱 치열한 삶의 채취를 지니고 있는 대상들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직접적으로 조망하거나 반영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한 걸음 물러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이니 문제의식을 반영하거나 섣부른 감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고 침착하게 대상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자신의 감회를 투영하는 관조적인 것이다.
작가는 정녕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만의 사유와 사색을 통해 재조합 함으로써 육안(肉眼)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心象)에 호소하는 독특한 화면을 구축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땀과 눈물이 베어 잇는 삶의 현장을 정화시켜 또 다른 풍경으로 환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의 치열함이나 소외된 삶의 처연함으로 점철된 현실의 충경일 아니라, 사유와 사색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진 이상화 된 풍경이자 정화된 공간이다. 일정한 형상과 원근, 그리고 투시 등의 합리적인 화면 운용은 작가의 작업이 분명 구상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저 대상의 객관적인 재현이나 표현에 함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상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통해 그것의 이면을 반영하고 표출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특정한 사변의 단서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물론 그것은 상투적이고 즉물적인 것이 아니라 함축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설정으로 가공 되어진 것이다.
맑고 투명한 작가의 화면은 극히 정적인 침묵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진 듯 절대 정적에 들고 있다. 비록 치열한 삶의 현장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화면에서 인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인적의 실종은 객관의 묘사나 재현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사물들은 번잡스러운 형상에서 벗어나 개괄되어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기에 밝은 빛에도 불구하고 명암 역시 망실된 듯 약화되고 축소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원근과 투시의 합리성 역시 간과되고 있다. 이렇게 구축되어진 화면은 입체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평면에 가까운 것이다, 일정한 두께와 요철을 지닌 화면은 두텁고 견고하다, 이러한 바탕위에 작가는 햇살이 내려앉고 눈이 쌓이듯 물감을 더한다, 그것은 단순히 안료에 안료를 더하는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일상의 풍경을 정화시키는 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작업 과정을 통해 모난 것들은 부드러워지고, 번잡스러운 것들은 정돈되어 함축적인 양태를 지니게 된다. 정성와 감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순치되고 정화된 풍경은 밝고 맑으며 투명하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관조하고 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감성의 또 다른 발현일 것이다. 그것은 갊에 대한 긍정과 건강한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그의 작업이 단순한 리얼리즘이나 유미주의의 전형에 국한되지 않고 대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지향과 특색을 발현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현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표현을 통해 일정한 서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그저 구상의 피상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독특한 경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빛으로 차단되어진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풍경과도 같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이미 구상의 한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이상화 된 또 다른 풍경을 지향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통해 이상을 구현하고, 사색을 통해 대상의 객관적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인본적 이상주의를 지행하고 있다할 것이다. 작가는 세사의 번잡스러움이나 그늘지고 어두운 것마저도 정화시켜 이상화 된 풍경으로 해석해 냄으로써 삶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각과 사유를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