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정작 우리의 생활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과 일에 시달리게 되었을 뿐. 경제와 과학기술에만 편중된 정책을 이제는
인간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때 경제학자들은 사회복지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남에게 의지만 하려 한다며 의지 박약자로 몰아 세웠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복지쪽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이다. 주 5일제 도입에 대한 문제를 통하여
그 동안의 정책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가를 대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경제가,과학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그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요소들을 섭렵해야 했다.
어느 덧 영어와 컴퓨터가 소리없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버린 것처럼 말이다.
정작 우리가 하고 싶은 건 하지도 못한 채,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만 있는 것 같다.
영어든 컴퓨터든 필수가 아닌 선택 사항이어야 한다. 아직도 컴퓨터 게임보단 술래잡기 놀이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을 거고,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영어보다 인도어에 관심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에 전념하기 보단 영어를 익히는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러기에 학과에 대한 지식은 척박하기 그지 없게 되고 때문에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다가 휴학과 자퇴를 내는 학생들이 속출해서 대학들은 정식이 아닌 비정식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시류가 옳지 못함이 뻔히 보인다. "변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이어져온 불가피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 목적이 단지 "윤택"하고 "편리함"에만 맞춰져 있다면 그건 현대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탓해야할 것이다. 더군다나 발전의 이면에 드러난 자연의 파괴를 상기해 본다면 우리의 죄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하냐! 사람 하나 죽으면 애도한답씨고 수백만원 들여서 장례식을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49제다 뭐다해서 주접을 떤다!
그러면서 자연을 살리기 위한 투자는 늘 소홀하다.
"자연은 인간사고 방식보다 훌륭하다"
나무는 때가 되면 미련없이 잎을 버리고 맨 몸으로 시린 겨울을 난다.
그러다 다시 때가 되면 가지마다 잎들이 소생하여
바람에 휘날리는 이파리로 온갖 축복의 노래를 부른다. 오직 바람과 태양의
조건속에서 말이다. 절대 인간들처럼 집착하거나 무엇을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대 무변의 그늘과 풍성한 과실을 가져다 주며,
죽어서까지 사랑하는 애인을 위한 연애 편지의 종이로 그 생명을 다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 나무의 "희생"을 쓰다만 파지로 낭비해 버린다.
도무지 인간의 욕심은 그 한계가 어디인지...
이제 우리가 기다릴 것은 "희망"이 아닌 "벌"뿐이다.
잔인하고 흉칙하고 무시무시한 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의인간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지켜보며 언젠가는 똑같이
앙감픔하기 위해서 벼르고 있던 시간들이 이제 다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죄를 씻고 싶다면 주위의 이웃들을 살피고
자연보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 저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주식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녹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라. 사람과 자연을 위한 쉼없는 봉사를 통하여 그대들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리라.
이제 경제를 멈추고 복지를 살려야 한다.
우리가 그 동안의 만행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지를 살리는 길이다.
"내가 왜 봉사를 해야할까"라는 생각이 들거든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아왔을까"생각해봐라. 그러면 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거든 그냥 죽어버려라!
"자연과 인간을 위한 복지"
난 반드시 이 목표를 수행할 것이다.
가끔 다른 분야에 대한 욕심이 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싶지만,
반지하의 골방에서 누군가 자신의 방문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않을 것이다. 대학에 가선 말로만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할 것이며,
산을 깎아 대단위 단지를 지으려는 도시개발과의 책임자에게 "십새끼" "죽여버릴 거야"라고 협박할 것이다.
나태함과 두려움을 이유로 우리는 변화를 꺼려했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고 어차피 한 번 사는 삶이니
손해볼 일도 없지 않은가!
때로 이런 극단적인 생각에서 나는 희망을 찾곤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자신의 임무를 반드시 수행하고 죽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겐 관습과 탐욕에 집착한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임무가 주어졌다. 내겐 부담스런 일이지만 그래도 품위있는 죽음을 위하여 개 망나니같은 일들을 마다하지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 놈의 컴퓨터도 부숴 버리거나
좀더 생동감있는 삶을 위하여 컴퓨터를 팔아 아프리카로 떠날 것이다.
두서없이 엉키고 섥히는 내 마음처럼 현실은 엉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한 짓이니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일 아닌가!
추신...
복지는 당장의 성과를 보여주지 않는다.
때로 복지는 허수아비처럼늘 말이 없어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의 양심이
더 낮은 곳으로 고개 숙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경제는 가라! 미래는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