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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와의 대화 (2)
요한복음 3:9-21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관원인 바리새파 사람 니고데모에게 올바른 구원관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율법의 행위로 공로를 쌓아 구원 얻는 줄 알았던 니고데모는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
이때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서 밤에 찾아왔던 바리새인 랍비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7장 51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혹독하게 비난할 때 놀랍게도 니고데모는 예수님 편에 서서 두둔합니다.
[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예수를)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47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48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 니고데모는 당국자이며 바리새인입니다. */)
51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요 7:45-52)
지금 이 상황은 산헤드린 회의에서 공회원들이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오지 못한 것에 분노하며 떠드는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며 아랫사람들을 다그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나서더니 그리스도의 편을 듭니다. 그는 예수님 편에 섬으로 그들에게 바리새인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음을 지적함으로 그들의 입을 순식간에 막아버립니다. 한 마디로 니고데모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변론함으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더욱이 율법의 올바른 지식으로 미움과 교만에 빠진 산헤드린의 바리새인들의 궤변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니고데모는 우리 주께서 제자들에게까지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아무도 주의 시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때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 이에예수의시체를가져다가유대인의장례법대로그향품과함께세마포로쌌더라
](요 19:30, 39-40)
니고데모의 이 행위는 아무도 예수님을 찾지 않을 때 보여준 진심에서 나온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모든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얼마든지 미움을 받을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한 존경과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늘 주께서 하신 복음의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가 거듭난 후 그가 어떤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지를 간략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니고데모는 가룟 유다와 대조를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멋지게 예수님의 사도로 시작했지만 결국 거듭나지 않은 가짜 사도로 드러나며 예수님을 배신하고 목 매달아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매우 희미한 불빛처럼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믿음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는 마치 예수께서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7-8)라고 하신 말씀처럼 어느덧 거듭나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참된 신자의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아무튼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에 대한 진리를 들은 후 곧바로 예수님께 또 질문했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9).
이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 3:10).
우리 주 예수께서는 유대교의 랍비인 니고데모를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유대교의 바리새인들 및 이스라엘의 지도층의 완고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1-12).
한편, 예수께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할 때 그 내용을 원어로 보면 “이스라엘의 그 선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니그데모가 이스라엘의 랍비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인 것을 뜻하며 따라서 그는 풍부한 성경 지식과 율법 지식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예수님을 찾아올 때 그는 산헤드린의 의장이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그는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유대교인들처럼 복음을 잃은 사람이었고 참된 메시야 관을 붙들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행하신 여러 표젹들을 보고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랍비’로 믿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진리를 듣고 싶어한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는데 그 이유는 유대교의 랍비인 니고데모가 항상 연구하는 구약 성경에는 거듭남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니고데모는 지적으로 율법을 알고 있었지만 진리와 은혜를 말하는 성경에 무지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에스겔 36장 25-28절이 있습니다.
[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너희조상들에게준땅에서너희가거주하면서내백성이되고나는너희하나님이되리라
](겔 36:25-28)
에스겔서에 기록된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주의 백성에게 주시는 위로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런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는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이름이 더 이상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6:23)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겔 36:24) “맑은 물로 너희를 정결하게 하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겔 36:25)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바사의 고레스 왕에 의해 이스라엘이 해방을 얻어서 고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에 명시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회개와 죄사함, 그리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그들이 회개하고 새 마음을 갖게 되는 장소와 방편은 예루살렘 성전과 도덕 율법, 그리고 정결 예식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주의 약속을 믿도록 믿음을 주시고 구약의 예식법이 가리키고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거듭난 마음을 갖게 되어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의 궁극적인 실현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보내시는 성령에 의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는 약속의 내용입니다. 이 부분은 새언약 시대에 속한 우리에게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결국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가져오는 토대가 될 참된 신자들, 즉 거듭난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거듭난 자들은 남은 자들이고 그들에게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구약에서 거듭남에 해당하는 또다른 표현은 마음의 할례입니다. 바울은 할례를 비유로 사용하면서 성령만이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 구별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인한 마음의 할례이며 그러한 할례만이 사람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각 사람의 마음이 성령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마음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할례는 정확하게 우리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거듭남과 같은 것입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 성경의 역사로 되며 */)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바울이 말한 이 진리는 구약의 모세 율법인 신명기 30장에 분명하게 나옵니다.
[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8 (그러면) 너는 돌아와 (/* 회개하고 */)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신 30:6, 8)
세례 요한 역시 거듭남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거듭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마 3:8-10)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이 육체의 할례, 즉 아브라함의 육체적 혈통을 자랑할 때 이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능히 생명이 없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거듭남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이 아직 공식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외치기를 거듭남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도 육체의 할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할례가 가리키는 실제, 곧 성령의 역사로 인한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구약의 말씀 및 하나님의 약속에 충분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약 시대에 전해지는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인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믿으면서 진정으로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고 구약의 참된 신자 곧 남은 자들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음으로 오실 메시야를 바라본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언약 시대에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 역시 구약 시대의 약속의 자녀들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며 제정하신 육체의 할례는 마음의 할례를 표시하는 구약 시대의 제도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육체의 할례는 회개와 믿음으로 거듭나라는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으로 나타나는 내면의 변화는 구원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즉, 위로부터 거듭나는 것은 반드시 회개 및 믿음과 병행합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는 율법을 통해 죄에 대한 지적을 받게 하심으로 회개하게 하시고 율법이 가리키는 메시야를 믿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때가 차매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그러므로 새언약 시대의 교회는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새 언약 시대의 거듭남은 그리스도께서 얻어내신 영생을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그 생명으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그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에게 구약의 말씀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거듭남도 모르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실 니고데모를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복음과 무관한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창 17:1-8) 자신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은 그들에게 지극히 생소하였습니다. 사실 다메섹 도상에서 영광 가운데 계신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 역시 율법에 가장 뛰어난 랍비였지만 복음을 전혀 모르는 철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창세 전부터 성삼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가장 신비한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진실로’를 두 번 말씀하시며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1).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누구입니까? 먼저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 바리새인들”과 대조됩니다. 그리고 이 ‘우리’의 대표는 당연히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으며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고 본 것을 증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니고데모가 대표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을 ‘너희’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과 예수께서 친히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도 믿지 아니합니다. 그 증언 내용은 다름 아닌 나사렛 예수는 독생하신 하나님이요 생명이요 빛이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참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성령의 역사로 인해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서 증언하는 자들입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고 신약 시대의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증언자들의 대표로 예수께서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그들이 증언하는 대상의 주인공으로서 더욱 구체적으로 하늘의 일들을 말할 수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니고데모가 대표하는 바리새인들 및 유대 지도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
땅의 일은 사람들이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구속사적인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의 등장입니다. 이미 유대인들에게 신앙과 일상 생활의 기초가 된 율법 제사 및 계명들입니다. 또한 선지자들의 예언과 교훈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청결 사건 및 예루살렘에서 행한 여러 표적들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성전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고 거듭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니고데모 및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예수께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일들을 목격하면서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러한 어리석고 완고한 자들이 하물며 하늘의 일들,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세 전에 있던 일들과 성삼위 하나님의 경륜을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너희’, 곧 니고데모가 대표하는 산헤드린 공회원 및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완고하고 패역한 어둠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거듭나지 않고는 하늘에서 비롯된 복음을 알 수도 없고 심지어 받아들이지도 못한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복음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이 사실에 대해 사도 바울도 예수님과 동일하게 말씀했습니다.
[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전 2:4-12, 14)
이렇게 뚜렷하게 하늘의 일들은 사람의 힘으로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이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며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랍비로 믿는 상태에서 주를 찾아와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는 거듭나게 됩니다.
자, 우리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친히 복음을 전하십니다. 복음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이기에 우리 주님은 ‘진실로’를 두 번 붙여서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먼저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여기서 ‘하늘’은 천지만물의 피조물의 공간에 속한 삼천층, 즉 낙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늘’은 피조의 세계가 아닌 성삼위 하나님의 창조주의 세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나타내는 의미로 ‘하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증거는 성경에 차고 넘칩니다. 세 구절만 참조하겠습니다.
[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25-27)
[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요 3:31-34)
[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38-40)
즉, 예수님은 성삼위 하나님의 세계에서 시공간의 피조 세계로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신 인자시며, 당연히 그분 외에 하나님의 세계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세계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人者) 외에는 그 누구도 하늘에 있던 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의 일을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인자 그분 밖에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자기 증거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사람으로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만이 사명을 다 마치신 후에 아버지께로, 즉 하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원래 하나님의 세계인 하늘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러므로 13절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단히 중요한 언급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늘의 일들, 즉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삼위 간에 나누신 가장 신비한 진리인 복음의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무엇보다 인류에 죄가 들어온 이후에 인류가 구원 받아 새롭게 지음 받을 수 있는 거듭남의 길을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믿으며 율법을 지키던 자였습니다. 그는 율법을 지킴으로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던 자였습니다. 하지만 소위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2-3).
이슬람도 하나님을 믿고, 유대교도 하나님을 믿고, 이단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무당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심지어 철학자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거리를 다니게 되는데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레오바고라는 광장에 서서 크게 외칩니다.
[
22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 17:22-23)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전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하여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게 하셨다는 사실과 이에 대한 증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로서 온 인류의 구주일뿐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자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행 17:30-31)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과거에 대해 회개하고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 믿음으로부터 주께 순종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직 구원을 얻은 후에야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친히 이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 11:25-27)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 바리새인 랍비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죄 가운데 멸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가장 먼저 전하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인데, 인자이신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복음의 두 번째 골자를 증거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메시야는 자기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메시야를 마음에 영접하고 구주와 주로 믿을 때 영생을 얻는다고 알려주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복음의 골자를 전하시기 위해 구약의 광야 기간에 있었던 불뱀에 물린 사건을 거론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예수님은 민수기 21장4-9절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부분이 복음의 골자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민 21:4-9)
장대 위에 매달아 놓은 놋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속량하신 사건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 속량으로 인한 죄 사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활로 새생명을 주시는 것까지 이 짧은 말씀 안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즉, “인자가 들려야 하는” 것과 “그를 믿는 자”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속량하시는 사건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승천하시는 사건까지 담은 표현입니다. 즉,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구약의 광야에서 죽은 놋뱀 자체는 예표적인 기능 외에 어떤 치유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표로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킬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께서 니고데모 앞에 앉아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장대의 놋뱀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니고데모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이 부활 생명으로 거듭나는 새 언약 시대의 거듭남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5).
그리고 예수님은 복음의 요소들을 요약하여 한 마디로 복음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렇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류에게 구원을 제시하심은 모든 사람을 향한 진지한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라고 부르심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요일 2:23).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10).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장대의 놋뱀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량과 그 이후 부활하여 영원한 중보자로서 살아계시는 주를 믿고 의지하며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15절에서 “그를 믿는 자마다”라고 할 때 ‘믿는’은 (피스튜온)이라는 원어로서 현재 분사형입니다. 즉, 영광의 그리스도를 계속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주와 연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신자들은 영생을 얻으며 또한 영생을 계속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뜻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 계속 죽어 있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속량하신 후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중보자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 승천하여 영광 가운데 계신 나사렛 예수님은 우리의 둘째 아담이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으로서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인자이신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부활하신 후에도 영원토록 완전한 사람이자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편, 새언약 시대에 생명을 얻는 것은 각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며 영광에 이른 생명이고, 그 생명을 소유한 신자는 몸이 있는 동안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즉,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과 의의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영생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통하는 것과 더불어 또한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누리는 삶입니다. 즉, 영생의 삶입니다.
이러한 영생의 삶은 거듭남과 함께 성령 안에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으로 시작하고 죽음 이후에는 하늘의 낙원에서 영생을 누리다가 예수님 재림 때에 이 땅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인 새하늘과 새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게 됩니다. 그 때는 하늘과 땅이 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통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모든 만민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은 온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기에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7-18).
그리고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고집과 교만과 완고함 가운데 죄사함과 영생의 길을 거절하고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19-20).
그러나 창세 전에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진리를 따르게 되면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주를 영접하여 믿게 됩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21).
여기서 진리를 따르는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복음 전파를 들으면서 성령에 의해 믿음이 생겨나서 거듭나게 된 자들입니다. 이때 진리를 따르는 이들은 반드시 빛 되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에 따라 생활합니다. 그들은 진리에서 벗어날 때마다 회개하고 곧바로 다시 빛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빛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자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주된 현상입니다. 즉, 성령에 의해 죄를 인식하고 회개함이요 곧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 주와 연합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삶, 즉 선을 행하는 삶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주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복음을 들을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은 삶을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았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오늘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늘로부터 거듭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강림 이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영광의 그리스도 안에서 맘껏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믿음으로 세상과 마귀와 죄를 이기는 믿음과 승리의 삶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