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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5. 25. 월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내가 맡은 모든 직분을 감사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내가 하는 멘토링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큐티(QT)이다.
나는 멘티들에게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글로 적도록 한다.
처음에는 중학생 아이들도 과연 이 QT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내 멘티인 주안 전도사가 자신이 맡은 중고등부 아이들 가운데 여섯 명을 멘티로 세우고, 내가 멘티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멘토링을 시작했다.
어느 날 그 아이들이 쓴 묵상을 보내주었는데 읽으면서 참 놀랐다.
“어려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적을 수도 있구나.”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 멘티들은 세대별로 다 있다.
60대, 50대, 40대, 30대, 20대…
그리고 가장 어린 멘티는 10대인 중학교 2학년 서현이다.
서현이는 아직 나와 직접 개인 톡을 하는 사이는 아니다.
서현이 엄마가 아들 서현이를 도와주고 있다.
내가 서현이 엄마에게 “아이에게 묵상을 어떻게 가르치면 되는지” 설명을 보내드렸더니, 이제는 서현이가 매일 묵상을 써서 보내준다.
서현이가 손 글씨로 묵상을 적으면 엄마가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주님께 받았다는 그 음성이 얼마나 단순하고, 맑고, 상쾌한지.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
나는 이렇게 어린 멘티가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서현이는 학교 갈 때도 매일 성경책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학교 시작 전에 30분 동안 성경을 읽는다고 한다.
지난번에는 어떤 친구가 서현이 공책에 “예수쟁이”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보통 아이 같으면 속상해하거나 지워 버리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서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이 글 지우고 싶지 않아.”
그 이야기를 듣는 데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가 세대별로 사람들을 세우고 있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믿는다.
얼마 전에 내가 하나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주님, 노장은 죽지 않고 서서히 사라진다고 하는데, 저는 어떻게 사라져야 아름답게 사라지는 것일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말씀은
“사람을 세워라! 사람을 세워라!”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만든 어록 중 하나가 있다.
“순종이 익숙해지면 불순종이 어려워집니다.”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실 때, 나는 비교적 빨리 순종하는 편이었다.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가 되면 내 안에 설명하기 어려운 평강이 임한다.
그 평강은 마치 머리부터 몸 전체를 눌러 주는 듯한 느낌이다.
억지로 내 생각을 밀어붙이려고 해도 그 평강이 나를 덮는다.
반대로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도 나는 같은 경험을 많이 했다.
지난번 케냐에서
기술학교 사역을 정리하게 되었을 때가 대표적이다.
나를 정말 처절하게 배신했던 현지인이 있었고, 인간적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분명 속에서는 화가 나는데, 더 큰 어떤 힘이 나를 눌러 주는 것 같았다.
억울함과 분노가 폭발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덮어 주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교지의 삶에서 실제로 누군가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절대로 내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일단 순종하는 것이 내 삶의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2027년 1월에 하라고 하신 일이 하나 있다.
아직은 밝힐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1월이라는 날짜까지 마음에 주셨다.
왜 1월인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른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이번 선교대회가 끝난 뒤 내가 해야 할 결정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 일을 준비하게 하셨다.
나는 디테일을 다 알지 못해도 먼저 순종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그 일을 내 멘티들에게는 이미 알려 주었다.
내가 내년 1월에 어떠한 결정을 준비했는지 그러니 내 멘티들은 모두 알고 있다.
멘토링은 항상 "삶을 공유"하는 믿음의 공동체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 멘티들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들은 음성들을 지금까지 순종해 왔는지를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먼저 알게 되기도 한다.
나는 하나님께 “왜요?”를 많이 묻기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믿으면 그대로 행해 온 것 같다.
그래서 내 남편은 나에게
"사도시대 이후로 난 당신처럼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해 주기에
내가 웃으면서
"당신 그거 칭찬인 거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부족한 순종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 믿은 것은 끝까지 붙들고 살아오게 하신 은혜가 참 감사하다.
그리고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또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다.
아마 2027년 1월이 되면, 그 이야기도 내 묵상에 올리게 될 것 같다.
일단 내가 기쁜 것은
아~~ 그래서 하나님이 1월에 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나를 인도해 오셨던 방법과 동일하게
내 마음을 꽉 채우는 평강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습관이 되어 있다는 확인이
나 개인으로서는 참 기쁜 일이었다고 하겠다.
우리말성경 디모데전서 1장
12. 나는 내게 능력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드린다.
이는 주께서 나를 믿고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다.
“주께서 나를 믿고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
이 말씀이 오늘은 유난히 깊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내가 처음 전임 사역을 시작한 것은 스물세 살 때였다.
신학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 워싱턴 순복음제일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사역하게 되었다.
누가 나에게 “선교사님은 언제 가장 뜨겁게 사역하셨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첫 사역 때라고 말할 것 같다.
중고등부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그때 나는 정말 내 안에 있는 모든 열정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했고,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나를 참 많이 사랑해 주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중고등부는 정말 많이 부흥했다.
동네에서는 “문제 있는 아이들은 무조건 워싱턴 순복음제일교회로 보내라”라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였다. 사고 치던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변화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 시절 이야기가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몇 년 전, 내 멘티 중 한 명인 미셸이 바로 그 교회 전도사로 들어가 사역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멘토님, 멘토님이 중고등부 전도사 하셨을 때 거의 전설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내가 정말 그렇게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했고,
맡겨진 사역을 사랑했다.
그때 중고등부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참 좋았다.
주일 예배 후에는 선생님들끼리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식사하며 교제했다. 너무 좋아서 헤어질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아이들 중에는 “나중에 커서 우리 교회 중고등부 선생님 되는 게 꿈이다”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만큼 행복한 공동체였다.
그때 나는 겨우 스물세 살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 나이에도 부흥 집회와 수련회로 나를 계속 부르셨다.
많은 중고등학생 집회를 다녔고, 대학 찬양집회와 수양회 강사로도 정말 많이 다녔다.
오죽하면 교회 안에서 “제발 밖에 나가서 설교 좀 못 하게 하라”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그렇게 뜨겁게 사역하다가, 나는 1994년 2월 케냐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었다.
벌써 32년 전 이야기다.
선교지에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교회도 다섯 개가 세워졌고, 내가 키웠던 제자들이 각 교회를 맡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
내가 케냐에서 키웠던 아들 중에는 목사도 있고 전도사도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참 감사하다.
기술학교를 세워 천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직업 교육도 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다.
또 지역 사회를 위해 축구장과 농구장, 배구장, 놀이터와 자전거 길까지 만들며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는 일에 하나님께서 사용해 주셨다.
경찰국에서 표창장도 받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리였다.
“주께서 나를 믿고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
이 말씀 그대로였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것은, 지나간 선교의 세월을 돌아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 감사가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교지에서 배신도 당했고, 사기도 당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나를 욕하고 다닌 사람은 없었다.
나를 모함하거나 험담하지도 않았다.
돈 욕심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나는 감사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선교지의 리무르에서는 장차 커서 되고 싶은 사람의 리스트에 내 남편과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넘치는 은혜인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 소원들도 많이 이루어 주셨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조국의 청년들에 대한 마음이 참 컸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조국의 청년들을 제게 주시면 제가 주님께 세계를 드리겠습니다.”
그 기도를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이탈리아 코스타 강사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50개국에 가까운 나라들을 다니면서
조국의 청년들에게 설교하게 되었다.
그 일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내가 했던 기도를 생각나게 하신다.
“조국의 청년들을 제게 주시면 제가 세계를 드리겠습니다.”
사실 나는 그 기도를 이제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다는 것을 어저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이 더욱 먹먹하게 다가온다.
“주께서 나를 믿고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
하나님은 나의 무엇을 보시고 지난 40년 동안 사역의 자리를 맡겨 주셨을까?
성경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니 내 마지막 사역의 순간까지도 충성된 자로 남고 싶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라는 고백을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참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죄를 지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회개하며, 주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달려왔음도 사실입니다.
이 시간까지 맡겨 주신 모든 사역들을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뛸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도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전에 제가 전도했던 "모아 슈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갑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할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신다고 해서 아버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해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고비를 넘기시고 일반 병실로 나오셨다고 합니다.
예수님 안 믿고 80년 평생을 불교이셨던 할아버지가 저에게 "목사님 기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오셨을 때 울컥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집에서 할머니를 돌 볼 사람이 없어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해서
오늘 요양병원에 가서 할머니를 뵙고 확실하게 예수님 영접 기도를 인도하려고 합니다.
주님,
우리 할머니 꼭 하나님 나라 가실 수 있도록 성령님 "결신 기도"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오늘은 저의 멘티들과 전체 멘토링이 있는 날입니다.
이제는 멘티들이 20명이 넘었습니다.
오늘 멘토링 시간을 통해 서로의 믿음의 진보를 나누게 하시고,
저 또한 멘토로서 사람을 세우는 사역을 끝까지 잘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 멘티들 또한
또 다른 멘티들을 세우는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5. 25.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오늘 제 묵상은
사실 무척이나
개인적인 그러한
묵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대들에게 격려의
말씀으로 더하고
싶은 것은 그대의 꿈,
그대의 비전, 그대가
오랫동안 했던 기도들
절대로 하나님께서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시기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