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
황혜경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 이런 말끝에 나는 검은 외투를 하나 갖고 싶어진다
일련의 사건들 다 덮어버리고 겨울의 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왔던 곳으로 잰걸음으로 되돌아가는 일
사실 나는 의문투성이지만 재봉틀을 상상하게 하는 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에 대해선 극렬하게 찬성이다
이유가 불분명한 사건의 예시와 복선
깃을 여미고 외투 자락을 펄럭이며 짐작할 때는 의심하지 말아보자, 덮어두고 싶어지는 것이다
잠만 자는 주인에 대하여
개도
향수가 짙은 소녀에 대하여
소년도
너무 붉은 여자에 대하여
남자도
나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을 텐데
모르는 사연에 대하여 질끈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 남은 의문에 대한 자답(自答)으로
검은 외투를 하나 갖는 일을 희망한다
내가 이 생(生)에서 서성이는 것은
길을 가다가 모텔에서 나오는 어린 연인들과 마주칠 때 같고
어찌할 바를 몰라 검은 외투의 깃을 세우고 먼저 등을 보이면 불편한 감각들이 고분고분 잠잠해질 것이니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2018. 2)에서
황혜경 /
1973년 인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와 추계예술대학교 문창과 졸업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수료. 2010년 《문학과사회》등단.
시집 『느낌 氏가 오고 있다』『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