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가득한 요즘 강가에 서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두리번거리며 찾게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새끼들을 이끌고 서강을 오르내리는 비오리 가족입니다. '비오리'는 몇 해전 동강 댐 건설문제로 인해 유명해진 새입니다. 원래 겨울철새이지만 물이 맑고 먹이가 풍부한 동강과 서강에 아예 터를 잡고 살아가는 친구들이지요. 덕분에 봄이면 강가에 노니는 비오리 가족의 재롱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비오리는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강가 높은 절벽에 둥지를 마련합니다. 보통 다른 새들의 새끼들이 다 자라 날 수 있을 때까지 둥지에서 생활하는 것과는 달리, 비오리는 알에서 깨어나 병아리 정도로 크면 강물 위에서 생활을 합니다. 비오리 새끼의 수는 보통 12마리 내외가 됩니다. 병아리와 같은 작은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강가를 오르내리는 모습은 마치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하지요. 새끼에 대한 사랑이 많은 엄마 비오리는 앞장서 가다가도 자주 뒤돌아보며 '하나, 둘, 셋, 넷...' 혹시 뒤 처지는 아기들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곤 합니다.
비오리 새끼들은 공중 낙하법도 배운 적도 없을 텐데 겁도 없이 그 높은 절벽에서 강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또 수영을 배운 적도 없는 녀석들이 조그만 발로 종종거리며 엄마를 따라 강물 위를 오가는 모습이 무척 귀엽습니다. 특히 거친 물살이 흐르는 여울도 겁을 내지 않고 오르내리곤 합니다. 올망졸망 엄마 뒤를 따라 다니던 새끼들 중에 갑자기 한 마리가 '엄마, 다리 아파' 하며 얼른 엄마 등에 타고 오르면, 그동안 잠잠히 엄마를 뒤따르던 다른 녀석들도 '나도 다리 아파요' 하며 서로 엄마 등을 타고 오릅니다. 그렇다고 엄마 비오리가 계속 새끼들을 등에 태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두세 마리를 등에 태우고 한참을 나아가던 엄마 비오리는 살짝 몸을 흔들어 새끼들을 강물에 내려놓습니다. 험한 세상을 이겨내는 강한 새끼들로 키우기 위한 엄마의 마음이겠지요.
경계심이 강한 엄마 비오리의 눈을 피해 높은 절벽 위에 숨어 비오리 가족의 노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과 같이 즐겁습니다. 엄마 비오리는 열심히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엄마 비오리가 먼저 머리를 물 속에 처박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면 새끼들도 너나 없이 물살을 일으키며 엄마의 모습을 뒤따라합니다. 십여 마리의 새끼들이 길게 물살을 일으키며 수영과 사냥을 배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집니다.
비오리 가족이 만들어 내는 가장 멋진 장관은 새끼들이 조금 더 자란 후부터입니다. 엄마 비오리와 함께 새끼들이 물 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마치 수상스키 경주 대회가 열린 것처럼 수면 위에 길게 물보라를 일으키게 됩니다. 배의 노 역할을 하는 비오리의 다리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물살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모습은 탄복을 자아내게 합니다. 수상스키 경주도 비오리의 달리는 모습보다 더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끼들을 훈련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모든 것은 엄마 비오리 혼자입니다. 아빠 비오리는 어디 있냐고요? 비오리 아빠는 겨울에서 초봄까지만 볼 수 있습니다. 비오리 아빠는 마치 무스를 바른 듯 광이 번쩍이는 짙은 초록색의 머리 모양에 춤을 추러가기 위해 하얀 옷을 쫙 빼 입고 잔뜩 멋을 낸 모양입니다. 초봄까지 쌍쌍파티를 해가며 정답게 노닐던 비오리들이건만 날이 따듯해지기 시작하면, 무정한 수컷 비오리는 임신한 암컷 비오리를 버려 두고 홀로 자기 고향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컷 비오리는 비록 홀로 남겨졌지만 외로움에 절망하지 않고 당당히 홀몸으로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웁니다. 위험이 가득한 거친 세상에서 혼자서도 그 많은 새끼들을 보호하고 훈련시키며 잘 키워내는 엄마 비오리가 무척 대견스러워 보입니다.
무더운 여름, 사랑하는 님들께 기쁨과 행복 가득한 시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