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소개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성격: 낭만적, 저항적
- 주제: 국권 상실의 울분과 국권 회복에 대한 염원
- 표현상의 특징
상징적 표현과 다양한 비유를 통해 주제를 부각
향토적 소재의 사용으로 나라에 대한 애정을 표현
각 연마다 행의 길이가 점층적으로 길어지면서 내용이 심화
- 의욕적 어조(시상의 상승) > 자조적 어조(시상의 하강)로 이어지는 어조의 변화를 통해 화자의 내면을 표출
이상화 시인 소개
- 1901년 4월 5일에 태어나 1943년 4월 25일에 43세에 세상을 떠남
- 일제 강점기의 저명한 시인독립운동가
이상화(李相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