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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책소개 글
송정수, 『(증손자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혀지는)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 혜안, 2021.
"전북대학교 송정수 명예교수가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의 오랜 과제였던 전봉준 장군의 가족사를 명쾌하게 밝혀냈다. 이 책은 송 교수가 연전에 펴낸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도서출판혜안, 2018)에 이어 전봉준 장군을 연구해서 이뤄낸 두 번째 저서이다. 두 저서의 주제와 내용은 연결되기 때문에 함께 읽어야 전모를 알 수 있다.
이들 두 책에서 송정수 교수가 논지를 전개하면서 제시한 주요 근거는 《천안전씨세보병술보》이다. 이 《병술보》는 저자가 처음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한 것으로, 전봉준 장군의 가문과 가계, 신상은 물론이고 출생지가 고창 당촌이라는 사실 등을 확인했던 자료였다. 이번 저서에서도 이 《병술보》를 근거로 전봉준 장군 선대의 세거지와 이동 과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직계 후손의 증언을 담다!!
전북대학교 송정수 명예교수가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의 오랜 과제였던 전봉준 장군의 가족사를 명쾌하게 밝혀냈다. 이 책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는 송 교수가 연전에 펴낸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도서출판혜안, 2018)에 이어 전봉준 장군을 연구해서 이뤄낸 두 번째 저서이다. 두 저서의 주제와 내용은 연결되기 때문에 함께 읽어야 전모를 알 수 있다.
이들 두 책에서 송정수 교수가 논지를 전개하면서 제시한 주요 근거는 『천안전씨세보병술보』이다. 이 『병술보』는 저자가 처음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한 것으로, 전봉준 장군의 가문과 가계, 신상은 물론이고 출생지가 고창 당촌이라는 사실 등을 확인했던 자료였다. 이번 저서에서도 이 『병술보』를 근거로 전봉준 장군 선대의 세거지와 이동 과정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책의 핵심 근거는 전봉준 장군 증손자의 증언이다. 장군의 증손자가 나타난 것이다. 저자도 처음 그 사실을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증손자의 증언을 지금까지 알려져 온 전봉준 장군의 가족 관련 자료와 비교하면서는 놀라움과 함께 직계 후손이 맞다는 확신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전봉준 장군의 증손자는 현재 진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전장수(全長壽, 1958년생) 씨이다.
증손자의 출현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것은 전봉준 장군의 혈손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갑오년에 활동했던 동학농민군들의 후손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전하고 있는 증언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온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에 관해 생생하고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문헌사료는 역사 연구의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인멸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경우, 발굴해서 채록된 증언은 불완전한 문헌자료를 보완해주기도 하면서 역사적인 사실을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그 효용 가치가 크게 인정이 된다. 그동안 역사적 인물인 전봉준 장군에 관해 큰 줄기는 알려져 오긴 했지만 단편적인 사실에 불과했다. 집안·가족·교육·유동생활·교유관계 등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증언을 바탕으로 모자이크 단편과 같은 자료들을 짜 맞춰서 커다란 그림을 구성하는 것처럼 전봉준 장군 개인과 가족사의 전모를 보여주고 있다.
‘전봉준 장군의 증손자’ 전장수 씨의 가족사 증언은 믿을 수 있는가? 저자가 주목해서 정리한 전장수 씨의 주요 증언은 다음과 같다.
① 전봉준 장군의 소년기 일화
② 혼인과 후처 남평 이씨
③ 여동생 전고개(全古介)의 실명 전승
④ 1961년 고창 당촌을 방문한 전장수 씨의 증언
⑤ 전봉준 장군의 장녀 전옥례의 진안 집을 아버지 전익선과 함께 방문한 사실
⑥ 전봉준 장군을 재판한 재판장 서광범에 대한 반감
⑦ 전봉준 장군의 유해 수습과 무덤을 방문한 이야기
전봉준 장군이 18세 이전에 전북 태인 감산면 황새마을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자들이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전장수 씨는 이와 관련한 전봉준의 소년기 일화를 전해준다. 어느 친척집 잔치에서 젊은 양반이 무례한 행동을 하자 이를 시원하게 논박했는데, 이를 목격한 어느 학자가 훈도를 자청하여 서당 인근 태인의 황새마을로 이주했다고 했다. 일부 전공자만 아는 이야기가 말 그대로 뜬금없이 전장수 씨 증언에서 나왔다.
또 전봉준 장군의 첫 부인인 여산 송씨(1851~1877)는 큰딸과 연년생인 둘째 딸을 낳은 후 세상을 떠났다. 전봉준 장군은 갓난 딸을 기르기 위해 젖어미를 들여야 했다. 그때 돌림병으로 전 남편과 아기를 잃어버린 남평 이씨가 들어왔고, 결국 전봉준 장군과 약식혼례를 치르고 같이 살았다고 한다. 전장수 씨의 이런 증언은 집안에서 전해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남평 이씨가 낳은 두 아들 중 행방불명된 아들이 전장수 씨의 조부인 전용현(일명 전의천, 1886~1941)이라고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간 전봉준 장군의 가족사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여동생의 이름을 전장수 씨가 전고개(全古介, 1861~1951)라고 증언한 것이다. 전승 상황도 실감이 난다. 전장수 씨가 대학입시에 합격해서 축하를 받기 위해 동대문 밖 음식점 진고개(珍古介)에 갔을 때 부친이 대고모할머니의 이름과 음식점 이름이 한자까지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전고개는 유명한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명 중 한 사람인 손여옥의 부인 이름이다. 그 손자인 손주갑(孫周甲) 씨는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창립 이후 오랫동안 사무총장으로 전국의 유족들을 연결하며 실질적으로 유족회를 지켜왔다. 유족회 사무총장이 바로 전봉준 장군 여동생의 손자였던 것이다.
전장수 씨가 고창 당촌을 방문한 사실도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전봉준 장군의 생가는 오지영이 『동학사』에서 고창 당촌이라고 했지만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인 1994년을 전후해서 학자들의 논쟁을 거쳐 확인된 바 있다. 그런 당촌을 전장수 씨가 그의 나이 네 살 때인 1961년에 고모 전오녀의 아들인 진의장을 따라서 방문했다고 했다. 방문 당시 형과 나눈 기억 속의 상세한 여러 이야기는 꾸며낸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방문이 사실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1969년에 부친 전익선과 함께 진안으로 전봉준 장군의 장녀 전옥례를 찾아간 증언도 중요하다. 당시 전옥례 고모할머니로부터 들은 “니가 우석(전장수 씨 아명)이구나.” “내가 전봉준 장군 딸이다. 네가 우리 집 장손이구나. 잘 커서 집안을 이어라.” “내가 몸이 안 좋아 밥 한끼 따뜻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등의 이야기도 실감나지만,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집안 내부 구조에 대한 전장수 씨의 기억은 전옥례 할머니 집안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긍정하고 있거니와 그의 증언을 믿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증언 가운데 조부와 부친이 유독 서씨에 대해 갖는 반감이 강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로 인해 부친 전익선이 서씨 성을 가진 부인과 이혼하기까지 했던 것인데, 전봉준 장군에게 사형판결을 한 재판장이 법무대신 서광범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재판장 한 사람이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생사여탈을 결정하지는 못하지만, 후손 집안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겨졌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더해 전장수 씨는 전봉준 장군이 처형된 이후 그 시신이 어떻게 수습이 되고, 아들 용현(의천)에게 어떻게 알려졌으며, 이후 어디로 이장이 되었는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울러 1971년 그의 나이 14살 때 부친을 따라 장군의 묘역을 방문하면서 나눈 여러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에 관한 이야기 역시 매우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증언하고 있거니와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상의 몇 가지만 전장수 씨가 증언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네 편의 자료를 전재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방대한 증언의 규모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밖에도 수많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자료인 <동학대장 전봉준 장군의 가족사>는 고조부 전기창부터 시작하여 증조부 전봉준의 가족 일대기를 기록했고, 이어서 전봉준의 아들인 조부 전용현과 부친 전익선의 삶의 역정, 마지막에는 전장수 씨 본인이 살아온 과정을 정리했다.
전장수 씨는 2005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당시 동학농민혁명 유족 등록 범위가 손자까지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의 모친 이름으로 신청서를 작성해서 경남도청에 제출했으나 반려되었다. 이유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후로 전장수 씨는 외국에 있는 한인교회의 담임목회 활동을 위해 해외에 쭉 나가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유족 신청을 못했다고 한다.
물론 이 증언 내용이 모두 정확한 사실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간 연구자들이 채록한 동학농민군 후손들의 증언은 오류가 적지 않았다. 120여 년 전의 사실을 후손들이 모두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집안에 내려오는 일화도 과장되거나 덧붙인 내용이 나올 수 있다. 후손이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책을 읽고 공부한 것이거나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전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과장이나 오류가 나오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다. 그러한 사정은 역사연구자가 인용하는 많은 관찬 및 사찬 사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료비판을 전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 송정수 교수도 엄밀한 검증과 비판을 거쳐서 장수씨의 증언 내용을 저술에 활용하였다.
전장수 씨의 증언 내용은 큰 벽화의 수많은 조각과 같다. 이 같은 재료를 제공한 전장수 씨의 증언이 갖는 진실성을 부정할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 장군에 관한 연구와 자료는 무수히 많다. 전장수 씨는 상당한 수준으로 관련 자료를 읽어왔지만 가전(家傳) 일화와 후손이 살아온 이야기를 뒤섞지 않았다. 전장수 씨의 기억과 절제력은 상당하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의 증언들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에는 조부와 부친, 그리고 전봉준이 살고 활동한 곳을 쓴 여러 지명들이 나온다. 전봉준 장군과 관련한 지역은 유년시절을 보낸 고창과 함께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낸 고부와 금구, 태인이 중심이다.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활동한 장년기에는 무장과 장성, 전주와 정읍, 그리고 남원과 나주, 논산과 공주, 금구와 순창 등지가 주요 활동지였다.
전봉준이 살거나 활동했던 연고지는 동진강 수계로 이어져 있다. 동진강은 정읍 산외면과 칠보면에서 흘러내려 옹동면을 거쳐서 정우면과 이평면을 지난다. 그리고 부안 백산면과 동진면으로 흘러가 계화면에서 서해로 들어간다. 지도를 보면, 전봉준 장군은 정읍 동부의 산골지역 마을들에서 거주했다. 동진강 북쪽 지류인 원평천 인근의 감곡면 계룡리의 황새마을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그 아래 상두산 남쪽 기슭의 산외면 동곡리의 지금실에서 살았다. 지금실은 역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김개남이 살았던 마을이다.
전봉준이 남평 이씨와 혼인 살림을 차린 곳은 산내면 능교리의 소금실이었고, 이후 이평면 장내리의 조소리로 이주를 하였다.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봉기한 후 불타버린 조소리 집을 떠나서 산외면 동곡리의 원동골로 이주하였다. <전봉준공초>에서 전봉준은 태인에 살다가 고부로 이사해서 몇 해를 살았고, 그 집이 불에 타서 태인 산외면 동곡에 가서 살았다는 말을 직접 했다. 전봉준 장군 판결선고서에 기재된 집도 태인 산외면 동곡이었다. 현 행정구역으로는 모두 정읍시 경내에 해당하는 곳이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전한 후 순창의 민보군에게 사로잡힌 곳도 소금실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쌍치면 금성리의 피노리였다.
갑오년에 1차 봉기한 동학농민군의 주력은 전북평야와 함께 대둔산과 모악산과 내장산을 잇는 노령산맥에 접한 군현의 농민들로 구성되었다. 그 중심부를 동서로 흐르는 동진강 유역에 배들평야가 펼쳐졌고 만석보가 위치해 있다. 여기가 고부항쟁과 황토현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조선후기 농민들이 결성한 민군이 무능하고 부패한 양반관료가 지배한 관군을 처음으로 격파한 역사의 현장이 동진강 유역에 펼쳐진 들판 가운데 있었다. 이 책에서 송정수 교수가 무수히 답사하면서 확인한 전봉준 장군의 41년 격동의 삶의 무대가 바로 이들 지역이다.
저자 송정수 교수는 동학농민혁명 중심 무대의 하나인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봉준 장군의 족보인 『천안전씨세보병술보』를 발굴해서 동학농민혁명사 연구를 시작했다. 이 족보 기록을 토대로 보명(譜名)이 병호(炳鎬)로 기재된 인물이 전봉준이고, 문효공파에 속했으며, 생가가 고창 당촌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그의 초기 업적이었다. 전북대에 재직하면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박명규, 신순철 교수 등과 함께 기념사업 논의에 참여하였다.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전라북도 유족등록 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송 교수는 서울 종로에 전봉준 장군 동상을 건립할 때 학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2018년 여름에 개최한 학술발표회에서 <족보에 나타난 전봉준 장군 외가 검토>라는 주제를 발표하였다. 당시 이 발표회에 참석한 전장수 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의 머리말에 붙인 ‘전봉준 장군 증손자 전장수 씨와의 만남, 그 이후’의 내용에서 보듯 이 무렵부터 그 가족사를 본격 추적하기에 이른다.
이 책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전장수 씨의 증언만 채록해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전봉준 장군과 그 가족에 관한 문헌자료를 망라해서 검토하고 실증연구를 수행한 성과물이다. 이 책은 많은 주석을 붙여서 논지 전개의 근거를 밝혔다. 편집 체제 때문에 미주로 배치했지만 전문 연구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는 전후 사정을 추정하는 내용이 많이 들어갔다. 전봉준 장군의 삶과 활동, 그리고 후손들이 살아온 과정을 모두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거주 이전 배경과 교유관계를 비롯한 여러 사실을 추정도 포함하여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게 될 것이다.
송정수 교수가 저술한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는 전장수 씨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지만, 이 저서를 통해 나라를 위해 분투노력한 동학농민군과 그들의 후손을 보는 시각이 새롭게 정립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