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임은 어두운 시대에 어둠을 걷어내고자 몸부림친 한 줄기 빛이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현한
한 사람의 꿈과 정의와 사랑을 되살려냄으로써
어두워가는 저 하늘 밑에 신앙인으로서 역할이 무엇인지 재조명하고
섬광처럼 빛나는 깨달음을 던져준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은명기 목사님 추념식
민주화의 산증인 물님께서 오늘 전주고백교회에서 고 은명기 목사님의
추모 모임이 있으시다고 전해 주십니다.
일을 마무리하고 고백교회에 들러보니 은목사님 사모님 이영림 여사님을
비롯한 원로 목사님, 장로님들, 여러 관계자들께서 먼저 좌정하고 계시더군요.
지난 21년 고부에서 나셔서 96년 11월 8일 75세를 일기로 서거하실때까지
목사이자 민주화의 투사로서 유신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싸워오신
위대한 정신을 만나고 기리는 자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실줄 알았는데
그분의 성품과 뜻을 기려서인지 소수의 인연있는 분들이 자리하셨습니다.
며칠 전 서울에서도 열다섯분이 모여서 은목사님을 기렸다고 하는데
오늘 이 자리도 고백교회 20주년 맞이해서 열리는 자리인가 봅니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한상열 목사님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되었고요.
평시 투사 또는 전사같은 이미지의 한목사님과는 달리
조심스럽고 면구스러워하시는 모습이 유달리 눈에 띠더군요.
한목사님은 은명기 목사님을 회상하시면서 작금의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하느님과 역사 앞에 부끄럽다고 말씀을 꺼내시고
은목사님의 정신을 함께 나누는 것에 의미을 부여하셨습니다.
판소리 분야에서 대통령상을 3회나 받으신 조영자 명창이 소리로 문을 엽니다.
조명창은 기쁨이 충만하면 눈물나는 법이라며 심청가 한마당
심봉사가 맹인잔치에서 뺑덱이어미를 만나는 장면을 멋드러지게 뽑아주셨습니다.
이어서 원로목사님들로부터 시작하여 돌아가면서 은목사님에 관한 말씀을
나눠주셨습니다. 먼저, 김선동 목사님이 나오셔서 은목사님이 물님을 소개
해주신 바 있으며, 창립하신 임마누엘교회와 고백교회가 잘 되기를
소망하고 계실거라고 은목사님의 뜻을 전해 주셨습니다.
오준영 목사님은 당시 전도사로서 광주양림교회를 모시고 간적이 있다고 하시면서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 민중과 함께 하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해방자 하나님을 선포하신 선각자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임한택목사님은 칼날이 시퍼런 박정희 정권에서 유신을 반대하는 성명서 제1호를
쓰셨는데,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깊은 심려 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은목사님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다른 목사님 한 분은 기분이 좋아 은목사님을 부르시고 우시는 모습을
여러번 봤다며 그리움의 정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실때는 총회나 노회, 사회장도 아닌 임마누엘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하셨다는데, 은목사님 만난 걸 최고의 행복이요 하느님의 은총이시라고
합니다.
남문교회를 떠나실때 이삿짐을 챙겨드렸는데 책을 빼고나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셨다고 하더군요. 선풍기 하나 있었는데 그마저 본인 것이 아니고
새로 오시는 목사님 쓰시라고 남겨 두셨답니다.
누구나 깊이 사귀다 보면 허물을 보게 되는 데 아무 허물이 없으시다고 고백하시는
목사님 말씀이 감명 깊게 다가 옵니다.
주찬용 장로님을 가르켜 은목사님의 심장이라고 소개하시는 한목사님
무슨 말씀일까? 돌아가실무렵 시신을 전북대학교에 기증하셨는데
심장만큼은 보관하고 계시면서 믿거나 말거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신 답니다.
돌아가실때 어느 젊은 목사에게 하신 말씀이
"큰나무로 자라지 말고 푸른 나무로 자라세요"
그리고 꿈 속에 나타나서 하신 말이 "알더마이겐" " 레비젼트" 라는 말이라는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고 궁금하다고 합니다.
정병석목사님은 광주 감옥살이 할 때 면회를 오신 바 있으며,
목회길을 열어주셔서 30년 목회하게 되었다는데,
자상하시면서도 현실을 보는 예리한 눈이 있으며,
투쟁하는 사람답게 전략 전술이 매우 능하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여러 목사님과 장로님이 말씀을 전해주셨고
물님께서 그리움과 존경을 담아 추모시를 낭송하셨습니다.
끝으로 사모님께서 인사말씀으로 계셨는데, 부창부수랄까?
은목사님처럼 청빈과 관용, 재치가 번뜩이는 어머니셨습니다.
오늘 모임은 어두운 시대에 어둠을 걷어내고자 몸부림친 한 줄기 빛이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온몸으로 실현한
한 사람의 꿈과 정의와 사랑을 되살려냄으로써
어두워가는 저 하늘 밑에 신앙인으로서 역할이 무엇인지 재조명하고
섬광처럼 빛나는 깨달음을 던져준 소중한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