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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三国演义》| 三足鼎立 风云变幻 【全84集】 - YouTube
총 5부 84회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화를 총 지휘한 감독은 왕부림(王扶林)이다.
5.1. 제1부[편집]
| 군웅축록(群雄逐鹿) | |||||
| 회차 | 제목 | 각본 | 연출 | 음악 | 제작 |
| 제1회 | 도원결의 桃園三結義 | 두가복 杜家福 | 채효청 蔡晓晴 | 이일정 李一丁 | 우세군 尤世军 |
| 제2회 | 십상시의 난 十常侍亂政 | ||||
| 제3회 | 동탁이 낙양을 장악하다 董卓霸京師 | ||||
| 제4회 | 조조가 칠성보도를 바치다 孟德獻刀 | ||||
| 제5회 | 호로관에서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 三英戰呂布 | ||||
| 제6회 | 연환계 連環計 | ||||
| 제7회 | 봉의정 鳳儀亭 | ||||
| 제8회 | 유비가 서주를 세번 양보하다 三讓徐州 | 심호방 沈好放 | |||
| 제9회 | 손책이 강동에서 거병하다 孫策立業 | ||||
| 제10회 | 원문에서 활로 방천화극을 쏘다 轅門射戟 | ||||
| 제11회 | 완성 전투 宛城之戰 | ||||
| 제12회 | 백문루 (상) 白門樓 (上) | ||||
| 제13회 | 백문루 (하) 白門樓 (下) | ||||
| 제14회 | 조조가 유비에게 영웅론을 설파하다 煮酒論英雄 | 주효평 朱晓平 | |||
| 제15회 | 조조와 원소가 군사를 일으키다 袁曹起兵 | ||||
| 제16회 | 관우가 조조에게 세 조건을 약조하다 關羽約三事 | ||||
| 제17회 | 관인을 걸고 황금을 봉하다 掛印封金 | ||||
| 제18회 | 관우가 두 형수를 모시고 천리길을 달리다 千里走單騎 | ||||
| 제19회 | 삼형제가 고성에서 재회하다 古城相會 | ||||
| 제20회 | 손책의 죽음 孫策之死 | ||||
| 제21회 | 관도 전투 (상) 官渡之戰 (上) | ||||
| 제22회 | 관도 전투 (하) 官渡之戰 (下) | ||||
| 제23회 | 조조가 원소를 대파하다 大破袁紹 | ||||
5.2. 제2부[편집]
| 적벽진전(赤壁塵戰) | |||||
| 회차 | 제목 | 각본 | 연출 | 음악 | 제작 |
| 제24회 | 유비가 적로마를 타고 단계를 뛰어넘다 躍馬檀溪 | 주효평 朱晓平 | 채효청 蔡晓晴 | 이일정 李一丁 | 장광전 张光前 |
| 제25회 | 유비가 인재를 구하다 劉備求賢 | ||||
| 제26회 | 서서가 말을 돌려 제갈량을 추천하다 回馬薦諸葛 | ||||
| 제27회 | 삼고초려 三顧茅廬 | ||||
| 제28회 | 조조군을 박망파에서 불태우다 火燒博望坡 | ||||
| 제29회 | 유비가 백성들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다 攜民渡江 | 刘树生 류수생 | |||
| 제30회 | 제갈량이 동오의 재사들과 설전을 벌이다 舌戰群儒 | ||||
| 제31회 | 제갈량이 주유를 말로 격분시키다 智激周瑜 | ||||
| 제32회 | 주유가 계략을 쓰나 실패하다 周瑜空設計 | ||||
| 제33회 | 주유가 장간을 군영회로 초대하다 群英會 | ||||
| 제34회 | 조조에게 10만개의 화살을 빌리다 草船借箭 | ||||
| 제35회 | 고육계 苦肉計 | ||||
| 제36회 | 방통이 조조에게 연환계를 제안하다 龐統獻連環 | ||||
| 제37회 | 조조가 시를 읊다 橫槊賦詩 | ||||
| 제38회 |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리다 諸葛祭風 | ||||
| 제39회 | 불타는 적벽 火燒赤壁 | ||||
| 제40회 | 지략으로 남군을 취하다 智取南郡 | ||||
| 제41회 | 유비가 형주 4군을 얻다 力奪四郡 | ||||
| 제42회 | 미인계 美人計 | ||||
| 제43회 | 감로사 甘露寺 | ||||
| 제44회 | 유비가 형주로 돌아가다 回荊州 | ||||
| 제45회 | 주유가 세 번 화내다 三氣周瑜 | 장중일 (张中一) 학항민 (郝恒民) | 단우생 (单雨生) 학항민 (郝恒民) | ||
| 제46회 | 제갈량이 주유를 애도하다 臥龍吊孝 | 장중일 张中一 | 왕헌 王宪 | 단우생 单雨生 | |
| 제47회 | 조조가 수염을 자르고 도망치다 割須棄袍 | 이일정 李一丁 | |||
5.3. 제3부[편집]
| 삼족정립(三足鼎立) | |||||
| 회차 | 제목 | 각본 | 연출 | 음악 | 제작 |
| 제48회 | 장송이 유비에게 서촉의 지도를 바치다 張松獻圖 | 엽식생 叶式生 | 장중일 张中一 | 왕헌 王宪 | 단우생 单雨生 |
| 제49회 | 유비가 서촉으로 들어가다 劉備入川 | ||||
| 제50회 | 방통이 낙봉파에서 명을 다하다 鳳雛落坡 | ||||
| 제51회 | 장비가 엄안을 풀어주다 義釋嚴顏 | ||||
| 제52회 | 유비가 서촉을 정벌하다 奪戰西川 | ||||
| 제53회 | 관우가 무장한 채 노숙의 잔치로 가다 單刀赴會 | 손광명 孙光明 | 학항민 郝恒民 | ||
| 제54회 | 합비 전투 合肥會戰 | ||||
| 제55회 | 조조의 아들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다 立嗣之爭 | ||||
| 제56회 | 정군산 定軍山 | ||||
| 제57회 | 지략으로 한중을 취하다 巧取漢中 | ||||
| 제58회 | 관우가 칠군을 수장시키다 水淹七軍 | ||||
| 제59회 | 관우가 맥성으로 도주하다 走麥城 | ||||
| 제60회 | 조조의 죽음 曹操之死 | 주개 周锴 | |||
| 제61회 | 조비가 한을 찬탈하고 위를 세우다 曹丕篡漢 | ||||
| 제62회 | 유비가 동오 정벌을 위해 출진하다 興兵伐吳 | ||||
| 제63회 | 육손이 촉의 진지를 모두 불사르다 火燒連營 | ||||
| 제64회 | 오로군으로 촉을 치다 安居平五路 | 이일파 李一波 | |||
5.4. 제4부[편집]
| 남정북전(南征北戰) | |||||
| 회차 | 제목 | 각본 | 연출 | 음악 | 제작 |
| 제65회 | 노수를 건너다 兵渡瀘水 | 이일파 李一波 | 장소림 张绍林 | 왕헌 王宪 | 장기중 张纪中 |
| 제66회 | 기로에서 길을 묻다 絕路問津 | ||||
| 제67회 | 칠종칠금 七擒孟獲 | ||||
| 제68회 |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북쪽으로 출진하다 出師北伐 | ||||
| 제69회 | 제갈량이 강유를 얻다 收姜維 | ||||
| 제70회 | 사마의가 다시 군사권을 얻다 司馬復出 | ||||
| 제71회 | 제갈량이 공성계를 쓰다 空城退敵 | ||||
| 제72회 | 사마의가 조진에게 대도독의 인수를 받다 司馬取印 | ||||
| 제73회 | 제갈량이 사마의와 지혜를 겨루다 祁山斗智 | ||||
| 제74회 | 제갈량이 귀신 분장을 하다 諸葛妝神 | ||||
| 제75회 | 제갈량이 여섯번 기산으로 나아가다 六齣祁山 | ||||
| 제76회 | 상방곡에 불을 붙이다 火熄上方谷 | ||||
| 제77회 | 오장원의 가을바람 秋風五丈原 | ||||
5.5. 제5부[편집]
| 삼분귀일(三分歸一) | |||||
| 회차 | 제목 | 각본 | 연출 | 음악 | 제작 |
| 제78회 |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이다 詐病賺曹爽 | 주개 周锴 | 장중일 张中一 | 왕헌 王宪 | 단우생 单雨生 |
| 제79회 | 오 궁궐에서의 정변 吳宮干戈 | ||||
| 제80회 | 철롱산에서의 포위 兵困鐵籠山 | ||||
| 제81회 | 사마소가 황제 조모를 시해하다 司馬昭弒君 | ||||
| 제82회 | 중원으로 아홉번 나아가다 九伐中原 | ||||
| 제83회 | 등애가 음평의 샛길을 이용하여 촉으로 들어가다 偷渡陰平 | ||||
| 제84회 | 삼국이 진으로 통일되다 三分歸晉 | ||||
6. 각종 에피소드
작중 병졸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인민해방군 소속 군인들인데 한번 촬영에 5천명 정도씩 모두 약 40만명이 동원되었다.
총 1억 7000만위안(약 334억 9천만원)이 투입돼 1억 위안 가까이 촬영장을 만들고 7000만 위안은 직접 촬영에 투입했다. 중국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 2개를 줘저우시에 설치했는데, 각 면적 1200㎡에 2개 스튜디오가 약 4000만 위안, 우시의 '삼국성'과 같은 기간 드라마 '당명황'을 위해 지은 '당성'이 약 2000만 위안, 줘주우시의 '한성벽' '거리' '동작대'가 약 3000만 위안, 의류 1000여종 3만여벌에 약 2000만 위안의 비용이 들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제작되었는데 1990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어 기본 계획이 수립되고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1년 7월 촬영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으며 촬영지는 하북, 내몽고, 사천, 영회, 감숙, 청해, 서장(=티벳), 강서, 운남 등지이다.
배우들은 일단 모여들어서 바로 촬영부터 한 게 아니라, 사학자들에게 강의부터 들었다. 또 원작인 삼국연의를 철저하게 이해하기 위해 따로 연구도 하고, 승마와 무술, 예절을 배웠다고 한다. 작가들도 대본을 쓸 때마다 반드시 사학자에게 개작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당국강은 당시만 해도 좀 뺀질뺀질한 이미지에, 젊고 잘생긴 청춘스타에 가까운 배우여서 캐스팅에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이 어차피 원작 삼국연의의 제갈량 역시 키가 크고 관옥같이 생겼다고 나오는 판이라며 밀어붙였고 막상 촬영을 해보니 그럴듯하게 잘 나와서 그대로 밀고 갔다고.#
극초반 후한의 난세 부분[21]은 의외로 괜찮게 그렸으며 황건적의 난은 중국표기대로 황건기의로 표시한다. 하지만 황건적의 난은 정말 지나가는 수준이고 사실상 도원결의부터 시작한다. 그래도 다 날려버리고 조조의 동탁 암살 시도부터 시작하는 신삼국과는 다른 점.
연의 원전에서는 적벽대전 직전에 유복이 조조의 단가행을 불길하다고 말했다가 술에 취한 조조에게 창에 찔려 죽지만 여기서는 사욱(師勖)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해 유복의 역할을 대행한다.
미신이나 도술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중국의 사정으로 인해 좌자 부분은 모두 삭제되었지만, 웬일인지 조조가 낙양에 건시궁을 짓기 위해 쓸 배나무에 칼집 내다 핏물이 튀는 것은 그대로 살렸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할 때 사구라는 독천을 건널 때 병사들이 알몸으로 건너다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중요 부위(...)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일본, 한국에서 방영될 때는 당연히 삭제되었지만 중국 현지에서 방영되었을 때는 그대로 나왔다.
남만정벌 부분에서 목우유마가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 목우는 좁은 산길에서도 혼자서 밀고 갈 수 있는 외바퀴 손수레이고 유마는 네 바퀴가 달린 달구지 수레지만, 이 작품에서는 연의의 묘사대로 진짜 소처럼 생긴 나무로 만든 무언가를 등장시켰다. 그야말로 소 모양 4족보행 로봇(...)으로 묘사된다. 그 시절에 실제 로봇을 썼을 리는 없을테고 아마도 엑스트라 두 명이 목우유마 모형 안에 들어가서 움직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의의 묘사대로 엉덩이를 세 번 때리면 꿈지럭꿈지럭 하며 움직이고, 혀를 비틀면 움직이지 않으며, 배를 따면 곡식이 쏟아진다.
목록대왕이 맹수들을 부려 촉군을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호랑이같은 맹수가 전혀 없다. 대신 물소떼가 촉군을 덮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하긴 진짜로 호랑이를 썼다가는... 이에 제갈량은 목수(木獸)로 반격을 하는데 소떼가 목수의 화염공격을 맞고 몸에 불이 붙어서 몸부림친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물소가 몸에 불이 붙어서 도망가는 장면은 검은 연기가 심하게 나오는 모양새가 어째 CG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방화처리를 한 것 같아보이지도 않는다.
83부에서 등애가 음평의 샛길을 통해 검각을 우회하여 성도로 진격하는 장면도 역시 CG가 아니라 배우들과 촬영진들이 진짜로 산을 타면서 재현한거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는 장면은 대역이 아니라 실제로 서예가이기도 한 배우 당국강이 직접 쓰는 것이다. 글씨가 많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예(漢隸) 특유의 고졸한 맛이 잘 보인다. 당국강은 서예에 능해서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을 정도.
78화에 이스터 에그 비슷한 게 있는데, 조상이 어떤 구리거울을 선물받았는데, 그냥 지나치려는 조상을 환관이 거울에 새겨진 글귀가 가상하다는 말을 듣고 그 글을 보면서 찬사를 하는데 해당 문구는 "천하가 굴복하고 중국 인민의 부를 축원한다."라는 문구이며 조상은 특히 '중국 인민'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뭔가 현대인이 창작한 문구 같지만[22], 놀랍게도 역사상에 실존한 물품이라고 한다. 후한 때의 물건이라고.
거의 모든 삼국지연의 기반 작품들이 제갈량의 사후 부분은 걍 날리거나 줄이거나 지나가는 식으로만 언급하지만 이 작품은 그래도 제법 상세하고 충실하게 다루었다. 고평릉 사변, 사마사의 조방 폐위, 제갈각의 죽음과 손준의 집권, 강유의 북벌, 사마소의 조모 시해, 손침의 최후, 등애와 종회의 촉한 정벌, 강유의 촉한 부흥운동 시도와 죽음, 유선과 사마소가 연회에서 있었던 일화[23]까지 상세하게 다룬 편이다. 무엇보다 제갈량은 77회에서 사망하는데 7회에 걸쳐서 1회에 40분 짜리니 7회면 거의 5시간에 달하는 분량이다. 다만 사마소의 죽음 이후 사마염의 오나라 정벌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고 사마염이 조환에게 선양받은 다음 오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했다고 언급으로 나온다. 후에 나온 신삼국은 제갈량의 사후 부분은 마지막 회에서만 다루고 고평릉 사변 외에는 건성건성 나오며 그것도 사마의의 죽음으로 끝난다. 대군사 사마의를 보자
예전 드라마다보니 인물들의 웃는 리액션이 과하다. 와하하하하하하하고 웃어대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 한중일 공통이기도 하다. 당시만 해도 연극무대식의 오버하는 연기방식이 유행해서 우리나라도 8, 90년대 초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극을 듣거나 보면 배우, 성우들의 연기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삼국에서도 잘 살펴보면 몇몇 노배우들이 84부작 삼국지 스타일의 과장된 연기를 고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리액션은 마지막까지 나와서 유선의 어리석음을 보고 사마소가 낄낄 웃어제끼다가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또 중국 드라마답게 대부분 전문 성우를 따로 고용해서 더빙을 했다. 그나마 조조 역의 배우와 동탁 역의 배우는(이 사람은 겸 성우 출신이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더빙했다.
유비 패왕설 드립에서 근거라고 곧잘 써먹히는, 관우와 장비가 싸우는데 둘의 팔을 각각 한 손으로 잡아 억지로 떼어 놓는 힘센 유비가 나오는 게 바로 이 드라마이다. 1화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역재생하여 유비가 관우와 장비에게 강제 악수로 화해하게 만드는 듯한 짤도 있다.
아무래도 중국이 아직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된 작품이라, 지금와서 보면 별에 별 짠내나는 제작과정 에피소드도 많다.#
막대한 돈이 들어간 드라마였지만, 당시 중국 여건상 배우들에게 지급하는 출연료는 매우 낮았고 대우도 형편없었다. 제작진이 배우들의 출연료는 제작비의 5%에 불과하다고 장담했으며, 출연료는 회당 255위안, 총 3만 위안이었다고 한다. 숙소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배우들은 야외 촬영중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으며, 식사 또한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중 하나로 유비, 관우, 장비 역을 맡은 손언군, 육수명, 이정비가 배가 고파서 밭에 나가 옥수수를 훔치다가 농민들에게 들키기도 했다. 이때 육수명과 이정비는 도망치고, 손언군만이 붙잡혔는데 결국 조조 역의 포국안이 나중에 돈을 가지고 찾아가 갚는 것으로 해결했으며. 그마저도 제작진이 돈을 준게 아니라 손권 역의 오효동에게 빌린 것이었다고 한다.
관우 역의 육수명은 촬영중에 낙마하여 낙상, 다리가 부어서 어쩔 수 없이 큰 파이프를 다리에 박고 어혈을 뽑아야 했다. 피를 빼는 것이 너무 아파서 육수명은 큰 소리를 지르다가 젓가락을 물어서 참아야 했는데, 의사가 그를 보며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란다. "관공은 (태연히) 뼈를 긁어 독을 치료했다던데, 이게 뭐하는 겁니까?"
육수명은 관우의 붉은 얼굴 분장을 하느라 곤혹스러웠는데 항상 연기 중에 눈을 치켜떠야 했고, 라텍스를 붙이고 화장을 해야 했으며 이게 피부에 붙어서 제거하기도 까다로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라텍스의 품질이 나빴는지 얼굴에 고름과 흉터가 생기기도 했다.
장비 역의 이정비도 눈을 부릅뜨는 연습을 자주 했고 유비 역의 손언군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주 울었지만 매번 안약을 쓰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지막 분량에는 사마의와 제갈량만 남게 됐는데, 사마의 역의 위종만은 제갈량 역의 당국강을 질투하였다. 위종만은 50대 나이에 말을 타고 다녀야 했지만, 당국강은 편하게 수레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숙해져서 "초원의 독수리"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의도친 않았겠지만 삼국지 창작물 중에서 당시의 성벽을 고증한 몇 안되는 작품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성벽이 흙빛을 띄고 있는데 실제로 삼국시대에 석성은 소수였으며[24] 토성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삼국지 창작물이 저지르는 재현 오류인데[25] 삼국연의는 후반부로 가면서 석성의 비중이 높아지는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의 토성을 어느 정도 재현해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