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차 미얀마에 다녀온 관계로 보내주신 연하장을 두 달 후에야 받아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편지도 받았지만 누군가 모르는 사람에게 글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답장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일 년에 한 두번은 수행차 미얀마나 태국에 가는데 그 곳은 이 곳과 달리 수행을 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진 명상 쎈타가 많습니다. 그러나 좋은 조건이라 표현한 그 곳은 세속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기도 합니다.
무더운 열대성 기후. 숲 속에 허름한 꾸띠(오두막) 2평 남짓한 그곳에 있는 것이라곤 얼기설기 짜 맞춘 나무침대. 오후 불식. 默言. 외출금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수행, 코브라를 비롯한 온갖 파충류와 말라리아 모기, 알 수 없는 벌레들. 그것이 제가 가는 수행쎈타의 모든 것입니다.
저는 그 곳에 갈 때마다 지인들에게 내가 내 스스로 자재하지 못하기에 내 발로 감옥에 간다고 말하곤 합니다.
한동안 도심에 살다 보면 정신이 해이해지고 나태해지고,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 오고 가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 곳에 갈 때마다 난 항상 내가 왜 또 다시 이 길을 가는가 하고 내 자신에게 반문을 합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Kamma(業)가 나를 질질 끌고 가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젠 그만 멈출 때도 된 것 같은데요?
수행은 수 억 겁생을 윤회하며 살아온 지난 생의 카르마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외로운 전사의 길입니다.
담마(法)의 눈으로 보면 어디에 살던 무엇을 하던 어떤 위치에 있건 삶이란 고통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고통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 모두 둑카(苦)란 에너지를 먹고 자랍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 나름대로 아둥바둥대는 것인데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해탈도 고통을 댓가로 얻는 결실입니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늙苦. 병들苦. 죽苦. 먹苦. 자苦. 오苦.가苦. 취직하苦. 결혼하苦. 애낳苦. 이혼하苦. 모두 둑카(苦)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실상이며 그것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알고 고통이라는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붓다의 메세지는 오래 전 절망 상태에 놓여 있던 제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에너지를 잘 못 사용하면 재앙이지만 잘 다스리면 우리에게 많은 이로움을 줍니다.
그 곳에 계신 동안 발생하는 고통의 에너지를 잘 다스려 몸은 새장 속 에 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기를 기원합니다.
주절주절 쓰다보니 힘든 곳에 있는 분께 도움되는 맑은 글이 아닌 苦타령이 되어버렸네요.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이 고통과 관계 된 것들 뿐이라서 이해 바랍니다.
깨달음이란 어떤 특수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요하는 일도 아닙니다. 단지 自覺하는 자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