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우암 송시열은 실질적으로 북벌을 반대했으며, 조선중기때 예송논쟁 과 지나친 예학중심의 학문으로 조선을 문약하게 만든 장본인 입니다. 다만 효종사후 15년만에 청나라에서 오삼계의 난이 일어난 사건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침공이 청의 내부반발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효종이 더 살았다 해도 북벌은 실패했을 것이다..? 글쎄요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었을 까요? 어차피 만약인데..^^ 명이 망했어도 한족은 건재했고 반란은 빈번했습니다.. 그리고 우암이 북벌을 반대한 것은 그 자신이 북벌의 주체가 아닌 문신이고 효종이 북벌계획에 따른 무신의 우대에 대한 견제 그런 정도로
대체적으로 북벌은 명분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 있죠.....대부분의 한국사 개설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구요....오랑캐라 치부했던 여진족(만주족)에게 크나큰 치욕을 당했고 백성들에게 말도 못할 상처를 주었는데 정부에서 아무것도 안했다면 민심은 크게 동요했게죠..그리고 그건 당시 서인정권의 모든 잠재적 적들에게
북벌이 가능하던 아니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조가 능력도 없으면서 주장만 펴다 병자호란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인물인 반면 효종은 북벌이 가능하였던 아니던 조선의 군사력을 강화시킨 사람입니다. 나라를 유지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은 군사력이겠죠. 러시아를 혼내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
나라를 지키는 원초적인 힘은 경제력입니다....지금 북한이 군사력이 쎄다지만 남한을 적화통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북벌은 가능성도 없는일에 그 당시 조선의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군비를 백성에게 강요해 백성의 삶을 더 피폐하게만 했을 뿐입니다...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말로만 씨부리던 춘추대의.. 즐이라고 할 수 밖에.. 그래서 효종의 북벌에 무게를 실어줄 수 밖에.. 아닌가요?.. 그리고 짚고 넘어갈 건 당시 집권당인 서인이 북벌을 반대하던건 그들이 북벌을 반대하던 액면이유가 아니라 이를테면 전란후 복구가 급하다던지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첫댓글 우암 송시열은 실질적으로 북벌을 반대했으며, 조선중기때 예송논쟁 과 지나친 예학중심의 학문으로 조선을 문약하게 만든 장본인 입니다. 다만 효종사후 15년만에 청나라에서 오삼계의 난이 일어난 사건을 생각해 보면 조선의 침공이 청의 내부반발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북벌은 사실상 불가능한 사업;; 일장춘몽같은 허황된 사업이였죠
만약 효종이 더 살았다 해도 북벌은 실패했을 것이다..? 글쎄요 꼭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었을 까요? 어차피 만약인데..^^ 명이 망했어도 한족은 건재했고 반란은 빈번했습니다.. 그리고 우암이 북벌을 반대한 것은 그 자신이 북벌의 주체가 아닌 문신이고 효종이 북벌계획에 따른 무신의 우대에 대한 견제 그런 정도로
전 보입니다.. 그리고 북벌은 병자호란 국면전환보다 효종의 정체성, 그것이라고 하죠
한족 건재와 반란의 빈번이란 말로 당시 청의 국력을 조선이 상대 할수 있으리라고 보기 어렵죠 조선의 5영 체제중에 재대로 정규군을 채운 영도 없을정도로 군사제도 상의 헛점도 많았도 금위영의 설치시에도 정치적 문제가 있었을 정도로 5영 자체도 문제가 많았죠
대체적으로 북벌은 명분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 있죠.....대부분의 한국사 개설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구요....오랑캐라 치부했던 여진족(만주족)에게 크나큰 치욕을 당했고 백성들에게 말도 못할 상처를 주었는데 정부에서 아무것도 안했다면 민심은 크게 동요했게죠..그리고 그건 당시 서인정권의 모든 잠재적 적들에게
기회가 되는 거죠...그래서 그 당시 효종만 빼놓고는 집권층 누구도 북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벌을 빌미로 커진 군사력을 서인이 장악하고 정권 수호 수단으로 삼게 되죠...교과서에서 조금 북벌 가능성을 과장되게 설명하는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전 극도로 청을 미워했던 효종보다는 청에게 배울것이 많다고 생각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조선역사는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청을 무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변화시키는 것이 그 당시 시대적 과제였다고 봅니다..
북벌이 가능하던 아니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조가 능력도 없으면서 주장만 펴다 병자호란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든 인물인 반면 효종은 북벌이 가능하였던 아니던 조선의 군사력을 강화시킨 사람입니다. 나라를 유지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은 군사력이겠죠. 러시아를 혼내준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
나라를 지키는 원초적인 힘은 경제력입니다....지금 북한이 군사력이 쎄다지만 남한을 적화통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북벌은 가능성도 없는일에 그 당시 조선의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군비를 백성에게 강요해 백성의 삶을 더 피폐하게만 했을 뿐입니다...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러시아를 혼내주었다? 우리가 했습니까? 청이 했지. 조총든 군사 수백을 청의 강압에 못 이겨 보낸게 무어가 그리 자랑스럽습니까? 강한 군사력이 나라를 유지할 힘이니 뭐니 하면서 말할 정도로 말이죠.
말로만 씨부리던 춘추대의.. 즐이라고 할 수 밖에.. 그래서 효종의 북벌에 무게를 실어줄 수 밖에.. 아닌가요?.. 그리고 짚고 넘어갈 건 당시 집권당인 서인이 북벌을 반대하던건 그들이 북벌을 반대하던 액면이유가 아니라 이를테면 전란후 복구가 급하다던지 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쿠데타, 인조반정의 성격상 반청, 사대를 정체성으로 하는 바 춘추대의는 외치대 실제로 행동할 수는 없었던 것이 서인 문신의 한계이고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정권을 주도하기 위한 것을 이유로 보는 게 맞습니다
민초의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대동법은 반대하던 그들의 행태.. 무엇이라 생각할 수 있는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서인이 밉다고 북벌이 옳은게 되는건 아니잖아요.. 청하고 한판 정말로 붙으려고 지랄했다간 아마 지금 우린 없었을지도 모를 일. 병자호란 때 2달만에 어이없을 정도로 박살났던 걸 생각해보면 뭘 했다고해도 군사적인 승리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봅니다.
북벌은 서인의 집권기반 강화 수단에 불과했음...대략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