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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15-주 오심을 기다리는 삶
많은 사람들이 내일도 오늘처럼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암진단을 받거나, 아니면 다른 병으로 사망 선고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사업을 하다가 파산을 당하거나, 잘 사는 것같이 보였는데 갑작스럽게 이혼을 하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나 깜짝 놀라는 일이 여기저기서 생깁니다. 또 가족중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일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많은 보장성 보험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드는 보험에 가입해서 어떤 사람은 보험만 해도 몇 가지를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보험료로 많은 액수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영원한 보장이신 하나님께 대하여는 단돈 천원을 드리기도 아까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는 보장성 보험에 드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그 보장성으로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아내나 남편이 그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누구를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야 안전할까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이 세상이 보장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보장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네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세상의 보장은 절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 보고에 저축한 사람들은 안전합니다. 반드시 천국에서 훨씬 좋은 것으로 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죄고로 안전한 보험과 같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드신 밭에 감추인 보화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주변의 강대국의 한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사사인 기드온도 미디안의 침략이 두려워서 미디안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을 포도주 틀에서 곡식을 털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주변의 강대국의 침략으로 인해 자기가 가진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안전한 곳에 숨겨야만 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밭에다 자기 보물을 감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사자는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의 자녀들에게 밭에 보물을 감추었다고 유언도 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녀들은 사는 것이 힘들어지니까 밭을 팔아버렸고, 그 밭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에게 팔렸다가 저 사람에게 팔렸다가 하면서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밭의 주인이 된 사람이 한 사람의 농부에게 밭을 갈아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인의 부탁을 받은 이 성실한 농부는 품삯을 받고 성실하게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감춰두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에 값나가는 것을 모두 정리해서 팔아서 그 밭을 샀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 농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밭의 보물이듯이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천국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은행, 보험, 계모임, 주식 등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자기들의 재산을 저축하거나 투자하면서 안정을 보장받고자 합니다. 하지만 경제의 재난이 나거나 국가적인 어려움이 오거나 아니면 세계적인 불황의 문제가 터지면 마치 거대한 파도 앞에 안전하다고 믿고 지었던 집이 산산히 부숴져 떠내려가는 것처럼 믿었던 그 믿음이 완전히 박살이 나는 거대한 충격을 받게 될 때가 옵니다. 얼마 전 리비아의 댐 하나가 무너져 한 도시의 사분의 일이 물에 휩쓸려가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내고, 또 집과 건물들이 다 초토화가 되었지 않았습니까?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그때 재앙은 도둑처럼 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켜주시지 않는한 여러분들의 완전한 보장은 이 나라가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비단 이것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완전한 보장은 없습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완전한 보장은 오직 예수 그리스 안으로 피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자신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며 손짓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종들을 보내시면서 빨리 영원한 만세 반석으로 들어와 구원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 구원이 긴박한 이유는 멀지 않아 그리스도 자신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이며 그 재림의 날은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과 고통의 날이며, 죄에 대한 보복의 날이기 때문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하여 정확한 공의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찬송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죄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오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여러분들이 몇 가지 중요한 가르침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살아계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그를 찾아가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못할 수가 있습니까? 재림을 믿지 못하는 교인은 거짓된 신앙인입니다. 그는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는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빨리 자기가 예수님을 믿지 못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이 마치 안오실 것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불신자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르다면 매주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간다는 점이 다를 것입니다. 교회는 가는데 교회 가는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고, 세상 것에 욕심내고, 자기를 위해 모으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길줄도 모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전혀 관심도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병이 든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에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뜨뜨미지근 했던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너희는 안약을 발라서 보는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벌거벗었으니 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십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외에는 전혀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영적으로 병이든 교회의 모습입니다. 자기들이 심각한 위기 상태에 빠져 있는데도 그 심각성을 모르는 교회입니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을 보면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은 반드시 오듯이 이 세상의 멸망도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죄악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들이 누구입니까? 주의 재림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지금은 오실 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그들은 아직도 밤에 속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낮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기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4-8절을 보면 주님의 재림을 가디리는 깨어있는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자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주님이 명하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있으라-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것은 내일 아침에도 오늘처럼 반드시 해가 뜬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시 살아나셨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재림도 사람들이 믿건 믿지 않건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필연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의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이 따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그에게 복음이 전해지기 훨씬 전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가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여러분들을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죄를 속하는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여러분들은 변화된 몸으로 공중에 들려올라가 주님을 맞이하게 되고, 이 땅에 남아있는 불신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가가 그만큼 큰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은 여러분들에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삶은 날마다여야 합니다. 날마다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도둑의 침입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4장 42-44절을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은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도둑이 어느 시간에 올 것인지를 미리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시는 날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기 전에 미리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을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하면서 경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깨어 있으라고 하니까 육신의 잠을 자지 말라고 해석해서 한 밤중에 잠을 안자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언뜻보면 이런 사람들이 매우 신령해 보이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육신의 잠을 자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영혼의 잠을 자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혼의 잠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하지도 못하고, 영적인 분별력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모릅니다. 이들은 세상 일에는 깨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가 투자한 세상 일에만 정성을 쏟을 뿐입니다. 그래서 세상일이 잘되면 좋아하고 안되면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할지언정 진정한 감사는 없습니다.
영적인 잠을 자는 사람이여 깨어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당황하여 숨을 곳을 찾게 될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했던 자신으로 인해 얼굴이 뜨겁게 될 것입니다. 그때 통곡하고 애통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고 진리 안에 있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경건한 삶 가운데 주님을 기다립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리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믿어져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신 다는 사실을 주변에 있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전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이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인들이 지옥에 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 안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주님의 오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깨어있어야 하며 근신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실제적인 관계를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동행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는 것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긴장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늘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자기에 대하여 자신있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살피지 않습니다. 성경은 섰다고 생각하거든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신앙이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만큼 갖추어져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필히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그 사람이 자신있는 점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을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주인으로서 여러분들을 항상 돕고 계십니다. 그래서 승리했을 때에도, 순간적으로 넘어졌을 때에도 도우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오심을 인식하면서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항상 주님이 가까운 시일내에 오실 것처럼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하십니다. 사람이 느슨해지면 그때는 넘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롤러 스케이트 3,000미터의 경기에서 한국선수 하나가 결승점에서 우승을 했다고 생각해서 일어서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바람에 뒤따르던 대만선수가 일등을 0.01초를 재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승점을 넘어가서 해도 되는 세리머니를 결승전 전부터 하다가 뒤따라가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대만 선수에게 금메달을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금메달을 딴 대만선수는 자신이 이기고도 이긴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판독해본 심판들은 그 0.01초차로 대만선수가 이겼음을 알렸습니다. 그제서야 대만선수는 자신이 우승한 것을 알았고 반대로 한국선수는 자신이 2위로 들어가 은메달을 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말합니다.“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운동선수로 말하면 가장 앞장서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 그도 자기가 달려가고 있는 앞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달려온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마지막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뒤떨어진 자들이 뒤에서 놀 것 다놀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뛰다가 쉬다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지라고 하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최선을 다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그 길 끝에 다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책망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칭찬하고 상을 주시기 위해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상주시는 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그리고 그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기쁘게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님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기에 밤에 도둑같이 오시지 않고 밝은 대낮에 오시는 것처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하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둑은 대부분 밤에 돌아다닙니다. 자기 행동을 들키지 않고 몰래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낮에 속한 자답게 낮에 활동하면 도둑이 여러분들의 영혼에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근신하고 깨어있어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발목 잡히지 마시고 주님이 오실 날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면서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겨주신 복음을 전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주님께서 오셔서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시고 여러분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한 찬송을 드리면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 역시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다가 기쁨으로 맞으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