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8일 목요도보 종로100년 이야기길(1)
단성사에서 백인제가옥까지
11시 종로3가역 9번출구 앞 옛 단성사극장 앞에서 18명이 만났습니다.
늘예님의 해박한 해설로 풀어 갈 오늘의 일정이 설레입니다.
단성사라는 영화관이 있었던 곳이라고만 알았는데...
이 자리에 조선조 시대에 포도청이 있었고 여기에서 천주교박해와 순교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동학의 제2교주 최시형이 순교했던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세번째 사진은 오늘 첫 걸음을 하신 아지랑이비님 별엄마님 미네르바님 무순님입니다.
네 분~ 앞으로 자주오시어 함께해 주시겠지요?
원로 희극인 송해님의 이름을딴 송해길입니다.
육의전터입니다.
1919년 3월1일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쳤던 역사의 현장인 탑골공원으로 들어갑니다.
손병희 선생의 동상 앞에 노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곳 탑골공원과 종로4가 종묘앞 공원은 노인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국보2호 원각사 10층 석탑입니다.
세조11년인1465년 창건된 사찰로 높이 12m 대리석 4면 두출정형의 장엄한 조각 장식으로 유례가 드문 석탑이랍니다.
우리회원끼리 단체사진을 찍고...
바이롤린 연습을 하던 앳된 모습의 군장병을 만났습니다.
환한 얼굴로 함께 사진을 담았습니다. 장 모 육군 상병 휴가중 이곳을 찾았다는군요.
자식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잠시 이야기를나눈 여성회원님들의 모습도 아른거립니다.
피맛골입니다. 임금이 행차하면 골목으로 모두 피해 행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곳.
이유 없이,아무리 바빠도 참고 피해있어야 했던 민초들의 고역을 생각해 봅니다.
당시 이 골목의 해장국집이야기도 들었지요.
승동교회.신분이 미천했던 백정과 그 아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개화된 신앙 정신도 되뇌여 봅니다.
낮은 자세로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며 민족정신을 일깨웠던 초기교회와 현재의 대형교회의 형태를 비교해 보았답니다.
좁은 골목길.성공시대라는 간판과 허름한 가옥이 대비됩니다.
님들 중 상당수가 이런 골목의 추억이 있었겠지요?
연탄 몇장과 쌀봉지를 들고 오르락 거렸던 기억이 있었겠지요.
기독청년의 모임체인 와이엠시에이.
개화기 시절이들 단체의 앞서가는 대국민 운동을 들어 봅니다.
한성전기 건물이있던 곳.1898년 1월 26일 고종황제가 설립했답니다.
서울에 전차가 다닐수 있게 된 겁니다.
그냥 지나쳤던 이 거리에 이 회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커피와 담배를 즐긴 줄 알았는데 고종황제의 또다른 면모를 봅니다.
몰락의 대한제국 시대의 황제 고종의 애환의 역사를 더듬기도 했구요.
대원군과 명성황후도 떠오르구요.
독립운동가 김상옥. 33살 뜨더웠던 삶을 마감한 애국청년 김상옥.
영화 밀정이 떠오르네요. 전설처럼 살다가 간 그의 영화같은 일생을 그려보았지요.
화신 백화점이 있었던 곳입니다.
일제시대 배짱 두둑한 사업가 박흥식의 일화는 유명했지요.
함께하신 호야정 부부께서 당시 손목시계를 샀다고 귀뜸해 주었지요.
저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근의 학원을 다닐 때 화신백화점을 구경삼아 돌아 보았던 생각이 납니다.
매일신보사옥터.
손기정 마라톤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들으며암울했던 시대의 민족 언론의 활약을 알게 됩니다.
붉은 벽돌 건물, 지금까지 건재함을 봅니다.
서울에 남아있는 오래된 설렁탕 집 중 1호라고합니다.
국물도 좋지만 이 식당의 깍뚜기 맛도 굿입니다. 원래 부터있던 자리는 아닙니다.
길 건너 큰 건물 자리에 태화관이 있었다지요.
이곳은 3·1독립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베푼 곳입니다.
민족의 독립만세운동계획에 따른 준비를 1919년 2월 28일까지 완료한 민족대표 33인 중
29인(길선주·김병조·유여대·정춘수 등 4인은 지방에 있었으므로 불참)은 태화관에 모였는데,
독립선언 시각인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손병희(孫秉熙)는 최린(崔麟)으로 하여금 태화관(명월관 분점격)
주인 안순환이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게 하여 “민족대표 일동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지금 축배를 들고 있다”고 통고하였답니다.이에 일본경찰대 80여명이 곧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하였고,
이때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韓龍雲)의 식사를 듣고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일본경찰에 의연하게 연행되었다는군요. 이 사건이후 탑골공원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독립의 함성은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100년전의 역사를 더듬어 봅니다. 당시 선인들의 나라사랑의 뜨거운 열정도 그려봅니다.
의친왕 이강이 살았던 사동궁.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습니다.회화나무한 그루만 남아있지요.
근현대사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은 의친왕이 기거했던 사동궁터의 해설을 들었습니다.
점점 잊혀저 가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 어디 이곳 뿐이겠나요.
한국 불교의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본산인 조계사를 찾았습니다.
경내를 다돌아보지못해 아쉬웠지요.
500년된 백송앞에 섰습니다.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조계사일대에는 학교들이 많았습니다.
중동,진명 수송 등... 개화기 시절 우리 선조들의 교육열을 엿봅니다.
불심덕인지 아직 지지않은 단풍이 보입니다.
기념비만 남아있는 미로같은 길섶에서 잊혀진 역사의 흔적을 더듬었지요.
목은회관지하1층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요.
굴국밥 굴떡국등...조금은 얼은 몸을 녹이며 맛난 점심을 했지요.
밥은 나눔이라 했던가요.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나누며 마음까지도 나누는 것, 바로 교감이며 친화이지요.
밥은 공동체의 모습이기도하지요.요즘 '혼밥'이란 말이 유행이더군요.
가족이라도 따로따로의 식사...요즘의 세태도 생각해보았지요.
식사 후 몇분이 가져온 간식을 나누는 정겨운 우리의 살가운 '온기'도 보았지요.
밥은 함께하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의식이 맞는거지요?
식사 후 마지막 코스인 백인제가옥을 가기전 600살 백송을 보았지요.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백송입니다.
탄핵... 그리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바쁘겠네요.
백송의 하얀 살곁처럼 깨끗하고 명료하고 또 정의의 판결이 나겠지요.아니, 그렇게 결과가 나오리라 굳게 믿어 봅니다.
백인제가옥.그전에 백인제,그는 누구일까요?
다음백과 인용
혈액형 및 수혈의 연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15년 정주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3·1운동에 가담해 퇴학처분을 당했다. 10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뒤 복학이 허용되어 1921년 수석으로 졸업했다.
3·1운동 관련으로 의사면허가 발급되지 않아 조선총독부의원에서 2년간 일한 후 의사면허를 취득했으며,
1923년 같은 병원 외과에 근무했다. 1928년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 주임교수로 임명되었다. 1930년 한국인 의사들과 조선의학협회를 창립하고 간사에 취임했다.
베를린대학교를 비롯해 유럽에서 약 1년 6개월간 외과학을 연구했으며, 1936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미국·독일·프랑스 등에서 외과학을 연구했다. 1941년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고 1932년부터
위탁·경영해오던 우에무라 외과병원 자리에 백외과병원(지금의 인제대학교 부속 서울백병원)을 설립했다.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초대 외과 주임교수로 임명되었고 서울시 의사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백외과병원을 토대로 공익재단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창설했으며,
같은 해 1947년 대한외과학회 초대 회장, 대한의학협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1949년 대한외과학회 2대 회장을 역임하다가 1950년 6·25전쟁중 납북되었다.
그럼 백인제가옥은...(위키백과 인용)
가회동 백인제 가옥(嘉會洞 白麟濟 家屋)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7길 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의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1977년 민속자료로 등재될 때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가 소유하고 있어 백인제 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종 11년(1874) 한상룡이 세운 집으로 압록강 흑송을 가져다 지었다고 전한다. 크게 행랑채, 안채,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채와 안채는 일반적인 서울지방 상류주택들과 달리 한 동으로 이어져 있다.
대문 좌우로 광과 부엌이 있고 사랑채에는 4칸의 방과 대청을 놓았으며 긴 툇마루가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안채는 앞뒤로 퇴칸을 두었고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을 一자로 배치하였다. 별당은 뒤뜰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후기 주택으로 보존상태가 좋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서는 대문과 안마당쪽 담의 꾸밈이 눈길을 끄는 집이다.
비록 옛 주인의 신발은 아니겠지만,저 하얀 신발에서 체온을 느낄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새하얀 마음을 가진 부자(父子)의 것으로 그려짐은 왤까요.
옛날,그리 멀지 않은 시절이 떠오르지 않는지요?
검정 고무신보다 귀티가났던 그 신발의추억이 떠오르지는 않는지요?
이 가옥의 해설사 조유O님. 앳때보이지만 똑소리나는 해설이었습니다.
파아란 새싹이 솟는 새 순을 보셨겠지요?
나무는 이겨울에도 쉼 없이 봄을 준비합니다.
그 나무아래에서 이 가옥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한눈을 팔 수 없는 해설에 빠져듭니다.
뒷뜰,미로같은 길입니다. 이 고운 길을 걸으며 한 여인이 지아비에게 조심스레 말했고
지아비는 한마디로 오게이를 했다지요.그래서 이집의 주인이 되었다는군요.
부부의 아름다운 순애보를 느낍니다. 뭉쿨한 러브스토리를 상상합니다. 순결한 사랑을 그려봅니다.
찬틀너머 동네를 찍었습니다.
그 옛날의 모습은 어땠는지도 유추해 보았습니다.
빛바란 사진을 드려다 봅니다.
결코 빛바란 정경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웃음과 표정...'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혹시, 정말 혹시 님들의 사진첩에서도 오래된 미래의 쾌적이 남아있겠지요.
지금 어디엔가 있는 앨범을 꺼내보시지 않으렵니까?
눈물 몇방울과 함께 입가에 미소도 지어 보시지요.
한 시간여를 돌아보고 백인제가옥을 나섰습니다.
함께하신님들~ 오늘 하루 어떻셨는지요?
늘예님과 함께하는 이야기길에 많은 발길 기다립니다.
밝은 얼굴로 다음길에서 반갑게 뵈어요.
다소 쌀쌀한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12월8일 이같또 로따 -
첫댓글 장문의 후기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제해설보다 더 확실하게 짚어 주시는 로따님 글에 감동 백배 입니다~~~
추운날씨임에도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 주신 울님들도 아름다우신 모습이셨습니다.
다음길에서 또 뵙겠습니다.
즐건도였군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늘예님 덕분에 이제껏 알지 못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본 것같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어 함께하심에 감사드려요.
처음도보 빌딩속바람때문에 다소 추웠지만 의미있는도보였습니다. 늘예님 로따님그리고 회원님들 만나서반가웠습니다. 다음길에서 또뵈요.
즐건도였군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미네르바님. 처음 뵈어 반가웠답니다.
그리스로마에 나오는 예술과 지혜의 여신에서 닉을 가져오셨다지요. 자주 뵈옵기를^^
그냥지나가면 모를 종로길에는 수많은 아픈역사들과 희망이 함께함을 느껴봅니다~과거가현재가되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미래가되고~제대로 잘살아겠다고 다짐해봅니다~귀한길열어주신 로따님~멋진해설해주신 늘예님~함께걸어주신 우리길님들 감사해요~행복한날들되세요^♡^
막차(?)로 오신 벌(ㅎ)로 살림보고를 맞으셨지요.
자주 좋은길에서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글 읽으면서 재밌었어요~
즐건도였군요 수고들 하셨습니다
붉은토마토님~ 반갑슺니다. 언젠가 함께 걷게 되기를 바랍니다.
종로길을 걸으면서 역사와 함께한 건물들이 그리 많은 줄을 몰랐답니다.
늘예님의 세세한 설명을 들었으나 많이 기억하지 못하였던 것들을
사진 속에 일일이 설명을 달아 다시 일깨워 주신 로따님 감사합니다.
백인제 가옥을 설명을 잊을 수가 없어요.
도시 속의 추운 바람을 버티며 끝까지 설명과 도보길을 끝맺어 주신 두분~~
늘예님, 로따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신나라짱님도 종로거리를 걸으며 저와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함께한 시간 귀히 기억하겠습니다.다음에 반갑게 뵈옵기를요.
늘예님의 해설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칠 거리와 건물들이
해설을 들으면 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과 슬기로움 또 아픈 역사를 알 수있었습니다.
너무 공부를 많이 한 하루였는데 로따님의 설명을 겯들이신
후기를 보니 복습을 확실히 한 느낌이군요.
좋은길 열어주시고 복습까지 철저히 시켜주신 로따님 감사합니다
함께 하신 회원님들 늘예님 고맙습니다.
담 길에서 또 뵈어요~~^^
수아짱님과 함께한 종로길 잊지않을게요.
길위에는 많은 사연과 인연들이 있음을 깨닳게 되는군요.
늘예님과 로따님 덕분에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길도보의 품격이 높아지고 있네요
산산님 이야기길처럼~~
저도 자주 가고 싶네요^^
늘 감사드립니다 ~~
종로를 걸으며 무심코 지나친 이야기가 적잖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네~저도 들국화님과 발맞출 날 학수고대한답니다.
오늘 종로길 걸으며 많은 공부했습니다.
그냥 지나치게 될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해설해주신 늘예님.이같또로따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길에서 뵐게요~~
공중님 반가웠답니다.잊혀져가는 흔적을 찾는 기쁨이 컷지요.
다음길에서도 함께 걸으며 좋은 시간 깆기를 바랍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