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_권3 / 서긍徐兢】
권3. 성읍(城邑) 지 형[形勢]
고려에서는 원래 글을 알고 도리에 밝지만 음양설(陰陽說)에 구애받아 꺼리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나라를 세울 때에는 그 지형이 장구한 계책으로 삼을 만한지 곳인지를 반드시 살핀 다음에야 자리 잡았다.
한말(漢末) 이래 환도성[九都山] 아래로 옮겼으며註 001 후위(後魏)에서 당(唐)에 이르는 동안은 모두 평양에서 살았다. 이적(李勣)이 그 땅을 평정하여 도호부(都護府)를 세우자 도망하여 동쪽으로 조금씩 옮겨가 살았는데,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잘 모른다. 당말(唐末)에 국가를 수복하였을 때 현재의 도읍한 곳을 개주(開州)라고 하였으며 현재도 여전히 개성부(開成府)를 두고 있다.
그 성(城)의 북쪽에는 숭산(崧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형세는 서북쪽[乾亥]에서 시작되어 산등성이[山之脊]를 따라 내려오다가 점점 두 갈래로 나뉘어져, 다시 둥글게 모이니, 음양가(陰陽家)들은 이를 〈좌우에서〉 용과 호랑이가 뻗어내린 것[龍虎臂]이라고 한다. 오음(五音)으로 말한다면 〈고려의〉 왕씨(王氏)는 상(商)에 해당하는 성(姓)이어서 서쪽을 높이면 흥하는데 이는 건(乾)이 서북(西北) 방향의 괘(卦)이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등성이는 서북방향으로 떨어지는데[來崗亥落] 그 오른쪽에 산 하나가 꺾어져 서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돌아나가다가 정남(正南)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도 봉우리 하나가 엎어놓은 사발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안산(案山)이라고 부른다.
그 바깥에 또 안산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산은 높이가 두 배이면서도 좌향(坐向)이 서로 짝을 이루니 객산(客山)은 남방[丙]에 있고 주산(主山)은 북방[壬]에 있다. 그 물의 발원은 숭산의 뒤쪽에서 북쪽으로 정북[子位]을 향하다가 동북쪽[艮方]으로 돌아나간다. 그리고 뱀처럼 휘어져 성에 들어가서 광화문(廣化門)에서 북쪽을 향해 조금 꺾어진 후 다시 남쪽[丙地]으로 흘러나간다. 대개 건(乾)은 금(金)이 되는데 금이란 동남쪽[巳]에서 장생(長生)하므로 이는 길복(吉卜)에 해당한다. 숭산 중턱에서 성 안을 내려다보면 왼쪽은 시내, 오른쪽은 산, 뒤는 산등성이, 앞은 고개인데 수풀이 무성하다. 그 형세는 ‘시냇물을 마시는 푸른 용[飮澗蒼虯]’과 같으니 고려 땅[東土]을 보유(保有)하면서 오래도록 항상 중국[聖朝]의 [臣屬之國]이 된 것도 마땅하다.
註) 001
서긍은 ‘환도(丸都)의 아래에 수도를 삼았다’라는 것을 이렇게 서술하였다(都於丸都之下 ; 『三國志』 卷30 魏書30 高句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