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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디오와 컴퓨터 원문보기 글쓴이: 管韻
조선왕릉 세계문화유산등재 10주년...조선왕릉이야기
-조선왕릉 2009년 6월 27일 심의 15분 만에 통과 ... 세계가 인정한 신의 정원
-태조 승하 611주기 기신제 ... 황사손 이원 초헌관 친향례로 2시간 진행
-작년 7월에 멈춘 <조선왕릉이야기> 다시 연재... 새로운 학설과 자료 수집
[조선왕릉=경기인터넷뉴스] 2009년 6월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조선왕릉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승인은 단 15분 파격적인 시간이다. 보통 심의가 2~3시간 걸리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심의는 27일이었지만 공표는 30일이다.
조선왕릉 40기의 가치를 세계인들이 알아봤다는 반증이다.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조선왕릉 18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역사행사가 지난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이어졌다.
▲ 세계문화유산등재 10주년기념 태조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제관과 배릉관이 건원릉을 향해 가는 행렬(예능소) © 한철수
2009년 6월 27일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 601주기가 되던 해이다. 우리는 회갑(回甲)을 중시 여긴다. 2009년은 태조가 승하(昇遐. 왕의 죽음을 일컬음) 후 60년이 10번 지났고 새로운 갑자가 시작되는 해이다. 즉 태조가 승하한지 600년이 지나고 새로운 갑자를 시작하는 첫해였기에 더 아이러니하다.
조선은 1392년 7월 16일(음) 개국해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문을 닫을 때까지 518년을 이어왔다. 하지만 1966년 2월 13일 순종효황제의 계후인 순정효황후 윤씨가 남양주시 금곡동 유릉에 묻혔으니 14세기부터 20세기를 아우르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황사손이 건원릉으로 가기 위해 가마에 오르고 있다. © 오병학기자
-문화재청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재 10주년을 말하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태조의 건원릉에서는 태조(太祖) 611주기 기신친향례(忌辰親享禮)가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종친과 일반인 등 제위자[諸位者. 이전 참반원(參班員)] 2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27일 정오에 거행됐다.
이날 제례에 앞서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식이 간단히 있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태섭 이사장과 문화재청 궁눙유적본부 나명하 본부장(직무대리)의 봉행사와 격려사가 있었다.
이태섭 이사장은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오를 수 있었던 왕릉의 제향의식이 6백년 동안 이어져온 것과 왕릉 조형의 예술적 가치와 풍수이론에 맞추어 고유한 경관과 현대사회에 공감되는 내용과 조선왕릉과 함께하는 역사적 기록이 조화를 이루기에 가능했다.”고 의미를 전했다.
나명하 본부장(직무대리)는 “건원릉은 조선왕릉의 뿌리이다. 고려왕릉을 계승했지만 조선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조선되었다. 조선왕릉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사와 전통,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네스코는 조선왕릉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그리고 완전성을 인정하여 10년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했다.
-친향은 왕이...섭향은 세자이하 신하들이 봉무하다
왕릉 기신제는 역대 왕과 왕비의 승하(昇遐. 왕과 왕비의 죽음)한 날에 지내는 제사를 말하며, 세종이 정한 오례의(五禮儀=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 중 길례(吉禮)에 해당되며 산릉제례(山陵祭禮)라고도 한다.
조선왕릉 제사는 왕이 직접 참여하는 친향례(親享禮)와 세자나 신하를 보내 대신 지내는 섭향례(攝享禮)로 구분한다.
지금은 왕조시대는 아니지만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잇는 봉사손(奉祀孫)인 황사손(皇嗣孫) 참여하면 친향례가 된다. 이번 건원릉 기신제는 <고종-영친왕(의민태자)-이구(제1대 황사손)>를 이은 제2대 이원(李源) 황사손이 초헌관을 맡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산릉제례의 역사를 살피고, 이날 지낸 기신친향례의 제의절차를 소개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황사손 이원과 좌우통례 © 한철수
-임진왜란 전에는 경복궁 문소전...임진왜란 후 산릉에서 지내다
조선왕조에서는 역대 왕들의 기신제는 3년상(실제로는 26개월)까지는 산릉에서 치른 후 27개월째 날을 잡아 상복(喪服)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담제(禫祭)를 지낸 후, 기신제는 경복궁 소재 문소전(文昭殿)에서 지냈으나 임진왜란에 문소전이 불에 타, 산릉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문소전은 원래 인소전(仁昭殿)으로 태조의 원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신주(神主)를 모셨던 별전이었다가 태조가 태종8년(1408) 5월 24일 승하하자 같은 해 8월 26일 문소전으로 바꾸고 혼전(魂殿)으로 사용했다.
세종 15년(1433) 5월 3일 문소전을 영춘문(迎春門) 안에 짓고 정기적으로 제향을 봉행했다. 조선왕조는 4대를 봉사(奉祀)하는 것으로 원칙으로 하고, 왼쪽에 2소(昭. 2,4대), 오른쪽에 2목(穆. 1,3대), 가운데 태묘(太廟. 태조) 등 5묘를 기준으로 했으며, 생전에 섬기던 그대로 매일 두 번의 상식(上食)과 한 번의 다례(茶禮)를,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제(朔望祭)를 지냈다.
인조 8년(1630) 1월5일부터는 산릉(능침)에서 5대 명절에 지내는 오향대제(五享大祭)와 4계절과 동지 지난 후 세 번째 오는 말날[오일(午日)]에 지내는 납제(臘祭)를 부활했으나, 두 차례 호란으로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인조 14년(1636) 6월 18일부터 한식(寒食) 날에 한 번 지내는 것으로 축소된다. 효종 원년(1650) 태조의 기신일인 5월 24일에 그전대로 회복되는 등 나라의 살림살이에 따라 산릉제례는 변화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향안청에 둔 향과 축 © 한철수
-일제 통감부의 <향사이정(享祀釐整)>으로 국가제례 축소하고 통폐합하다
대한제국 순종효황제 2년(1908. 융희 2년)에 <향사이정(享祀釐正)>이라 하여 산릉에서 절사(節祀. 계절 또는 명절) 1회, 기신제 1회로 제도를 축소·개정했다. 지금은 절사는 생략하고 기신제만 지낸다.
여기서 <향사이정>이란 1908년 일제 통감부 칙령 <향사이정(享祀釐正)에 관한 건>에 따라 거의 모든 국가제례가 축소·통폐합됐다. 이정(釐整)은 반정(反正)과 대비되는 말로 기존에 내려오던 문헌과 제도를 일정한 기준에서 정리하여 개혁하는 것이지만 이때는 왜압(倭壓)에 의해 마지못해 개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요한 국가의례였던 원구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제·관왕묘제·둑제 등과 왕실문화 중 궁중의 관습·의식 등이 모두 사라졌다. 이 중 일부는 오늘날 복원·재현되어 전승되고 있으나 과거의 모습을 완벽하게 되살리지는 못한 상황이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정자각 오른편에서 본 제수진설 © 한철수
-세계유산등재 후 산릉제례 꾸준히 제도 정비하다
이때 살아남은 왕릉제례는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됐으나, 해방 후 혼란기와 6,25전쟁 등 10여 년 간 잠시 멈출수 밖에 없었다.
1956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결성된 후 제향을 복원했고, 이듬해인 1957년 음력 5월 24일 태조의 건원릉에서 해방 후 첫 기신제를 올린 것을 계기로 각 능 봉향회를 구성했으며, 태조의 음력 승하 일을 음력 5월 24일에서 양력 6월 27일로 바꾸어 지낸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황사손의 예능소 © 오병학
조선왕릉의 제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가 없는 전통을 잇고 있어,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2009년부터 <왕릉제향 예제복원>을 시작하여 축식(祝式)과 제수진설을 정비했다. 2010년에는 친향례 때에 제관이 오르는 제신목계(諸臣木階)와 재실에서의 향을 전하는 의식을 향로에서의 전향례로, 2012년에는 홀기와 제관의 명칭과 위치, 진선(進膳)의식 등을 대한제국의 법전인 <대한예전(大韓禮典)> 예식으로 복원해 제향을 지낸다. 또한 참반원(參班員)을 제위자(諸位者)로 바꾸어 부른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배릉관들의 국궁사배 © 오병학
-2019년 태조 건원릉 611주기 기신친향례를 따라가다
611주기 건원릉 친향례는 제집사(제관)가 황사손보다 10분 먼저 건원릉으로 도착해 전향례와 손을 씻는 관세를 마치고 봉무(奉務)할 자리로 이동한다.
이어 황사손은 200여명으로 구성 된 배릉(拜陵)행렬과 함께 건원릉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친향례를 거행한다. 황사손을 중심으로 한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를 재구성해본다.
황사손이 홍살문 왼편에 마련된 판위에 올라 능을 바라보는 망릉례를 마치면, 어로를 따라 걷고, 어계 7보쯤 뒤에 마련된 소차(小次. 천막)로 들어가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를 입소차(入小次)라 한다. 황사손을 이끄는 이를 찬례(贊禮)라 한다. 황사손은 찬례의 인도에 따라 제향의 모든 예를 진행한다. 한편 임금의 안위를 위해 소차에는 근위병격인 좌·우장례 세운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황사손의 망릉례 © 오병학
황사손이 입소차를 마치면, 전사관과 능사가 수라간에 보관했던 면, 잡탕, 전증을 받들어 서계로 오르면 축사가 받아 신문을 통해 제상에 진설한다.
진설을 마치면 황사손은 찬례와 근시 2명과 함께 관세위에서 손을 씻고, 정자각 동계(어계)로 올라 정자각 정면에 마련된 판위(배위)인 돗자리에서 네 번 절하는 국궁사배(鞠躬四拜)를 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국수와 잡탕, 전증을 정자각으로 옮기는 전사관과 능사 의 진선 © 오병학
이는 태조 임금을 맞이하는 참신(參神) 또는 강신(降神)이라 한다. 이어 아헌관과 종헌관과 제례에 참여한 제위자들도 국궁사배(鞠躬四拜)를 한다.
참신을 마친 황사손은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초헌례를 거행한다. 술단지(산뢰)와 술(청주)가 있는 준소로 가 술을 따르는 것을 살핀다. 산뢰(山壘)라는 술 단지의 뚜껑인 멱(冪)을 열고, 용작(龍勺)이라는 국자로 술을 떠 작(爵)이라는 술잔에 세 번에 따른 후, 동쪽 문으로 들어가 태조의 신위(神位) 정면에서 무릎을 꿇고, 향합에서 향을 꺼내 향로에 세 번 나누어 넣는 삼상향(三上香)을 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종묘에 있는 태조의 혼을 부르기 위해 세번 향을 향로에 넣는 초헌관 황사손의 삼상향 © 한철수
여기서 향을 피우는 것은 종묘에 있는 태조의 혼이 건원릉으로 찾아오게 하는 의식이다. 모든 제례는 혼과 체백 즉 혼백(魂魄)을 모셔야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삼상향을 마치면 준소에 따랐던 잔을 올리는 초헌(初獻)을 하고, 대축이 제상으로 가 면과 탕의 뚜껑을 열고, 시저(匙箸. 젓가락)을 시저그릇 위에 올린다. 이때 황사손을 비롯한 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는다. 축을 읽는 대축이 동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축을 낭독한다. 이를 독축(讀祝)이라 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아헌관 한우권(안변한씨종종친회 총무이사)의 헌작 © 한철수
독축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고, 황사손은 찬례의 인도에 따라 동계로 내려와 소차로 향한다. 친향례의 첫 번째 의식인 초헌례를 마친다.
이어 제례의식을 담당하는 축사(祝史)와 재랑(齋郎) 4인이 정자각에 올라 자신의 위치에 서고, 찬인(贊人. 황사손을 제외한 헌관을 인도함)이 아헌관에게 공수한 손을 위로 올렸다가 눈높이에서 인사를 하고, 제신목계를 올라 준소에서 따르고, 서쪽 문을 통해 들어간다. 태조의 신위에 무릎을 꿇고 잔을 올린다. 이를 아헌례라 한다.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관도 아헌관과 같은 방식으로 잔을 올린다.
이렇게 세 번 잔을 올리는 의식이 끝나면 황사손은 다시 정자각 판위(배위)에 올라 능침을 향해 네 번 절을 하고 태조의 신위를 보내는 사신례(謝神禮)를 한다. 황사손이 사신을 마치면 모든 제위자도 국궁사배를 하고, 황사손은 동계를 내려와 정자각 정면을 걸어 망료상(위)으로 가 능침을 바라보고 선다.
대축은 신문(神門. 정문)을 통해 축을 들고 나와 서계로 내려와 황사손을 마주보고 선다. 황사손이 태워도 좋다고 눈짓을 하면 찬자는 소전그릇(소전쟁반)에 젓가락(장화저)을 올리고, 대축은 축판을 들고 능침 왼쪽에 마련된 예감으로 가 축문을 태워 날린다. 이를 망료례(望燎禮)라 한다.
망료례가 끝나면 찬례가 황사손에게 모든 의식이 끝났음을 알린다. 이를 예필(禮畢)이라 한다. 황사손은 소차로 가고, 정자각에 있던 제집사들이 절할 자리로 가 네 번 절을 하고, 제상을 물리는 철찬과 궁으로 돌아가는 환궁을 하므로 2시간 남짓 친향례가 끝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재위자의 국궁사배 © 오병학
-611주기 친향례 23명의 제관이 참여하다
친향과 섭향은 제관의 숫자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섭향은 16명이지만 친향은23명이다.
산릉제례에서 삼헌관의 역할은 크다. 건원릉 제향은 현재 환구대제·사직대제·종묘대제·고종태황제의 홍릉친향례와 더불어 5대 제향 중 하나이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제향을 마치고 제관들의 단체 사진 © 한철수
태조 건원릉과 고종 홍릉의 초헌관은 황사손이 아헌관 부원군 즉 태조의 원비인 안변 한씨와 고종의 비 여흥 민씨의 후손 중에서 소임을, 종헌관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임원 중에서 맡는다.
-왕들은 어떻게 건원릉에 왔을까...태종의 거둥을 중심으로
태조가 1408년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승하하고, 9월 9일 건원릉에 입궁을 했다. 그 후 태종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산릉으로 거둥을 했는데 이를 배릉(拜陵)이라 한다.
배릉 행렬의 코스는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나와 동대문을 나와 보제원에 들어서 동북쪽 길로 들어서서 개운산과 천장산 사이의 정릉천 길을 따라 중랑포에 이르면 돌다리(석계, 돌곶이)를 건너 송계원에 도착한다.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배릉관과 황사손 © 한철수
▲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10주년 기념 태조 건원릉 611주기 친향례...태종의 건원릉 배릉예상도 © 경기인터넷뉴스DB
송계원 들판에서 쉬는데 이를 주정소라 한다. 식사나 길게 쉬면 대주정이라 하고 잠시 쉬면 소주정이라 했다. 송계원에서 휴식을 마친 태종 일행은 구릉산(검암산)을 아랫자락을 따라 건원릉으로 들어갔다. 중랑구 망우리에는 양원이라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태종이 건원릉으로 가다가 목을 축인 것으로 전해진다.
환궁 할 때는 대부분 오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간혹 망우고개를 넘어 송계원을 거쳐 궁으로 돌아갔다. 다시 살펴보면, <창덕궁(경복궁)-동대문-보제원-정릉천길-중랑포-송계원(주정소)-구릉산(검암산)-건원릉>코스를 밟은 것이다.
글을 마치며 본고는 2016년 5월 28일 <[문화기획] 구리 동구릉, 태조 608주기 건원릉 친향례는 이렇게...>의 기사를 새롭게 구성해서 작성했음을 밝힌다.
또한 작년에 전반기에 연재하던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앞둔...조선왕릉이야기>는 새로운 학설과 자료수집이 미흡해 2018년 7월까지 5회에 걸쳐 싣고 멈췄다. 2019년 6월 30일 등재 10주년을 맞아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조선왕릉이야기> 라는 제하로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계속>
[참조문헌: 아름다운 우리문화재-3 고려왕릉(장경희. 예맥. 2008.12), 조선왕릉학술조사보고서 조선왕릉-1(고려말+조선초.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5), 조선왕릉-왕실의 영혼을 담다(국립고궁박물관. 2016.6), 조선왕릉 석물조각사(국립문화재연구소. 2016.12), 세계유산 조선 왕릉과 동아시아 황릉(국립문화재연구소. 2016.6) 개성박물관(인터넷 두두피아), 고려조선왕릉지(목을수. 문성당. 1991.9), 기내능원지(문영빈 목을수. 경기도. 1991.10), 건원릉 친향례(전주이씨대동종약원. 2019), 조선왕릉제향봉행(전주이씨대동종약원. 2019) 외 다수
[참조논문] 왕릉건축을 통해 본 박자청의 김사행 건축 계승(김버들 조정식. 건축역사연구 27권 2호. 2018. 4), 조선왕릉 석실 및 능상구조에 관한 연구(김상협 박사논문. 명지대. 2007. 12),강화 고려왕릉의 피장자 검토(이상준. 중앙고고연구 제23호. 2017)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