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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지음/21세기북스/2005년 7월/298쪽/12,000원)
■ 차례
프롤로그 : 일에 빠져 있을 때 머리는 가장 무능해진다
서장 한국, 놀지 못해서 망할 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논다고...?
주5일 시대, 노는 시간을 경영하라
제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chapter 1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
인센티브 위에 자존심 있다
일중독에 빠진 리더의 착각 - 오버씽킹
노는 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
chapter2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창의성의 원천은 낯설게 하기
다빈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모나리자
놀아본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는 이유
창밖을 멍하게 보는 시간에 가장 창의적인 두뇌
아마도...와 혹시? - 창의적 사고의 방법
chapter3 놀이는 최고의 의사소통 훈련
무슨 배트맨이 이래? - 가상놀이 as if
전 세계 엄마들의 말투가 똑같은 이유
잘 노는 사람의 특별한 능력 - 정서공유의 리츄얼
놀이가 곧 의사소통이다
휴테크: 사소한 재미에 목숨 걸자
제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chapter4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성공했는데 왜 외로워질까?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갑작스러운 우울과 무기력 - 심리적 에너지의 고갈
감정적으로 경영하라!
에스키모의 막대기를 꽂자!
chapter5 밸런스 경영 : 일과 삶의 조화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면 …
중요한 일과 안 중요한 일 바꾸기: 게슈탈트 원리
축제를 통해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가짜!
휴가 규정대로 다 쓰십니까?
21세기 경영패러다임 - 밸런스 경영
에필로그: 그러는 당신은 어떻게 노시나요?
노는 만큼 성공한다
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chapter 1.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
경영자의 눈에는 직원들이 모두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가져갈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는 염치없는 인간들로 보인다. 따라서 경영이란 직원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 동안만은 가능한 한 딴 생각하지 않고 일에 몰두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를 골몰한다. 온갖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서 직원들이 일에 몰두하도록 노력해보지만, 그것도 한때뿐이다. 갈수록 더 많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나 선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20세기적 기업 경영의 핵심은 다양한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의 노동의욕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더 높은 보상을 찾아 다른 직장으로 떠난다. 그러나 보상을 약속하면서 잡을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갈수록 줄어든다. 우선 개인주의형 인간들이 늘어난다. 개인주의형 인간들은 금전적 인센티브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개인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이다. 가족주의형 인간들도 나타난다. 이들에게 직장에서의 성공은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의 궁극적 관심은 훌륭한 아빠, 착한 남편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지 못하는 기업 경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깨달은 서구의 앞서가는 기업들이 채택한 새로운 제도가 있다. ‘Work Balance Program'이다. 이것은 유연근무제, 육아 휴가, 변동 휴가제 등을 통해 개인의 일과 가족의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개인의 경력 관리와 회사의 업무가 일치하도록 배려하는 갖가지 제도를 실시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들은 ‘회사를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다. 이런 회사의 직원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이다. 하지만 여가는 일의 반대말이 결코 아니다.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이다. 나태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여가 없이 일만 해서 직원들이 자신들의 삶의 주인이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발생한다.
일 중독에 빠진 리더의 생각 - 오버씽킹
일 중독자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일 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일 중독자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 중독자가 일하는 방식을 잘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하는 일 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40시간 동안 그들은 일에 대해 걱정하며 보낸다.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모아서 분류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ㆍ우리가 걱정하는 것들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ㆍ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들이다.
ㆍ22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 관한 걱정이다.
ㆍ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4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 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다.
ㆍ이제 4퍼센트만 남았다. 그러나 우리는 나머지 96퍼센트 걱정거리 때문에 이 4퍼센트의 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부질없는 걱정이 떠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의 놀렌-휙스마(Nolen-Hoeksema)교수는 ‘오버씽킹(over-think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경우와 불필요한 오버씽킹은 아주 간단히 구별된다. 오버씽킹의 대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걱정이 끝이 없다.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오버씽킹이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자기반성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오버씽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 중요한 일에 몰입하면 된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일이란 자기가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을 뜻한다.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
chapter 2.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창의성의 원천은 ‘낯설게 하기’
21세기의 지식정보화사회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근면, 성실의 가치로만은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능케 하는 ‘재미’가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 가치가 된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개발된다. 이 ‘재미’가 근면, 성실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과거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가 망했듯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가 망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창의성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새로운 생각(착상)이나 의견을 생각해내는 특성.’ 이렇게 황당한 정의가 또 어디에 있을까? 영어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어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정의는 무엇인가?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비로소 창의성에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은 이전에 다 있었던 것들이다. 단지 그것들이 속한 맥락이 바뀌었을 뿐이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들, 즉 창의적 인간은 근면 성실한 이들이 아니라 바로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들은 놀이를 통해 아주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새롭게 느낀다. 바로 이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런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의 힘은 바로 ‘재미’다.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창의적인 ‘노는 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빈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모나리자
나는 소니(Sony)매니아다. 그렇다고 국산품을 애용하지 않는다고 나를 욕하면 섭섭하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 내내, 나는 품질이 훨씬 뛰어난, 독일 제품을 마다하고 국산품만 애용했다. 귀국해서 제일 먼저 산 것도 삼성 노트북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소니 바이오 노트북의 유혹을 견디며 삼성 노트북을 사용하는 그 5년 동안, 삼성 노트북의 디자인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 사이 소니 바이오 노트북은 거의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노트북을 선보였다. 삼성의 디자인 센터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투자의 부족 때문이란다.
아름답고 쾌적한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어설픈 애국심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난 십수 년 간의 내 태도가 삼성의 디자인을 그 수준에 머무르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삼성의 컴퓨터 기술이 소니에 절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컴퓨터의 안정성은 소니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바이오 노트북을 산 지 몇 개월이 지나도 컴퓨터를 켤 때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왜 삼성 노트북은 바이오 노트북처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까?
예쁘고 행복한 것을 찾아내는 미학적 능력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감탄을 자아내는 정서적 차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인지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은 심리학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서적인 미학적 경험과 인지적 훈련을 통합하여 창의력을 발휘한 예이다. 다빈치의 습작들을 살펴보면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닌 모나리자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다빈치는 수백 가지의 눈의 습작을 가지고 있었다. 찢어진 눈, 젖은 눈, 늘어진 눈 등등. 뿐만 아니라 코, 입, 머리, 턱 등과 같은 얼굴 부위 각 부분에 관해서도 수백, 수천 가지 습작을 모아놓고 있었다. 즉,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낸 부분들의 최고의 조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낯설게 하기’를 통한 창의적 작업을 반복한다. 빗자루를 말처럼 타고, 총싸움, 칼싸움을 하며 재미를 반복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렇게 놀면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빗자루를 빼앗고, 창의성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그 부모들과 똑같이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앞에서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는 이들을 절대 용납 못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그 부모에 그 자식인 법이다.
chapter 3. 놀이는 최고의 의사소통 훈련
‘무슨 배트맨이 이래? - 가상놀이 as if
멀쩡한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정말 답답하다. 그러나 이런 답답한 사람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사소한 말다툼에도 끝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짜증나는 사람이 있다. 자존심이 상해서 우기는 경우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고, 조금 지나면 처음에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다. 더 열 받는 것은 이런 사람과 대화하고 나면 나만 상처받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열받아 죽겠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이해 못하겠다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놀 줄 몰라서 그렇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적 관점 획득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물론 인간 집단에는 항상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문제는 사회적 관점획득의 능력이 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치 OO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즉 ‘가상놀이(as if)’가 가능하려면 가상의 상황에 대한 정신적 표상이 가능해야 한다. 즉 가상의 상황에서 하는 행동을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배트맨 놀이를 하려면 배트맨과 악당 역할에 대해 가상의 상황이 설정되어야 하고, 그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삼촌은 배트맨 놀이 하자는데, 악당 역할을 안 해주는 사람이다. 심지어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상황을 망가뜨리는 못된 삼촌도 있다. 아이들이 베개를 가지고 자동차라며 올라타 달리는 시늉을 하는데, ‘무슨 자동차가 바퀴도 없어’하는 식으로 싱겁게 시비를 거는 식이다. 이런 삼촌의 대부분은 백수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남의 말귀를 못 알아들을 확률이 극히 높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읽는다. 따라서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그리고 잘 노는 사람은 가상의 상황에 익숙하다. 놀이는 항상 가상의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는 데도 매우 능숙하다.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능력은 또 하나의 가상 상황에 나를 세워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하고, 잘 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린 잘 놀아야 한다. 놀이의 본질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잘 노는 사람의 특별한 능력 - 정서 공유의 리츄얼
대학시절 미팅에 나가면 나는 항상 가장 예쁜 여자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온갖 레퍼토리와 제스처를 동원해 앞의 여자를 사로잡으려고 정말 처절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예쁜 여자는 꼭 예쁜 척을 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정도의 구애 행동은 익숙하다는 오만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앞의 여자에게 지쳐갈 무렵, 처음에는 존재 자체도 몰랐던 여자가 이 ‘얼굴만’ 예쁜 여자 앞에서 계속 나를 주목하며 웃어주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나의 노력은 그 별로 안 예쁜 여자에게 투사된다. 나는 속으로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아니 왜 내가 지금 이 여자를 보고 노력을 기울이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별로 안 예쁜 여자를 계속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때 그 여자와 함께 산다.
사람들에게 유난히 사랑 받는 사람들은 정서 공유를 잘 한다. 남의 기쁨, 슬픔, 우울함, 흥분과 같은 정서를 아주 잘 공유해 준다. 반면 우리 주위에는 단지 몇 분을 마주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하루 종일 나를 우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보다 적나라한 표현을 쓰자면 하루 종일 ‘재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다. 어떤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한 적도 없다. 그저 단지 내 앞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괴롭게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이런 사람은 대부분 알고 보면 무척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남에게 기피대상이 되는 사람이다. 정서 공유의 기술이 없는 까닭이다.
조직생활을 오래한 사람은 아주 사소한 대인관계의 리츄얼에 예민하다. 인사할 때 허리를 숙이는 각도는 물론 명함을 내놓는 태도, 결재서류를 드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각 조직마다 사소한 리츄얼들이 아주 강력하게 일상의 삶을 지배한다. 일상의 리츄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 공유의 리츄얼이다. 정서 공유의 리츄얼이 없는 회사는 망한다. 정서 공유의 리츄얼은 조직의 일체감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힘이다.
정서를 공유하는 리츄얼의 기초는 눈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당황하는 것은 바로 이 정서 공유의 리츄얼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면 피한다. 그런데도 누가 계속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노려본다. 그런데도 상대편이 계속 바라보면 적개심에 가득 찬 눈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내뱉는다.
“왜 째려봐!”
서로 바라보는 눈길이 무서운 사회는 살 만한 사회가 아니다. 운전하다 옆 창문으로 눈길이 마주칠 때, 우리는 적개심이 가득 찬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동네 어귀의 개가 낯선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이다. 우리도 이런 우리의 모습이 너무 싫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에게 여전히 그러고 산다.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까닭이다. 사는 게 하나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2부 삶을 축제로 만들자
chapter 4.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성공했는데 왜 외로워질까?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전형적인 서술방식이 있다. 마치 대입 시험에서 수석한 학생이 “과외는 한 적이 없고, 잠은 충분히 잤으며, 학교 공부에 충실했다”라고 하는 것처럼. 우선, 그 사람들은 젊은 시절 엄청나게 고생한다. 대개는 부모가 일찍 죽거나 찢어지게 가난하여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상경한다. 처음에는 의욕만 가지고 무모하게 달려들었다가 몇 번의 실패를 맛본다. 설상가상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거나 돈을 떼먹고 도망간다. 좌절한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시도한다. 그저 남 잘 때 안자고 근면과 성실로 일관한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승승장구한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가끔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동안 참아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입지전적인 그들의 자수성가를 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모두들 이러한 성공 시대형 ‘성공 내러티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이다. 왜 성공한 사람은 한결같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지 않으며,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성직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의 성공을 위해 꼭 희생해야 하는가? 왜 한국형 ‘성공 내러티브’에서는 우연히 얻어진 성공도 우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꼭 실패와 역경을 견뎌냈기에 얻어진 결과로 이야기해야만 하는 걸까? 그럼, ‘성공 시대’의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포기하거나 나태한 사람들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주 적당한 시기에 더욱 적당한 기회가 우연히 주어졌을 뿐이다. 하루 4시간밖에 안자는 ‘아침형 인간’이 반드시 성공한다면, 남산 약수터에 새벽에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했어야 한다.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투지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대부분은 ‘성공 시대’형 성공에는 얼씬도 못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게을러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가슴에 못 박는다면 정말 이들을 ‘두 번 죽이는’ 잔인한 것이다. 이들에겐 그 우연한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성공은 세 가지 C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선 ‘만족(contentment)’다. 자신이 이룬 것에 대해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알면 성공한 것이다. 둘째는 ‘평온함(calmness)’이다. 아무리 성공했다고 여겨져도 마음에 평온함이 없으면 성공이라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관계(connection)’다. 아무리 성공했다 여겨져도 주위에 그 기쁨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그 성공은 무의미한 것이다. ‘성공은 자주 웃고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돈으로 인해 자주 웃을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높은 지위가 많이 사랑하는 것의 필수조건이라면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분에 넘치는 돈과 지위 때문에 웃음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서 떠난다면 그 성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에스키모의 막대기를 꽂자!
군대 생활을 정상적(?)으로 마친 사람들은 나이가 마흔이 되어도 군대 이야기가 시작되면 2박3일이다. 가끔 사는 게 힘들면 군대 꿈도 꾼다고 한다. 군 생활 내내 최전방에서 뺑이(?)쳤던 나는 제대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꿀 정도다. 한국 남자들에게 군대 문제는 이 땅의 평등을 확인하는 절대 기준이 된다. 따라서 군대 문제는 아무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된다. 왜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관한 한 어떠한 합의적 논의도 거부하는 것일까?
한국 남자들의 집단적 적개심은 군대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될 때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군복무를 피할 수 있었던 ‘신의 아들들’에 대한 분노, 군복무와는 관계없는 여자들의 군복무 폄하발언들에 대한 욕설 등. 뿐만 아니라 시국 사건과 관련된 집회에 빠지지 않고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해병대, 혹은 베레모 복장의 중년들의 모습에서 뿌리깊은 적개심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 모두가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상처들이 왜곡되어 드러나는 모습들이다.
적개심이 위험한 이유는 세상을 적과 아군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방식에 있다. 우리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 되는 사회는 매우 위험한 사회다. 한국 사회가 갈수록 위험해지는 까닭도 이러한 편가르기와 다른 편에 대한 적개심이 판치는 사회가 되어가기 때문이다. 기업 또한 이러한 흑백 논리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군대를 경험한 남자들이 대부분인 기업의 운영 원리는 군대 조직을 닮아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합리적 의사소통을 강조해도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원리는 여전히 가장 잘 기능하고 상사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조직 운영 방식이다. 그러나 적과 동지가 끊임없이 변하는 21세기 기업에서 군대식 운영 원리는 창의적 조직이 피해야 할 가장 큰 요소다.
적개심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 신념과 태도로 굳어진다. 적개심에 익숙한 사람은 타인들을 냉소적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웬만해선 믿지 못하고 자신의 의심이 확인될 때는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개심 외에도 조직의 리더가 피해야 할 부정적 정서가 우울과 불안이다. 이 세 가지 부정적 정서가 내 삶과 내가 속한 가족, 회사, 공동체에 기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밸런스 경영의 핵심이다.
휴(休)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양이다. 식(息)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이다. 즉 나무에 기대어 앉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이다.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고, 화가 나서 펄떡거리는 나를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 내 삶의 밸런스 경영이다.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픔,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 둔다. 휴식은 내 삶에 막대기를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 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chapter 5. 밸런스 경영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가짜!
학창 시절 대부분의 학교 칠판 위에 걸려 있던 누구나 기억하는, 아무 감동도 없었던 메마른 시가 있었다. 푸쉬킨의 시다. 대충 이렇게 시작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도대체 왜 그렇게들 푸쉬킨의 시를 걸어 놓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푸쉬킨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등학생에게 인생이란 항상 나를 속이려는 아주 못된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인생을 처음부터 그저 참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기쁨의 날이 오리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기쁨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 기쁨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면 사람들은 모두들 새해의 목표를 세운다. 목표는 다양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양상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해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해에 대한 다짐이다. 하지만 새로운 한 해에도 모두들 환경의 고난을 자처하고,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 ‘인내’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전제로 하는 ‘극기’로 일관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기쁨의 날’이 찾아오지 않는다. 기쁨의 날에 어떻게 행복할지 예상을 못하는데 어떻게 이 우울한 날들을 견딜 수 있을까. 행복할 생각부터 명확히 해야 인내할 수 있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참고 견디다 보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할 생각을 명확히 해야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우울한 날을 참고 견딘다고 행복한 날이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우울한 날이 계속될 뿐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언제 정말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일상의 사소한 행복에 대해 사려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행복과 재미는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과 재미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 성공해서 나중에 행복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 성공한다.
21세기 경영패러다임 - 밸런스 경영
요즘 젊은 세대들은 다르다. 더 이상 직장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직장이 중요한가, 가족이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의 40대는 거의 절반이 일이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20대에서는 72퍼센트가 가정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과거의 인사 관리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능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방식의 경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 나는 ‘밸런스 경영’이라 부른다. 밸런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간과해왔던 직원들의 심리적 균형을 배려하는 것이다. 즉 임금과 승진의 외적 보상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에게 즐거움, 행복, 재미를 추구하는 내적 보상이 가능하도록 경영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밸런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은 세 차원에서 이뤄진다. 우선 일과 가족의 균형이다. 급작스러운 상사의 호출로 주말 가족의 한가로운 행복이 깨질 때, 그 직원은 더 이상 일에 충실할 수 없다. 두 번째 차원은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 간의 균형이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나의 성장이 도외시되어서는 곤란하다. 세 번째 차원은 일과 여가와의 균형이다. 여가를 통해 심리적 재생산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뤄져야 일터에서 창의적 노동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밸런스 경영이 회사의 인사 조직 관리의 시스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 개인이 자신의 직장과 가정, 성장, 여가/건강의 균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인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밸런스 경영의 문제를 탓하지만 회사는 그 개인의 밸런스 능력을 문제삼게 된다. 결국 이런 회사와 이런 회사에 다니는 사원은 동반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잘되는 회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일하기에 계속 잘되고, 망하는 회사는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망할 수밖에 없다.
당신과 당신의 회사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