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서재경 목사 (2023.10.22. 창조절 여덟째 주일)

[김윤식(한민교회)]

예배 시편 / 시편 130편 1-8절

찬송 / 468장 ·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성서 / 창세기 33장 1-11절, 로마서 11장 25-36절

말씀 /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로마서 11장 36절)

지금 세상은 짙은 어둠과 혼돈 속에 헤매고 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일어난 끔찍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너무나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참혹한 전쟁이 하루속히 끝나고, 다시 공존과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상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여러 가지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갈등’은 무엇일까요? 왜 서로 갈등하는 것일까요? 우리말에 ‘갈등’이라는 말은 칡 葛 자와 등나무 藤 자로 되어 있습니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 같다는 말이지요. 칡과 등나무는 저 혼자 서지 못하고 다른 나무에 기대어 타고 오르며 자랍니다. 일종의 덩굴 식물입니다. 그런데 칡은 다른 나무나 기둥을 타고 오를 때 오른쪽으로 돌면서 올라갑니다. 반면에 등나무는 왼쪽으로 돌면서 올라가지요.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함께 섞여 자라면 마구 뒤엉켜버립니다. 서로 반대로 휘감아 돌면서 복잡하게 꼬이면 그걸 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갈등’이지요. 이렇게 서로 다른 것이 적대하며 충돌하는 것이 갈등입니다.

지금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수많은 갈등이 얽혀 있습니다. 하마스라는 단체와 이스라엘의 충돌에 팔레스타인 여러 무장 단체들과 주변 나라들이 서로 얽혀 있지요. 여기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열강들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당장 유가가 심상치 않지요. 전쟁은 우리의 일상에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갈등을 종교적으로 들여다보면, 유대교와 이슬람과 기독교가 얽혀 있습니다. 이 오랜 종교적 갈등은 전쟁을 더욱 참혹하게 합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무릇 모든 종교는 평화를 표방하고 찬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종교가 평화를 가로막고 오히려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을 정당화하고 선동한다면, 종교가 도무지 풀 수 없는 갈등의 원인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맹신은 자기 형제자매도 없는 무자비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에서 야곱이 그의 형인 에서를 만나는 장면을 함께 읽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의 아들들이지요.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입니다. 태어날 때는 형인 에서가 먼저 나왔습니다. 얼굴이 붉어서 붉다는 뜻으로 에서라 불렀습니다.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것이 야곱이지요. 야곱이라는 이름에는 발뒤꿈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쌍둥이로 태어난 두 형제는 갈등을 빚게 됩니다. 본래 동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의 젖줄인 어머니를 두고 겨루어야 하는 적이기도 하답니다. 그게 형이지요. 그런데 형이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니까, 동생은 꾀가 많아진다고 하지요. 어쨌거나 야곱은 팥죽 한 그릇의 꼼수로 장자의 권한도 얻고, 온갖 잔꾀로 아내도 얻고 재산도 많이 모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와 겨루어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지요. 

그렇게 모든 것을 이룬 야곱은 다시 형 에서를 찾아와서 만납니다. 극진한 선물도 마련하고 예를 갖추어서 형님을 뵙게 되지요. 형의 은혜/용서를 바라면서 정성으로 마련한 선물을 드리며 절하는 야곱, 동생의 선물을 사양하면서 따뜻하게 맞이하는 맘씨 좋은 형, 이 형제의 만남은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합니까? 무엇보다 야곱은 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

참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토록 경쟁하고 다투며 갈등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용서하며 부둥켜안은 그 품은 얼마나 따뜻했을까요? 형님의 얼굴을 보면서 하나님을 뵙는 듯하다는 야곱의 가슴은 또 얼마나 벅찼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이 에서와 야곱은 누구입니까? 에서와 야곱은 누구의 조상입니까? 에서는 에돔의 조상입니다. 이스라엘이 적대시하고 갈등하고 전쟁을 벌이는 주적입니다. 그토록 철천지원수로 증오하고 멸시하고 정죄하는 부정한 이방인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저 부정한 이방인의 조상 에서에게 마치 하나님을 뵙는 듯하다고 말하며 절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성서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뭘 말하는 것일까요? 스스로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에게,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배타하는 이스라엘에게, 창세기의 이 장면은 뭘 말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은 바로 적이 아니라 너의 형제다, 저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너의 핏줄 너의 형이다, 그 말 아닐까요? 

사실 야곱과 에서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불러서 선택하시고 약속을 주신 조상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지요. 누굽니까? 아브라함이지요. 그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자신의 혈통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실 때, 그가 태어난 곳과 아비의 집과 고향을 떠나라 하셨지요.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애초부터 하나님은 혈통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사실 만약 아브라함의 혈통을 주장한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아삭 말고도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주장할 사람은 너무도 많습니다. 

흔히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외동아들만 있는 줄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보다 먼저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그 이스마엘은 할례를 받은 당당한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말고도 여러 아들이 있습니다.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등 여러 아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대요.” 아브라함에게는 적어도 혈통으로는 이스마엘까지 치면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이삭은 키가 커서 뽑히고 나머지는 작아서 탈락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의 후손은 혈통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함께 받아 읽었습니다.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지고 로마의 지배 아래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며 쓴 편지지요.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이방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그런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아브라함의 후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뇌한 사도입니다. 

본디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히브리 중의 히브리 사람이었지요. 완벽한 혈통을 타고 난 아브라함 자손이었다, 그 말입니다. 그는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지요. 다소 출신인 그가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순수한 혈통을 타고 났는지를 말해 줍니다. 바울은 혈통으로는 완벽한 정통 히브리 선민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유학해서 율법을 공부하여 바리새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의 혈통이 중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고 지키는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혈통을 무시하고 할례를 부정하네요.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하고 주장하네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지요. 처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 바울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훼손하고 할례를 부정하는 자들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척결하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주적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하는 것을 바울이 보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보고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마스쿠스에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곳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지요.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사흘 동안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자,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이 다메섹 사건,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바울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눈뜬 바울에게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전에 그는 아브라함을 그 혈통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바울은 더는 아브라함을 그 혈통으로 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참 자녀로 여겨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롬 9:8)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육신 때문이 아니라, 육신의 혈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자녀가 된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혈통을 타고 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자격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가 결정한다, 그 말이지요.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되, 유대 사람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 가운데서도 부르셨다(9:24)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율법과 예언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예언도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것이 아니라 열린 것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결정하신 일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 그것이 선택이요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방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놀랍고 고마운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선물은 모두 하나님의 긍휼한 사랑에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느냐고,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분노하고 폭력 시위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모독하는 죄악일 뿐이지요. 

바울은 그렇게 유대 사람을 택하셨을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로마가 지배하는 이방인의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의 불순종조차도 자비를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높고 깊은 섭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33절)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36절)

지금 이스라엘과 전쟁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입니다. 팔레스타인 전쟁은, 종교적으로는, 유대교와 이슬람이 싸우는 것이지요. 여기에 기독교도 얽혀 있습니다. 유대교, 유대 사람들은 자신들을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당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슬람 사람들도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또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의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라고,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기독교인도 모두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이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니, 모두 한 형제가 아닙니까? 한 형제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기 때문에 저놈은 내 적이라고 원수라고 우긴다면, 나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맹신한다면,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니, 온 생명의 창조주요 근원이신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형제의 얼굴에서 주적을 보는 것, 배타와 폭력을 선동하는 것,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정신 분열적 광기요 지독한 독선입니다. 형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의 원조 야곱은 이방인의 원조 에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마치 하나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어느 들판에서 이루어졌던 이 아름답고 따뜻한 해후가 오늘 다시 팔레스타인에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은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고마운 선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이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비참한 골육상쟁으로 진통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속히 전쟁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에서 형제자매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서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비로운 손으로 붙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분단의 땅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적이 아니라 한 형제자매임을 기억하고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은총으로 함께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