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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
7.
스포티지가 호텔 정문을 지나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죠이샤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알렉스의 스포티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주차장까지 달려오다가 멈췄다. 스포티지에서 내려 걸어오고 있는 피춘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죠이샤인들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는가. 100% 천연 모태미인을 알아보는 사람은 미에 대한 경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이건 세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미에 대한 인식이다. 알렉스가 두 사람 다 우뚝 멈춘 사이로 갔다.
"헤이. 죠이샤. What are you doing now?"
"오. 알렉스. 으하~ 이 분이 누구요? 당신이 말 한 피춘자 시인? 이런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만나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하하하. 맞오. 내 사랑 피춘자 시인이오. 이제 그만 보고 두 사람 모두 들어갑시다. 미세스 죠이샤가 기다립니다~"
"만나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챤다나 데 죠이샤 입니다. 알렉스 형님의 꼬붕 이지요."
죠이샤가 춘자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거무죽죽한 손을 내밀었다. 그는 한국말을 하였다.
"알렉스에게 많이 들었어요.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아요. 있는 동안 많은 도움을 부탁해요. 공항 입국 때부터 죠이샤님의 명성이 높은 걸 알 수 있었어요."
춘자는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바람은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그러나 호텔 라비로 들어서자 시원한 기운이 느껴져 춘자는 점퍼의 지퍼를 반쯤 올렸다. 짙은 붉은색으로 윤이 나는 대리석이 깔린 호텔 라비를 지나 뷔페식당으로 들어서자 리셉셔니스트와 뭔가 이야기를 하던 미세스 죠이샤가 일행을 보고는 놀라 반기며 달려왔다. 그녀는 백색 무명 장삼을 어깨로부터 허리까지 감고 있었다. 그러나 발목까지 덮은 짙은 적색 원피스는 더욱 또렷하게 색상을 구별하게 하였다. 목에는 작은 알의 나무로 만든 묵주 목걸이를 했다. 귀에는 아마도 순금인 듯한 둥근 탁구공 크기의 고리 모양 귀걸이를 하였고 그 외에는 다른 장식을 하지 않았다. 아 참, 왼손에 역시 나무로 만든 묵주를 들었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불편할 텐데도 달려와 일행을 맞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들다가 춘자를 보고 역시 놀랐다. 그러나 미세스 죠이샤는 같은 여자이었다. 이내 놀라움을 거두고 말했다.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고 고마워요. 너무나도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알렉스 님이. 피춘자 시인 님 맞죠?"
"예. 미세스 죠이샤. 만나 뵙게 되어 너무 좋아요. 아주 고와 보여요."
"어머! 정말 피춘자 시인 님에게 저가 그렇게 보이세요. 어마나. 정말 행복해요. 그런데, 저는 피춘자 시인 님을 보는 순간 같은 여자이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답니다. 저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어려운 아름답고 청순한 미인이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 아름다우세요. 여자인 저도 홀딱 반하겠는걸요. 그런 분이 저희와 함께 있다니... 아흐~ 너무 행복해요."
그녀의 얼굴에 정말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춘자는 그녀의 나이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한국 사람 보는 것만 익숙해 있던 터에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와 넓은 콧등으로 판단을 헷갈리게 하였다. 알렉스에게 들은 바로는 이제 갓 50이라 하였다. 그러나 마음은 참으로 순박하게 느꼈다.
“어휴~ 춘자하고 다닐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꼭 썬그라스도 쓰고... 그 뭐냐. 귀에도 뭘 꼽고. 근데 내가 제대로 역할이나 할려는지 모르겠다."
"ㅎㅎㅎ 알렉스. 샘나서 그러지요? 다 알아요."
"그래. 맞아. 나는 안 중에도 없으니 샘나서."
그들 모두가 재잘거리며 실내에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식탁 좌석은 다행히 바다가 보이는 창가였다.
"와아~ 알렉스. 당신이 좋아하는 바다가 보여요."
어김없이 또 춘자였다. 그러나 이런 즐거운 곳에서 구김 없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어렵다. 자칫 경망스럽거나 호들갑스러울 수가 있고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중년 여인들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분위기도 맞춰주지 못할 것이고.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같이 자연스럽게 춘자는 느낀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있었다. 분위기와 행동의 자연스러움이 그녀의 매력과 재치와 발랄함을 한껏 도와주고 있었다. 믿기 싫을 것이다. 뷔페의 메뉴는 주로 해산물과 열대과일들이었다. 조용하게 식사가 끝나가자 미세스 죠이샤가 춘자 곁에 왔다.
"우리 어서 나가요. 나가서 호텔 뒤편 수영장이며 정원을 구경해요. 제가 안내할게요."
춘자는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식탁을 보니 두 사람이 바다를 보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나면 알렉스에게 설명해 달라 해야지라고 생각하였다.
"고마워요.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자기 손을 잡은 춘자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 지으며 미세스 죠이샤가 말했다.
"오히려 제가 고마운걸요. 이 모두가 미세스 죠이샤가 편안하게 대해 주어서 가능한 즐거움인걸요. 보호머 쓰뚜디(정말 감사합니다)."
"우와. 싱할리어로하셨네요. 또 고마워요. 피춘자 시인님은 제가 잘 알아듣도록 영어를 정확히 천천히 해주어서 너무 고마워요. 참 유익한 시간이에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콜롬보의 대부분 사람들은 토속어인 싱할리어를 사용하며 인도에서 넘어왔거나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영어와 관계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허나 미스터 죠이샤는 콜롬보 대학을 나왔으니 영어를 잘하였지만, 토속 부호의 딸이었던 미세스 죠이샤는 그렇지 못하였다. 영어라면 한국에서는 근 10년을 배운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천천히 문장을 종이에 쓰듯 말하는 것쯤에 대하여 알렉스를 만난 후부터 이미 독학과 학원 수업으로 공부한 기본이 갖추어진 춘자에게는 자신 있었다. 게다가 자신까지 생겼으니. 영어는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 자신감만 주어지면 금방 잘 하곤 하였다. 기본이 되어 있으니까. 이건 믿어도 된다. 미세스 죠이샤는 피춘자보다 조금 작았다. 몸매도 호리호리하였다. 피부는 전형적인 토속 남부 인도인 같았다. 그러나 춘자에 대한 배려가 짙어 마음 씀씀이가 부드러웠다. 시인인 피춘자를 부러워하였다.
“저는 요. 피춘자 시인님이 참 부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시를 잘 쓰세요. 저는 처녀 때 가끔 인도의 시인 라비드라나트 타골같은 시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피춘자 시인 님이 부러워요.”
“아~ 그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시인이자 철학가이죠. 저는 그의 시 The Lamp of the East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기억해요.”
“어머나! 정말이세요. 저 좀 들려주세요. 부탁해요.”
미세스 죠이샤는 피춘자 시인의 두 손을 잡고 매달리듯 하며 졸랐다. 그럴 때 그녀의 눈은 참으로 순진해 보였다. 맑은 눈물이 눈에 맺혔다. 춘자는 시집 출간을 하고부터는 시 세계에서만은 뒤지지 않을 각오로 다양한 세계의 유명 시인과 시들을 읽고 외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이 그렇게 융화로 표출되었다. 그것은 피춘자의 잠재한 선천적 순한 마음을 기본으로 한 것이라 봐도 무난하였다. 춘자는 헛기침을 하였다.
“잘 할지는 모르겠어요. 들어보세요.”
춘자는 호텔 뒤 바닥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수영 장가의 이름 모르는 키 큰 열대나무 사이에 들어서며 한 손으로 그 나무 기둥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놓칠세라 바라보고 있는 미세스 죠이샤의 손을 잡았다.
“The Lamp of the East (동방의 등불)
In the golden age of Asia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조선은 그 등불의 하나였다.- 운반자)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again (그리고 그 등불은 다시 한번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다.)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동방의 밝은 날들을 위하여.)”
춘자는 감동에 젖어있는 미세스 죠이샤의 얼굴을 맑은 미소로 바라보며 그 시적 감동에 취해있는 그녀를 깨우지 않고 다시 그녀의 시를 낭송했다.
“우리는
We
우리는
보고 있어도
그리워 죽을 것 같아
늘 명치끝이 아파요
We, each other always are feeling
A pain of pit of stomach like die
to missing even though be seeing each-others
우리는
함께 있어도
미치도록 보고 싶어
늘 눈시울 적셔요
Even though we are together,
Our eyes always are wetted with missing of each-others crazily
우리는
둘이며 하나인
투명한 영혼 속에
늘 함께 있어요
We are together in a pure soul like as one
But each-others is different
우리는
심장도 하나
생각도 하나인
연리지 나무예요
We,
Have one heart
Have one thought
We are the tree of now and forever (連理枝)”
"우와아~ 원더풀! 원더풀! 피춘자 시인 님 낭송은 천상의 목소리 같은 환상입니다."
놀라며 감격해서 소리치는 것은 소리 없이 와서 뒤에서 듣고 있던 죠이샤였다.
"으아아아아~~~ 너무 아름다워요. 나 정말 피춘자 시인님에게 반했어요. 너무 맑고 아름다워서 난 눈물이 막 나요. 으아앙!"
피춘자가 두 시의 낭송을 끝내자 미세스 죠이샤는 감격해서 울고 말았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알렉스도 입을 다문 채 가까이 가서 춘자의 한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는 이렇게 그의 감동적인 마음을 전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맑고 고왔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감정 조절을 저렇게 잘할 수 있는지... 꾸미지 않은 천진난만한 모태순수였다.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투명하게 맑은 물을 담고 있는 수영장과 어둠이 깔린 하늘의 별빛을 보며 짧은 시를 한글로 영어로 천천히 낭송하는 모습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시 낭송에 몰입한 자태 또한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알렉스도 이런 여인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 여인이 피춘자란 이름으로 옆에서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 미소 짓고 있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알렉스. 저 잘했어요?"
그의 자태를 보고 있던 세 사람을 향해 돌아서서 방긋 웃으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짝짝짝~"
그제서야 세 사람의 부드러운 박수가 소리 되어 수영장 정원으로 퍼져 나갔다.
“두 번째 We는 피춘자 시인 님의 시이지요?
미스터 죠이샤가 아내에게 말해주며 확인하려고 물었다.
“예.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를 낭송하고 나니 제 시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시도 좋고 시 낭송도 좋고, 모두가 최고입니다.”
죠이샤가 아내를 보며 엄지를 위로 추겨 세웠다. 미시즈 죠이샤가 동조한 듯 같이 엄지를 위로 올렸다. 그 날밤은 모두에게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추억의 장이 될 것이었다.
그들, 미세스와 미스터 죠이샤와 헤어져서 그들의 숙소로 돌아온 시각은 10시였다.
"알렉스. 참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첫날 이렇게 마음이 편하게 시작되어서 참 좋아요. 거실 앞 베란다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는 알렉스 옆에 막 샤워를 마치고 얇은 트렁크 팬티와 알렉스의 와이셔츠를 입은 채 춘자가 앉으며 말했다.
"그래. 춘자,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니 내가 더 보람 있어. 당신을 잘 오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은 많이 걱정했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해하면 어쩌나 했거든. 그래서 그 호텔 구경도 하자고 한 거야."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그 호텔에 재우려고요. 그렇지요?"
춘자가 허리 굽혀 고개를 돌려 알렉스 얼굴을 보며 따지듯 물었다.
"으응. 그랬어."
"지금은 요?"
"지금은... 이렇게 여기로 와서 샤워까지 하고 옆에 앉아 있잖아. 그걸로 땡이야. 내 우려는 좋은 방향으로 종친 거야."
"흥. 아직 땡 아니네요. 당신은 제 손 한번 아직 잡아주지 않았잖아요. 죠이샤와 미스터 죠이샤가 제 손을 잡아 주었네요. 저는 언제쯤 제 손이라도 잡아주시나 은근히 기다렸는데 아직 아니네요."
"ㅎㅎㅎ. 참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재주는 있어. 당신은. 아까 시 낭송 끝나고 잡았는데..."
"당신, 당신 하지 마요. 지금까지 제 손 한번 제대로 잡아주지 않은 타인 같은 사람이 왜 저에게 당신 당신 하세요. 기분 나빠요."
"춘자야. 화났어?"
그 말을 들은 춘자가 바로 정색을 하며 알렉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 옆모습을 보며 독백같이 말했다.
첫댓글 여류시인 피춘자
좋은 소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금요일 되십시요~
오늘은 어떤 스토리가 전개될까 궁금했는데 재밌게 보고 있네요. 감사드립니다. 추천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이 조금 바빠지기 시작하여
생각이 제대로 안 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금요일 되십시요~
남여 간에 사랑 곱게 엮어주셨군요
항상 곱고 고운 시향에 잠시 머물며
피춘자 시인님 한가위 추석명절 온 가족
웃름꽃 피는 나날 이어 가시길 빕니다
함께 해주신 별과나 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