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소리에도 꺾기가 있다
김문억
지금 거실에서 들려오는 연속극 중 울음소리가 제법 그럴싸하게 들려오고 있다
유행가 트롯 경연대회에서도 꺾기 재미로 부른다는 가수가 있는데 젊은 탤런트가 연기 공부를 제대로 잘 한 것 같다
울음소리가 간드러지고 리드미컬하게 꺾기를 잘 하면서 껄떡껄떡 너머 가고 있다
그것도 연기라면 울음우는 소리마저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소중한 것이렸다
그래야 하는 것이 예전에는 대가 집에 초상이 나면 곡비라는 것이 있었다
지체 높은 양반네 집 장례식이 있으면 상여 젤 앞에서 청승맞게 곡소리를 대신 내 주는
계집종의 역할이 그것이다. 당연히 평소 울음소리 보다는 한 옥타브 높았으리라
서럽던 안 서럽던 간에 목숨 부지를 하고 사는 하인 입장에서는 쥔장 댁 상여가 나가는데 맹숭맹숭 입 닦고 눈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나가는 상여 맨 뒤에나 따라가면서 콧물 없이 훌쩍거려도 아무 해가 없으련만 구태여 상여 맨 앞장에 서서 높은 옥타브로 꺾기 울음을 억지로 울어야 하는 것은 세도가의 권속에 속하는 입장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울음을 울어야 하는 양반 댁 여성들이 모자랐던가. 아니면 속으로는 잘 죽었다고 고소하게 생각하는 죽음도 있었을 것이고 상제들의 양심에 울음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목소리가 모기 앵앵 거리듯이 시원치가 않아서 쥔장 체면에 크게 손상이 가는 입장이었을 때 계집종들은 억지로라도 목청을 빼면서 꺾기를 잘 해야 듣는 맛도 있고 양반네 초상 집 체면치레에 탈이 없었을 것이렸다
상여가 나가는 때만 우는 것이 아니다. 장례식 날이 오기까지는 몇 날 며칠을 두고 손님맞이를 해 가면서 곡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인들은 숨차게 심부름도 하고 곡소리를 담당해야 했을 것이다.
울음 이야기를 하고 보니 우리 집안에서는 제일 큰 형수님의 울음소리가 가장 멋?스럽다.
옛날 사람치고는 키가 훨~ 크면서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없는 집안에 시집을 오신 바람에 살면서 가끔 억이 막히는 경우 형수님의 울음소리는 거의 음악적이다. 설움이 복받칠 때는 랩 음악처럼 혼자서 중얼중얼 독백을 하다가 코를 횅 풀어낸 뒤 다시 통곡을 하는데 듣는 사람이 같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기운 빠져요 그만 우세요. 형수님!”
나는 겨우 그런 위로를 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수습할 수밖에 없다
둘 째 형수님 우는 소리는 아주 오래 전에 들어본 듯한데 와글와글 달라붙는 새끼들에게 야단을 치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러움도 많고 눈물도 많은 우리 민족이다. 서러워도 울지만 좋아서도 운다. 울음은 지금 마음 상태의 극치다. 말로는 다 할 수 없어서 폭발하고 넘치는 감정 표현이다
연암 박지원의 소곡 장 이야기는 구태여 말 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진 민족의 울음 이야기다. 얼마나 억압받은 궁핍한 삶이었으면 넓은 벌 요동 땅을 바라보는 순간 울음 울기 딱 좋은 곳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 경우는 단순하게 서러움만이 아닌 놀라운 예술적 발상이었다.
습작을 하는 시인들에게 주문하기를 서러운 이야기가 주제가 될 때는 눈물이 찔끔 나도록 쓰라고 주문을 한다.
말소리나 음악이나 울음소리나 모두 목청이다
한 곳에서 나오는 소리가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다만 울음까지 대신 울어주는 반상문화를 더듬어 보면서 다시 한 번 여인네들의 한 많은 세월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둑길을 걸어오면서 봄물이 흘러가는 냇가에 앉아 까닭 없이 좋아서 울어 본 일이 있다.
버들잎은 푸르고 갈대 새싹이 돋아 오르는 4월의 혁명 앞에서 온몸이 따듯해지는 행복한 피 흐름이 있었다. 올 봄에도 그 길을 가고 싶다.
울음 대신 버들가지를 꺾어 피리를 불어야지!.
-2024.2.19.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