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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읍산, 그 오른쪽으로 남한강이 유장하다
길게 제 그림자를 눕히고, 그러나 돌올히 서 있는 바위 봉우리, 거기에 어려 있는 저 노르불
그레한 석양볕, 가을산의 심중 깊은 자연이 느끼는 소조한 감회는 오히려 이 사내답고 의젓
한 바위 봉우리에서 더 엿볼 만하다. 무엇을 말할 겐구. 무엇을 말할 겐구. 화훼 수목이야 다
쓰러져 가는 애상이 겉으로 드러난다지만, 바위여, 의지의 바위여! 서서 산을 지키는 바위여!
모름지기 어떻다 할 것이고.
설핏한 석양 햇볕을, 쓸쓸히 불어오는 늦가을 바람을, 그 해묵은 피부, 사려 깊은 침묵의 얼
굴, 그 이끼어린 전신의 돈오에서 오히려 너 바위는 한 잎 가녀린 갈대의 애상보다 더 초연
하다
―― 혜산 박두진(兮山 朴斗鎭, 1916~1998), 「가을산」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12월 2일(일), 맑음, 오후에는 구름 많음
▶ 산행인원 : 4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3.5km
▶ 산행시간 : 8시간 45분
▶ 갈 때 : 상봉역에서 중앙선 전철 타고(킬문 님은 청량역에서 중앙선 기차 타고) 용문
역에 내려, 택시 타고 연수리 연안마을로 감
▶ 올 때 : 신점리 조개골 입구에서 택시 불러 타고 용문으로 와서 저녁 먹고, 용문역에서
기차 타고 청량리로 옴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7 : 00 - 상봉역
08 : 17 - 용문역
08 : 50 - 연수리 연안마을 선운사 입구, 산행시작
09 : 11 - 301.0m봉
09 : 35 - △518.4m봉, 헬기장
09 : 55 - 감미봉(555.9m)
10 : 18 - 상원사에서 오는 일반 등산로와 만남
11 : 40 - 장군봉(1,065m)
11 : 55 - 1,149.9m봉, ┳자 갈림길
12 : 34 ~ 13 : 16 - 용문산 가섭봉(1,157.1m), 점심
13 : 48 - ┫자 갈림길, 직진은 용문봉, 왼쪽이 한강기맥
14 : 05 - 963.5m봉
14 : 35 - 문례봉(폭산, 천사봉, 1,002.5m)
15 : 29 - △735.3m봉
16 : 02 - 707.0m봉, 탈출
16 : 23 - 계곡 진입
17 : 35 ~ 20 : 10 - 신점리 조개골 입구, 산행종료, 용문(저녁)
20 : 49 - 청량리역, 해산
1.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왼쪽의 고도 수치는 임의로 조정하였다
▶ 감미봉(555.9m)
오늘 산행도 그 어려움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바닥에 있다. 06시 40분 청량리발 용문
경유 중앙선 기차를 용문이 종착역인 전철로 잘못 알았다. 나는 그 전철을 상봉역에서 느긋
이 타려고 06시 10분께 상봉역에 도착하여 언제나 맛있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더
산 님으로부터 함께 가려고 수색에서 06시 15분 전철을 탔다고 한다. 더산 님도 나처럼 착각
했다.
상봉역에서 용문역까지 가는 전철은 07시에 있다. 그러고도 1시간 17분이나 걸린다. 킬문
님과 연어 님은 용문역 2층 대합실에서 꼬박 1시간을 기다렸다. 백난지중대인난(百難之中待
人難)이라 했으니 그 긴 시간이 얼마나 따분했을까. 그런 사정을 미리 알고 동서울버스터미
널에서 06시 15분발 첫 버스를 탔더라면 용문에 07시 15분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산행의 포인트는 감미봉이다. 우리로서는 초등이다. 그 들머리는 연수천 Y자 합수지점
인 연안마을이다. 택시 타고 달려간다. 연안마을 연안교 너른 공터에는 춘천 열린산악회에서
대형버스 타고 먼저 왔다. 춘천이라 하니 그 고장의 걸출한 산꾼인 솔개 님과 쥐약 님이 생각
이 나서 아는 듯 반갑다. 그들은 상원사 쪽 일반 등산로를 따라 장군봉을 오를 것이다. 우리
는 감미봉 남쪽 맨 끝자락부터 오르기로 한다.
선운사 절집으로 들어간다. 덩그러니 대웅전이 산자락을 막았고 오른쪽에 양옥의 요사채가
있다. 그 사이의 절개지 조경석 담을 오른다. 절집 마당에 들어설 때부터 비구니인지 보살님
인지 우리를 보더니 합장 대신 삿대질을 하며 길이 없다고 험담을 퍼부었다. 그러면 더욱 오
기가 발동한다. 냅다 오른다. 아름드리 잣나무를 벌목한 잡목 숲속 가파른 오르막이다.
긴 한 피치를 굵은 땀 쏟으며 오르면 가파름이 잠깐 수그러들고 양지바른 산중턱에 영양 천
씨(潁陽 千氏) 가족묘지가 넓게 자리 잡았다. 영양(潁陽)이란 지명이 낯설어 찾아보았더니
중국의 노(魯)나라 영양(潁陽)이다. 덧붙이자면 ‘영(潁)’은 강 이름으로 중국 하남성 등봉현
(登封縣)에서 회수(淮水)로 흐르는 강을 말한다.
이 영(潁) 강에는 영수은사(潁水隱士)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요(堯)임금 때 영수에서 숨어
살았다는 허유(許由)를 이른다. 요임금이 자기에게 천하를 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러
워졌다 하여 영수에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마침 이때 소부(巢父)가 송아지에게 물을 먹이려
다가 허유가 귀를 씻는 것을 보고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 하여 소를 끌고 상류에 가서 먹
였다 한다.
우리나라 문경의 진남교반(鎭南橋畔)이 있는 영강(潁江)은 그 이름을 선계라는 중국의 영수
(潁水)에서 따왔다고 한다(매일신문, 2011년 8월 31일자).
영양 천씨 가족묘 왼쪽 사면에서 성묫길 겸한 잘난 길이 올라오고 있다. 사납던 길이 풀린다.
조금 더 오르면 301.0m봉이고 살짝 내린 안부는 묵은 임도가 지난다. 절개지 오른쪽 가장자
리로 소로가 간다. 쉬운 산은 없는 법. 비록 세인의 입에 그다지 오르내리지 않는 감미봉이지
만 그 오름세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고도 210m 남짓을 발끈하여 치솟는다.
가파른 등로에 수북하게 쌓인 햇낙엽은 엄청 미끄러워 몇 번이나 뒷걸음치다 엎어진다. 그럴
때마다 얼굴에 열꽃이 확확 돋는 느낌이다. 한편 왼쪽 산릉 너머로 수렴 속에 두둥실 떠오르
는 백운봉을 곁눈질을 하느라 숨 가쁜 줄 모르고 간다. 감미봉 정상에서 휴식하자는 무언의
약속으로 오르고 또 오른다. 거기는 헬기장이라니 조망이 훤히 트일 것.
그랬다. 너른 헬기장에 오르고 딴 세상이 펼쳐진다. 외강내유한 백운봉의 푸짐하고 포근한
품에 안긴 듯하다. 오른쪽으로는 용문산의 섬세한 암벽군이, 그 너머로는 첨봉인 용문봉이
백운봉과 겨눌 듯이 우뚝하고, 뒤로는 산첩첩 중에 추읍산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백운봉을
바라보며 이 고장 명주인 지평막걸리로 입산주를 나눈다.
창계 임영(滄溪 林泳, 1649~1696)은 350년 전에 저기를 올라 「용문산 백운봉에 올라(登
龍門山白雲峯)」를 읊었다. 그때는 참으로 험난한 암릉의 침봉이었을 텐데 그의 감흥은 의
외로 담담하다.
한 봉우리 우뚝이 가을 반공중에 솟았는데 一峯高揷半空秋
석양 질 무렵 상상봉을 올랐어라 落日登臨上上頭
눈에 가득 구름 산이 이다지도 광활하니 極目雲山如許闊
썩은 선비 외려 청구가 작다는 것을 알았네 腐儒還解小青丘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감미봉은 헬기장인 △518.4m봉에서 한 피치 더 오른 약간 도드
라진 555.9m봉이다. 여기는 키 큰 나무숲에 둘러싸여 있어 아무런 조망이 없다. 다시 가파르
고 미끄러운 오르막이다. 오늘 산행도 옷차림이 실패다. 한겨울용 두꺼운 바지라서 비둔하기
만 하다. 어려운 산행한다.
3. 백운봉과 그 북릉
4. 백운봉
5. 백운봉
6. 용문봉
7. 오른쪽에 떠오르는 산은 추읍산
8. 멀리 오른쪽은 고래산과 우두산
9. 추읍산
10. 산첩첩
11. 산첩첩
12. 오른쪽이 추읍산
▶ 장군봉(1,065m), 가섭봉(1,157.1m), 문례봉(폭산, 천사봉, 1,002.5m)
상원사에서 오는 길에 들어서고 춘천 열린산악회 회원들과 만난다. 그들도 비지땀을 줄줄 쏟
으며 올라오고 있다. 암릉지대가 나온다. 밧줄 난간을 잡고 오른다. 난간 밖 전망 좋은 절벽
위 바위에 다가간다. 양평의 마스코트인 추읍산이 비록 흐린 날이지만 그 귀태는 여전하다.
무수히 첩첩한 뭇 산들은 다만 추읍산의 들러리일 뿐이다. 여느 때 뚜렷하게 보이던 치악산
연릉은 캄캄 가렸고 고래산, 우두산, 양자산은 구름인 듯 흐릿하다.
난간 밧줄을 잡고 오르던 암릉은 절벽에 막히고 왼쪽으로 바윗길을 길게 돌아 오른다. 괜히
장군봉이 아니다. 그 위세에 눌려 걸음걸음이 힘겹다. 대자 갈지자 어지럽게 그리며 사면을
오르고 암벽 밑을 돌아 능선에 올라선다. 쉬느니 술추렴이다. 시원한 탁주로 칼칼한 목 추긴
다. 우리가 쉬면 춘천 열린산악회가 앞서가고 그들이 쉬면 우리가 앞서간다.
이제 완만한 오르막이다. 줄달음한다. 장군봉은 정상주 헌주 없이 그냥 지나친다. 사면 풀숲
에 눈 던져 덕순이(킬문이 버전이다) 분내도 없고 눈 들어 조망도 가렸으니 막 간다. ┳자 갈
림길. 용문산 서봉이라고 할 수 있는 1,149.9m봉 가시철조망까지 다가가 왼쪽 길로 약간 돌
아가서 거침없는 조망-봉재산, 설봉, 청계산, 소구니산, 마유산(유명산), 중미산, 어비산, 용
천봉-을 카메라에 담는다.
용문산 남쪽 사면을 도는 길 1km가 제법 한 몫 한다. 바윗길, 너덜을 지나고 비탈지고 통통
한 지능선 다섯 줄기를 넘는다. 그러고 나서 데크계단 223개 오르면 용문산 주봉인 가섭봉이
다. 우리는 중간 계단참에 점심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배낭을 벗어두고 가섭봉을 다니러간다.
사방이 훤히 열리는, 눈 닿는 모든 산들이 다투어 발아래서 읍하는 가섭봉 정상이다.
아까보다 날이 더 흐려졌다. 카메라 초점조차 원경을 잡지 못하고 헤맨다. 화악산과 응봉이
대해 저편 고도다. 앞으로 가야 할 문례봉과 중원산을 살펴보고 내린다. 바람 막은 절벽 등진
계단참이 점심자리로 명당이다. 점심이 조촐하다. 킬문 님과 연어 님은 달랑 김밥 한 줄씩이
다. 나와 더산 님은 집에 싸온 도시락이다. 나는 더하여 보온병에 더운물과 사발면도 준비
했다.
문례봉 가는 길. 얌전히 길 따른다. 가섭봉 정상에서 데크계단 내리면 평상 쉼터이고, 거기서
왼쪽 사면을 도는 것이 아니라 100여 미터 더 내려가면 왼쪽 사면으로 도는 잘난 길이 ‘등산
로’라는 방향표지 달고 있다. 응달진 곳은 눈길이라 조심스럽다. 지능선을 두 줄기 넘고도 가
파른 눈길 사면을 길게 내린다. 선답의 발자국이 더 미끄러워 새로이 눈밭 지친다.
능선에 올라 잔봉우리를 넘고 넘는다. 이러다 혹시 문례재로 내리는 한강기맥 길을 지나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간다. 야트막한 안부인 ┫자 갈림길. 한강기맥 이정표가 안내한
다. 다시 눈길 너른 사면을 내린다. 봄날이면 이곳은 얼레지 화원이다. 나는 아직 여기보다
더 장관인 얼레지 화원을 보지 못했다. 한 피치 길게 내린 안부는 문례재다.
이 다음 963.5m봉 오르는 길이 꽤 숨차다. 이전에 오르고 내린 기억으로는 왼쪽의 생사면을
한 차례 크게 돌아들면 문례봉 직전의 안부려니 했는데 대단히 잘못된 기억이다. 잔봉우리를
5개나 올라야 한다. ┫자 갈림길 안부. 문례봉을 잔뜩 높여 놓고 오른다. 덕순이 몰이하며 오
른다. 그 우아한 몸짓을 쫓아 낙엽 한 장 한 장 들어내고 흙더미를 헤치면 진한 분내가 코를
찌른다. 덕순이를 배낭 주머니에 꼭꼭 숨겼어도 연어 님은 대번에 알아봤다. 이래서 문례봉
이 올 때마다 명산이다.
13. 추읍산
14. 앞은 상원사 절집
15. 앞 능선은 용문사 남릉
16. 산첩첩
17. 추읍산
18. 멀리 가운데가 용문산 가섭봉
19. 멀리 가운데는 도일봉
20. 멀리 오른쪽이 고래산과 우두산
21. 청계산, 소구니산, 마유산, 중미산, 어비산
22. 멀리 흐릿한 산은 문안산, 그 앞은 청계산
23. 장군봉과 그 너머 백운봉
24. 사나사계곡
25. 용문산 정상에서
▶ 조개골
문례봉 내려 중원산 가는 길.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깊고 가파르기도 하려니와 낙엽이 쌓
여 여간 고역이 아니다. 눈길 가기보다 더 힘들다. 눈길이 이렇게 깊으면 제동이 잘 되어 지
치기가 신나기 마련인데 낙엽에서는 그저 쭉쭉 미끄러지고 앞사람이 러셀하여도 바로 묻히
고 만다. 불과 십 수 미터 오르내림일지라도 끝없이 쌓인 낙엽을 보면 아득하다.
낙엽더미 지치다 지친다. 아무래도 하산시간이 빠듯하여 중원산은 놓아주기로 한다. 중원산
능선의 816.5m봉(지도에 따라서는 여기를 중원산이라고도 한다)을 내린 ┣자 갈림길 안부
에서 오른쪽 용계골로 내리기로 한다. 오늘따라 △735.3m봉이 준봉이다. 뚝 떨어진 안부. 오
른쪽 사면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내려다보니 너무 가파르다.
어려울수록 등로로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다독이며 707.0m봉을 오른다. 그 남릉이 지도에서
도 실경에서도 완만하다. 우선 마음이 조급하여 등로 버리고 탈출을 서두른다. 오지를 만들
어 간다. 눈에는 완만하던 707.0m봉 지능선 남릉이 발에는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이다. 낙엽
지치는 규칙적인 소리가 산골짜기에 가득 찬다. 엇박자 소리가 나면 미끄러져 넘어져서다.
낙엽송 숲에 내려서고 이내 골짜기다. 너덜이 이어진다. 재잘거리며 흐르는 계류를 징검다리
로 건너고 건너며 좌우사면을 번갈아 더듬는다. 어쩌다 보이는 비닐봉지 쓰레기조차 인적일
것이니 반갑다. 군부대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판이 잇달아 보이고 묵은 임도 낙엽 섞인 자
갈길을 간다. 눈길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 눈으로 포장된 눈길이라면 줄달음을 할 텐데 버벅
대는 걸음이다.
17시가 넘자 산골짜기는 어스름하다. 유격장에 들어서고야 길이 풀린다. 암릉인 용조봉 남릉
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긴다. 서치라이트 같은 불 밝힌 결전유격장 연병장을 지나고 철조망
정문에 다가간다. 문은 잠겼고 쪽문은 없다. 철조망을 넘기에는 너무 높다. 철조망과 땅바닥
에 약간의 틈이 있다. 실전의 유격 탈출한다. 바로 누워서 등밀이로 통과한다.
이로써 용문산 감미봉의 산행을 마쳤지만 하산 길이 하도 지루했기에 문득 의문이 생긴다.
707.0m봉에서 탈출이 잘한 것일까? 일반등로를 따라 용계골로 내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후자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26. 앞이 용문봉, 그 오른쪽 뒤는 중원산, 그 왼쪽 뒤는 도일봉
27. 화악산과 응봉이 고도다
28. 용문봉
29. 추읍산
30. 도일봉
31. 앞은 봉미산, 멀리는 화악산과 응봉
32. 용조봉 남쪽 연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