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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은 왜 우스갯말 책을 엮었나
욕이나 비속어는 나쁜 말이므로, 사전에 없는 말이고 없어져야 할 말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쓰는 욕인 ‘개새끼, 개지랄, 좆같다, 씹할 놈’은 다 표준어고 사전에도 실려 있다. 또 비속어인 ‘대가리, 대갈빼기, 대갈통, 주둥이, 아가리, 눈깔, 귀때기, 짓고땡’도 다 사전에 실려 있다. 이 또한 물론 표준어다.
그것은 욕과 비속어가 없어져야 할 말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욕과 비속어가 없다면, 말하는 이가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나타낼 수 없어 많은 불편을 느낄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언어다. 그러므로 욕이 없는 언어는 생각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의 언어 기능을 해 낼 수가 없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말이 있으면 욕이나 비속어 같은 나쁜 말이 있는 것 또한 세상의 바른 이치다.
그런데 이 욕과 비속어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다. 상관이 말직들보다 욕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부하를 다스리고, 많은 업무를 기획․관장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져 아랫사람보다 더 많은 불평불만이 욕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라 한다.
이 욕과 사촌쯤 되는 말에 우스갯말이 있다. 보통 육담(肉談)이라고도 하고 골계(滑稽)라고도 한다. 사람이 늘 긴장하고만 살 수 없다. 가끔은 그것을 풀고 배꼽을 쥐고 웃을 때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골계는 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다.
이 우스갯말 역시 욕과 마찬가지로 주로 즐기는 이들이 상층계급이었다. 노비나 농사꾼들은 일에 바빠 그것을 즐길 겨를이 없었기로, 그 향수층(享受層)은 으레 선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일일 노동자들은 골계를 즐길 겨를이 없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도, 우스갯말을 듣고 기록하거나 직접 지어낸 사람도 주로 선비들이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층민들은 그럴 시간도 없었거니와 그것을 읽거나 기록할 지적 수준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골계담 하면 누구나 고금소총(古今笑叢)을 떠올릴 것이다. 직접 그 책을 다 읽어 보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고금소총은 민간에 전래하는 여러 종류의 문헌소화(文獻笑話)를 한데 모은 설화집으로, 편찬자 및 편찬 연대는 미상이다. 대략 19세기쯤 편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고금소총은 어느 한 사람이 지은 책명이 아니다. 우스갯말을 모아 지어 놓은 여러 사람의 책을 한데 모아 엮은 책이다. 여기에 수록된 각 소화집의 편찬자는 대개 알려져 있는데 찾아보면 이러하다.
1947년 송신용(宋申用)이 조선고금소총(朝鮮古今笑叢)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배본에 어수록 禦睡錄, 제2회에 촌담해이 村談解頤, 어면순 禦眠楯을 한 권으로 묶어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하였다.
그 뒤 1959년 민속자료간행회에서 고금소총 제1집이 유인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이 속에는 서거정(徐居正) 편찬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蓂葉志諧),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禦眠楯),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續禦眠楯),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村談解頤), 부묵자(副墨子)의 파수록(破睡錄), 장한종(張寒宗)의 어수신화(禦睡新話), 그밖에 편찬자 미상의 기문(奇聞), 성수패설(醒睡稗說), 진담록(陳談錄), 교수잡사(攪睡襍史) 등 모두 789편의 소화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듯이 이들 우스갯소리를 편찬한 사람들은 거의가 선비들이다. 특히 서거정, 강희맹 같은 이는 당대 최고의 문신이었다.
그리고 이 책들이 소화집(笑話集)이란 것은, 그 이름에서도 단번에 알 수 있다. 태평한화골계전이란 태평한 시대의 한가한 때에 주고받은 우스갯소리이란 뜻이며, 어면순(禦眠楯)은 잠을 막는 방패란 뜻이다. 명엽지해(蓂葉)의 명엽은 원래 중국 요(堯) 임금 때의 상서로운 풀이름으로, 초하룻날부터 보름까지 날마다 한 잎씩 났다가, 열여샛날부터 그믐까지는 매일 한 잎씩 떨어지므로, 이것으로 달력을 삼았다고 하는 풀이다. 그래서 명엽은 후대에 달력이란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홍만종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병으로 서호(西湖)에 누워 있을 때, 촌로들이 찾아와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를 달력 풀 뒤에 기록하고 날짜대로 맞추어 놓으니, 한편의 책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하였다. 지해(志諧)는 우스운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촌담해이(村談解頤)의 촌담은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란 뜻이고, 해이는 턱이 빠진다는 뜻이니 곧 웃다가 턱이 빠진 촌스런 이야기란 뜻이다. 파수록(破睡錄)은 잠을 깨뜨리는 기록이란 뜻이고, 또 어수신화(禦睡新話)는 잠을 막는 새로운 이야기, 기문(奇聞)은 기이한 소문이란 뜻이다. 그리고 성수패설(醒睡稗說)은 거리에 떠도는 잠을 깨우는 잡스런 이야기, 진담록(陳談錄)은 묵은 이야기를 펼친 기록, 교수잡사(攪睡襍史)는 잠을 흔들어 깨운 잡다한 역사란 뜻이다.
그러면 선비들은 왜 그런 골계전을 썼을까?
그 까닭은 그들이 지은 책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 그 책들 중 대표적인 골계전인 태평한화골계전에 쓰인 서거정의 서문을 먼저 살펴보자. 이 서문은 서거정 자신과 어떤 손님과의 대화체로 되어 있다.
거정이 일찍이 관직을 떠나 한가롭게 지낼 때에, 글로 놀이를 삼으면서, 친구들과 전에 장난을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제목을 골계전이라 하였다. 어떤 손님 가운데 책망하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그대가 읽은 것이 어떤 책이며 그대가 공부한 것이 어떤 것인가? 그대가 조정에서 벼슬한 지가 40년이 되어 간다. 여러 관청의 자리를 역임하고 육부(六部)의 장관을 지내고 의정부의 좌찬성(左贊成)까지 되었으니, 벼슬이 높지 않은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좋은 계책을 내어 주상을 잘 보필하고 좋은 정책을 건의하여 시행하도록 했다는 말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또한 사마천, 반고(班固), 유향(劉向), 양웅(揚雄) 같은 이들이 했던 것처럼, 좋은 책을 쓰고 훌륭한 이론을 세웠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한갓 자질구레하고 맹랑한 것들을 주워 모아 호사가들의 즐거움거리나 만들었으니, 이것은 광대의 우두머리나 하는 짓이다. 세상을 교화하는 데에 그것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옛날에 열어구(列禦寇 열자)와 장주(莊周 장자의 본래 이름)는 도(道)를 봄이 정미하고 세상일에 대한 격분이 깊어서, 기괴하고 과격한 학설과 기이하고 괴상한 문장을 지어 고무시키고 변화시키며 격동시키고 발양시켰는데, 간혹 근거가 없고 경전의 뜻에 맞지 않는 학설이 있었다. 그것으로도 오히려 성인의 문하에서 죄를 얻었다.(공자와 같은 성인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뜻)
대개 장주와 열어구는 성인의 죄인이지만 그대는 장주와 열어구의 죄인이니, 그대를 위해 이런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정이 깜짝 놀라 용모를 가다듬고 재배하고 사례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그대는 시경에 나오는 ‘우스갯소리를 잘함이여.’라는 구절과 문왕과 무왕이 ‘한 번 당겼다 한 번 늦추었다’(긴장할 때가 있으면 풀 때도 있어야 한다.)는 도를 듣지 못했는가? 제해(齊諧 우스갯소리를 잘했다는 사람 이름)가 남화경(南華經 책 이름 장자의 딴 이름)에 기록되었고, 골계(滑稽)가 반고의 한서(漢書)와 사마천의 사기에 하나의 전(傳)으로 들어 있다. 거정이 이 골계전을 지은 것은, 애당초 후세에 전할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세속의 잡념들을 없애고자 그냥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더구나 공자께서도 ‘장기바둑이라도 두는 것이 아무것에도 마음 쓰는 바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하셨다. 이 골계전 또한 거정이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스스로 경계한 것일 따름이다.”
이에 그 손님은 웃으면서 가버렸다.
이 서거정의 서문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첫머리에서 그가 ‘일’과 ‘놀이’를 나누어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의 ‘일’은 일차적으로는 ‘벼슬살이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서거정이 관료적 문인이었다는 사실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이 ‘일’은 ‘국가적 목적을 앞세운 문학을 하는 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문학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에서 물러나 한가할 때에 ‘놀이‘삼아 할 수 있는 문학, 곧 개인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문학이 필요했다는 것을 피력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놀이삼아 한 구체적 문학 활동이 ‘친구들과 우스갯소리 했던 것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태평한화골계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손님의 입을 빌려서 이렇게 애기한다.
손님이 거정더러 말하기를, 높은 벼슬에 있는 사람이 국정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자질구레한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록하는 버릇만 생겨, 많은 사람들의 비방이 무더기로 일어나고 있다고 비난한다. 또 골계전을 지은 것을 가리켜, 세상에 아무런 쓸데가 없는 광대의 우두머리나 하는 짓이며, 그러한 태도는 성인(聖人)의 도에 크게 어긋나는 짓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거정은 일단 그것을 맞다고 인정한 다음에, 골계전을 지은 연유를 변명하고 있다. 지난날의 시경과 장자에도 우스갯말에 대한 기록이 있고, 반고의 한서나 사마천의 사기에도 골계전이 별도로 편성되고 있다는 전거를 들고 있다. 이어서 골계전을 지은 것은 애당초 후세에 전할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공자의 말씀을 끌어와 마무리를 짓는다. 아무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골계전을 쓰는 것이 낫다고.
그렇다. 거정의 말대로 골계는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다. 그것이 비록 먼 후세에까지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생활에 필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성인의 말씀이 가치로운 것은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성인의 말씀만이 가득하고 하나의 곁말도 없는 세상이라면 정말 숨이 막히는, 살맛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웃음, 특히 말을 통해서 웃음을 추구하는 것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의 보편적 삶의 한 양상이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심각하고 고뇌에 차 있기만 한다면, 아마 우리는 그 중압감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삶이 심각하고 견디기 힘든 무게로 다가올수록, 오히려 따사로운 햇살 같은 웃음이 절실해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건강한 웃음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활력소다.
고금소총에 실려 있는 이야기 중 약 3분의 1이 육담에 해당한다. 어면순, 속어면순, 촌담해이, 기문 등은 거의 육담으로 채워져 있고, 어수신화, 진담록, 성수패설, 교구잡사에는 육담이 전체의 3분의 1 내지 2 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태평한화골계전, 파수록, 명엽지해는 육담이 거의 실려 있지 않다.
고금소총은 흔히 음담패설집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고금소총에는 외설담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고품격의 해학과 교훈적 풍자도 많다. 그리고 외설담이 외설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반드시 웃음을 동반하여, 우스개 이야기로서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는다. 비록 골계가 유희적인 이야기를 본령으로 하더라도, 반드시 경계(警戒)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은연중 교훈의 냄새를 풍기며 심지어 그 소화(笑話)의 끝에 건전환 평가까지 부연하여 도덕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사실 골계란 말이 단순한 익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지식이 많고 말을 잘 하여 남의 시비 판단을 바꾼다는 뜻이다. 또 말이 매끄럽고 재치가 끊임없음을 이르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파수록의 집필자인 부묵자도 “이 책을 보고 좋으면 법도로 삼고, 나쁘면 경계로 삼아서, 이에 따르고 스스로 경계하면 음담과 야한 말들이 나에게 어찌 소용이 없겠는가?”라고 하였다. 골계전의 효용가치를 적절히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러한 가치를 담고 있는 골계담 몇 가지를 읽어보기로 하자.
어떤 대장(大將)이 아내를 몹시 두려워했다. 어느 날 교외(郊外)에다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세우고 명령하여 말하기를,
“아내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붉은 깃발 쪽으로,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푸른 깃발 쪽으로 모여라.”
고 했다.
뭇 사람들이 모두 붉은 깃발 쪽이었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푸른 깃발 쪽이었다. 대장(大將)은 그를 장하게 여겨 말하기를,
“자네 같은 사람이 진짜 대장부(大丈夫)일세. 온 세상 사람들이 온통 아내를 두려워하네. 내가 대장이 되어, 백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적을 맞아 죽기 살기로 싸울 때에, 화살과 돌이 비 오듯이 와도 담력과 용기가 백배하여 일찍이 조금도 꺾인 적이 없네. 그러나 안방에 이르러 이부자리 위에서는 은애(恩愛)가 의(義)를 가리지 못해서, 부인에게 제압을 당한다네. 자네는 어떻게 닦았길래 이런 경지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 사람이 말하기를,
“아내가 항상 경계해서 이르기를, ‘사내들이란 세 사람만 모이면 반드시 여색(女色)을 이야기 하니, 세 사람 이상이 모인 데는 당신은 삼가서 가지 마세요.’고 했는데, 이제 붉은 깃발 아래를 보니 모인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았습니다.”
라고 했다.
대장(大將)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이 이 늙은이뿐만은 아니로구나.”
라고 했다.
아내의 명령 때문에 남자들이 많이 모인 데는 갈 수가 없어서, 홀로 푸른색 깃발 밑에 가서 서야만 했던 그 병사의 처지를 생각하면,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근엄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 같은 당대의 사대부들도, 실상은 오늘날의 평범한 남편들이나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닭을 빌려 타고 가다[借鷄騎還]’란 제목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 선생은 우스갯소리를 잘했다. 어느 날, 친구 집을 방문했더니, 주인이 술상을 마련했는데,
단지 나물로만 안주를 내놓으며 먼저 사과하여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고 시장이 멀어서 전혀 맛있는 음식이 없고, 오직 담박한 것을 부끄러워할 뿐일세.”
하더라.
마침 닭들이 뜰에서 어지러이 쪼고 있었다. 김 선생이 말하기를,
“대장부는 천금을 아끼지 않으니, 마땅히 내 말을 잡아 술안주로 삼게나.”
주인이 말하기를,
“말을 잡으면 무엇을 타고 돌아갈 텐가?”
김 선생이 다시 말하기를,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가리라.”
하니, 주인이 크게 웃고 닭을 잡아 대접하였다.
친구가 보고 싶어 큰맘 먹고 그의 집을 방문했더니, 그 친구는 모처럼 온 김 선생을 채소 반찬만으로 성의 없이 대접한다. 이에 김 선생은 서운한 나머지,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잡아 안주로 삼고자 한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러면 갈 때는 무엇을 타고 가려느냐며 넌지시 자기 속을 드러낸다. 이에 김 선생은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가겠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또 그 웃음 속에서 함께 스며나오는, 손님 박대에 대한 교훈을 엿듣게 된다.
이어서 ‘세 사람의 세 가지 즐거움[三人三樂]’이란 우스갯말을 들어본다.
삼봉(三峯) 정도전과 도은(陶隱) 이숭인 그리고 양촌(陽村) 권근이 모여서 평생의 즐거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봉이 먼저 말하기를,
“첫눈이 내리는 겨울에 담비의 모피로 된 옷을 입고, 좋은 말을 타고 사냥개를 끌고 푸른 매와 함께 평원을 달리며 사냥을 하면 이것이 즐거움이 아니겠소?”
하니, 도은이 말하기를‘
“산촌의 조용한 방에 창문이 있고, 깨끗한 책상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마주 앉아 차를 달이며, 좋은 시구(詩句)를 찾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겠는지요?”
하였다.
양촌이 말하기를,
“흰 눈이 정원에 소복이 쌓이고, 붉은 태양은 창문을 비추는데, 따뜻한 온돌방에서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껴안고, 손에는 한 권의 책을 잡고 길게 누워 있을 때, 아름다운 여인이 섬섬옥수로 수를 놓다가 때때로 바늘을 멈추고, 밤을 구워서 그것을 입 안에 속속 넣어주는 것, 이것이 즐거움이랄 수 있지요!”
이에 삼봉과 도은 두 선생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즐거움이 역시 우리들의 즐거움을 압도하는구려!”
하더라.
옛 선비들의 소곤거리는 재치담이 잔잔히 귓전을 울린다. 그리고 여인의 섬섬옥수로 알밤을 입에 넣어 주는 장면에서 우리는 슬그머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런데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서도, 사내에게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역시 여인과 관련된 즐거움이 최고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다음으로 ‘숫돌을 위하여 칼을 갈다[爲礪磨刀]’란 골계담을 읽어보자.
한 나그네가 주막에서 묵고 있는데, 주막 주인 부부가 곁방에서 어울려 즐기면서, 남편이 아내에게 희롱하여 말하기를,
“내가 온종일 힘 드는 일을 한 나머지, 허리가 매우 아프지만 이를 돌아보지 않고, 당신과 이 일을 함은 나 자신이 좋고자 함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하는 것이오,”
하니, 아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숫돌에 칼을 가는 자가 칼을 위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숫돌을 위하여 간다고 말한다면 그게 옳소?”
하였다.
이에 남편이 다시 말하기를,
“귀이개를 사용하여 가려운 귓속을 긁는 것은, 귓속의 가려움을 구하려는 것이오, 어찌 귀이개를 위하여 그것을 긁는다고 할 수 있겠소?”
하니, 가히 더불어 적합한 대꾸가 되었더라,
도둑이 주인에게 들키자 도리어 지팡이를 휘두른다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이럴 경우를 일러, 흔히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지’라며 혀를 찬다. 이와 비슷한 뜻을 담은 속담도 많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소경 개천 나무란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망건값 달라 한다’ 등 숱하다.
이 우스갯말은 이런 경우를 이르는 가르침을 그 웃음 속에 담고 있다.
이어서 ‘쌀 서 말 닷 되의 밥을 짓다.[作食白米三斗五升]’라는 외설담을 들어보자.
부부가 봄날 대낮에 안방에서 방사(房事)를 질탕하게 치르고 있었는데 운우(雲雨)가 바야흐로 무르익을 즈음 계집종이 창 앞에 이르러 물었다.
“마님 저녁밥에 쌀을 몇 되나 쓸까요?”
안방마님이 창졸간에 답하기를,
“닷되 닷되 다닷되…….”
하였다.
마님의 대답을 들은 계집종은 서 말 닷 되의 밥을 지었다. 나중에 이를 본 마님이 밥을 너무 많이 했다고 책망하자 계집종이 대꾸하였다.
“닷되 닷되는 한 말이 아닙니까? 그리고 다닷(5 × 5)되는 스물다섯 되이니 두말 닷 되가 아닙니까?”
이에 마님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는 어찌 말귀를 잘 짐작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냐? 내가 그 때는 인사불성이었느니라.”
부묵자(副墨子) 가라사대,
“남녀의 정욕이란 누구에겐들 없을까만, 정욕만을 쫓아다니고 예도(禮道)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금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니라.”
하였다.
부부가 대낮에 정사를 벌이면서 내지르는 괴성을 계집종이 엿듣고, 서 말 닷 되의 밥을 짓는다는 이야기다. 부인이 토해 내는 신음 소리를 묘하게 계산한 계집종의 재치에 우리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이야기 끝부분에 편찬자인 부묵자가 소화에 담긴 교훈을 직접 덧붙이고 있다. 성의 절제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우스개 이야기를 몇 편 읽어 보았다. 그 골계담이 주는 웃음 뒤에 간직된 선인들의 지혜와 재치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소화가 주는 활력소도 함께 맛보았다.
이들 골계전에 실린 이야기들을 오늘날 되살려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나 각박하고, 모든 계층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양보가 실종된 대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항상 무언가 쫓기면서 허덕이는 그런 삶에서 가끔씩이나마 조금은 벗어나,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걸어보는 자세도 필요할 것 같다. 가끔은 태평스럽게 앉아서 옛 우스개 이야기를 읽어 보는 것도 하나의 힐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가슴에 쌓인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한번 활짝 웃어 보면 어떨까?
고전은 단순히 옛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과 지혜를 담고 있다. 옛것을 되살려서 오늘 우리의 삶에 대한 거울로 삼을 수 있을 때 고전은 진정한 고전일 수 있을 것이다. 고금소총이 주는 하나의 의미망도 바로 여기에 닿아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