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에게
오늘은 휴가를 내어
고향 인천에 내려갔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시 중구 유동이지만
동인천역 앞 용동에서
유년기, 사춘기와 청소년기를
모두 보냈습니다.
용동은 과거에는
용동권번이 있었던 지역이어서
평범한 청소년들에게도
청소년기를 보내기에는 환경이 그리 좋지 않은 곳이었는데
당시의 나는
있을 수 있는 나쁜 환경이 모두 결집된
최악의 환경에 둘러싸여져 있던 결손 청소년이었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한 것은
우연 아니면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가수 유계영의 노래 ‘인생’에
“굽이굽이 살아온 자욱마다
가시밭길 서러운 내 인생
다시가라하면 나는 못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가네“라고
다시는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가사가 담겨 있는데
저 또한 그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용동에 다녀오면
미래로 가는
내 삶의 동력이
가득 충전되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올챙이 적 나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어
다시 한 번
전투력을 불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용동에 둘러
오랜만에
인천 토박이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용동 큰 우물’과
지금은 가천의과대학으로 성장한
길병원이 처음 개업한 건물을 둘러 보았습니다.
오늘 안 사실인데
한국미학의 선구자인 고유섭 선생의 생가터가
바로 길병원이 개업 한 곳이었다는군요.
용동에서 발길을 돌려
가까이 싸리재길에 있는
68년 전통을 갖은 동서대약방과
1894년에 한국 최초의 민간극장인 협률사로 개관한
100년이 넘는 애관극장을 거쳐
인천 차이나타운에 가서
원조 짜장면을 먹고
애마를 타고 소래 포구로 달려가
저녁에 먹을 약간의 해산물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꿈만 같은 하루가 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