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눅2:10~14절, 마2:11절
소주제4: 성탄의 감동과 축복!!
빌2장에서 하나님께서 감동과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1. 성탄의 축복이 무엇인가?
1)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죄 많은 인간도 말구유에 누이지 않습니다. 가장 천하고 더럽고 값없고 알아주지 않는 이 세상에 가장 낮은 곳으로 아기 예수가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오셔서 낮은 곳에서 역사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높은 곳에나 화려한 곳에 오시지 않습니다.
오늘날 작은 교회 얼마 되지 않는 노인들과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있는 이런 곳에 은혜가 참 큽니다. 사람들은 높은 곳을 좋아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많은 것을 좋아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병원도 얼마나 고급스러운 곳이 많은지요..
온몸 마시지하고 몇 백 만원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요..
사람은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크고 멋있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저는 이 돈이면 아프리카나 아이들 양식 값을 좀 주고 싶습니다.
작년에는 우물 값과 양식 값을 보냈는데 올해는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밥값이 100만원입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것도 아니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곳입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태어 난지도 모르는 아주 낮은 곳, 추한 곳, 더러운 곳, 가난한 곳에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님입니다.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요..
모든 사람이 높은 곳에 화려한 곳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입은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과 사상은 완전 세속적입니다.
입은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항상 자기가 우선주의입니다.
자기 제일주입니다. 예수님이 제일주의가 아닙니다.
언제 예수님을 앞장세웠습니까..
뭐든지 내가 먼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내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여러분 출세하려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지 마세요..
그렇게 올라가서 조금 있으면 죽습니다.
병들어 죽습니다.
낮은 데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고 어떡해하든 올라가려고 합니다.
떨어져 죽습니다.
낮은 데로 내려가는 것을 못 봅니다.
우리 예영수 박사님은 우리교회에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박사님을 높은 곳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고 낮은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닮도록 예수님을 닮도록 낮은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여기에 오셔서 겸손하게 아멘아멘 하십니다.
2) 종으로 오셨습니다.
원래는 예수님은 하나님 자체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동등 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모든 권세와 고난과 위험을 다 내려놓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종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우러러보고 높게 생각하고 인품 있게 보는 분들이 손을 거두고 누구의 발을 닦아준다든지 노인들을 닦아준다든지 화장실을 닦는다든지 이런 모습을 보면 감동됩니다.
예수병원의 과장님이 전도를 잘했습니다.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덕을 세우고 본이 되고 그분의 인품이 예수님의 마음을 풍겼습니다.
아침 일찍 교회에 오면 청소하고 맨손으로 화장실 청소하고 오시는 분들마다 인사하고 모든 분들이 장로님만 보면 고개를 안 숙이는 사람이 없답니다.
소문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권세가 없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위엄이 없습니다.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 짜장면 사드리는 사람으로 유명하고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다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사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버렸다는 겁니다.
권세를 가지고 위엄을 가지고 권위를 세울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안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사장님, 사모님이라고 하니까 교회 오면 우쭐하지요.. 알아달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예수님이 웃으십니다.
원숭이 됩니다. 떨어집니다.
우리 예수님은 다 사용할 수 있는 권세가 있고 권력이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종처럼 일하러 오셨습니다.
종입니다.
성탄설교를 위해서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전하고는 좀 다르게 설교를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나는 종이니까 너희들이 나를 부릴 수가 있다.. 난 너희들을 섬기기 위해서 왔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교회에서 왜 여러분이 직분을 받으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합니까?
섬김을 받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웃으십니다.
그러다가 원숭이 된다..
3)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교회 일을 못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봉사하라고 하면 무시합니다.
큰 교회에서 봉사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하나님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연말 되니까 십자가를 내려놓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
입으로는 주여주여 하면서도 그의 삶은 십자가의원수로 행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3가지 목적을 생각하니까 너무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심수봉 백 만송이 간증)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민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세월은 흘러 제가 벌써 목회40년입니다.
그때 들려온 노래가 백 만송이 장미였습니다.
사랑을 할 때마다 장미꽃이 한 송이가 피는 겁니다.
백 만송이가 피어야 천국 가는 겁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해야 됩니다. 미워하는 사랑을 하면 꽃이 피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데 예수를 따라서 예수님을 배우지 않으면 믿음이 바르게 자라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을 멀리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말은 예수님이 제일이라고 하지만 행동은 자기중심입니다.
예수님이 제일이 안 됩니다.
내 마음에 위엄을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 같지는 보이지만 꽃은 피지 않습니다.
나중에 그리웠던님이 오셔서 같이 사랑했더니 백 만송이가 펴서 같이 별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가사내용입니다.
어쩌면 가사가 예수님에 대해서인지요..
그냥 예수 믿지 마세요..
그냥 여기 앉아 있지 마세요.. 헌금도 그냥 드리지 마세요.
천원을 드려도 5천원을 드려도 의미가 있는 왜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지 알고 드리세요..
예수님은 거지가 아닙니다.
말구유에 태어났지만 거지가 아닙니다.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축복이 무엇인가?
1) 예수님 때문에 소통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하고 사람하고 소통.. 제일 답답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얼굴은 마주보고 밥도 먹고 차는 마시지만 소통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대화가 안 됩니다. 마음이 막히고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소통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답답하고 외로워하고 고독해하는가..
어떤 분이 돈도 많고 집도 크고 화려하고 잘 삽니다.
그런데 부인이 따로 놀고 남편도 따로 놉니다.
부부가 소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외로워하지 말고 힘들어 하지 말고 고독해 하지 말고 나만 왜 그럴까..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주님은 소통을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와 대화를 할 때 하나도 막히지 않고 하나도 잘못되는 것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우리와 소통되는 대화가 되는 예수님입니다.
사1장에 보면 오라 나와 대화하자..
네가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나하고 대화를 해보자. 그러면 눈보다 더 깨끗하게 될 것이다. 죄를 지었다고 힘들어 하지 마세요..
망했다고 안됐다고 남들이 손가락질 하든 말든 손가락질 할 때는 소통이 안 되니까 손가락질 합니다.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해도 소통이 되면 손가락질 할 일이 없습니다.
왜 고개를 숙이고 예배를 드립니까.. 목사와 소통이 안 됩니다.
둘 중에 한명은 소통하기가 싫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소통의 명수입니다. 오라 우리가 대화를 좀 해보자.. 너희 죄가 많다고 할지라도 깨끗하게 해줄 수 있다..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신분입니다. 뭔들 소통이 안 되겠습니까..
힘들어 하지 마세요.. 여러분 욕심 때문에 힘들어하고 여러분 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여러분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잘못된 사람을 만나고 잘못된 친구를 만나고 주님과 소통하세요.. 대화하세요..
2) 공감하러 오셨습니다.
인생들과 공감하기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어떤 것도 감수하고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십자가를 지시면서 우리와 공감을 하셨습니다.
고생하시고 매도 맞으시고 피도 흘리시고 모욕당하시고 치욕당하시고 제자까지 자기를 팔아먹고 온갖 일들을 다 당하셨습니다.
땅에 오셔서 우리가 당하지 못한 것을 당하셨습니다.
이 땅에 어려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공감이 안 됩니다.
공감이 안 되는 사람의 스타일이 화를 잘 내고 잘 싸우고 남을 잘 비웃고 비난하고 손가락질합니다.
부부간에도 공감이 안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공감이 안 됩니다.
자식의 마음을 모릅니다.
3.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히4: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대 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약한 것을 주님은 다 아십니다. 인생의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모질지 못한 것도 알고 계십니다. 오죽했으면 제자보고 마음이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도다..
여러분 마음 이해합니다.
새벽에 나오고 싶은데 육신이 약하여 잠이 드는 것을 어떡합니까,,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몸이 약해서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소통하시고 우리와 공감대를 이루시는 줄을 모르고 내 사정과 내 연약함을 다 아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목사님만 찾습니다..
소통이 안 되고 공감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너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할 것이 없고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예수님도 시험을 받습니다. 여러분만 시험을 받습니까?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연약한 우리도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기 위하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다..
우리와 소통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공감해 주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엎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고 똑같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당했습니다.
마지막까지 40대의 매를 맞고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 되었으니까 담대하게 예수님께 나오라는 겁니다.
담대히 나와서 예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라.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가 나타나셔서 우리를 도우시면 전에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예수님을 우리만 알면 어떡합니까?
가족들도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