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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2회동기
부산교육대학 2회 동기, 그대는 누구인가?
이학원: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1. 재학시절 수많은 사연들은 캔 맥주의 오징어가 된다
서울지역 2회 동기들과 기차여행을 하면 나는 늘 이성을 잃는다.
서울 동기회 회장이 누구이든 간에 우리 2회 동기들이 모여 부산을
가거나 영월로 가거나 간에 편리한 기차를 이용하여 내왕하는 경우가
많다. 회장이나 총무는 우리 동기들이 한 칸에 같이 모여 가기 원하기
때문에 기차표 예매를 하기 위해 동기들에게 일일이 전화나 문자를
보낸다. 좀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어떤 때는 회
장이나 총무의 수고 덕택으로 모두 한 칸에 다모여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여행을 한다. 이럴 경우 신난다. 여행은 2배로 즐거워진다.
이 번 모임에 참가한다는 답장을 보내는 즉시 내 가슴은 콩당거
리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꼭 초등학교
3학년 때 봄소풍 날을 기다리던 기분이 되는 것이다. 늙으면 애가 된
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때가 점점 늘어난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에는 이발도 하고 목욕도 겁내기 오래오래
한다. 이 행사는 여행하는 동안 기차 안에서 노인 냄새를 안 나게 하
고, 가슴 따뜻한 일들만 기다리고 있겠다는 마음으로, 농부가 가뭄에
기우제 지내는 기분으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갖고 떠나자는 내 나름
대로의 의식이고, 친구들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다.
동기들끼리 여행을 같이 하면서 점심이나 저녁때가 되면 기차 안
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역 대합실 근처
음식점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경우도 몇 번 있었지만, 외부에서 구입한
도시락을 기차 안에서 먹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정겨운 일이었다. 동기
들의 그 오물오물하는 입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아 반갑고 정
겹기만 하다. 요즘은 철도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
뜻한 양질의 비싼 도시락을 주문하여 즉석에서 먹으면 우찌 그리 맛
있고, 흐뭇하고,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음식을 먹는 동안 동기들을
쳐다보면 동기들이 마치 피붙이 같이 정답고 살갑게 느껴진다.
나이 지긋한 동기들의 모임이 있으면 가장 신경 쓰며 유의하여
구하는 것이 맛있는 음식점이고, 그 음식점을 둘러 싼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다. 도시락을 먹는 동안 마주 앉은 동기들의 얼굴과 창밖에 보
이는 대자연은 동기들의 눈에 어리는 지상 최고의 빼어난 경관이고
작품이 되어, 훗날 늙어가는 동기들의 아련한 추억이 될 수 있기 때
문이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근처 좌석 승객들이나 차장으로부터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고 항의와 주의를 받았는데도 왜 기분이 상하지
않고 좋기만 한지! 참으로 그 기분을 모를 일이다. 주의를 받았는데
도 아랑 곧 하지 않고 그렇게 점점 목소리가 살금살금 올라가며 커지
는지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잘 모른다.
가장 큰 목소리로 무상식으로 떠드는 사람이 춘천에 사는 이학
원 이다. 늘 맑은 공기를 마셔온 덕택으로 목청이 아직 그 나이에도
쉬지 않았기 때문이랄 수도 있고, 모처럼 동기들을 만나 외로운 외톨이
의 객지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보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을 터인데, 자
주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떠벌이로 변하는 황당한 경우가 종종 있기
에 동기들과 만나 여행할 때면 조심을 한다고 하는데도, 그게 글
쎄 그렇게 마음대로 잘 안 되니, 그동안 내 나름대로 쌓는다고 쌓은
내 인생 내공이 동기들을 만나면 헛것으로 돌아가는 듯하니 쌓은
내공이 별 볼일 없는 것 아닌가 한다.
우리 여자 동기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서울지역 여자 동기들은 모
두가 하나같이 다정다감하고 곰살스럽기 이루 말 할 수 없다. 참말로
정감이 가는 여자동기들 이다. 지금은 황근희 총무가 잘 잡힌 틀 위에
서 동기들의 일을 맡아 봉사를 하고 있지만, 모임 초창기 어려울 때 동
기들의 모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최정자 동기를 이어, 윤미순 동
기, 빈행자 동기의 헌신적인 봉사는 아름다운 서울 동기들의 모임을
위해 반듯하고 튼튼한 초석을 놓았다.
지금은 부산 기장의 고향 바다 냄새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
을 윤미순 친구와 황영숙 친구도 서울 있을 동안 내내 다정다감하고 곰
살스럽고 상냥한 멋지고 귀한 친구들이었는데,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많
이 사는 고향 부산에 간다는데 그 누가 말릴 수 있었겠는가. 그 동안
정이 많이 들었던지 서울동기회 모임이 있을 때 마다 이 동기들 생각이
문득문득 나서 습관적으로 두리번거리며 찾아본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
나 하는 건지, 재부 옛 서울친구들아! 운재 또 서울에 올끼꼬? 지난번
가을 여행 때 손을 잡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니 분이 좀 풀리는 기
분이었다. 얼마나 반가운 만남이었는지 모른다.
여자 동기들은 동기들 모임에 언제나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맛있
는 먹을거리를 챙겨와 나누어 먹이는 것이다. 아니 먹을거리도 맛있지만
장미원 앞뜰에서 장미 향기를 맡으며, 숲 속 정자에 앉아 정담을 나누면
서, 달리는 기차 칸에서 누굴 질근질근 씹고 나서 파안대소하며 나누어
먹는 그 맛있는 간식을 준비한 그 마음이 더 고맙고 맛있는 것이었다.
정에 굶주린 외로운 늑대 같은 나에게는 춘천 같은 시골 먼 데서 왔다고
갈 때 차 안에서 먹으라고 먹을거리를 슬그머니 가방에 더 넣어주는 정
다운 여친 동기들도 있다. 얼마나 정답고 고마운지 모른다. 담배와 술을
잘 안 먹는 나는 주전부리를 할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
밤늦게 서울에서 전철이나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오면서 창밖의 어
두운 북한강 강물 위에 그리운 동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동기들이 넣
어 준 먹을거리를 찾아 꺼내들고 먹으며 너무나 행복에 젖어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다음 동기들을 만날 날을 손꼽아 보면서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마음이 다시 따뜻해지는 것이다. 나는 동기들을 만나고 오면, 며칠 간 기
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 고향을 찾아보고 오는 것 같
기도 하고, 마음이 드는 죽어 묻힐 곳을 찾았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남친들 가운데는 박연남 동기가 제일 곰살스럽고 친절하여 먹을 것
을 자주 사다 준다. 이렇게 먹을 것을 사다주고 챙겨주는 친구들은 생각
과 마음이 이미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을 능가하는 마음의 갑부들이
다. 이런 귀한 친구들이 일찍 죽으면 안 된다. 내 비록 거지 팔자는 조금
면했지만 그 근성은 아직 남아 있어 부탁을 드리고 싶다. 친구들아, 더
오래 오래 같이 살면서 더 맛있는 것, 더 많이 사주면 안 되겠니? 그라
몬 안 잡아먹겠다. 돈 많이 벌어서 기차 여행을 할 때건, 서울공원 장
미원을 거닐 때건,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숲 속 정자에 앉았던 간에 동
기들에게 맛있는 먹을거리를 사주는 그 친구가 바로 짱 이다. 이 세상
에 누가, 무엇이 그리 짱이겠노? 백무석 목사님께 여쭈어보나 마나, 천
당행 직행 예약표가 가능한 덕행이라며 적덕지가에 필유여경(積德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칭찬과 격려를 할 것이 틀림없다.
서울 신기석 친구와 박연남 친구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풍요
롭게 잘 사는 부러운 천사표 친구들이다. 우리 동기들에게 베푼 사랑
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 있다고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동기 모두들 다 잘 알고 고마워한다. 한 평생 우리 동기들에게 베풀어
주었던 덕과 공이 크기 때문에 하늘이 베풀어 주는 큰 은덕을 받아 그
렇게 천 배, 만 배로 복을 받고 잘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캔맥주의 오징어급 안주 이야기는 그 종류
가 무궁무진하다. 재학 중 짝사랑을 했던 어느 동기 이야기는 우리들
의 배꼽을 통 채로 빼고도 남았다. 재학 기간 2년 내내 예쁜 얼굴에
작달마한 키가 잘 어울리는 어느 경남여고 출신의 여자 동기가 머리를
한 가닥 혹은 두 가닥으로 예쁘게 땋아 다니며 촌티 풀풀 나는 선머슴
아들의 애간장만 태우며 한 장 할 지경이었다는 이야기에서 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 란 노래를 연신 여친들로 부터 연거퍼 배우고 따라
부르면서 차창에 몸을 기대 멋진 폼을잡고 가는 친구 얼굴이 요즘 들
어 버쩍 윤기가 자르르 많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점점 얼굴이 환해
지고 좋아진다며, 어디 깨소금 볶는 냄새가 진동한다며 남친을 격려하
는 척, 캔맥주의 안주감인 오징어를 만들어 질근질근 씹어 대는 여자
동기들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새신랑을 가만히 두지 않고 괴롭히는 폼
이 내심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치에 시샘까지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
아서 더욱 재미있다. 허물없이 지내는 동기들이 아니면 하지도 못할
말이고 이해도 못 할 말들이 전쟁터에서 피아간에 쏘아대는 총알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깔깔깔, 하하하 웃어재끼는 것이다.
큰 키에 미남에다 순하고 수줍어하는 내 친구 얼굴 표정을 우리
동기 모두가 부러워하고 질투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순하고 맛있는 친구를 그렇게 맛있게 잘근잘근 씹고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얌전히 앉아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눈을 지그시 감고 가는 친구들의 얼굴이 이제 막 코미디
단막극을 보고난 해학적인 얼굴 표정들 같아서 그 얼굴 표정들이 나
에게는 너무나도 즐겁고 상쾌하다.
그 것 뿐만 아니다. 졸다가 눈을 뜨고는 우리 여자 동기들 중에
누가 아프리카 콩고 대통령 따님을 닮았던가? 에서부터,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그렇지만 우리
한새벌 위에도 떴지! 1962년 입학하자마자 캠퍼스 안을 훤히 비춰 주
는 보름달 같았던 제복의 다리 큰 처녀 함기미 여자 동기 이야기까지
캔맥주의 오징어 안주가 된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함기미 동기는 졸업 50주년 기념 문집 한새벌
여정에서 “나이 70에 깨달은 것” 이란 제목의 수필에서 고국에 두
고 온 부산교대 2회 동기생 전부를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온 모임
친구들과 황영숙 동기도 더욱 보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
한 사람은 자기가 교육 받은 곳에서, 자기 나라 말을 쓰며, 가족 친
지 친구와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며 수만리 떨어진 타향에서 망향의
그리움에 젖어 우리들과의 추억을 되살리며 매우 외로워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동기들이 정말 부
럽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기차 안에서 정답게 만나 소프라노와
테너의 높 낮은 고음으로 한국말을 하면서 행복을 누리고, 잠시 동안
멀리 떨어져 그리워했던 친구들을 만나려 달려가는 행복한 인생들이
아닌가!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함기미 동기가 그토록 그리
워하는 삶을 우리들은 이렇게 쉽게 누리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
닌가! 우리 동기들끼리 이렇게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우리 인생이 정
말로 행복한 인생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함기미 동기는 낯 설은
이국땅에 멀리 떨어져 나이 70에 이르러 동기들이 몹시 그리운 것이
틀림없다. 글 말미에 광자야, 영숙아, 영자야 … 정다운 친구 이름을
적으며 향수에 젖은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있어, 이 글을 읽는 우리들
마음을 얼마나 짠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방사선 치료에 넌더리가 난 몸을 뒤척이며 함기미 동기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글귀가 수구초심(首丘初心)이었다. 아마도 함기미
동기도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 의미의
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늘 가슴에 담고 살고 있을 것이 틀림
없어 보인다. 함 동기가 늘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우리 동기들은 자주 만나 서로 위로하고 안부를 묻는 우리 생
활이 정말로 행복한 인생이란 것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물큰 들었다. 함기미 동기! 우리도 그대를 한 없이 보
고 싶답니다. 비행기 타고 고국에 다니려올 때를 동기회 모임 기간
에 맞춰 나와서 한 번 동기들을 만나보고 가시오. 오래전 언젠가
나는 함기미 동기가 미국 가서 사는 줄도 모르고 부산 동기회 모임
에 가면 곧장 두리번거려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사업을 크게 성공하며 자식 농사도 잘
지어 노년을 행복하게 잘 지내는 김종웅 박사 이야기도 꽃을 피운
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는 성공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김종웅 동기는 50주년 기념 문집에 실릴 “2회 동기생들 Bravo!”
라는 글을 쓰면서 고국의 2회 동기 친구들과 엮었던 아름다운 추
억 때문에 애잔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하면서 Beethoven의
‘Moonlight’곡을 들으면서 동기들이 읽을 이 글을 쓰고 있다고 하였
다. 고국의 동기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나?
김종웅 박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혈압이 높아 퇴교한 후 다시 부산교육대학에 응시 합격하여 우리들
의 자랑스런 2회 동기가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재주 있었던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던 코스를 밟았던 것이다. 등록
금이 전연 없는 3군 사관학교나 등록금이 고등학교 학비보다 적게
드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등이 매력적이었다. 교육대학은 2년만
다니면 자동 뽕으로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같이
없는 집 아들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대학이었다. 김종웅 박사도
내 형편 비슷했다고 하였다.
김종웅 박사는 내가 이태원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아 근무
하고 있는 동안 학교로 찾아와 만나 본 이후로 만나보지 못하다가 미
국 미조리주에서 자리를 잡았을 때 편지 왕래가 한 번 있었기에 안부
와 행복한 삶을 잘 가꾸어 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한새벌 여정’에서 친구의 글과 사진을 대하니 그 겸손한 태도와 진지
한 눈매와 늙으면 복이 있을 크고 넓적한 큰 턱이 떠오르며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50주년 기념 문집 ‘한새벌 여정’의 91
쪽에 김종웅 박사 내외의 사진을 보니 김 박사를 만나본 듯 반갑기 한
량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