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 박은희
보리밥은 싫다. 죽은 더 싫다. 내 어머니는 끼니때마다 밥투정하는 딸을 위해 보리밥이 아닌 다른 식단을 고민했을까. 마음속으로 딸이 원하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을지라도 딸을 위한 밥상은 차리지 못했다. 그날도 멀건 나물죽을 앞에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았으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 홀로 조금 전에 본 친구네 밥상이 떠올라 놀란 가슴이 쿵쾅거릴 뿐, 아무도 나의 속을 들여다보는 이는 없었다.
또래의 친구라면 사는 형편이 다 같을 것이라 믿었던 시절, 푸른 완두콩이 드문드문 박힌 쌀밥이 친구네 대청마루에 차려진 걸 보았다. 순간 속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음에 놀자며 급히 친구 집 대문을 나서는데, 등 뒤로 밥 먹고 가라는 친구 가족들의 외침이 들렸다. 서산마루에 해가 걸렸으니 우리 집 마당에도 저녁 식사가 마련될 시간이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남의 집에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온 것이 그렇게 분한 일인지. 나는 죽사발에 숟가락을 꽂아 휘휘 젓는 걸로 속울음을 삼켰다.
보리밥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해맑은 얼굴로 자기는 보리밥이 좋다며 밥을 바꿔 먹자던 친구. 조금은 당황했고 의아했던 내게 그의 제안은 어떤 대답을 바라지도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았다. 확실한 건 학교에서 도시락을 바꿔 먹자고 했으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집에서 국물용으로 쓰는 큰 멸치를 고추장에 볶아서 싸주던 엄마표 멸치볶음이 창피해서 친구들 몰래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약속이 둘만의 비밀이라지만 그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친구네는 매일 쌀밥을 지었으나 우리 집에서 죽이 아닌 보리밥을 하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우리 집에도 보리밥을 하는 날, 밥그릇을 수건으로 싸서 품에 안고 나가는 나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뒤뜰로 통하는 감자밭을 가로질러 동네 둑길로 내달았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에 어둠이 내려앉아 깜깜한 저녁.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은 내 인생의 지우고 싶은 오점이다. 밥그릇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비명을 듣고 달려 나온 어머니가 수습했다. 무릎이 깨진 채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는 비가 와도 뛰지 않는 아이로 부모님을 걱정시켰다. 어차피 맞은 비를 피하려고 뛰어가는 것이 나로서는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그런 어설픈 고집 말고는 크게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그날의 해프닝은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하는 죄송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 모든 국민이 정부 시책에 따라 밀가루와 보리 혼식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아이들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 집에서는 제철 나물을 넣어 끓인 죽을 먹었고, 학교에서는 완전한 보리밥을 먹었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싫었던 보리밥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별미가 되었으니, 세상은 내가 어릴 때하고 많이 달라졌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외식 메뉴는 보리밥이다. 사는 동안 보리밥이 싫다는 의사 표현을 여러 번 했는데도 모처럼의 외식이 보리밥으로 낙찰되는 일이 잦으니 말이다. 남편이 무심한 표정으로 보리밥 어때! 할 때면 섭섭한 마음에 핀잔을 주거나 언짢은 반응을 보였지만, 사람 안 변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만다. 어느 날은 사양하고 더러는 함께하면서 세월은 저만치 흘러갔다.
올해도 한겨울을 이겨 낸 보리가 싹을 키우고 초록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에 종종 고향 집에 들른다. 새파랗던 보리가 황금빛으로 물이 들고 그 출렁임이 절정일 때 수확이 시작된다. 트랙터라 불리는 농기계는 엄청난 크기의 바퀴를 가졌다. 농부가 위에서 두루 밭을 내려다보며 작업할 수 있게 운전자의 자리가 높게 설계된 것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작동과 동시에 우렁찬 소리로 넓은 밭을 훑고 지나가면 차례로 보리가 베어지고 탈곡하여 포대에 담기는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그 모든 절차를 거쳐 사람들의 밥상에 오를 풍요로움을 볼 때면 내 어린 날의 곤궁함은 추억 속 이야기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이 계절 완두콩이 촘촘히 박힌 기름진 쌀밥을 앞에 놓고 보리밥이 좋다던 친구의 안부가 궁금한 것은, 흘러간 시간이 안겨준 삶의 여유일까. 내일은 보리를 조금 섞어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봐야겠다.